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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그날 62회<류성룡, 이순신 장군을 전라좌수사로 천거하던 날>2015/02/15

파라클레토스 2015. 2. 26. 22:56

류성룡, 이순신 장군을 전라좌수사로 천거하던 날

 

 

 

이 젊은이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 퇴계 이황

 

임진왜란 기간 동안

무너져가는 조선을 지켜낸 류성룡!

 

전란으로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효과적인 개혁 정책을 실시해

부족한 병력과 군량을 확보하고,

삶의 터전을 빼앗긴 백성들의 삶까지도 보살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 명재상.

 

뿐만 아니라,

이순신 장군을 전라좌수사로 천거한 것도 바로 그였다.

 

위기를 읽고 그에 대처할 뿐만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삼을 줄 알았던 류성룡.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류성룡, 이순신과 함께 조선을 지탱하다

1591, 우의정이었던 류성룡은, 6품 정읍현감이었던 이순신을 정3품 전라좌수사에 천거한다. 7품계나 뛰어넘은 전례 없는 인사에 조정은 반대의 목소리로 들썩인다. 하지만 1년 후, 류성룡의 천거는 탁월한 선택이었음이 증명된다. 전쟁 초반, 전력 차로 일본군에 밀리던 조선군이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전세를 뒤엎은 것이다. 류성룡은 이순신 장군을 천거한 순간부터 벗으로서, 동료로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전쟁 기간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순신과 함께 조선을 지탱했던 류성룡!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 전쟁을 극복한 개혁정책

임진왜란 7년 동안 류성룡은 영의정이자 전시 군사 총지휘관인 도체찰사로서 전란 극복의 책임을 맡는다. 군사도 식량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류성룡은 단기간에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을 내놓는다. 소금 생산을 장려해 곡물 교환 수단을 마련하고, 곡식을 수입해 모자란 군량을 채우고 굶주린 백성도 구휼한다. 그리고 훈련도감을 설치해 직업 군인을 양성해 군사력을 강화한다. 군대에 지원해 공을 세운 노비는 양인으로 신분을 올려주는 면천법을 실시해 병력을 확충하기도 한다. 위기를 기회 삼아 개혁정책을 펼친 류성룡. 그의 위기 극복 비결을 알아본다.

 

 

 

서애(西厓)로 돌아가다 ? 류성룡의 낙향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598. 선조는 류성룡을 파직한다. 정적들이 주화오국(主和誤國),’ 일본과 강화를 주장해 나라를 그르쳤다는 이유로 그를 탄핵한 것이다. 결국 류성룡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 안동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고향 서쪽 절벽(서애)에 위치한 정사에서 전란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반성한다는 의미의 징비록을 집필한다. 전쟁 내내 모든 책임을 지고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류성룡. 선조는 왜 석연치 않은 이유로 류성룡을 내친 것일까?

 

 

 

꺼져가는 조선이란 불씨를 살린 개혁가이자 책임과 성찰의 의미를 아는 된 사람’, 류성룡! 215일 일요일 밤 1040KBS 1TV로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위기의 순간 참된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류성룡을 재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