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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그날 109회<신년 기획 고대사 인물 열전 ‘선택’ 5부작 제5편 신라의 최후, 경순왕과 마의태자.

파라클레토스 2016. 4. 7. 09:03

신년 기획 고대사 인물 열전 ‘선택’ 5부작 제5편 신라의 최후, 경순왕과 마의태자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과
그의 아들 마의태자.

천 년 역사를 자랑하던
신라의 멸망 앞에
부자父子는 각각 다른 길을 걷게 되는데.

신라의 운명을 둘러싼
두 사람의 엇갈린 선택!

망국亡國을 맞는 지도층의
올바른 자세는 무엇일까?

 


■ 경순왕, 후백제 견훤에 의해 왕이 되다?


 

 

927년 신라. 후백제의 견훤이 경주를 습격한다. 포석정에서 연회를 즐기던 신라 제55대 경애왕. 그는 갑작스러운 침탈에 대비하지 못하고, 결국 견훤의 핍박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후 견훤은 직접 왕위에 오르지 않고 새로운 이를 왕으로 세우는데... 그가 바로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었다. 당시 3대째 박씨(氏)계 인물이 왕위를 이었던 신라. 때문에 김씨(氏)인 경순왕은 뜻밖에 왕위에 오르게 됐는데... 견훤에 의해 선택된 경순왕.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나? 

 

■ 고려, 신라의 운명을 손에 쥐다!

 

 

 

930년, 고창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한반도의 최강자로 떠오른다. 이후 경순왕의 청으로 3개월간 신라에 머무른 고려의 태조 왕건. 그는 경순왕과 신라 관료들에게 각종 물품을 선물하며 민심을 사로잡는다. 백성들은 “견훤이 왔을 때는 승냥이와 호랑이를 만난 것 같았는데, 왕공(王公)이 오니 부모를 만난 것 같다.”며 왕건을 칭송할 정도였는데. 고려와 화친을 유지한 신라. 이미 신라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고려에 의존하며 망국의 길을 걷고 있었다.

 

■ 신라의 멸망, 부자의 엇갈린 선택...

 

 

 

935년, 경순왕은 천 년 사직을 고려에 바치기로 결심한다. 태자는 항전을 주장하며 귀부를 강력히 반대하는데...

 

“나라의 존속과 멸망은 반드시 하늘의 운명에 달려 있으니,
어찌 1천 년 사직을 하루아침에 남에게 줄 수 있겠습니까?”
- 삼국사기 中

 

하지만 당시 신라는 건사할 백성도, 영토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던 상황. 결국 경순왕과 귀족들은 귀부를 결정하고 개성으로 떠난다. 이후 통곡하며 금강산에 들어가 ‘마의’를 입고 나물을 먹으며 생을 마친 태자. 이와 달리 경순왕은 태조 왕건의 딸과 혼인하고, 태자보다 높은 지위인 정승공에 봉해지며 고려인으로서 영화를 누린다. 신라의 멸망 앞에 정반대의 선택을 내린 부자(父子). 그들은 왜 이런 선택을 내렸을까.

 

■ 마의태자, 신라 부흥 운동을 이끌다?

 

 

 

신라 멸망과 함께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진 ‘마의태자’. 하지만 강원도 인제 부근에서는 마의태자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전해온다. 마의태자가 의병을 모아 신라 재건을 도모했다는 맹개골, 의병 활동에 필요한 군량미를 모아두었다고 해 이름 붙여진 군량리, 국권 회복에 대한 의지가 담긴 다무리까지... 일각에서는 마의태자가 신라 재건을 위해 부흥 운동을 펼쳤다고 하는데! 기록엔 없지만 천 년 신라의 명예를 지킨 인물로 전설이 된 마의태자. 과연 그 진실은 무엇일까?

 

신년 기획 고대사 인물 열전 ‘선택’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 신라의 최후, 경순왕과 마의태자! 망국의 문턱에서 그들이 내린 선택에 대해 역사는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1월 31일 일요일 밤 10시 3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