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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44회<인조, 반정의 칼을 들던 날>2014/09/27

파라클레토스 2014. 11. 1. 10:13

인조, 반정의 칼을 들던 날

조선 역사상
신하들이 왕을 내쫓은 두 번째 사건,

조선의 전기와 후기를 가르는 분수령
인조반정!

광해군 시대를 종식시킨
새로운 인조정권!
그들은 과연 누구였고, 왜 반정을 일으켰나!

1623년 3월 12일
인조반정의 그날로 들어가 본다!



■ 광해군, 반정으로 내쫓기다!
충과 효를 중시했던 조선시대. 하지만 충.효의 대상이었던 왕을 신하들이, 그것도 두 번이나 내쫓는 일이 발생한다. 중종반정에 이어 인조반정이 그것! 특히 중종반정과 달리 인조는 직접 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다. 광해군의 조카였던 인조. 그는 왜 삼촌을 향해 반정의 칼을 든 것일까? 한양에 돌던 소문대로 집터에 왕기가 흐르고 왕이 될 운명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실록의 기록대로 폭군 광해군을 몰아내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였을까? 인조를 비롯해 반정을 일으킨 세력들은 누구였고, 이유가 무엇인지.. 다양한 사료를 통해 인조반정의 실체에 접근해본다.



■ 인조, 알고 보니 광해군과 공범?!
인조반정 세력은 광해군을 폐위시키면서 36가지의 죄목을 들었다. 그 중 가장 큰 죄는
명에 대한 배신과 폐모살제, 즉 인목대비를 유폐시키고 형제를 죽였다는 것! 충과 효가 무너지는 패륜을 막기 위해 칼을 들었다던 인조. 하지만 실록을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보인다. 정작 인조 자신도 능양군 시절 인목대비를 폐하라는 정청에 참여한 것이다.
광해군을 폐위시킨 명분에서 인조 자신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 과연 여기엔 어떤 진실이 숨어있는 것일까?

■ 광해군의 방심은 상궁 김개시 때문?!
반정이 일어나던 당일, 상소가 하나 올라온다. 이귀와 김자점 등이 역모를 꾸미고 있다는 고변이었다. 그동안 역모라면 친국까지 하며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했던 광해군.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번엔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데... 그는 왜 반정 계획을 알리는 고변을 무시했던 것일까? 기록에 따르면 광해군은 한 여인의 말을 믿고 역모의 의심을 거두었다고 한다. 여인의 정체는 상궁 김개시! 광해군은 정말 김개시 때문에 반정의 기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까? 상궁 김개시와 광해군 사이에는 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 하루 밤 만의 성공! 조선시대 궁궐호위체계 전격 분석!
반정군은 불과 몇 시간 만에 궁궐을 장악했다. 단 하룻밤 만에 광해군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인조 시대가 열린 것이다. 당시 반정군 규모는 1300여 명 남짓. 그것도 절반 가량이 길거리에서 돈을 주고 사 모은 오합지졸들이었다. 하지만 광해군에겐 도성을 지키고 궁궐을 호위하는 수천 명의 병사들이 있었던 상황! 조선의 정예병들을 대상으로 반정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본 편에서는 군사적인 측면에서 인조반정을 분석해 보고 더불어 당시 궁궐호위체계와 검술 시범까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 성공하면 반정反正인가?
수능시험 단골 문제일 정도로 조선역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으로 손꼽히는 인조반정!
요즘 학생들은 ‘인조반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인조반정은 당파싸움의 결과이다, 인조반정은 반정이 아니다”부터 ”성공하면 반정인가요?” 등 <역사저널 그날> 스튜디오에서는 학생들의 날카로운 분석과 허를 찌르는 질문에 놀라워했다는 후문~!
과연 역사 속 인조반정과 학생들이 바라보는 인조반정은 어떤 모습일까?

어지러운 세상을 다스려 바른 것으로 되돌린다는 의미의 반정! 인조반정 세력들이 바로잡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또 이들은 어떻게 반정을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번 주 9월 27일 토요일 밤 9시 40분에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조선역사상 신하들이 왕을 몰아낸 두 번째 사건, 인조반정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