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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전 23회 왜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났을까 -허난설헌

파라클레토스 2010. 11. 29. 09:22
♣허난설헌(許蘭雪軒)

 

낭독의 발견http://www.kbs.co.kr/2tv/sisa/nangdok/

 

조선의 여성, 그 아름답고 슬픈 시인들의 노래.

                                                    - 조선시대 여성문학 편

- 2010년 11월 1일 (월) 밤 12:35 (KBS 2TV)

 

 

채련곡(采蓮曲) - 연밥따는노래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가을 날 맑은 호수 옥 같은 물 흐르는데

荷花深處繫蘭舟(하화심처계란주) 연꽃 깊은 곳에 목란 배를 매어두고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연자) 님 만나 물 저편에 연밥을 던지고는

遙被人知半日羞(요피인지반일수) 행여 남이 봤을까 봐 한참 부끄러웠네.
                     

                                                      - 허난설헌 詩 <채련곡采蓮曲>  

 

 

望仙謠(망선요) -문집외(外)시 ※오언고시의 망선요

 

王喬呼我遊(왕교호아유) 신선왕교가 함께 노닐자고,

期我崑崙墟(기아곤륜허) 곤륜산에서 나를 기다렸다네,

朝登玄圃峰(조등현포봉) 아침에 현포봉우리에 올라서

望遙紫雲車(망요자운거) 멀리 붉은 구름의 수레를 바라보네

紫雲何煌煌(자운하황황) 붉은 구름 어찌나 빛나든지

玉蒲正渺茫(옥포정묘방) 옥포는 그저 아득하구나

숙忽凌天漢(숙홀능천한) 홀연히 은하수 넘어서 ※숙(攸아래火)

飜飛向扶桑(번비향부상) 해뜨는 부상을 향해 날아가니

扶桑幾千里(부상기천리) 부상 몇 천리 되는 그곳

風波阻且長(풍파조차장) 풍파가 길을 막아 더욱 멀구나

我慾舍此去(아욕사차거) 이처럼 어려운 길 버리고 싶지만

佳期安可忘(가기안가망)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어찌 놓치랴

君心知何許(군심지하허) 그대 마음 어디쯤 있는지 알기에

賤妾徒悲傷(천첩도비상) 내 몸은 더욱 슬프기만 하여라

                          -명시종"출전

 

※명시종 (明詩綜) -음텅하다 하여 난설헌집에는 없고 명시종에 기록되어 있다

중국 청나라의 주이존(朱彛尊)이 편찬한 명나라 시집. 홍무(洪武)에서 숭정(崇禎)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 시인의 시와 민요를 수집하여 수록하고, 작자마다의 소전(小傳)과 여러 문장 대가의 시평을 기록하였다. 100권.

 

허미자 저"허난설헌연구"의 망선요도 있습니다.

 

望仙謠(망선요)- 허난설헌 ※7언고시 망선요

 

瓊花風軟飛靑鳥 (경화풍연비청조) 아름다운 꽃 바람에 하늘거리고 파랑새가 날아오르는 사이  

王母麟車向蓬島 (왕모인차향봉도) 서왕모님 기린 수레 타고 봉래섬으로 향하시네. 

蘭旌蘂피白鳳駕 (난정예피백봉가) 난초 깃발 꽃술 장식 장막 드리워진 눈부신 봉황 수레여,  

笑倚紅란拾瑤草 (소의홍란습요초) 미소지으며 난간에 기대어 향기로운 풀꽃을 뜯으시네. 

天風吹擘翠霓裳 (천풍취벽취예상) 하늘에서 바람 불어와 파르스름한 무지개 옷이 흩날리고  

玉環瓊佩聲丁當 (옥환경패성정당) 옥가락지와 옥패물이 부딪쳐 청아한 소리 울려 퍼지네. 

素娥兩兩鼓瑤瑟 (소아양양고요슬) 달나라 선녀들 둘씩 짝을 지어 아름다운 비파를 연주하니 

三花珠樹春雲香 (삼화주수춘운향) 일년에 세 번 꽃 피는 나무엔 봄 구름 향기가 감도누나.    

平明宴罷芙蓉閣 (평명연파부용각) 어느새 새벽이 다가와 부용각 잔치는 끝나고  

碧海靑童乘白鶴 (벽해청동승백학) 푸른 신선 바다의 신선은 흰 학에 올라타시네.  

紫簫吹徹彩霞飛 (자소취철채하비) 뚫는 듯 들려오는 자줏빛 피리 소리에 오색 노을 흩어지고 

露濕銀河曉星落 (노습은하효성락) 이슬 젖은 은하의 강 속으로 새벽 별이 떨어지네

                                      - 허난설헌(許蘭雪軒) 

 

망선요(望仙謠)-선비를 바라보면서 이상세계를 동경하는 마음을 읊은시  

 

楊柳枝詞(양류지사)- 허난설헌  

버드나무 강가에서 이별을 노래함

   

楊柳含煙灞岸春(양류함연파안춘) 수양버들에 안개 서리고 파강 기슭에 봄이 오니  

年年攀折贈行人(년년반절증행인) 해마다 가지 꺾어 길 떠나는 님께 드리네.  

東風不解傷離別(동풍불해상이별) 봄바람이 이별의 쓰라린 마음 달래 주지 못하고  

吹却低枝掃路塵(취각저지소로진) 낮게 늘어진 버들가지엔 봄바람 불어와 길바닥 먼지를 쓸어 가는구나.

  

靑樓西畔絮飛揚(청루서반서비양) 청루의 서쪽 기슭에 버들 솜이 흩날리고  

烟鎖柔條拂檻長(연쇄유조불함장) 안개에 덮인 부드러운 버들가지는 난간을 스치었어라. 

何處少年鞭白馬(하처소년편백마) 어디 사는 소년이 백마를 채찍질하며 타고 와서  

綠陰來繫紫遊韁(녹음래계자유강) 녹음 우거진 곳에 자줏빛 고삐를 매어 놓는구나.  

 

灞陵橋畔渭城西(파릉교반위성서) 파릉교 기슭에서 위성의 서쪽까지  

雨鎖烟籠十里堤(우쇄연롱십리제) 빗속에 십리 둑방 길은 안개로 자욱하여라.  

繫得王孫歸意切(계득왕손귀의절) 버들가지에 고삐 매었던 귀공자는 돌아오고픈 마음 간절한데

不同芳草綠萋萋(부동방초록처처) 이 몸의 신세는 꽃다운 풀들이 푸르게 우거진 것만도 못하구나.

  

條妬纖腰葉妬眉(조투섬요엽투미) 버들가지는 가는 허리 같고 버들잎은 고운 눈썹 같은데

怕風愁雨盡低垂(파풍수우진저수) 바람이 두렵고 비에 시름겨워 낮게 드리웠어라. 

黃金穗短人爭挽(황금수단인쟁만) 황금빛 가지를 사람들이 다투어 잡아당기는데  

更被東風折一枝(갱피동풍절일지) 봄바람이 다시 불어와 또 한 가지 꺾여지는구나.  

 

按轡營中占一春(안비영중점일춘) 안비영 성안에는 봄이 한창 무르익고    

藏鴉門外麴絲新(장아문외국사신) 장아문 밖 실버들은 새로이 물오르네. 

生憎灞水橋頭樹(생증파수교두수) 밉기도 하여라. 파수교의 버드나무는  

不解迎人解送人(불해환인해송인) 오는 사람 고삐는 안 풀어주고 가는 사람 고삐만 풀어주는구나

 

류지용님의 낭독 (의역해서)

灞陵橋畔渭城西 (파릉교반위성서) 파릉다리에서부터 위성의 서쪽까지

雨鎖烟籠十里堤 (우쇄연롱십리제) 십리둑 길이 안개비에 흐리게 잠겨있네

繫得王孫歸意切 (계득왕손귀의절) 고운 님 떠나려는 마음을 남몰래 묶었으니

不同芳草綠萋萋 (부동방초록처처) 우거진 풀숲을 거닐어도 딴 생각에 잠기네

 

※허난설헌 묘 :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지월리소재

묘비의 비문은 이숭녕이 지은 것이며,

묘의 우측에는 1985년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에서 세운 시비가 있다

시비에는 허난 설헌의 곡자시(哭子詩)가 새겨져 있으며

시의 대상인 두 자녀의 무덤이 난설헌묘 좌측전면에 나란히 있다

두 자녀의 묘지를 보면서 얼마나 피 눈물을 흘렸을까요!

통곡이라 할까! 절규라 할까!

 

자(哭子) -  허난설헌

자식의 죽음에 곡하다 

 

去年喪愛女 (거년상애녀)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잃고

今年喪愛子 (금년상애자)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 잃었네 

 

哀哀廣陵土 (애애광능토) 슬프고 슬프구나 광릉의 땅에

雙墳相對起 (쌍분상대기) 두 무덤 마주보고 솟아 있구나 

 

蕭蕭白楊風 (소소백양풍) 백양나무에 쓸쓸히 바람부는데

鬼火明松楸 (귀화명송추) 숲속에선 도깨비 불이 반짝거린다, 

 

紙錢招汝魂 (지전초여혼) 종이돈 살라 너희들 혼을 부르고

玄酒尊汝丘 (현주존여구) 물탄 주로 너희들  무덤에 제 지내노라 

 

應知弟兄魂 (응지제형혼) 응당 알리라 너희 남매 혼백은

夜夜相追遊 (야야상추유)  밤세도록 서로조차 어울려 놀겠지 

 

縱有腹中孩 (종유복중해)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 해도

安可糞長成 (안가분장성) 어찌 제대로 자랄 것을 기대할 수 있으랴

 

浪吟黃臺詞 (랑음황대사) 부질없이 황대의 노래를 부르며

血泣悲呑聲 (혈읍비탄성) 피눈물 흘리며  소리삼겨 슬퍼하노라

 

玄酒- 제사(祭祀) 때에 술 대신(代身)에 쓰는 맑은 찬물

 

추한(秋恨) - 허난설헌

가을의 정한

 

絳紗遙隔夜燈紅 (강사요격야등홍)  붉은사창에 저멀리 강등불 반짝이는데

夢覺羅衾一半空 (몽각나금일반공)  꿈을 깨니 비단이불 반쪽이 비었구나

霜冷玉籠鸚鵡語 (상생옥롱앵무어)  서리차가운 조롱에 앵무새는 지져귀고

滿堦梧葉落西風 (만계오엽락서풍)  섬돌 가득 오동잎이 가을바람에 떨어지네

 

※위의 시는 낭독의 발견에서 낭독한 허난설헌(許蘭雪軒)시다

허난설헌을 공부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한국사전의 내용과 그녀의작품 세계를 정리하여 본다

 

 

 한국사 전

홈페이지
http://www.kbs.co.kr/1tv/sisa/hankuksa/
 

한국사전 23회- 왜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났을까 -허난설헌 

방송 : 2007. 12. 8 (토). (KBS 1TV)

 

 

1. 허씨 가문 여덟살 여자신동,허난설헌

    -허 난설헌은 어떻게 그런 시대에 천재시인이 될 수 있었을까?

