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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그날 58회 <광복 70년 신년기획 조선과 일본, 초량왜관에서 만나다>

파라클레토스 2015. 1. 30. 16:51
광복 70년 신년기획 조선과 일본, 초량왜관에서 만나다
 

“조선 인삼의 생뿌리를 공수하라!”
 
1721년, 일본 막부의 특명을 받은 비밀 조사단이
조선의 초량왜관에 도착한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서 일본인의 출입이 허락되었던
유일한 곳, 초량왜관.
 
과연 초량왜관은 어떤 곳이었을까?
우리가 몰랐던 왜관의 모든 것이 밝혀진다!
 
 
 
■ 왜관의 두 얼굴 - 교섭창구 혹은 일본의 첩보기관?
1678년, 일본과의 외교와 무역을 위해 새롭게 건설된 초량왜관. 임진왜란 이후 조선 정부는 일본인들이 머무는 공간을 왜관으로 제한해, 조선에 건너오는 일본인들을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은 역으로 왜관을 조선의 기밀 정보를 입수하는 첩보기관으로 이용한다. 조선의 주요 수출품인 인삼의 생뿌리는 물론, 조선의 민감한 정세를 기록한 기밀 서적들도 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유출된다. 10만 평(약 33만㎡) 부지에 상주 일본인이 5백 명에 달했던 초량왜관. 하나의 마을과 같은 거대한 규모의 왜관에서 정보 유출을 막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선 후기 약 2백 년간 조선과 일본 양국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던 초량왜관의 또 다른 얼굴을 파헤쳐본다.
 
 
 
■ 교류의 중심, 초량왜관에서 통하다
초량왜관에서는 매일같이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 무역시장이 열렸다. 양산, 접부채, 모기장, 일본도와 같은 일본 상품들은 고가의 사치품으로 조선인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말과 문화가 다른 두 민족이 한 공간에서 만난만큼, 문화 교류도 이어졌다. 당시 불교의 영향으로 네발짐승 고기를 기피했던 일본. 하지만 조선의 영향을 받은 초량왜관의 일본인들은 손님상에 고기를 올렸다. 일본 음식도 왜관을 통해 조선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왜관을 찾은 조선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음식은 바로 스기야키. 삼나무 상자에 도미와 전복, 각종 채소를 넣고 육수를 부어 끓이는 일본 전통요리다. 조선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스기야키는 과연 어떤 맛이었을까? 만물각에서 초량왜관의 별식, ‘스기야키’를 재현해 본다.
 
 
 
■ 조선과 일본, 초량왜관에서 맞부딪히다
조선과 일본, 양국의 다양한 상품이 오가던 초량왜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여인이다. 엄격한 성리학 국가였던 조선은 왜관에 여인이 출입하는 것을 철저하게 금했다. 하지만 1690년, 이명원이란 조선인이 자신의 처와 딸, 여동생을 남장시켜 초량왜관에 들여보낸 사건이 발각된다. 사건에 관계된 조선인들은 모두 극형을 받고, 그중 5명은 왜관 밖에서 효시된다. 하지만 이후에도 조선인 여인과 일본인 남성의 교간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결국 1711년, 조선과 일본은 교간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신묘약조를 맺는다. 금녀(禁女)의 공간, 왜관에서 벌어진 교간사건의 전말을 따라가 본다.

1872년, 일본은 군대를 보내 초량왜관을 무력으로 침탈한다. 그리고 4년 후, 조선 최초의 불평등조약인 강화도조약 체결 후 초량왜관은 2백 년 역사의 막을 내린다. 2015년 1월 3일 토요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임진왜란 이후 조 · 일 우호와 평화의 상징이었던 초량왜관을 통해 한?일 공존의 미래를 모색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