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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49회<병자호란 - 인조, 남한산성에 고립되다 >2014/11/01

파라클레토스 2014. 11. 1. 10:18

병자호란 - 인조, 남한산성에 고립되다

1636년 12월 9일.
12만 8천여 청나라 대군이
다시 압록강을 건넜다.

조선을 향해 질풍처럼 내려온 그들은
불과 닷새 만에 도성을 점령하고,
인조는 가까스로 남한산성으로 피신하는데...

47일간의 고립.
병자호란의 비극이 시작됐다.





■ ‘후금’은 여전히 오랑캐의 나라?
정묘호란 후, 후금은 원나라 대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세력을 굴복시키며 중국대륙의 패권을 장악해 나간다. 그러나 조선은 여전히 명나라를 황제의 나라로 섬기며 후금을 오랑캐로 취급한다. 1636년, 인조의 정비인 인열왕후를 조문하기 위해 찾아온 후금의 사절단을 푸대접해 돌려보내는 사건까지 벌어지는데... 후금이 청나라로 국호를 바꾸고 홍타이지가 황제로 즉위하는 그 날까지도 꼿꼿한 태도는 변하지 않았고, 급변하는 대외정세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조선의 외교는 결국 청의 분노를 사게 된다.

 


■ 정묘호란 후 10년. 그 동안 조선은?
후금이 힘을 키워가는 동안 조선은 더욱 약해졌다. 인조정권이 무너진 국방과 피폐해진 민생을 바로잡는 대신 집중했던 것은 바로 원종 추숭.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른 인조는 '왕의 아들'이라는 정통성을 얻기 위해 아버지인 원종을 추숭하고자 했다. 그러나 명분과 종통의 의리를 중시하는 신하들의 반대로 10여 년간 논쟁이 이어졌던 것. 결국 1635년, 인조는 명의 승인을 얻어 원종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면서 숙원을 이루는데... 이는 병자호란이 일어나기 고작 1년 전의 일이었다.

 


■ 남한산성, 굶주림과 추위에 무너지다
마침내 조선에 쳐들어온 청나라 대군. 인조는 남한산성에 완전히 고립됐다. 항전이 길어지면서 성 안에는 모든 것이 부족해졌다. 성안의 사람과 짐승이 모두 굶주려 ‘말과 소가 서로의 꼬리를 뜯어먹었다’는 소문이 떠돌 정도. 매서운 추위로 군사들은 제대로 한 번 싸워보지 못한 채 얼어 죽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처참한 나날들. 남한산성을 지원하기 위해 남하하던 근왕병들의 연이은 패전 소식이 날아들고, 조정에서는 화친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 가는데... 마침내 1637년 1월 17일. 직접 조선으로 출병한 청 황제 홍타이지는 인조에게 남한산성 밖으로 나와 귀순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낸다.
 
 

■ 천연요새 남한산성, 그곳이 알고 싶다!
2014년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 평균 고도 해발 480m이상으로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방어력을 극대화한 조선의 천연요새였다. 그런데 이곳에 사찰이 무려 10개나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남한산성과 이 사찰들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병자호란과 승군의 이야기. 일감스님을 통해 들어본다.

정묘호란이 끝난 후 채 10년도 못돼 다시 압록강을 건넌 청군. 그리고 제대로 된 전투조차 벌일 수 없을 만큼 허약했던 조선. 11월 1일 토요일 9시 40분 KBS 1TV<역사저널, 그날>에서 병자호란의 나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