 

<※ 허난설헌(許蘭雪軒.1563년~1589년)은 조선 중기의 시인으로 27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강릉(江陵)출생,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자는 경번(景樊),호는 난설헌(蘭雪軒)이다>

 

한 여인이 슬픔에 잠겨있다

딸과 아들을 모두 잃은 기구한 운명

이 여인은 조선의 천재시인 허난설헌이다

 

그러나 여자로 태어났기에

조선에서 그녀의  시는 끝내 외면받았다

 

조선을 대표하는 여류시인 허난설헌

그녀는 유명한 양반가의 딸로 태어나서

글과 학문을 마음껏 익혔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수준높은 시를 남겼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그녀가

'조선땅에

여성으로 태어나서

김성립의 아내가 된

이 세가지를 한(三恨)스러워 했다' 고 말합니다

 

허난설헌은 왜  조선땅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한스러워 했던 것일까요?

 

허난설헌이 살았던 16C 조선은 여성이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을 펼처 보일 수 있는 그런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조선에서

허난설헌의 시는 철저히 외면 당했습니다

 

그런데

영원히 묻혀버릴  뻔한 허난설헌의 시가 중국에서 되살아 났습니다

 

중국 북경

중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가도서관

제작진은 이곳에서 특별한 책 한 권을

만날 수 있었다

 

제목은 '조선시선'

 

 

 "조선시선은 명나라때 만들어진 판본으로 조선 시인의 시집입니다.

(중국에서도) 매우 진귀한 고서입니다 -짜오치엔 박사

 

이 책속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의 작품이 실려있다

조선시대 시인뿐만 아니라, 고려, 신라시대 시인들까지 총망라 되어있다

신라시대 학자인 '최치원'의 시를 비롯해 생육신의 한사람인 '김시습'

그리고 '許妹氏' 기록된 허난설헌의 시가 이책에 들어있다

 

그 중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허난설헌의 시다

그렇다면 '조선시선'

이책은 어떻게 중국에서 출판이 된 것일까?

 

허난설헌이 죽은 이듬해인 1590년

허균은 집에 남아있던 누이의 시와 평소 자신이 외우고 있던 시를 써서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죽은 누이 허난설헌의 시집을 펴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남동생 허균에 의해 허난설헌의 시가 세상에 처음 나오게 된다

허균은 누이의 시를 당시 대문호였던 유성룡에게 보여주었다

 

 제 누이의 시를 한번 모아보았습니다

선생님의 고견을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異哉 非婦人語 何許氏之門 多奇才也 (리재 비부인어 하허씨지문 다기재야?)

 “훌륭하도다. 부인의 말이 아니로다. 어떻게 하여 허씨의 집안에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 이토록 많단 말인가”

 

歸且收拾而實歲之(귀차수습이실세지)

"돌아가 간추려서 보배롭게 간직하여 한 집안의 말로 비치하고

반듯이 전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    -  서애 유성룡

 

유성룡은 허난설헌의 시를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곧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고

명나라는 조선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했다

 

당시 명나라 지원병과 함께 사신이 조선을 찾았는데

그 중 오명제가 있었다

조정은 말재주가 뛰어난 허균을 보내 사신을 맞이하게 했다

문인이었던 오명제는 조선의 시와 문장을 수집하고 있었다

 

이때 허균은 다른 조선 문인의 시와 함께

허난설헌의 시 200여편을 오명제에게 건네준다

 

오명제는 허난설헌의 시에

큰 관심을 표했다

 

명나라로 돌아간 오명제는

1600년에 이 시들을 모아 '조선시선'을 출판한다

 

허난설헌의 시가 이 책을 통해 중국에 알려지게 된것이다

 

 

내가 북경으로 돌아오자 

문인들이 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조선 시와 허난설헌의 신선시를 구하고 싶어했다

                              -오명제<조선시선>

 

 이후 명나라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허난설헌의 시를 얻어가고 싶어 했고

그런 이유로 허균을 찾았다

 

그 만큼 허난설헌의 시는 명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중국 땅에서 최초의 한류 열풍을 불러온 것이다

 

"명말기에 여성시가 유행하면서.
많은 여성 시인과 시집 등장했습니다.
이때 한국에도 여성시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것이 바로 허난설헌입니다."
                                                           - 중앙민족대학 치칭푸교수

 

<※ 이후에도 허난설헌의 시는 

명나라에서<조선시선(朝鮮詩選)>을 비롯해 

고금여사(古今女史)>, <열조시집(列朝詩集)>, <명시종(明詩綜)>,  <긍사(亘史)>,

<양조평양록(兩朝平攘錄)>, <이담(耳譚)>, <명원시귀(名媛詩歸)> 등 여러 책에 수록되어,  

중국시단에 신화처럼 이어져 내려왔다 

1700년대 일본에서도 시집이 간행되어  널리 애독되었다.>

 

자칫 역사에서 사라질 뻔한 허난설헌의 시는

남동생 허균의 덕분으로 후세에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허난설헌의 아버지는 초당 허엽(許曄으로 첫째 부인 청주한씨에게서 허성 (許筬)을,

부인과 사별하여 둘째부인 강릉 김씨에게서 허봉(許篈)과 허난설헌, 허균(許筠)을 얻는데

이들은 모두 문장이 뛰어나 당대에 '허씨 5문장가'로 불린다

<※ 허난설헌의아버지 초당 허엽(許曄)은 즉,허엽(曄)의 딸이고, 봉(篈)의 여동생이며,

균(筠: 홍길동전 저자)의 누이이다>

 

 

 

하지만 성리학이 지배하는 조선사회에서 여성이 한문을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왕실의 공주에게도 한글 이상은 가르치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그렇다면 허난설헌은

어떻게 한문을 배워 한시를 짖게 된 것일까요?

 

강릉시 초당동

초당이란 마을이름은  허나설헌의 아버지 허엽(曄)의 호에서 비롯되었다

 

허난설헌의 생가가 이곳에 위치해 있다

 

조선시대 양반 명문가에  딸로 태어난 허난설헌

허난설헌의 아버지는 초당 허엽(許曄으로 첫째 부인 청주한씨에게서 허성 (許筬)을,

부인과 사별하여 둘째부인 강릉 김씨에게서 허봉(許篈)과 허난설헌, 허균(許筠)을 낳았다

 

허엽은 글 공부를 가르칠 때 아들과 딸의 구별을 두지 않았다

그 덕에 허난설헌은 동시대 다른여성들과 달리 다양한 학문을 익힐 수 있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의 여성은 부덕을 닦으나 부공을 열심히 갖추는 것을

여성의 미덕으로 보는 사회이다.

초당허엽의 경우는 난설헌을 한 여성으로 본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 본 것이죠, 인격체로 보았다는 사실이죠,

그것은 우리사회에서 양성평등 과도 같은 관점과도 통하는 것이고~~"

                                       -<장정룡교수 -강릉대학교>

 

허난설헌은 허균의 글공부를 직접 가르첬다

허균이 시를 지으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할 정도로 문학 실력이 뛰어났다

 

허균은 누이의 시를 높이 평가했다

 

누님의 시문은 모두 천성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어가 모두 맑고 깨끗하여 음식을 익혀먹는

속인으로는 미칠 수가 없다 -학산초담

 

허난설헌의 천부적인 글재주는 이미 어린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남동생 허균과 함께 학문을 익혔고

특별한 교육 덕으로 천재시인이 재량을 닦으며 자라난다

 

 

허난설헌은 허균의 누이다

8세에 능히 시를 지었으며

여신동이라 칭해졌다 -양조평양록

 

그녀의 백옥루상량문은 8세에 지은 것인데

만약 하늘이 내린 재능이 아니라면

어떻게 지어낼 수 있겠는가 -긍사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이곳에 허난설헌이 8세에 지었다는 작품이 보관되어 있다

 

1570년(선조3) 여덟 살 나이의 허난설헌은

신선의 세계를 노래한<광한전 백옥루 상량문(廣寒殿 白玉樓 上樑文)을 지었는데

대단한 명문이다

 

                        <한전 백옥루 상량문>

 

<1605년 당대 최고의 명필인 한석봉의 글씨가 전하며

이 시를 읽은 명나라의 유명한 문인 조문기(趙文奇)는 극찬한다>

 

여덟 아이가 지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표현력과 상상력이 뛰어나다

 

"광한전 백옥루는 도교의 상상의 궁전이거든요

거기에 상량문을 올릴 때 글을 쓴 그런 내용인데

난설헌이 여덟살 때 지은 아주 명문입니다

대단한 문장인데

대단한 문장에 걸맞게 당대의 명필이었던 한석봉 선생이

1605년에 이글을 쓴 것입니다"

                                                 -장정룡교수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 (廣寒殿白玉樓上梁文) 

1570(선조3) 허난설헌이 8세에 지은 산문시

상량문(上梁文)은 대들보를 올리며 행하는 상량의식에 쓰이는 글이다

허난설헌은 신선계계에 있다는 광한전 백옥루 상량식에 초대받았다고

 상상하면서 이글을 지었다

  

상냥문의 내용    

“어영차 동쪽으로 대들보 올리세. 새벽에 봉황타고 요궁에 들어가 날이 밝자 해가

부상 밑에서 솟아올라 일만 가닥 붉은 노을 바다에 비쳐 붉도다. 어영차, 남쪽으로 대들보 올리세.

옥룡이 하염없이 구슬못 물 마신다. 은평상에서 잠자다가 꽃그늘 짙은 한 낮에 일어나,

웃으며 요희를 불러 푸른 적삼 벗기네. 어영차, 서쪽으로 대들보 올리세. 푸른 꽃 시들어 떨어지고 오색 난새 우짖는데,

비단 천에 아름다운 글씨로 서왕모 맞으니, 날 저문 뒤에 학 타고 돌아가길 재촉한다. 어영차, 북쪽으로 대들보 올리세.

북해 아득하고 아득해 북극성에 젖어 드는데, 봉새 날개 하늘 치니 그 바람 힘으로 물이 높이 치솟아 구만리 하늘에

구름 드리워 비의 기운이 어둑하다. 어영차. 위쪽으로 대들보 올리세.”

             

허난설헌은 그림에도 뛰어났다

작품제목은"안간비금도'

집앞에서 아버지와 어린 딸이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조선시대 회화사에 소녀가 그림 속에 등장하는 무척 드물다

 

 

                                 <앙간비금도(仰看飛禽圖)>

 

미술가들은 '그림속의 소녀가 허난설헌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 평한다

필체도 여성답지 않게 획이 굵고 힘이 넘친다

 

허난설헌의 뛰어난 재능 뒤에는 오빠 허봉의 도움이 있었다

난설헌 보다 나이가 12살 위의 오빠 허봉은

일찍 과거에 합격하여 중국에 사신으로 자주 오가며,

두보의 시이며 책을 사다 난설헌에게 주어 시를 익히게 했다

동생의 재능을 높이 산 허봉의 배려였다

 

허봉은 평소 말하기를

 

 "난설헌의 재주는 배워서 그렇게될 수없다.

