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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그날65회<기획특집 드라마 속 역사인물 제2탄, 부처를 자처한 왕 궁예>2015-03-15

파라클레토스 2015. 3. 25. 06:10



“옴 마니 반메 훔! 나는 미륵이다.”

혼란스러웠던 신라 말,
미륵불을 자처한 왕이 있었다.

버림받은 고아소년에서 왕의 자리에까지 올랐고
평등사회를 꿈꾼 개혁군주부터 미치광이 폭군까지!
극과 극의 평가가 공존하는 인물

 바로 궁예다.

 



■ 그는 개혁군주였다
2000년 방영된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는 극악무도하고 독단적인 폭군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왕이 곧 부처임을 주장하며 한 사람의 강력한 군주가 이끄는 나라를 원했던 독재자. 그런데 그가 한때는 무너져가는 신라를 대신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는지? 타고난 신분이 아닌 개개인의 능력으로 대우 받는 나라. 그것이 궁예의 나라, 후고구려의 이상이었다.
당시 기득권층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평등 사회’를 꿈꾼 지도자 궁예의 면모를 살펴보고, <만물각>에서 그가 타파고자 했던 신라의 차별적 신분제약 ‘골품제’에 대해 실제 KBS 드라마에 사용된 의상을 살펴보며 이야기한다.


 

 



■ 미치광이 폭군, 처자식마저 죽이다

궁예의 잔혹한 폭정이 극에 달하던 어느 날, 왕비 강씨가 두 아들과 함께 국문장에 끌려왔다. 죄목은 간통! 궁예 스스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신통력인 미륵 관심법을 사용해 알게 되었다고 주장했을 뿐 제대로 된 증거조차 없었다. 결국 잔인한 방식으로 왕비와 두 아들은 한 날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궁예의 패륜! 궁예는 왜 처자식을 죽였던 것일까?

 

 

 

 


 

 

 

■ 좋은 놈 vs 나쁜 놈? 왕건과 궁예!
송악군의 호족으로 대부호인 아버지를 둔 왕건과, 부모에게 버림받고 밑바닥 삶을 경험한 궁예는 인생의 출발부터 달랐다. 집안, 성격, 통치 방식... 모든 것이 대비되었던 난세의 두 영웅! 왕건은 한때는 후고구려의 세력 확장에 날개를 달아준 신하였으나 결국 궁예를 저버리고 반란을 일으켜 고려를 건국한다. 역사에 성군으로 기록된 왕건과, 잔혹한 폭군으로 남은 궁예. 엇갈린 두 사람의 운명! 역사가 기억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과연 진실일까?



 

 

■ 궁예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궁예는 왕이 된지 18년 만에 죽음을 맞았다. 세상이 바뀌었고 민심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궁예의 최후는 어떠했을까.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궁예가 왕건에게 성군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하며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삼국사기>는 왕건을 피해 달아난 궁예가 보리 이삭을 훔쳐 먹다가 분노한 백성들에게 맞아 초라하게 죽어갔다고 전한다. 한때는 백성들을 위한 이상 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궁예. 그는 마지막까지도 한 나라의 군주였을까, 아니면 초라한 도망자였을까?

한때 모두가 평등한 나라를 꿈꾸었던 이상주의자 궁예, 3월 15일 일요일 밤 10시 30분! KBS 1TV로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 ‘기획시리즈 드라마 속 역사 인물’을 통해 궁예의 ‘그날‘들을 되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