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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그날50회<1637. 1. 30. 치욕의 삼전도>2014/11/08

파라클레토스 2014. 11. 23. 15:37

 

“죽은 어머니의 젖을 여전히 빨고 있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 연려실기술

 

 

삼전도에서의 굴욕적인 항복으로 끝난 병자호란.
하지만 백성들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쟁이 남기고 간 기아와 죽음
그리고 피로인.
병자호란은 조선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잊고 있었던
병자호란의 모든 것이 밝혀진다!

 

■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다
청의 공격에 맞서 남한산성에서 항전한 지 47일. 결국 인조를 성을 나와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는다. 조선 국왕의 항복을 받기 위해 직접 삼전도에 주둔하고 있던 청 태종은 철저한 항복 의식을 요구한다. 죄인의 신분이 된 인조는 곤룡포 대신 푸른 옷을 입고 정문(正門) 대신 서문으로 나와야 했다. 항복 의식의 핵심은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을 통해 조선과 청은 군신관계를 맺게 된다. 오랑캐라 무시했던 청에게 직접 신하의 예(禮)를 맹세한 인조. 조선은 왜 이런 치욕적인 항복 의식을 받아들인 것일까.

 

 

■ 남한산성을 무너뜨린 강화도 함락
인조가 항복하기 일주일 전, 청의 군대가 강화도에 상륙한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고려 시대부터 왕실의 피란처였던 천연의 요새 강화도. 청군은 강화도를 함락시키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다. 강화도 물길에 맞는 작은 배를 제작하고, 그 배를 육로로 옮긴 것이다. 청군의 기습에 허를 찔린 조선군은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못하고 패배한다. 불과 한나절 만에 강화산성은 함락되고, 세자빈과 봉림대군은 청군의 인질이 된다. 그리고 나흘 후, 이 소식은 남한산성에 전해진다. 벼랑 끝에 몰린 인조의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 끝나지 않은 전쟁 ? 피로인의 아픔
전쟁에서 승리한 청은 11가지의 항복 조건을 조선에 보낸다. 명을 버리고 청을 섬길 것, 매년 세폐를 바칠 것. 조선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항복 조건에는 청에서 도망친 피로인들을 되돌려 보내라는 조항도 있었다. 피로인들이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청인에게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나는 속환 뿐. 하지만 일부 사대부들이 몸값을 올리면서 속환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결국 가난한 백성들은 속환가를 마련하지 못해 가족들과 생이별해야 했다. 여성 피로인의 삶은 더욱 비참했다. 청에서는 갖은 학대를 받고, 천신만고 끝에 조선에 돌아와도 정절을 잃었다는 이유로 냉대를 받아야 했다. 인조의 항복으로 공식적인 전쟁은 끝났지만 백성들의 전쟁은 진행형이었다.

 



50여 일 간의 전쟁으로 조선에 깊은 상흔을 남긴 병자호란. 11월 8일 토요일 밤 9시 40분 KBS 1TV로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치욕적이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그 날을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