이태백과 이장길에게서 물려받은 소리다." -허봉, <학산초담>에서

 

이런 동생의 재능을  더욱 키워주기 위해

허봉은 친구 이달(李達,1539~1612)에게 시를 배우도록 동생을 소개시켜 주었다

손곡이달(李達)은 <3당(唐)시인(최경창, 백광훈,이달)> 중

한명으로 불릴 정도로 당나라 시에 능하였다

 

하지만 이달은 서얼 출신으로 일찍부터 관직을 포기하고 오로지 시에만 매진하였고 있엇다

난설헌은 손곡이달을 스승으로 맞아 당나라 시를 비롯해 여러 학문을 두루 배우며

학문의 깊이를 더해갔다

 

"그 당시 일반적인 양반가문에서, 서얼출신을, 그것도 특히 여자한테

선생님으로 소개한다는 것을 보면, 그 당시 일반적인 집안의 가풍은 아니라고 봅니다"

"허란설헌 집안이 갖고 있는  특별하고도 시대를 뛰어넘는 앞선 집안의 가풍,

진보적인 가풍과 시대와는 화합할 수없는 상당히 혁명적인 기질들이 집안의 형제들이

갖고 있었다 라고 보여져요" - 김성남박사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 학술원)

 

개방적이고 남녀차별이 전혀없는 집안에서 자란 허난설헌

재능을 인정해 준 가족들 덕분에 그녀는 마음껏 시를 쓰고 꿈을 키워갔다

 

허난시절의 유년시절은 그 누구보다 행복했다

 

추천   - 그네

隣家女佯競추韆(린가녀양경추천) 이웃집친구들과 그네뛰기 시합을 했어요  ※추(革+秋)

結帶蟠巾學半仙(결대반건학반선) 띠를 매고 수건 두르니 마치 선녀가 된 것 같았지요

風送綵繩天上去(풍송채송천상거) 바람차며 오색 그넷줄 하늘로 날아오르자

佩聲時落綠楊煙(패성시락록양연) 노리개 소리 댕그랑 울릭 푸른 버드나무엔 아지랑이 피어났지요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2. 천재로 태어나'조선의 여인'으로 살아야 하는 삶

     - 결혼 이후 허난설헌의 삶은 어떠했을까?

 

명문가에서 태어나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허난설헌

그녀가 어느덪 이집을 떠나야 할때가 다가왔습니다

 

조선중기에는 여자들이 보통16~18살 경

즉, 10대 후반에 결혼을 했다

 

대부분 부모가 정한 혼처에 따라 정략결혼이 이루어졌습니다

 

집안 어른들이 결정한 허난설헌의 상대는 안동김씨 집안의 자재로

5대가 대를 이어 문과에 급제한 문벌 가문이었습니다

 

두 양반가의 축복 속에 결혼을 하게 된 허난설헌

그녀의 결혼생활은 어땠을까요?

 

허난설헌은 577년(선조10) 15세 때 김성립(金誠立,1562~1592)과 결혼하였다

 

허난설헌의 남편이 된 김성립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김성립은 5대째 과거 문과 급제를 한 안동 김씨 명문가 자제로

할아버지 김홍도는 영의정을

아버지 김첨은 도승지와 이조전랑을 지냈으나

김성립은 허난설헌이 죽고 난 이듬해인 1589년(선조22년)에야

증광문와에 병과로 급제하여 홍문관저작(弘文館著作)정8~9품에 머물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명성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다

 

김성립과 결혼한 허난설헌은 친정을 떠나 시댁에 들어가 생활했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맏며느리로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로써는 이러한 시집생활이 다소 이례적인 것이었다

 

 친영(親迎) 제도:혼례를 치른 뒤 여자가 시댁에서 생활하는 혼인형태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 혼례를 치른 뒤 남자가 처가에서 생활하는 혼인형태 

 

친영(親迎)은 당시 결혼 풍습과는 사뭇 달랐다

조선중기까지만 하더라도

결혼제도는 이와  완전히 반대였다

남귀여가(男歸女家)였다

 

장인의 집을 들어간다는 뜻의 장가간다는 표현도 여기서 비롯됐다

 

현모양처의 귀감인 신사임당이 태어나고 자란 오죽헌

허난설헌과 동시대를 살았던 신사인당은 시댁이 아닌

친정에서 결혼생활을 했다

아들 율곡이이도 친정에서 낳아 키웠다

 

시문과 그림에 뛰어났던 신사임당

그녀는 아름다운 산수와 주변풍경을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다

한국 제일의 여류화가라는 평을 받는 신사임당

그녀의 뛰어난 예술세계 뒤에는 친정이라는 평안한 안식처가 있었다

 

"신사임당같은 경우는 친정에서 오랜생활을 했다

자기 재능에 집중하고 그것을 들어내는데 친정살이가 휠씬더 유리하지 않겠어요

시댁에 있으면 자기 하고싶은 일을 하는데

아무래도 제한이 크죠, 그래서 신사임당이 그림에서 뛰어남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친정살이라는 비중이 상당히 컷을 것 같아요" -  이순구박사(국사편찬위원회)

 

허난설헌도  어머니의 친정인 강릉 외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가족들의 사랑과 배려 속에 시인의 꿈을 키워갔던  허난설헌

그런데 당시 결혼풍습의 변화가 생기면서

허난설헌은 결혼과 함께 친정을 영영 떠나게 됐다

 

왜 이런 변화가 생긴 것일까?

 

조선 세종조

세종과 김종서의 대화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親迎之爲難也 所難者 何事?(친영지위란야 소난자 하사)

지금도 친영이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세종

 

我國之俗 男歸女第 基來也久(아국지속 남귀여제 기래야구)

우리나라 풍속은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 유래가 오래되옵니다

 

若今女歸男第  則其奴婢衣服器皿 女家皆當備之 以是 憚其難也?

(약금여귀남제 친기노혼의복기명  여가개당비지 이시 탄기난야)

 

만일 여자가 남자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곧 거기에 필요한 노비,의복,그릇등을 여자의 집에서 모두 마련해야 되기때문에

그것이 곤란하여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 김종서

 

是禮 果未可遽行也  自王室先行 今士大夫効之若何

(사례 과미가거행야  자왕실선행 금사대부효지약하)

 

친영의 예법이 갑작스럽게 실시될 수 없다면 왕실에서부터 먼저 실행이 되어,

사대부로 하여금 본받게 함이 어떠한가?     -세종

 

왕실에선 오랜풍습과 다른 친영제 실시를 고집 했던 것인가?

 

조선초기에 새로 공급을 하면서 모든 시스템을 중국화 하려고 들거든요

중국적인 혼인제도, 가족제도 이런것 들을  바꾸게 되는데

그때 우리 혼속을 보니까 남자가 여자집으로 간단 말이에요

중국적인 제도를 들여와서 놓고 보면   아주 촌스럽다는 것이죠

이게 맞을 수가 없다는 것이죠

조정에서 끊임없이 논란을 해요

이걸 바꿔야 된다

중국과 같은 친영제도로 가야된다

그러면서 직접 왕실에서 친영제도를 보이기도 하고

그걸 보이면서 사대부들한테 따라해라 이런 것들을 하거든요"

                                                                -이순구 박사

 

친영제가 시작되면서 종가집도 생겨났고,

종부의 역할도 커졌다

 

허난설헌도 종부가 되어 어렵고 고된 시집살이를 햇다

 

당시까지도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풍습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허난설헌은 낮선 시집살이를 했던 것이다

 

조정의 시책에 따라 허난설헌은 

새로운 결혼제도인 친영을 따르는 첫 세대였다

 

"허난설헌은

허난설헌은 시댁에서 생활을 했단 말이죠

재능은 제가 보기에 신사임당이나 허난설헌은 다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을 발현하는데 시집살이 하는데는 아무래도 좀 더 제약이 많죠

시댁에서 산  허난설헌 한테 제약이 있지 않았을까~ " -이순구 박사

 

 

이런상황에서 남편은 집을 비우는 경우가 잦았다

결혼 한 뒤에도

김성립은 과거준비를 위해 접(接)에서 주로 생활했다

※접(接) 젊은 선비들이 과거를 준비하며 함께 공부하던 장소로

일종의 동아리 합숙소였다

 

결혼초 허난설헌은 남편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 있었다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새색시의 애틋한 마음을 담긴 시가 전해진다

 

15세에 혼인하였으니 얼마나 기대가 컷을까!! 

 

 

遣興(견흥) 

 

精金疑寶氣(정금의보기)  곱게 다듬은 황금으로

鏤作半月光(루작반월광)  만든 반달 노리개는

嫁時舅姑贈(가시휴고증)  시집올 때 시부모님이 주신거라서 ※휴舅 (臼아래男)

繫在紅羅裳(계재홍라상)  다홍치마에 달아두었지요

 

今日贈君行(금일 증군행) 오늘 길 떠나가시는 님에게 드리오니

願君爲雜佩(원군 위잡패) 먼길에 정표로 달아주세요

不惜棄道上(불석기도상)  길가에 버리셔도 아깝지 않지만

莫結新人帶(막결신인대)  새 여인에게는 달아주지 마세요

 

과거시험 준비로 결혼생활에 충실하지 못햇던 김성립

그러나 그는 변변히 과거시험에 낙방했다

 

김성립은 점점 공부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보다 뛰어난 학문과 문장력에 열등감을 느꼈다

 

부부사이는 날이 갈수록 소원해졌고

허난설헌은 남편없이 외롭게 지냈다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을 락으로 삼으며

결혼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시를 쓰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힘들고 고된 결혼생활에

시는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러나 당시엔 여자가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올바른 행실이 못 되었다

허난설헌의 시어머니는 시를 쓰는 허난설헌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

 

조선이란 사회는 여자가 시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혼하고 며느리가 시댁에 들어가 사는 친영제도는

17C가 되어서야 정착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허난설헌은 16C를 살면서 시집살이를 한

친영(親迎)제를 경험한 첫 세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남자의 처가살이가 일반적이었던 당시에

낮선 시집살이를 해야했다

 

 

 

"나의 누님은 어질고 문장이 좋았으나
시어머니께 인정받지 못하였다
늘 누님을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 허균 <성소부부고(惺所覆부藁)>

 

허난설헌의 외로운 시집살이의 위로가 되어준 것은 바로 시였다

 

4. 중국 북경대 조선어학과에서

 

중국의 최고 명문대학인 북경대학

이 대학의 조선어 학과에선 한국시를 정규과목으로 가르친다

 

이번 학기 강의 주제는 허난설헌 시다

 

학생들은 허난설헌의 관심은 매우 높다

중국에서 400년간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허난설헌 시

 

무엇이 이들을 허난설헌의 시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일까?

 

"봉견 사회에 대한 반항과

불행에 대한 호소,비애와 고통을 소리내지 못하고
그저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던 사회에서
이름을 날릴 수 없었던 것에 대해
허난설헌을 동정합니다"
                                                  - 쳔아이윈(조선어학과 대학원생)

 

"어두운 현실 속에서 그녀는
이러한 현실을 시에 의지해 벗어났고

현실에 대한 반항을 표현 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허난설헌은 평범한 여성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 위루어잉(조선어학과 대학원생)

 

5. 허난설헌은 다양한 주제로 시를 짖다

 

허난설헌은 다양한 주제로 시를 썼다

 

그중에는 불평등하고 왜곡된 현실에 대한 내용이 많다.

그녀의시에는 시대에 대한 저항, 불평등하고 왜곡된 현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양반 명문가에서 자란 그녀가

그러한 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스승 손곡 이달의 영향인 듯 싶다.

