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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106회]신년기획 고대사 인물 열전 ‘선택’5부작 제2편 김헌창, 반란 혹은 혁명

파라클레토스 2016. 1. 8. 11:41

신년기획 고대사 인물 열전 ‘선택’5부작 제2편 김헌창, 반란 혹은 혁명

통일 이후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태평성대를 누리던 신라.

하지만 100여 년이 지난 822년,
무려 절반 가까운 세력이
신라에 반기를 든다.

반란의 주인공은 바로 김헌창!

 

그는 ‘장안’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신라 사회를 뿌리째 뒤흔든다.

 

신라판 금수저, 진골 귀족이었던
그는 대체 왜 이런 선택을 했나?


■ 김헌창의 아버지 김주원, 그가 강을 건넜더라면...

 

 

 

“822년 3월, 웅천주 도독 헌창이
아버지 주원이 왕이 되지 못함을 이유로 반란을 일으켜…”
- 삼국사기 中


 

785년, 당시 왕위 계승 서열 1위는 김헌창의 아버지 김주원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등이었던 김경신이 왕위에 오른다. 갑작스러운 큰 비로 김주원이 신라 왕실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폭우는 하늘의 뜻이라는 신라 귀족들의 의견에 왕좌를 빼앗긴 김주원. 그런데 삼국유사에는 김경신이 한 가지 꿈으로 인해 왕이 될 수 있었다고 하는데... 과연 왕위 계승을 둘러싼 진실은 무엇일까? 그로부터 37년 후. 순순히 왕의 자리를 내어준 아버지의 선택과는 달리, 반란을 일으킨 김헌창. 그는 정말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해 불만을 품었던 걸까?

 

■ 신라 우물 속에서 발견된 아이의 해골!

 

 

 

경주의 한 우물에서 어린 아이의 해골이 발견됐다. 분석 결과 아이는 약 9세기 신라의 국가 제사에 ‘인신공양’된 것으로 밝혀졌다. 고달픈 민생을 달래기 위해 어린 생명이 희생된 것이다. 신라 하대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백성들은 당나라로 구걸을 가고 자식을 팔아 생계를 유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귀족들의 탐욕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3천명의 노비를 부리기도 하며 호의호식했다. 게다가 김헌창이 난을 일으킨 시기 왕이었던 제41대 헌덕왕은 ‘신라판 수양대군’으로 자신의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인물. 정권이 바뀌며 좌천된 김헌창은 지방관을 두루 거치며 이렇듯 모순으로 가득한 신라의 현실을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 결국 그는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반란이란 선택을 내린다.

 

■ 김헌창의 마지막 선택, 자살

 

 

 

김헌창이 일으킨 난은 순식간에 절반 가까운 지방 세력의 지지를 받는다. 나라 이름을 장안(長安)이라 짓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며 신라를 전면 부정한 김헌창. 그러나 정부군의 일사불란한 진압과 밀고자로 인해 김헌창의 군대는 크게 패하고, 김헌창은 웅진성으로 가까스로 몸을 피한다. 이후 열흘간 계속된 정부군의 맹공격에 패배를 직감한 김헌창. 그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신라 사회를 뒤흔들었던 혁명의 불씨가 한 달 만에 허무하게 꺼져버린 것이다.

 

많은 세력의 호응을 얻었지만 백성들의 깊은 단결력을 끌어내는 데에는 실패한 김헌창의 난. 하지만 이 사건은 지방 호족을 깨우는 계기가 되며, 이후 후삼국 시대의 서막을 여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신라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김헌창의 불꽃같은 삶. 1월 10일 일요일 밤 10시 3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