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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그날[88회]2000년 전 역사 코드, 고구려 신화

파라클레토스 2015. 12. 16. 11:32

2000년 전 역사 코드, 고구려 신화

고대 사회에서
한 국가가 건국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어 705년간
동북아시아 강자로 군림하며
우리 민족에게 잊을 수 없는 꿈의 역사로 기록된 고구려!
천하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그 기반에는 바로, 신화가 있었다.

 

 
  
■ 주몽 신화가 광개토대왕릉비문에 새겨진 이유는?

알을 깨고 나와 나라를 세웠다는 주몽, 그가 고구려를 건국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주몽 신화를 전하는 여러 기록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주목되는 자료가 있다. 바로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릉비문 첫 부분부터 주몽의 신이한 탄생을 적고 있는데 이는 <삼국사기>보다도 무려 700년이나 앞선 자료다. 뿐만 아니라 당대 고구려인이 직접 기록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414년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에 주몽 신화를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구려의 제천의식으로 잘 알려진 동맹제. 이는 곧 자신들의 시조인 주몽이 하늘의 아들이고 하늘에 대한 제사로 가장 중요한 의식이었다. 실제로 하늘과 주몽, 그의 어머니 유화부인을 모시는 제사가 이뤄졌을 장소로 추정되는 동굴이 30여 년 전 발견됐는데... 이곳에서 바로 주몽 신화를 재현한 것이었다.


 
 
 

■ 고분벽화에 남은‘신화’
고구려를 읽는 또 하나의 코드, 고분벽화. 고분 사방 벽면에는 고구려 당시의 생활 풍속을,
천장에는 별자리와 상상의 세계를 그려놓았다. 특히 고분 천장에 남긴 수많은 별자리와 신화 그림은 하늘의 자손이라 믿었던 고구려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다채로운 별자리와 함께 신화 그림이 잘 표현된 덕흥리 고분벽화를 통해 고구려인들의 풍부한 상상력을 찾아볼 수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고구려 고분벽화는 120기.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구려 유적들이 북한과 중국에 분포되어 있어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이 어렵다. 10년 전 직접 고구려 고분 안으로 들어가 그 위대함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는 임기환 교수. 그 감동으로 지금까지 공부하는 힘을 얻었다고 하는데... 고분벽화가 전하는 감동, 직접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1600년 전 고구려인들이 바라본 하늘이 스튜디오에서 펼쳐진다.


 

 

 

 

■ 주몽 신화는 동명 신화를 차용했다? 
주몽 신화와 똑같은 줄거리를 갖는 또 하나의 신화가 전해진다. 바로 부여의 동명 신화!
주인공만 다를 뿐 신이한 탄생부터 나라를 건국하기까지 주요 줄거리가 거의 비슷하다. 이를 두고 조선후기 유학자들은 주몽 신화는 ‘표절’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주몽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인 동명성왕. 그렇다면 고구려와 부여, 두 신화 속에 등장하는 동명은 다른 사람일까? 같은 사람일까? 대체 동명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우리 고대사에 엄연히 존재하는 국가지만 잘 알지 못하는 부여. 부여는 대체 어떤 나라였기에 고구려가 그들의 건국 신화를 차용한 것일까?


■ 잃어버린 우리의 신화를 찾아서

“여러 번 거듭 읽어 음미하면서 차차로 그 근원을 찾아가니,
  이는 환상이 아니오, 성스러움이며, 귀신이 아니고 신이었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구삼국사>를 바탕으로 <동명성왕>이라는 장편 서사시를 지었다.
그 역시 주몽 신화를 믿지 못했다는 것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동명성왕을 발표한 당시는 1193년 무신들이 집권하던 시기였다. 국운이 풍전등화와 같던 당시를 살던 이규보가 고구려 신화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역경을 이겨내는 주몽의 모습을 통해 고려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