 

감우(感遇) -느낀대로 노래함

 

盈盈窓下蘭 (영영창하란) 창가에 하늘거리는 아름다운 난

枝葉何芬芳 (지엽하분방)잎과 줄기 어찌 그리 향기로울까

西風一披拂 (서풍일피불)가을 서풍 한바탕 스치고 나면

零落悲秋霜 (영락비추상)찬 서리에 그만 시들어버리네

 

秀色縱凋悴 (수색종조췌)빼어난 그 모습 초췌해져도

淸香終不死 (청향종불사)맑은 향기 끝내 그치질 않네

感物傷我心 (감물상아심)이것이 내 마음 아프게 하여

涕淚沾衣袂 (체루첨의몌)자꾸만 옷깃에 눈물적시네

 

 

감우(感遇)

古宅晝無人(고택주무인)  오래된 집이라 대낮에도 사람이 없고

桑樹鳴鵂鶹(상수명휴류)뽕나무 가지에선 부엉이가 울고있네

寒苔蔓玉砌(한태만옥체) 차나 찬이끼가 섬돌을 덮고 있고

鳥雀棲空樓(조작서공류) 참새들이 빈 누각에 깃들어 있구나

 

向來車馬地(향래차마지) 지난날엔 말과 수레들이 몰려들던 곳

今成孤兎丘(금성고토구)지금은 여우와 토끼 언덕이 되었구나

乃知達人言(내지달인언) 이제야 알겠네 현인들이 하신 말씀을

富貴非吾求(부귀비오구) 부귀는 내가 구하는 바가 아닐세

 

 

감우(感遇)

家勢炎火(동가세염화) 양반가의 세도가 불길처럼 성하던 날  

高樓歌管起(고루가관기) 높은 다락에서 풍악소리 울렸지만 

北隣貧無衣(북린빈무의) 가난한 이웃들은 헐벗고 굶주려 

枵腹蓬門裏(효복봉문리) 주린 배를 안고 오두막에 쓰러졌네 ※효

 

一朝高樓傾(일조고루경) 어느 날 아침 높은 권세 기울면  

反--北隣子(반선북련자) 오히려 북쪽 이웃을 부러워하리니 

盛衰各遞代(성쇠각체대) 흥하고 망하는 것은 바뀌어도 

難可逃天理(난가도천리) 하늘의 도리를 벗어나지는 못한다오

 

감우(感遇)

夜夢登蓬萊(야몽등롱래) -지난밤 꿈에는 봉래산에 올라서

섭葛파龍(족섭 갈파룡) 갈파의 용을 타고 신선세계에 갔다네

仙人綠鈺杖(선인녹옥장)  신선들은 파란 옥지팡이를 짚고 나와서

邀我芙蓉峰(요아부용봉) 부용봉에서 나를 맞아 주셨네

 

下視東海水(하시동해수) 눈 아래 펼쳐진 동해의 물을 내려다 보니

澹然若一杯(담연약일배) 술잔의 술처럼 맑고 깨끗하구나

花下鳳吹笙(화하봉취생) 꽃 밑에서 봉황새는 피리를 불고

月照黃金(월조황금뢰) 달빛은 황금 술항아리를 비춰주었지

 

"허난설헌이 그 만큼, 그 시대의 여성의 한계를 너무 빨리 앞서 갔다 것이 나타나 있거든요

그것이 어떻게 보면 비극이자 너무 앞서간 인물이

사회의 벽을 깨지 못하는 것들이 갖는 허난설헌의 비극이자~"

                                                               - 김성남 박사

 

양반 가문에서 태어난 허난설헌이 어떻게 신분 차별을 꼬집는 저항시를 짖게 되었을까?

 

어릴적 스승이었던 손곡이달에게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달은 뛰어난 실력을 갖췄음에도 서자라는 이유로 벼슬직에 나가지 못했다

이러한 이달의 모습을 통해 허난설헌은 사회현실을 직시하는 비판적 안목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스승을 통해 시대의 모순을 접한 허난 설헌

 

'가난한 여성들의 삶과 노동을을 시로 담아 내기도 했다'

 고된 노동을 주제로 한 것도 담아내고 있다.

 

 

빈 녀 음 (貧女吟) -가난한 처녀의 노래 

豈是乏容色 (개시핍용색 ) 인물도 남에 비해 그리 빠지지 않고

工鍼復工織 (공침복공직 ) 바느질 솜씨 길쌈 솜씨도 좋건만

少少長寒門 (소소장한문 ) 가난한 집안에 자란 까닭에

良媒不相識 (양매불상식 ) 좋은 중매자리 나서지 않네

 

不帶寒餓色 (부대한아색 ) 춥고 굶주려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盡日堂窓織 (진일당창직 ) 하루종일 창가에서 베만 짠다네

唯有父母憐 (유유부모련 ) 오직 내 부모님만 가엽다 생각할 뿐

四隣何會識 (사린하회식 ) 그 어떤 이웃이 이내 속을 알아주리오

 

夜久織未休 (야구직미휴 ) 밤 늦도록 쉬지않고 배를 짜노라니

알알鳴寒機 (알알명한기 ) 베틀 소리만 삐거삐걱 차갑게 울리는데

機中一匹練 (기중일필련 ) 베틀에 짜여진 베 한 필

綜作何誰衣 (종작하수의 ) 결국 누구의 옷이 되는가

 

手把金剪刀 (수파금전도 ) 손에 가위쥐고 마름질하니

夜寒十指直 (야한십지직 ) 밤이 차가워 손가락 곱아온다

爲人作嫁衣 (위인작가의 ) 남을 위해 혼례복을 짓고 있지만

年年還獨宿 (년년환독숙 ) 나는 여전히 홀로 살고 있다오

 

 

 신분의 귀천이 명확했던 조선시대

허난설헌은 양반가에서 태어났으면서도

가난한 서민들의 삶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특히 어갑받는 여성들의 고달픈 노동에 주목했는데,

허난설헌은 여성과 빈자(貧者)들이 겪는 불평등이 같은 것이라 여겼습니다

 

시를 무기로 그릇된 현실에 저항했던 여류시인

시를 유일한 위로로 살아가는 허난설헌에게 견디기 힘든 불행이 찾아옵니다

 

 

6. 스물 일곱 꽃다운 나이로 세상에 지다! 
      -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시인.   

 

1580년(선조13) 경상도 상주

 

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이 

경상도 관찰사 직에서 물러나 한성으로 오던중 상주에서 객사하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허난설헌은

질병으로 연이어  두아이 모두를 병으로 떠나 보내야 했다 

 

  

 

자(哭子) -  허난설헌

자식의 죽음에 곡하다 

 

去年喪愛女 (거년상애녀)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잃고

今年喪愛子 (금년상애자)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었구나 

 

哀哀廣陵土 (애애광능토) 슬프고 슬픈 광릉 땅에

雙墳相對起 (쌍분상대기) 두 무덤 나란희 마주하고 있구나 

 

蕭蕭白楊風 (소소백양풍) 백양나무에 쓸쓸히 바람부는데

鬼火明松楸 (귀화명송추) 숲속에선 도깨비 불이 반짝거린다, 

 

紙錢招汝魂 (지전초여혼) 종이돈 살라 너희들 혼을 부르고

玄酒尊汝丘 (현주존여구) 물탄 주로 너희들  무덤에 제 지내노라 

 

應知弟兄魂 (응지제형혼) 가엾은 너희 형제 넋은

夜夜相追遊 (야야상추유) 밤마다 서로만나 놀고 있으려나 

 

縱有腹中孩 (종유복중해)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 해도

安可糞長成 (안가분장성) 어찌 제대로 자랄 것을 기대할 수 있으랴

 

浪吟黃臺詞 (랑음황대사) 하염없이 슬픈 노래부르며

血泣悲呑聲 (혈읍비탄성) 슬픈 피눈물만 속으로 삼키노라

 

 

허균도 두 조카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아,살아서는 부부금실이 좋지 못했고

죽어서는 제사 받들 자식이 없으니

원통함이 한이 없다 " -허균(학산초담)

 

1588년(선조21) 강원도 김화

 

그런데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치적 실패를 거듭하던 허난설헌의 오빠 허봉이

술로 세월을 보내다   강원도 김화근처에서 객사한다.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던  오빠 허봉의 죽음  

그 설픔은 난설헌에게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당시 26세 이던 허난설헌은

의미 심장한 시 한수를 읊는다

 

 

 

夢遊廣桑山詩(몽유광상관시) -꿈에 광상산에 노닐며

 

碧海浸瑤海 (벽해침효해) 푸른 바다가 옥구슬 바다를 적시고

靑鸞倚彩鸞 (청란의채란) 푸른 난새는 오색 난새와 어울리네

芙蓉三九朶 (부용삼구타) 아리따운 부용꽃 스물일곱송이

紅墮月霜寒 (홍타월상한) 붉게 떨어지니 서릿 달이가 차갑구나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것일까?

허난설헌은 이듬해 1598년 스물일곱 나이에 생을 마첬다

 

일곱송이의 부용꽃에 비유하여 자기가 27세에 죽을 것을 미리 예언한 시

 왼쪽에 있는 묘비에는 ‘贈貞夫人 陽川許氏之墓’라고 쓰여 있고, 뒷면과 옆면에는 그

그녀의 일대기가 상세히 적혀 있다

 

 

7. 동생 허균에 의해 다시 살아난 누이의 시(詩)

      <조선시선(朝鮮詩選)>, 중국에서 꽃피워 최초의 한류(韓流)가 된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허난설헌,
그녀는 죽기 전 자신의 시를 모두 태워 달라고 유언했다.

 

 자신의 생명력을 불태워 시를 썼던 여인

그녀는 시와 함께 이세상을 떠났다

 

허난설헌이 죽고 난 뒤

그녀의 시가 중국을 거처 조선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8. 그러나 성리학에 빠져 사는 조선 선비들은

   그녀의 시에 관해 냉혹한 평가만을 남기는데....

 

<※606년(선조39)허균은 종사관이 되어 명나라 사신 주지번을 맞이한다 

작품 일부를 동생 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다 

1607년(선조40) 4월 허균이 <난설헌집>을 목판본으로 출판하였다 

1711년 분다이야 지로베이[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그러나 성리학에 빠져 사는 조선 선비들은 그녀의 시에 관해 

그러나 그 평가는 냉혹했다

   

채련곡(采蓮曲) - 연밥따는노래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가을 날 맑은 호수 옥 같은 물 흐르는데

荷花深處繫蘭舟(하화심처계란주) 연꽃 깊은 곳에 목란 배를 매어두고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연자) 님 만나 물 저편에 연밥을 던지고는

遙被人知半日羞(요피인지반일수) 행여 남이 봤을까 봐 한참 부끄러웠네

                                   -허난설헌 詩 <채련곡采蓮曲>

 

조선 중기 가부장 사회가 자리를 굳히며

 

양반 사대부들은 그녀의 시를 음탕하다고 비판한다.

 

조선 남성들의 부정적인 평가는

그후 200년 넘게 지속되었다.

 

 

 

 

규중여인 시를 짓는다는 것이 원래부터 좋은 일이 아니다  

조선의 한 여자이름이 중국에까지 퍼졌으니  

대단히 유명하다고 말 할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부인들은 일찍이 이름이나 

자를 찾아볼 수 없으니 

난설헌의 호 하나만으로 과분한 일이다 

후에 재능있는 여자들이 이를 밝혀 

경계의 거울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 연암박지원 열하일기中  

 

 

9. 미래는 과거의 역사를 정당하게 평가한다는 것을... 

 

조선이라는

여자로

김성립의 아내로 태어난

세가지한을안고

세상을 떠난 여인

허난설헌!

