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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52회<무찌르자 오랑캐! - 나선정벌 > 2014/11/22

파라클레토스 2014. 11. 23. 15:53

 

무찌르자 오랑캐!

- 나선정벌 

 

 
 


병자호란 이후 원수 청나라를 상대로
‘북벌北伐’을 꿈꾸었던 조선!

하지만 ‘북벌’과 전혀 상반된 사건이 일어난다.


1658년 6월 10일
흑룡강 유역에서 벌어진 나선정벌이 바로 그것!

 

무찔러야 할 오랑캐 청을 오히려 도와야 했던 나선정벌!
조선은 왜, 무엇을 위해 원병을 보냈던 것일까?


그날, 흑룡강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 나선정벌의 비밀병기, 조선군!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전투, 나선정벌.

하지만 나선정벌은 당시 러시아의 아시아 진출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투였고

훗날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확정짓는데 바탕이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조선군의 활약이 있었다.

조선에서도 멀리 떨어진 흑룡강 유역까지 보내졌던 조선군!

이들은 대체 왜 남의 나라 전투에 참여하게 됐던 것일까?

특히 그동안 러시아군에 연패를 면치 못했던 청군은 조선군이 합류하면서 단 하루만의 전투로 승리를 거두게 되는데!

전쟁의 판세를 바꾼 조선군의 비밀 병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당시 조선군 장수로 전투에 참여했던 신유 장군이 남긴 ‘북정록’을 통해 그날의 생생한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조선과 러시아의 첫 만남 - 대두인이 무섭다?
조.청 연합군과 러시아의 격돌, 나선정벌!

당시 조선은 ‘나선’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던 상황..

흑룡강 전투에서 러시아군을 처음 본 조선군의 반응은 과연 어떠했을까?

반면 나선정벌 이후 러시아군은 ‘대두인(大頭人)이 두렵다’며 조선의 조총수를 무서워했다는데!

그들은 왜 조선군을 대두인이라 부른 걸까?

당시 러시아군도 벌벌 떨게 한 조선 조총수의 정체, 그리고 러시아가 흑룡강까지 진출하게 된 원인 등을 다각도로 분석해본다.



 

 


■ 속국 군대의 비애
청의 파병 요구에 신유장군을 필두로 조선군 조총병 200여 명이 흑룡강 유역으로 보내졌지만,

신유장군은 청군 사령부에 도착하자마자 지휘권을 박탈당하고 조선군은 청나라 군대에 각각 분산 배치돼 버린다.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의 속국이 된 조선군에겐 용병으로서의 가혹한 현실만이 남아있었다.

뿐만 아니라 군량미가 없어 썩은 곡식을 청에게 빌리는 등 조선군은 온갖 수모를 당하게 되고

급기야 전투 당일에는 청군 사령관의 무모한 작전으로 애꿎은 조선병사 7명이 목숨을 잃고 마는데...!

나선정벌 승리 뒤에 가려진 조선병사들의 희생.. 속국 군대로서 겪어야 했던 비애와 한계를 살펴본다.

 

 

 


■ 나선정벌, 기억의 재구성
나선정벌에 참여한 조선군은 승리했지만 소리 내 기뻐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들에게 나선정벌은 승리해선 안되는 전투였다.

실제로 실록에는 2차 나선정벌에 승리하고 돌아온 병사들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고 상을 내렸다는 기록조차 없는데...

그런데 1690년, 숙종은 신유 장군의 제문을 직접 적어올리며 나선정벌의 승리를 치하하기 시작한다.

30여 년이 지난 뒤,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른 나선정벌의 승리!
1658년 당시 나선정벌에 대해 침묵을 지켰던 조선이 1690년 갑자기 나선정벌의 승리를 표면으로 끌어올린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북벌의 시대에 오랑캐를 도우러 가야했던 나선정벌!

당시 조선에게 나선정벌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11월 22일 토요일 9시 40분 KBS 1TV<역사저널, 그날>에서 역사 속에 잊힌 전투, 나선정벌의 모든 것이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