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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45회<이괄, 반란의 칼을 들다 >2014/10/04

파라클레토스 2014. 11. 1. 10:15

 

 

이괄, 반란의 칼을 들다


인조반정 날 임시 대장 추대,
반정 성공 후 2등공신 책봉,
후금-명 혼란기에 북방 경비의 핵심 인사, 이괄(李适).

그러나-
인조반정 1년 후, 반정공신 이괄은 한양으로 진격한다.
인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던 그는 왜 역모를 꾀한 것일까?

인조 정권을 향해 반란의 칼을 꺼내든 이괄의 난, 그날!
조선 땅에 두 명의 왕이 존재했던
그날 속으로 돌아가 본다!


 

■ 인조반정 공신 이괄, 반란의 칼을 뽑아들다!
1623년 3월 13일 인조반정이 일어난 날, 반정군 대장 김류가 약속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군사들은 혼란에 빠지고 거사가 중단될 수도 있는 위기의 순간, 이괄이 임시대장으로 추대돼 전열을 정비한다. 하지만 뒤늦게 김류가 나타나고, 이괄은 다시 대장 자리를 넘긴다. 게다가 반정 성공 후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평안도 북병사로 발령을 받게 되는데... 결국 공신 책봉에서 2등으로 밀려난다. 공신책봉 약 3개월 뒤, 이괄은 12,000여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한양으로 진격한다. 반란의 칼을 빼든 것! 반정 공신 중 11번째에 이름을 올렸고 인조에게 깊은 신뢰를 받았던 무신(武臣), 이괄. 그는 왜 반정에 성공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모반을 꾀한 것일까? 그가 인조와 반정공신들을 향해 칼을 뽑아 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조선 하늘 아래 두 명의 임금, 두 개의 조정
광해군을 몰아내고 조선의 새로운 왕이 된 인조. 하지만 반정공신들은 정권을 돌보기보다는 광해군 세력들을 숙청하기 바빴다. 인조가 왕이 된 후 1년 사이 수백 명이 처형 혹은 유배되자 민심도 흉흉해졌다. 뿐만 아니라 당시는 후금과 명이 치열하게 대립하며 언제 조선에게 불똥이 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런데, 북방을 지켜야 할 신하 이괄이 난을 일으킨 것이다. 한양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진격해오는 이괄의 기세에 놀라 인조는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피난을 떠난다. 조선 역사상 반란에 의해 왕이 도성을 떠난 유일한 사건! 선조의 서자 흥안군을 옹립하고 한양에 무혈 입성한 이괄, 결국 조선 하늘 아래 두 명의 임금이 존재하는 믿기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 이괄군 전력의 비밀 - ‘항왜’는 누구인가?
반란을 일으킨 후 영변(寧邊)에서 한양까지 약 20일 만에 파죽지세로 내려온 이괄. 이괄 부대가 길목을 지키던 관군을 모두 격파하며 뛰어난 기동력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괄 부대의 강한 전력에는 반란군의 선봉에 섰던 항왜가 있었다. 영화 <명량>에서 ‘준사’역으로 등장했던 자가 바로 항왜. 과연 항왜란 누구일까? 박금수 박사와 함께 당시 맹활약했던 항왜의 무기와 검법 등을 직접 시연하며 항왜에 대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아본다.

■ 관군 VS 반란군, 최후의 결전 - 안현전투(鞍峴戰鬪)
이괄의 반란군에게 도성을 빼앗긴 인조와 관군들은 반란군을 몰아내기 위해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다. 도성이 내려다보이는 고지 안현(鞍峴) 지역을 기습 점령하고 반란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인 것! 연이은 승리로 사기 충만한 이괄 부대 vs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맞선 관군. 치열한 결투 끝에 관군은 반란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는데... 그 동안 반란군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던 관군들은 어떻게 승기를 잡을 수 있었을까? 반란의 주동자 이괄의 최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단 20여 일간에 걸쳐 일어난 역모사건 이괄의 난. 이후 조선의 운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불씨가 된다.



500년 조선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왕을 몰아내고 도성을 차지한 이괄의 난! 반정공신에서 1년 만에 모반의 수장(首長)이 된 이괄의 이야기가 이번 주 토요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