 

조선이라는 나라는 허난설헌의 시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실의 거대한 벽 앞에서 새로운 세계를 열망했던 천재여류시인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난게

그녀의 시는 철저히 잊혀져 갔다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허난설헌

그녀의 시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동생인 허균에 의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감성적이면서도 시대정신이 녹아나는 그녀의 시는

중국에서 최초의 한류열풍을 불러 일으켰고

이를 계기로 해서

남존여비의 땅 조선에서 새롭게 부활 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모순된 사회에 대항한 그녀의 승리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역사는 허난설헌을 외면했지만

오늘의 역사는

시대를 앞선 천재 여류시인으로  다시 평가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현재는 먼 미래의 과거가 되고

그 미래는 과거의 역사를 정당하게 평가한다는 것을

허난설헌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조선의 허락받지 못한  여류시인

허난설헌 편이었습니다

 

 

※허란설헌(許蘭雪軒)허난설헌의 작품세계를 살펴본다 

 

시대적배경 <무오사화(1498,연산군4)><갑자사화(1504,연산군10)>

               <기묘사화(1519중종14)>,을사사화(1545,명종즉위)>와 사림간의 정쟁

               선조이후 사림의 득세와 붕당정치등 혼한의 시기였다

               조선중기 유교사상이 지배했다

 

1).다양한 주재로 시를 썼다

 

양반가의 자녀로 자녀로 태어나 개방적인 가정에서 충분히

학문을 수학할 수있어  시상이 넓다

난설헌은 여인으로서 210여 편이 넘는 시를 쓸 만큼 시상이 풍부하다

 

①. '출새곡','  입새곡"' - 전쟁의 위용과 승전의 개가의 노래

 

②. '고객사' '대제곡' -장사꾼의 떠도는 삶과  남성적적인 풍취

 

③. 낭만적 사랑과 성애의식

 

四詩詞(사시사) 秋(추) -차가운 금침과 엎치락 뒤치락 잠 못이루는 화자의 행위는

강렬한 성적욕망을 투사

 

④. 인간애  

변방의 수자리를 주제로 한시가 - 18수로

자신의 고통과 변방으로 임을 보낸 여성의심정을 일체화 했다

 

군사들의 고통과 전쟁터의 장면을 묘사하는 시 

寒不曲(한불곡),入寒曲(입한곡) 次仲氏高原望高臺韻(차중씨고원망고대운) 出寒曲(출한곡)

 

조선여인의 삶 -貧女吟(빈녀음)  

 

궁인의 운명을 <궁사-20수>에 비유한 표현

궁인을 통해 자아를 투영했다

여성석 감각,여성주의적 상상력

휘장안의 금침 비단장막

한숨과 뒤척임 속삭임 부드러움

그녀가 사용한 이미지는 여성적 꿈을 그리고 있다

 

⑤. 갈등속의 가족애

 

가족애  -<곡자(哭子)>

奇夫江舍讀書(기부강사독서) -남편의 그리움 

하곡허봉에에 대한시 -8수 

 

⑥. 정을 읊은 시

규원-방탕하다는 이류로 명시종 출전

 

⑦. 여인으로서의 섬세함을 그려냈다

휘장안의 금침 비단장막

 

한숨과 뒤척임 속삭임 부드러움 

그녀가 사용한 이미지는 여성적 꿈을 그리고 있다

 

2). 선선 사상 ,도교영향

 

현실세계와 이상세계

현실에 만족하지 못할 때는 더높은 이상세계에 눈을 뜬다

 

현실의 삶이 만족되지 못할 때  이상으로 흘러간다

난설헌 역시 현실세계에서 비현실 세계로 눈을 돌린다

 

<신선시 <(遊仙詞)87수> 

遣興(견흥) ,洞仙謠(동선요)등100여수 

 

유선사 87수는 신선 세계를 동경하고 있어 유교적 질서가 중시되던 조선중기 사회에서

정신적 휴식처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신선이 되고자하는 욕망을 표출되어 있다 

낙원 속의 여신은 그녀가 궁극적으로 소망하는 이상적인 모델이었다 

 

'유선사'속의 중심 인물은 여신들이다 

그 중에서도 서왕모다 

서왕모는 여신들이 대모이며 

목왕과의로맨스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여신들은 서왕모의 지휘아래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전고들은 대부분 태평광기에서 나온다

부단한 학습과정을 통한  풍부한 도교지식과 중국문학에 대한 깊은 지식을 쌓았기 때문에

신선시를 통해 그녀의 이상과 꿈을 표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선사를 포함한 신선시에는 현실에서 바라는 란설헌의 꿈과 이상들이 스며있다

 

3).사회 현실에 비판적이고,저항의식이 있다

 

손곡 이달에게 시를 배웠다

이달은 서얼 출신이었다

글재주가 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얼출신이라 벼슬길에 포기하고

시작에만 열중했다

난설헌은 이달로부터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안목과

저항의식을 받았을 것이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성과 정치성에

넓은 안목을 가질 수 있었다

 

적성원-성을 쌓는 백성들의 원망을 읊으시

            백성들은 군역에 동원되어 축성을 하지만 성주의 무기력한 정신 자세와

            당쟁만 일삼는 집권층을 비판

            나라에 진청한 충신이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 五言古詩(오언고시)- 少年行(소년행), 感遇 4首(감우 4수), 哭子(곡자), 遣興 8首(견흥 8수), 寄荷谷(기하곡)- (총 15수) 

 

七言古詩(칠언고시)- 洞仙謠(동선요), 梁指鳳仙花歌 (염지봉선화가), 望仙謠(망선요), 湘絃謠(상현요),

                                四時詞 4首(사시사 4수)-(총 8수) 

 

五言律詩(오언율시)- 出塞曲 2首(출새곡 2수), 效李義山體 2首(효이의산체 2수), 效沈亞之體 2首(효심아지체 2수), 寄女伴(기녀반),

                               送荷谷謫甲山(송하곡적갑산)- (총 8수)

 

七言律詩(칠언율시)- 春日有懷(춘일유회), 次仲氏見星庵韻 2首(차중씨견성암운 2수), 宿慈壽宮贈女冠(숙자수궁증여관),

 夢作(몽작), 次仲氏高原望高臺韻 4首(차중씨고원망고대운 4수), 送宮人入道(송궁인입도),題沈孟釣中溟風雨圖(제심맹조중연풍우도),皇帝有事天壇(황제유사천단), 次孫內翰北里韻(차손내한북리운)- (총 13수) 

 

五言絶句(오언절구)- 築城怨 2首(축성원 2수), 莫愁樂 2首(막수락 2수), 貧女吟 3首(빈녀음 3수),

效崔國輔體 3首(효최국보체 3수), 長干行 2首 (장간행 2수),江南曲 5首(강남곡 5수), 賈客詞 3首(가객사 3수),

相逢行 2首(상봉행 2수), 大堤曲 2首(대제곡 2수0- (총 24수) 

 

七言絶句(칠언절구)- 步虛詞 2首(보허사 2수), 靑樓曲(청루곡), 塞下曲 5首(새하곡 5수), 入塞曲 5首(입새곡 5수),

竹枝詞 4首(죽지사 4수), 西陵行 2首(서릉행 2수),堤上行(제상행), 추韆詞 2首(추천사 2수), 宮詞 20首(궁사 20),

楊柳枝詞 5首(양류지사 5수), 橫塘曲 2首(횡당곡 2수), 夜夜曲 2首(야야곡 2수遊仙詞 87首(유선사 87수),

夜坐(야좌), 閨怨 2首(규원 2수), 秋恨 (추한)- (총 142수)

 

부록에 (광한전백옥루상량전, 한정이첩 몽유광상산시서)-3편

이상 총 213수가 있다

 

 

규정(閨情)    - 여자의 정

妾有黃金釵(첩유황금채)  저에게황금 비녀 하나 있는데

嫁時爲首飾(가시위수식)  시집 올 때 머리에 꽂았던 것입니다

今日贈君行(금일증군행)  오늘 그대의 행차에 드리오니

千里長相憶(천리장상억)  천리 먼 길에 오래도록 기억해 주소서

 

 

추야곡1 (秋夜曲1) -가을밤의 노래

 

蟪蛄切切風瀟瀟(혜고절절풍소소) : 쓰르라미 절절하고 바람은 소소한데

芙蓉香褪永輪高(부용향퇴영륜고) : 연꽃 향기 바래고 가을달은 높기만 하다

佳人手把金錯刀(가인수파금착도) : 가인이 금가위 손에 잡고

挑燈永夜縫征袍(도등영야봉정포) : 등불 돋운 기나긴 밤에 길 떠날 옷깁는다

 

추야곡2(秋夜曲2) -가을밤의 노래

 

玉漏微微燈耿耿(옥루미미등경경)  물시계 소리 희미하고 등잔불은 반짝거리는데

罹幃寒逼秋宵永(이위한핍추소영)  휘장 안으로 추위 스며들고 가을밤은 길기만 하다

邊衣裁罷剪刀冷(변의재파전도냉)  변방으로 보내는 옷 다 짓으니 가위는 차갑고

滿窓風動芭蕉影(만창풍동파초영)  창에 가득 바람 불어오니 파초 그림자 어른거린다

 

감우1(感愚) -   어리섞었어

 

盈盈窓下蘭(영영창하란)  하늘하늘 창 아래 난초잎

枝葉何芬芬(지엽하분분)  가지와 잎이 어찌 그리도 향기로운가

西風一披拂(서풍일피불)  하뉘바람이 한번 스치면

零落悲秋霜(영락비추상)  시들어버리니 가을서리처럼 서글퍼라

秀色縱凋悴(수색종조췌)  빼어난 고운 빛 시들어 버려도

淸香終不斃(청향종불폐)  맑은 향기는 끝내 없어지니 않는구나

感物傷我心(감물상아심)  느끼는 풍물마다 마음 아파서

涕淚沾衣袂(체루첨의몌)  눈물을 흘러 옷깃을 적시는구나

 

감우2(感憂2)   - 어리섞었어

古宅晝無人(고택주무인)  고택에는 낮에도 사람이 없어

桑樹鳴鵂鶹(상수명휴류)  뽕나무에는 부엉이와 올빼미만 운다

寒苔蔓玉砌(한태만옥체)  옥돌 섬돌엔 차가운 이끼와 넝쿨만 무성하고

鳥雀棲空樓(조작서공루)  빈 누각엔 새들만 깃들어 있구나

向來車馬地(향래거마지)  지난 날 수레와 마차 오가던 곳

今成孤兎丘(금성고토구)  지금은 토끼 언국이 되었구나

乃知達人言(내지달인언)  이제야 알겠구나, 선인의 하신 말씀

富貴非吾求(부귀비오구)  부귀는 내가 구할 바가 아니라

 

상봉행1(相逢行1)-허난설헌(虛蘭雪軒) : 만남의 노래

 

相逢長安陌(상봉장안맥)  장안의 거리서 서로 만나

相向花間語(상향화간어)  꽃밭 속 찾아가 속삭인다

遺却黃金鞭(유각황금편)  황금 말채찍 흘려두고서

回鞍走馬去(회안주마거)  안장에 앉혀 말 달려 돌아갔도다

 

상봉행2(相逢行2)-허난설헌(虛蘭雪軒) : 만남의 노래

 

