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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그날 17회<인재경영을 선포하다 - 세종, 집현전을 열던 날>2014/02/16 미리보기

파라클레토스 2014. 2. 17. 11:16

 

인재경영을 선포하다 - 세종, 집현전을 열던 날

 

 

조선의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이룩한 군주, 세종
여기에는 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인재(人才)들이 있었다!

위화도 회군, 왕자의 난 등으로 어지러웠던 조선 초기
세종이 집현전을 부활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성실한 모범 군주’ 이미지 이면에 숨겨진
자유롭고 파격적인 세종의 인재경영
그 실체를 만나본다!

 

 
■ 집현전을 열던 그날
세종이 조선 4대 임금으로 즉위했다. 왕이 된 후 세종이 가장 강조한 사항은 집현전의 기능강화였다. 궁중의 학문연구기관인 집현전은 원래 고려시절부터 있던 기관. 하지만 거의 방치돼다가 1420년 3월 16일, 세종이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재해있던 조선 초기. 그런데 세종은 실무보다는 학문연구에 더 힘을 실어주고 그 출발점이 집현전이었다. 세종이 집현전을 통해 이룩하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단순한 학문연구뿐이었을까? 세종시대 씽크탱크로 기능한 집현전을 통해 세종이 당면한 현실적 문제와 조선에 대한 구상을 들어본다.
 

■ 집현전 학사들의 불만?!
집현전에 쏟은 세종의 배려는 각별했다. 왕에게 진상되던 귀한 귤을 집현전에 내리고
유급휴가제도인 사가독서제를 두기도 했다. 집현전 위치만 봐도 세종이 집현전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을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현전 학사들 사이 불만이 존재했다. 다른 부서로 옮기길 원하는 이들도 있었다는데? 학사들과 세종 사이 갈등이라도 있었던 걸까? 어떤 사연이 존재했던 건지, 집현전 학자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본다. 

 

 


■ 장인이 죽은 다음 날, 연회에 참석한 이유는?
세종의 장인이자 당시 영의정이었던 심온이 사약을 받는 사건이 일어난다. 죄명은 역모죄.
하지만 실제로는 외척세력이 커질 것을 경계한 태종이 내린 지시였다. 누가봐도 억울한 장인의 죽음..그런데 실록에 보면 심온이 제거된 다음날 궁중에 연회가 열리고 세종도 연회에 참석했다고 나온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또한 세종은 이후 심온 사건을 주도했던 유정현을 좌의정으로 임명하고 국가 중대사가 있을 때마다 긴히 논하는 모습을 보인다. 재수사를 하지 않고 오히려 당시 반대세력들을
중용한 것이다. 흔히 알려진 공정하고 올바른 세종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행보!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 경연을 즐긴 세종, 알고보니 소통에 취약한 군주?
학문을 강론하고 국정을 협의하던 조선시대의 경연. 세종이 경연에 참석한 횟수는 실록에 기록된 것만 2천여 회에 달한다! 흔히 생각하기에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은 경연. 하지만 ‘용은 존재하는가’ 등 의외로 독특하고 재미있는 주제들이 많았다는데...? 당시 경연은 어떤 내용들이 오갔으며 어떤 분위기로 진행이 되었을까?
흔히 ‘소통의 왕’으로 알고 있는 왕, 세종. 하지만 성격유형검사인 MBTI를 통해 본 결과, 세종은 의외로 소통에 취약한 성향의 소유자라는데? MBTI 전문가를 통해 세종의 성격유형을 파악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 노비출신도 관료가 되는 세상
과학,문화의 부흥기로 일컬어지는 세종시대. 세종이 집현전을 통해 강조해온 인재경영이
꽃을 피운 것이다. 특히 세종시대 과학자로 알려진 장영실은 알고보니 노비 출신!
음악가 박연 역시 원래는 음악가가 아니었다는데?!
사람의 재능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파격적으로 등용할 줄 알았던 세종의 특별한 인재경영!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다양한 발명품과 기록들까지... 2월 8일 일요일 밤 10시 30분 KBS 1TV로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집현전과 과감한 인재 등용을 통해 가장 조선다운 조선을 만든 호학(好學)의 군주, 세종을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