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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그날[79회]<풍전등화의 조선, ‘그들’이 있었다> 4편 분조-임진왜란 임시정부 선포

파라클레토스 2015. 12. 16. 11:21

<풍전등화의 조선, ‘그들’이 있었다> 4편 분조-임진왜란 임시정부 선포하던 날


임진왜란 발발 약 한달 만에
평양성 함락.
조선은 벼랑 끝까지 내몰린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
임시정부로 탄생한 분조.

하지만 실록에는
거의 실려 있지 않은 
조선 최초의 임진왜란 임시정부
분조分朝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 조선 최초의 임시정부, 분조分朝 탄생
1592년 6월, 일본군은 대동강을 넘어 평양까지 위협한다. 당시 영변에 머물고 있던 선조는 국경을 넘어 요동으로 갈 것을 주장한다. 하지만 조정 신료들은 국왕이 국경을 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한다. 국왕이 조선에 남아 직접 대일 항전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고민 끝에 선조는 조정을 둘로 나눌 것을 결심한다. 분조(分朝), 조선 최초의 임시조정이 탄생한 것이다. 6월 14일, 왕의 권한을 위임받은 세자 광해군은 10여 명의 호종신을 이끌고 전장으로 향한다. 변변한 호위 군사나 궁인도 없던 상황에서 분조가 전란 극복의 책임을 지게된 것이다.


 

 

■ 분조, 전쟁의 흐름을 바꾸다
영변을 출발한 분조는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강원도 이천에 도착한다. 분조의 소식을 들은 전·현직 관료들은 이천으로 모여들었고, 팔도 감사들의 보고서도 분조에 올라오기 시작한다. 분조는 군령을 정비하는 한편, 격문을 보내 의병들의 대일 항전을 독려한다. 분조의 노력으로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싸우던 의병들은 서로 연계를 하며 본격적으로 일본군에 맞서 싸운다. 한편, 분조는 순변사 이일 등이 끌고 온 병력으로 군사 작전까지 수행한다. 이들은 크고 작은 전투를 통해 황해도와 평안도에 주둔해 있던 일본군이 연계하는 것을 막는다. 임진왜란 초기 대일항전의 구심점으로 전쟁의 흐름을 바꾼 분조.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그들의 활약상을 살펴본다.

     


■ 분조, 임진왜란 초기 골든타임을 사수하다
1593년 1월 9일, 조·명 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한다. 전세 회복에 자신감을 얻은 선조는 분조를 폐할 것을 명한다. 임진왜란 기간 중 가장 격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1년, 혼란 속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조정을 대신해 항전의 불씨를 지폈던 분조. 하지만 분조는 임무수행 7개월 만인 1월 20일, 분조는 정주에서 선조가 이끄는 대조에 합류한다. 분조가 사라진 후에도 광해군은 전장을 돌며 군량을 모으고, 군사를 지원하는 등 실질적인 분조의 역할을 수행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