相逢靑樓下(상봉청루하)  청루에서 서로 만나서

繫馬垂楊柳(계마수양류)  수양버들 아래서 말 매놓고

笑脫錦貂裘(소탈금초구)  웃으며 비단옷과 갓옷 벋어

留當新豊酒(유당신풍주)  신풍주를 사서 같이 마셨다네

 

기하곡 (奇何谷)  -하곡오빠에게

 

暗窓銀燭低(암창은촉저)  어두운 창에 은촛불 나직하고

流螢度高閣(유형탁고각)  반딧불은 높은 누각을 날아다닌다

悄悄深夜寒(초초심야한)  근심스런 깊은 밤은 차가워지고

蕭蕭秋落葉(소소추낙엽)  쓸쓸한 가을은 낙엽만 지는구나

 

關河音信稀(관하음신희)  오라버니 계신 변방에서 소식 없어

端憂不可釋(단우불가석)  근심스런 이 마음 풀 수가 없어요

遙想靑運宮(요상청운궁)  아득히 오빠 계신 청운궁을 생각하니

山空蘿月白(산공나월백)  산은 비어있고 담쟁이 덩굴에 달빛만 밝다

 

※허봉 (1551~1588) 허난설헌의 오빠

                            자는 미숙(美叔),호는 하곡(荷谷) 본관은 양천(陽川)

 

송하곡적갑산(送荷谷謫甲山) -갑산으로 귀양가는 하곡 오빠를 전송하며

 

遠謫甲山客(원적갑산객) 멀리 갑산으로 귀양가는 나그네

咸原行色忙(함원행색망) 함경도로로 가시느라 행색도 바쁘세요

臣同賈太傅(신동고태부) 오라버니의 심정은 고태부나

主豈楚懷王(주기초회왕) 임금은 어찌 초회왕이리오

 

河水平秋岸(하수평추안)  한강물은 가을 속으로 찬찬히 흐르고

關雲欲夕陽(관운욕석양)  변방의 구름에 석양이 물들어요

霜風吹雁去(상풍취안거)  서릿바람 불어와 기러기 날아가니

中斷不成行(중단불성행)  중간이 끊겨 기러기 행령을 이루지 못하네요

 

※ 허난설헌이21세 때 오빠가 갑산으로 유배됨을 슬퍼하여 지은시

   경기도 수문어사로 나갔던 하곡 허봉은 병조판서 이이(李珥)를 탄핵하다가

   창원부사로 좌천되고,종성으로 유배되었으며 다시 갑산으로 옮겨졌다

                                -허미지(許米子)허난설헌연구(허난설헌연구)참고

  

금강산에 은거하고 있는 오빠 허봉을 생각하며

  

暗窓銀獨低( 음창은독저) 촛불이 나직이 흔들리고

流螢度高閣 (류영도고각) 딧불은 높은 지붕 날아 넘도다

悄悄深夜寒 (소소심야한) 쓸쓸히 깊은 밤은 추워 가는데

蕭蕭秋葉落 (소소추엽락) 늘하게 나뭇잎은 떨어져 가네

關河音信稀(관하음신희) 오빠 계신 곳에서는 소식이 뜸하니

端憂不可釋(단우불가석)  이 시름 어찌 모두 풀어 내리오

遙想靑蓮官(요상청련관) 청련궁 계신 오빠 멀리서 그려 보니

山空蘿月白(산공라월백) 산공 먼 산은 비어 있고 담 너머 달빛만 희네

 

규원 (閨怨) = 원부사(怨婦詞)

錦帶羅裙積淚痕(금대나군적루흔) 단 띠 비단 치마에 눈물자국 겹쳤으니

一年芳草恨王孫(일년방초한왕손) 마다 봄풀을 보며 왕손을 원망해서

瑤箏彈盡江南曲(요쟁탄진강남곡) 아쟁을 끌어다 강남곡을 끝까지 타고나자

藕打梨花晝俺門(우타이화주엄문) 줄기가 배꽃을 쳐서 낮에도 문 닫았답니다

 

현실의 남편은 인습에 얽매인 불성실한 인물이므로

그의 연정의 대상을 잃고 규원으로 쌓여 갈 수 밖에 없다

 

규원2(閨怨)  -여자의 원망

 

月樓秋盡玉屛空 (월루추진옥병공) 다락에 가을깊어 옥병풍비고

霜打蘆洲下暮澒 (상타노주하모홍) 서리내린 갈대밭에 기러기 앉네

瑤瑟一彈心不見 (요슬일탄인불견) 거문고 한곡조에 님 어디가고

藕花零落野塘中 (우화영락야당중) 연꽃만 들 못위에 맥없이지네

                                           -명시종출전  

 

※ 가을이 되도록 임은 오지 않았다는 시간의 흐름이 있다

기다림의 표현은 기대강사 독서 에서도 나타난다

공부하러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규정을 표출

 이 시는 감각적인 구체성과 언어의 구체적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란설헌집에는 들어있지 않고 중국판

명시종에서 들어 있으니 부재된 이유가  음탕하다는 것이다

 

 

강남곡(江南曲)- 강남에서

 

강남곡1(江南曲1)

 

江南風月好(강남풍월호) 강남의 날씨는 언제나 좋은데다

綺羅金翠翹(기라금취교) 비단옷에 머리꽃이 곱기도해요

相將採菱去(상장채능거)서로들 어울리며 마름밥을 따러

濟탕木蘭橈(제탕목란요)나란히 목란배를 노를 저였죠 탕(湯아래皿)

 

江南曲2(강남곡)

 

人言江南樂(인언강남락)사람은 강남의 즐거움을 말하나

我見江南愁(아견강남수)나는 강남의 근심을 보고 있 네

年年沙浦口(년년사포구)해 마다 이 포구에서

腸斷望歸舟(장단망귀주)애타게 떠나는 배를 바라보고 있는 것

 

江南曲3(강남곡3)

湖裏月初明(호리월초명)호수에 달빛이 처음비치면

采蓮中夜歸(채연중야귀) 연밥따서 한밤중에 돌아왔지요

輕橈莫近岸(경요막근안) 노저어서 언덕 가까이 가지마세요

恐警鴛鴦飛(공경원앙비) 원앵새가 놀라가 날아가누나

 

江南曲4(강남곡4)

生長江南村(생장강남촌) 강남마을에서 낳고 자랐기에

少年無別離(소년무별리) 어렸을 적에 이별이 없었지요

那知年十五(나지년십오) 어찌 알았겠어요,열다섯 나이에

嫁與弄潮兒(가야롱조아) 뱃사람에게 시집갈 줄이야

 

江南曲5(강남곡5)

紅藕作裙차(홍우작군차) 붉은 연꽃으로 치마 만들고 ※차衩(실사변+叉)

白빈爲雜佩(백빈위잡패) 새하얀 마름 꽃으로 노리개를 만들었죠  ※초(초두머리(아래頻)

停舟下渚邊(정주하저변) 배를 세우고 물가로 내려가

共待寒潮退(공대한조퇴) 둘이서 물빠지기를 기다렸었죠

 

 

님 만나러 가는길 - 허난설헌

 

꽃관 머리에 쓰고

꽃술 저고리 걸치고

아홉 폭 무지개 치마 걸쳐입으니

어디선가 피리소리 들려와 퍼지는구나

 

비취빛 구름사이로

용그림자  말 울음소리

넓은 바다에 반짝이는 달빛

나는야   님 만나러 가는 길이란다

 

빈 녀 음 (貧女吟) -가난한 처녀의 노래

 

手把金剪刀 (수파금전도)  가위로 싹둑싹둑 옷 마르노라

夜寒十指直 (야한십지직)  추운 밤에 손끝이 호호불리네

爲人作嫁衣 (위인작가의)  시집살이 길옷은 밤 낮이 건만

年年還獨宿 (연년환독숙)  이 내 몸은 해마다 새우잠인가

 

춘우1(春雨1)   -   봄비 

妾有黃金차(첩유황금차) 제게 금비녀 하나 있는데 ※차(金+叉)

嫁詩爲首飾(가시위수식) 시집올 때 머리에 꽂고 온거죠

今日贈君行(금일증군행) 오늘 길 떠나시는 님께 드리니

千里長相億(천리장상억) 천리길 멀리서도 날 생각하세요

 

춘우2(春雨)

池頭楊柳疎(지두양류소) 연목의 버들잎은 몇 남지 않고

井上梧桐落(정상오동락) 오동 잎 우물위에 떨어지네요

廉外候蟲聲(염외후충성) 발 밖의 가을벌레 우는 철 되었건만

千寒錦衾薄(천한금금박) 날씨는 쌀쌀한데 이불까지 얇네

 

춘우3(春雨)

春雨暗西池 (춘우암서지) 보슬보슬 봄비는 못에 내리고

輕寒襲羅幕 (경한습라막) 찬바람이 장막 속 스며들 제(숨어들 제)

愁倚小屛風 (수의소병풍) 뜬시름 못내 이겨 병풍 기대니

墻頭杏花落 (장두행화락) 송이송이 살구꽃 담 위에 지네

 

築城怨(축성원) -허난설헌

 

千人齊抱紵(천인제포저) 천인이 모두 달고이 쳐들고

土底隆隆響(토저융융향) 밑을 쿵쿵 소리 울리네

努力好操築(노력호조축) 노력해 잘 쌓긴하지만

雲中無魏尙(운중무위상)  운중 위상 같은 사또 없구나

 

 築城復築城(축성부축성) 성을 쌓고 또 쌓으니

城高遮得賊(성고차득적) 성이 높으면 도적을 막네

 但恐賊來多(단공적래다) 다만 두려운 도적이 오는 일이 많으면

 有城遮未得(유성차미득) 성은 있어도 막지 못하면 어찌하리

 

 客詞(고객사) -바다상인의 노래

 

 朝發宜都渚(조발의도저)아침에 서울 포구를 떠나니

 北風吹五兩(북풍취오량)북풍에 오량은 나부끼고

 船頭客요酒(선두객요주)뱃머리에는 물방울이 넘처 고이는데 (물댈 요: 水+堯)

月下齊탕장(월하제탕장) 달밤에 가지런히 노를 젓누나(씻을 탕: 湯 아래에 皿)(상앗대 장: 將 아래에 木) 

 

疾風吹水急(질풍취수급) 바람과싸우고 파도를 헤치며

三日住層灘(삼일주층탄) 삼일간 여울에 머물렀다네

少婦船頭坐(소부선두좌) 어린부녀뱃 머리에 앉아

焚香學산錢(분향학산전)  향 피우며산전을 배우네(산가지 산: 竹 아래 弄)

 

掛席隨風去(괘석수풍거) 돛을 올리고 바람따라 가다가

逢灘卽滯留(봉탄즉체류) 여울만나면 그곳에 머문다네

西江波浪惡(서강파랑오)서강의 랑이 거세어지니

幾日到荊州(기일도형주)몇 일이 지나야 형주땅에 닿을까

    

소년행(少年行)  - 젊은이의 노래

 

少年重然諾(소년중연락) 젊은이는 신의를 소중이 여겨

結交遊俠人(결교유협인) 의협스런 사내들과 사귀어 노네 

腰間玉녹로(요간옥녹로) 구슬 노리개를 허리에 차고 녹(車+鹿)로(車+盧) 

錦袍雙麒麟(금포 쌍기린) 비단 도포에는 쌍기린으 수놓았네 기(鹿 +基) 

 

朝辭明光宮(조사명광궁) 조회를 명광궁에서 나와 

馳馬長樂板(치마장락판) 장락궁 언덕길로 말을 달리네 치(馬+也) 

沽得胃城酒(고득위성주)위성의 좋은 술 사 가지고 

花間日場晩(화간일장만) 꽃 속에서 노닐다 핵 저무네   

 

金鞭宿倡家(금편숙창가) 황금 채찍을 기생집에서 자며 

行樂爭留連(행락쟁류연) 놀기에 정신팔려 나날지새네 

誰憐陽子雲(수련양자운) 그 누가 양웅을 가련타 하랴

閉門草太玄(폐문초태현) 문닫고 들어않자 태연강이나 짓고 있으니

 

사시사(四詩詞) -사계절을 노래한 시

봄 (春)

고요한 정원에 살구꽃잎 위에 비 떨어지고

목련꽃 핀 언덕 꾀꼬리 울어라.

