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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그날 118회-태조 왕건, 29명의 부인을 얻다

파라클레토스 2016. 4. 7. 09:16

태조 왕건, 29명의 부인을 얻다

 

 

10세기 분열과 혼란을 잠재우고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

그런 그가 무려 29명의
부인을 거느렸다고 하는데!

태조 왕건과 부인들에 얽힌
파격적이고 은밀한 이야기.

태조 왕건,
그는 대체 왜 이런 선택을 했나?

 


■ 태조 왕건의 조강지처, 신혜왕후 유씨와의 첫 만남!

 

 

 

궁예의 휘하 장수로 있던 시절, 왕건은 군사를 거느리고 출정을 위해 정주로 향한다. 그곳에서 한 여인에게 첫눈에 반한 왕건은 여인의 집으로 찾아가 하룻밤을 함께 하며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리고 여인의 아버지는 왕건의 군사들까지 배불리 먹이며 후하게 대접하는데... 그 여인은 바로 태조 왕건의 첫 번째 부인, 신혜왕후 유씨다. 그녀는 왕건이 궁예를 폐위시키고 고려를 건국할 당시, 주저하는 왕건을 독려하며 그에게 손수 갑옷을 입힌 인물이었다. 여장부의 기개를 지닌 신혜왕후 유씨. 그렇다면 태조 왕건은 조강지처 신혜왕후를 두고 대체 왜, 28번이나 더 혼인했을까.

■ 태조 왕건의 호족 연합 정책, 혼인!

 

 

 

평생 29명의 부인을 얻은 태조 왕건. 그 가운데는 친자매도 있다고 하는데... 충격적인 태조 왕건의 혼인! 그는 왜 이런 결정을 한 것일까?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전국 방방곡곡 분포돼있는 부인들의 출신 지역이다. 당시 송악의 해상 세력이자 일개 장수였던 왕건은 자신의 세력 기반을 키우기 위해 호족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는 강력한 동맹 방법인 혼인을 통해 유력 호족들과 연합을 맺는다. 뿐만 아니라 전시에는 무장의 딸과, 통일 후에는 신라의 왕족과 혼인하며 전략적인 모습을 보인다. 호족들과의 연합을 통해 군사적ㆍ경제적ㆍ정치적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은 태조 왕건! 29번의 혼인은 개인사가 아닌, 대의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정책이었다.


■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 오씨의 은밀한 이야기

 

 


태조는 장화왕후의 집안이 미천하므로
왕후를 임신시키지 않으려고 돗자리에 사정했으나
왕후가 즉시 이를 자신의 몸속에 넣어 임신하고 아들을 낳으니...
- 고려사 열전 장화왕후 오씨


태조 왕건과 두 번째 부인 장화왕후 오씨에 얽힌 외설적인 이야기. 이는 야사(野史)가 아닌 엄연한 정사(正史), <고려사>의 기록이다. 두 사람만의 은밀한 이야기를 대체 누가, 어떻게 기록한 것일까? 이 이야기에는 가문의 힘이 약했던 장화왕후와, 그녀의 아들이자 태조 왕건의 장자 무(武)에 대한 정치적 모략이 담겨 있다는데... 태조 왕건은 부인 가문들 간의 권력 다툼 속에서도 장화왕후의 아들을 고려의 첫 번째 왕위 계승자, ‘정윤(正胤)’으로 삼는다.

자주적 통일을 이루기 위한 태조 왕건의 노력과 고뇌의 산물이었던 29명의 부인들. 4월 3일 일요일 밤 9시 5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태조 왕건, 29명의 부인을 얻다 편에서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