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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그날[90회]위기의 고구려, 그가 왕이 되었다

파라클레토스 2015. 12. 16. 11:34

위기의 고구려, 그가 왕이 되었다 - 광개토대왕

만주벌판 요동 쏭화강 시베리아
그리고 한강

광활한 영토를 거침없이 내달리며
대제국의 기틀을 세운 광개토대왕.

그런데,
광개토대왕 즉위 당시
고구려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위기의 고구려를
고구려답게 만든 정복군주.
그가 꿈꾸던 고구려는 어떤 모습일까?


■ 위기의 고구려, 새로운 왕을 맞이하다.

 


 
“가뭄에 백성들이 굶주려 서로 잡아먹을 지경이었다.”
삼국사기 中


391년, 고구려의 19대 왕 광개토대왕이 즉위한다. 하지만 당시 고구려는 큰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는데... 광개토대왕 즉위 50년 전, 북방의 강국 연나라가 침략해 고구려 백성 5만을 포로로 삼았던 것. 심지어 광개토대왕의 증조부, 미천왕의 시신을 도굴해 인질로 삼는 만행까지 저지른다. 뿐만 아니라 남쪽에서는 백제의 압박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백제와의 전투에서 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 고국원왕이 백제의 화살에 맞아 전사하는 등 고구려는 반 백년이 넘도록 수모를 겪는다. 계속되는 외적의 침략과 기근으로 살기 어려워진 백성들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는데..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고구려. 그 가운데 18세의 광개토대왕이 왕위에 오른다.

■ 오랜 숙적 백제, 마침내 무릎을 꿇다.


 



왕위에 오른 직후 광개토대왕은 4만의 군사를 이끌고 백제의 북쪽을 침공한다. 백제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할아버지 고국원왕의 원수를 갚기 위함이었다. 엄청난 기세의 고구려군은 순식간에 백제의 북쪽 10성을 빼앗고, 광개토대왕은 육지로는 기병을, 바다에선 수군을 지휘하며 양방향으로 맹공을 퍼붓는다. 군사요지 관미성 함락에 이어 수도 한성까지 포위한 고구려군. 마침내, 백제 아신왕은 항복을 선언한다. 한강을 두고 오랜 숙적관계였던 고구려와 백제. 광개토대왕이 수십 년간의 악연을 단 6년 만에 결판 지었던 것이다.  백제를 단숨에 굴복시킨 광개토대왕의 전술은 과연 무엇일까? <만물각>에서 광개토대왕의 전략과 전술을 살펴본다.

“백제왕은 광개토대왕이 용병에 능통하다는 말을 듣고 대항하기를 회피하였다.“
삼국사기 中


■ 고구려의 CEO, 광개토대왕.


 
 


재위 기간 22년 동안 왕성한 정복활동을 펼친 광개토대왕. 그는 잦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광개토대왕이 주목했던 땅, 거란의 시라무렌 강과 요하강의 동쪽, 요동! 단순한 영토 확보가 아닌 경제적 이득으로 이어진 정벌. 정복활동에 가려진 경영군주의 면모. 고구려의 CEO 광개토대왕에 대해 낱낱이 알아본다!

■ 광개토대왕이 꿈꾸던 세상 영락‘永樂’


  
 


광개토대왕 사후, 아들 장수왕은 위기의 고구려를 대제국으로 만든 광개토대왕을 기리는 능비를 세운다. 높이 약 6.39m, 너비 2m의 거대한 비에는 광개토대왕의 업적과 유언이 세 면에 걸쳐 기록되어 있다. 비석에 새겨진 광개토대왕의 이름,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 이것에 광개토대왕이 바랐던 새로운 고구려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데... 국가적 위기를 타파하고, 고구려다운 고구려를 재건해낸 왕 광개토대왕. 과연, 그가 꿈꿨던 고구려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