오색수실 비단 장막 봄기운 차가운데.

박산향로 향내가 하늘거리며 날려요.

잠깨어 난 아가씨 곱게도 단장하니,

향기로운 비단 보배로운 띠 원앙수를 놓았구려.

드리운 겹발 거두고 비취휘장 치고서,

시름없이 은쟁 잡고 봉황곡 타네.

황금재갈 구슬안장 말타신 님 어디로 가셨는지.

앵무새 다정히 창가에서 속삭이는데,

풀밭에 날던 나비 뜨락에서 길잃고,

꽃주변 아지랑이 난간밖에서 아물거려.

누구집 연당에서 피리소리 들려오나,

달빛은 좋은 술 담긴 잔속에 가득한데,

근심으로 잠못들어 홀로 지새는 밤에는,

새벽이면 일어나 눈물만 옷자락에 적셔요.

~~~~~~

기운은 완연한데 임 그리워하는 여인네의 마음은 애닮기만 하네여.

 

난초

誰識幽蘭淸又香 (수식유란청우향) 그 누가 알리요 그윽한 난초의 푸르름과 향기

年年歲歲自芬芳 (년년세세자분방) 세월이 흘러도 은은한 향기 변치 않는다네

莫言比蓮無人氣 (막언비련무인기) 세상 사람들이 연꽃을 더 좋아한다고 말하지 마오

一吐花心萬草王 (일토화심만초홍) 꽃 수 한번 터트리면 온작 풀의 으뜸오니,,

 

염지봉선화가(染指鳳仙化歌)-봉선화 물들이고

金盆夕露凝紅房 (금분석로응홍방) 금분에 저녁 이슬 각시방에 어리면

佳人十指纖纖長 (가인십지섬섬장) 가인의 열 손가락 어여쁘고도 길어라

竹년搗出捲숭葉 (죽년도출권숭엽) 대 절구에 짖찧어 배추 잎으로 말아서 숭(초두머리(艹)아래松)

燈前勤護雙鳴당 (등전근호쌍명당) 귀고리 울리며 등잔앞에서 동여맸네   당(王+堂)

 

粧樓曉起簾初捲(장로효기염초권) 새벽에 일어나서 단장하고 발을 말아올리니

喜看火星抛鏡面 (희간화성포경면)픠간화성푸경면 반갑게도 붉은 별이 거울에 비치네

拾草疑飛紅蝶접(습초의비홍협접) 풀입을 뜯을 때는 호랑나비 날아온 듯

彈爭驚落桃花片(탄쟁경락도화편) 가야금 탈 때는 봉선화 잎 떨어지네

 

徐勻粉頰整羅환 서균분협정나환 토닥토닥 분바르고 댕기머리 매만지면

湘竹臨江淚血班 상죽임협정나환 소상강 대나무에 피눈물 자국 얼룩지듯

時把彩毫描却月 시파채호묘각월 이따금 붓을 들어 초승달눈썹 그리노라면

只疑紅雨過春山 지의홍우과춘산 붉은 빗방울이 눈썹에 스치는 듯하네

 

 

염지봉선화가(染指鳳仙化歌) -봉선화 물들이네,

고어(古語)체로 되어 있다

 

향규의 일이 업셔 백화보를 혀쳐보니

봉선화 이 일흠을 뉘라서 지어낸고

진유의 옥소 소리 자연으로 행한 후에

규중의 나믄 인연 일지화의 머므르니

유약한 푸른닙은 봉의 꼬리 넘노는 듯

자약히 붉은 꽃은 자하군을 헤쳣는 듯

규방에 할 일이 없어 백화보를 펼쳐보니

봉선화 이 이름을 누가 지어 냈는가,

신선의 옥피리 소리가 선경으로 사라진 후에

규방에 남은 인연이 한 가지 꽃에 머물렀으니

연약한 푸른 잎은 봉의꼬리가 넘노는듯하며

아름다운 붉은 꽃은 신선의 옷을 펼쳐 놓은 듯하다

 

백옥섬 조흔 흘게 종종이 심어내니

춘삼월이 지난후에 향기 업다 웃지마소

취한 나븨 미친 벌이 따라올가 저허하네

정정한 기상을 녀자 밧긔 뉘 벗할고

고운 검돌 깨끗한 흙에 촘촘히 심어내니,

봄 삼월이 지난 후에 향기가 없다고 비웃지 마시오

취한 나비와 미친 벌들이 따라올까 두려워서라네

정숙하고 조용한 저 기상을 여자 외에 누가 벗하겠는가!

 

옥난간 긴긴 날에 보아도 다 못보아

사창을 반개하고 차환으 불너내어

다 핀 꽃을 캐어다가 수상자에 다마노코

여공을 그친 후이 중당에 밤이 깁고

납촉이 발갓을 제

나음나음 고초 안자, 힌 구슬을 가라마아

빙옥같은 손 가온데 난만이 개여내여

파사국 저 제후의 홍산궁을 혀졌는 듯

심궁 풍류절고에 홍수궁을 마아는 듯

섬섬한 십지상에 수실로 가마내니

조희 우희 불근 물이 미미히 숨의느 양

가인으 야틉뺨의 홍로를 꺼쳣는 듯

단단히 봉한 모양 춘나옥자 일봉서를

왕모에 부쳣는 듯 

긴 날 옥난간에서 보앋 다 못 보아

사창을 반쯤 열어 차환을 물러내어

다핀 봉선화꽃을 따다가 수상자에 담아놓고,

바느질을 끝낸 후에 안채에 밤이 깊고 밀촛불이 밝았을 때

차츰차츰 꼿꼿이 앉아 희 백반을 갈아 바수어

옥같이 고운 손 가운데 흐무러지게 개어 내니

페르시아 저 제후가 좋아하는 붉은 산호를 헤쳐 놓은 듯하며

깊은 궁굴에서 절구에 붉은 도마뱀을 빻아 놓은 듯하다

가늘고 고운 열 손가락에 수실로 감아내니

종이 위에 붉은 물이 희미하게 스며드는 모양은,

미인이ㅡ 뺨 위에 홍조가 어리는 듯하며

단단히 묶은 모양은 비단에 옥으로 쓴 편지를 서왕모에게 부치는 듯하다

 

춘면을 느초 대하여서 팔자미를 그리래니

난데 업는 불근 꽃이 가지에 부텃는듯

손으로 우희랴니분분이 흣터지고

입으로 불랴하니 석긴안개 가리왓다

여반을 서로 불러 낭랑이 자랑하고

쏙 압희 나아가서 두 빗흘 비교하니

쪽님희 푸른물이 쪽의여서 푸르단 말 이 아니 오를손가

 

기여반(奇女半) -처녀때 친구에게

結盧臨古道 (결로임고도) 예 놀던 길강 초가집 짓고서

日見大江流 (일견대강류) 날마다 큰 강물을 바라다 보았네

鏡匣鸞將老 (경갑난장노) 거울에 새긴 난새 혼자서 늙어가고

花園蝶己秋 (화원접이추) 꽃솓산의 나비도 이미 가을 신세라네

 

寒沙初下雁 (한사초하안) 차가운 모래밭에 기러기 내려앉고

暮雨獨歸舟 (오무독귀주) 저녁비에 조각배 홀로 돌아가네

一夕紗窓閉 (일석사창폐) 하룻밤에 비단 창문 닫긴 내 신세

那堪憶舊遊 (나감억구유) 옛친구와 놀때는 어찌감히 생각했으랴

 

견흥2(遣興 8수중)- 일단기(一端綺)아름다운 비단

我有一端綺(아유일단기) 나에게 한자락 비단이 있어

拂拭光凌亂(불식광릉란) 털어내고 닦으니 눈부시게빛나고

對織雙鳳凰 (대직쌍황봉) 찬란한봉황무늬 수 놓여있어

文章何燦爛 (문장가찬란) 그 무늬가 얼마나 찬란하던가

 

幾年협中藏 (기녀협중장) 여러해 상장속에 간직하다가떠

今朝持贈郞 (금조지증랑) 오늘 아침 꺼내어 님에게 정표로 드리오니

不惜作君袴 (불석작군고) 님의 바지 짓는다면 아깝지 않지만

莫作他人裳 (막작타인상)다른여자치마되게마소서

 

견흥3(遣興)

 

精金疑寶氣(정금의보기)  곱게 다듬은 황금으로

鏤作半月光(루작반월광)  만든 반달 노리개는

嫁時舅姑贈(가시휴고증)  시집올 때 시부모님이 주신거라서 ※휴舅 (臼아래男)

繫在紅羅裳(계재홍라상)  다홍치마에 달아두었지요

 

今日贈君行(금일 증군행) 오늘 길 떠나가시는 님에게 드리오니

願君爲雜佩(원군 위잡패) 먼길에 정표로 달아주세요

不惜棄道上(불석기도상)  길가에 버리셔도 아깝지 않지만

莫結新人帶(막결신인대)  새 여인에게는 달아주지 마세요

 

견흥4(遣興4)

近者崔白背(근자최백배) 요즘들어 최경창과 백광훈이

攻詩軌盛唐(공시궤성당) 성당의 시법을 받아 시를 익혀

寥寥大雅音(요요대아음) 적막하던 대아의 시풍

得此復鏗鏘(득차복갱장) 이들을 만나 다시 한번 크게 울리네

 

下僚因光祿 (하료곤광록) 낮은 벼슬아치는 벼슬 노릇이 어렵기만 해

邊郡悲積薪 (변군수적신) 변방의 고을살이 시름만 쌓이네

年位共零落 (연위공령락) 나이들어 갈수록 벼슬길은 막히니

始信詩窮人 (시신시궁인)  이제야믿겠네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한단 말을 비로소 믿겠네

 

견흥8(遣興8)

梧桐生譯陽 (오동생역상) 오동나무 한그루가 역양산에서 자라나

其年倣寒陰 (기녀오한음) 차가운 비바람 속에 여러 해를 견뎠네

幸遇稀代工 (행우희대공) 다행히도 세상에 드문 장인을 만나

촉取爲鳴琴 (촉취위명금) 깎고 다듬어 좋은 소리 거문고되었네

琴成彈一曲 (금성탄일곡) 거문고로  한 곡조 타 보는데

擧世無知音 (거세무지음)  온 세상에 알아 줄 사람이 없네

所以廣陵散 (소이광릉산) 이래서 광릉산 노래가락은

終古聲인沈 (종고성인침)끝내 전하지 못하고 말았나 보네

 

기부강사독서(寄夫江舍讀書)-한강변 강사에 공부하는 낭군에게

燕掠斜檐?兩兩飛(연락사천양량비) 제비는 비스듬한 낀처마에서 짝 지어날고 ※비낄사斜※처마첨檐

落花擾?亂撲羅衣(날과요란박라의) 지는 꽃은 어지러이 비단옷을 스치네

洞房極目像春意(동방극목상춘의) 신방에서 기다리는 마음 봄을 아파 하는 뜻은

草綠江南人未歸(초록강남인미귀) 강남에 풀 푸른데 님은 돌아오지 않네

 

竹枝詞(죽지사)

家住江陵積石磯(가주강릉적석기) 강릉 돌담 쌓은 물가에 살며

門前流水浣羅衣(문전유수완라의) 집 앞에 흐르는 물에 빨래를 하네

朝來閑繫木蘭棹(조래한계목란도) 아침이면 한가로이 배를 매어놓고

貪看鴛鴦相半飛(탐간원앙상반비) 쌍쌍이 나르는 원앙새를 구경한다오

 

 

유선사(遊仙詞) -신선세계에 놀다

1

千載搖地別穆王(천재요지별목양) 천년 고인 요지지에서 목왕과 헤어져

暫敎靑鳥訪遊郞(잠교청조방유랑) 파랑새로 하여금 유랑을 찾게 하였네

平明上界笙蘇返(명명상계생소반) 밝아오는 하늘에서 피리소리 들려오니

時女皆기白鳳凰(시녀개기백봉황) 시녀들은 모두들 흰 봉황을 탔구나기(馬+奇)

 

2

瓊洞珠潭貯九龍 (경동주담저구룡) 골짜기와 연못에 아홉룡이 잠겨있고

彩雲寒濕碧芙蓉 (채운한습벽부용) 서늘한 오색구름이 부용봉을 물들이네

乘鸞使者西歸路 (승란사자서귀로) 난새 탄 동자를 따라 서쪽으로 오는길에

立在花前禮赤松 (입재화전례적송) 꽃앞에 선 적송자에게 예를 올렸네

3

露濕瑤空桂月明 (로습요공계월명) 맑은 이슬 함초롬하고 계수나무엔 달빛 밝은데

九天花落紫簫聲구천화락자소성 (구천화락장소성) 꽃지는 하늘에선 퉁소 소리만 들려오네

朝元使者騎金虎 (조원사자기금호) 금호랑이 탄 동자는 옥황님께 조회가느라

赤羽麾幢上玉淸 (적우휘당상옥청) 붉은 깃발 앞세우고 옥청국으로 올라가네

 

4

瑞風吹破翠霞裙 (서풍취파취하군) 상서로운바람이 불어와 푸른치마를 휘날리며

手把鸞簫倚五雲 (난소의오운난새) 새긴 퉁소를 쥐고 오색구름에 비껴있네

花外玉童鞭白虎 (화외옥동편백호) 꽃너머동자는 백호를 채찍질하며

碧城邀取小茅君 (벽성요치소무군) 벽성에서 소무군을 맞아들이네

 

5

焚香邀夜禮天壇 (분향요야예천단) 긴밤에 향불 피우고 천단에 예를 올리는데

羽駕飜風鶴氅寒 (우가번풍학창한) 수레깃발 바람에 펄럭이고 학창의는 싸늘하네

淸磬響沈星月冷 (청경향침성월냉) 해맑은 풍경소리 은은하고 달빛은 차가운데

桂花煙露濕紅鸞 (계화연로습홍난) 계수나무 꽃의 이슬이 붉은 난새를 적시네

 

6

宴罷西壇星斗稀 (연파서단성두희) 서단에서 잔치 끝나자 북두칠성도 성글어지고

赤龍南去鶴東飛 (적용남거학동비) 붉은 용은 남으로 학은 동으로 날아가네

丹房玉女春眠重 (단방옥녀춘면중) 단청한 방의 선녀는 봄 졸음에 겨워

斜倚紅闌曉未歸 (사의홍란효미귀) 난간에 기댄 채로 말 밝도록 돌아가질 않네

 

7

氷屋珠扉鎖一春 (빙옥주비쇄일춘) 하얀 집 구슬문은 몸 내내 닫혀있고

洛花烟露濕綸巾 (낙화연로습륜건) 는 꽃 이슬이 비단 수건을 적시네

東皇近日無巡幸 (동황근일 무순행) 황님께선 요즘 순행이 없으시어

閑殺瑤池五色麟 (한쇄요지오색린)  요의 오색 기린이 한가하기 그지없네

 

8

閑解靑囊讀素書 (한해청낭독소서) 한가롭게 푸른 주머니 끌러 신선의 경전을 읽는데

露風烟月桂花疎 (로풍연월계화소) 달은 이슬바람에 흐려지고 계수나무 꽃도 성글어졌네

西婢小女春無事 (서비소여춘무사) 서왕모의 시녀는 봄이라 할 일이 없어

笑請飛瓊唱步虛 (소청비경창보허) 웃으며 비경에게 모허사를 불러달라고 하네

 

9

瓊樹玲瓏壓瑞煙 (경수영롱압서연)계수나무 영롱하고 상서러운 안개가 뒤덮였는데

玉鞭龍駕去朝天 (옥편옹가거조천) 채찍 든 신선이 용을타고 조회하러 가네

紅雲塞路無人到 (홍운한로무인도) 붉은 구름이 길을 막아 차자아오는사람도 없으니

短尾靈尨藉草眠 (단미영방자초면) 꼬리 짧은 삽살개가 풀밭에 주저앉아 조네

 

10

烟鎖瑤空鶴未歸 (연쇄요공학미귀) 하늘엔 안개 끼고 학은 돌아오지 않네

桂花陰裏閉珠扉 (계화음속폐주비) 계수나무 꽃그늘 속에 구슬문도 닫혔네

溪頭盡日神靈雨 (계두진일신령우) 시냇가엔 하루 종일 신령스런 비가 내려

滿地香雲濕不飛 (만지향운습불비) 땅에 뒤덮힌 향그런 구름이 날아가질 못하네

 

11

靑苑紅堂鎖泬료(청원홍당쇄혈료) 푸른 동산 붉은 집들이 맑은 하늘에 잠겼는데

鶴眠丹竈夜迢迢(학면단조야초초) 학은 단약을 굽는 부엌에서 졸고 밤은 아득하네

仙翁曉起喚明月(선옹효기환명월) 늙은 새벽에 일어나 밝은 달을 부르자

微隔海霞聞洞簫(미격해하문동소) 바다노을 자욱한 건너편에서 퉁소소리 들리네

 

12

香寒月冷夜沈沈 (향한월냉야침침) 날씨 싸늘하고 달빛도 차가운데 밤은 캄캄해져

笑別嬌妃脫玉簪 (소별교비탈옥잠) 웃으며 교비에게 하직하니 옥비녀를 뽑아 주시네

更把金鞭指歸路 (갱파금편지귀로) 다시금 금채찍 잡아 돌아갈 길을 가리키자

碧城西畔五雲深 (벽성서반오운심) 벽성 서쪽 언덕에 오색 구름 자욱하네

 

13

新詔東妃嫁述郞(신조동비가술랑)  동비에게 새로 분부하사 술랑에게 시집가라시니

紫鸞烟盖向扶桑(자난연개향부상) 붉은 난새와 해를 가린 수레가 부상으로 향하네

花前一別三千歲(화전일별삼천세) 벽도화 앞에서 한 번 헤어진지 삼천년이라 되니

却恨仙家日月長(각한선가일월장) 신선세상의 해와 달 긴 것이 도리어 한스러워라

 

14

閑携姉妹禮玄都 (한휴자매예현도) 한가롭게 자매를 데리고 현도관에 예를 올리니

三洞眞人各見呼 (삼동진인각견호) 삼신산 신선들이 저마다 보자고 부르시네

敎著赤龍花下立 (교저적용화하립) 붉은용을 타고 벽도화 밑에 세운뒤

紫皇宮裏看投壺 (자황궁리간투호) 자황궁 안엣 투호 놀이를 구경하였네

 

15

星影沈溪月露첨(성영침계월로첨) 별그림자는 시냇가에 잠기고 달빛이 이슬에 젖었는데

手挼裙帶立瓊簷(수뇌군대입경첨) 손으로 치마끈 어루만지며 구슬 처망 서 있네

丹陵羽客辭歸去(단능우객사귀거) 단릉의 신선님 하직하고 돌아오려 하자

自下珊瑚一桁簾(자하산호일향렴) 산호 한꾸러미를 내려 주였네

 

16

瑞露微微濕玉虛(서로미미습옥허) 상서로운 이슬이 부슬부슬 내려 허공을 적시는데

碧牋偸寫紫皇書(벽적투사자황서) 푸른 종이에 자황의 글을 몰래 베끼네

靑童睡起捲珠箔(청동수기권주바)가 동자가 잠에서 깨어나 주렵을 걷자

星月滿壇花影疎(성월만단화영소) 벼로가 달이 단에 가득해 꽃그림자 성글어라

17

西漢夫人恨獨居(서한부인한독거) 서한부인이 혼자 사는 것을 한스럽게 여겨

紫皇令嫁許尙書(자황령가허상서) 상제께서 명령하여 허상서에게 시집노냈네

雲衫玉帶歸朝晩(운삼옥대귀조만) 오색 적삼에 옥띠 두르고 아침 늦게 돌아오더니

笑駕靑龍上碧虛허(소가청룡상벽허) 웃으며 청룡을 타고 푸른 하늘로 올라가네

 

18

住瑤池吸彩霞(한주요지흡채하) 한가롭게 요지에 살며 노을을 마시는데

瑞風吹折碧桃花(서풍취절벽도화) 바람이 불어와 벽도화 가지를 꺾네

東皇長女時相訪(동황장녀시상방) 동황의 맏따님을 이따금 찾아뵙느라

盡日簾前卓鳳車(진일렴전탁봉거) 주렴 앞에다 하루종일 봉황 수레를 세워두네

 

19

滿酌瓊醪綠玉巵 (만작경료옥옥치) 비취 푸른 옥잔에 술을 가득따라

月明花下勸東妃 (월명화하군동비) 달 밝은 꽃 아래서 동황비에게 권하네

丹陵公主休相嫉 (단릉공주휴상질) 단릉 공주님이여 질투하지 마오

一萬年來會面稀 (일만년래회면희) 일만년이 지나도 서로 만나기 드무니

20

愁來自著翠霓裙 (수래자서취예군) 시름겨워 푸른 무지개 치마를 입고

步上天壇掃白雲 (보상천단소백운) 천단에 걸어 오르며 흰 구름을 쓸엇네

琪樹露華衣半濕 (기수로화의반습) 구슬나무 맻힌 이슬에 옷이 반쯤 젖은 채

月中閑拜玉眞君 (월중한배옥진군) 달속의 옥진군에게 한가롭게 절을 올리네 

 

 유선사-87(遊仙詞) -  신선세계에 놀다

 

여섯 폭 비단치마 안개에 끌고서 

신선 완랑 불러 지초밭에 오르네 

피리소리 갑자기 꽃 사이 그치니 

문득 인간세상 일 만년이 흘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