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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103회]해신 장보고, 염장의 칼에 죽다

파라클레토스 2016. 1. 8. 11:36

해신 장보고, 염장의 칼에 죽다

846년 봄,
해상왕국을 이룩한
장보고가 살해당한다.

그를 죽인 건 신라 장수 염장.
신라 왕실의 청부 살인이었다.

동아시아 무역에
새로운 역사를 기록한 장보고.

그는 대체 왜
염장의 칼에 죽임 당했나?


 

■ 장보고, 신라 무역에 꽃을 피우다

 

 

 

828년, 장보고는 신라 흥덕왕을 찾아간다. 한반도 서남해안 일대를 기반으로 무역 사업을 실행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흥덕왕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당시 신라의 골칫거리였던 해적을 소탕하겠다는 것이다. 마침내 장보고는 신라 왕실의 허가를 받고 청해진을 설치한다. 1만 군사를 기반으로 해적을 격퇴하고, 청해진을 거점으로 활발한 무역 활동을 펼친 장보고. 당시 신라는 해외 사치품 금지령이 내려질 정도로 청해진을 통해 들어온 수입품이 유행하게 된다. 동아시아 해상 무역의 중심지가 된 청해진. 신라와 당(唐), 일본을 잇는 해상 네트워크가 탄생한다.


 

■ 신라 왕실의 정적(政敵), 김우징과 손을 잡다

 

 

 

837년, 신라의 아찬 김우징이 장보고를 찾아온다. 왕위쟁탈전에서 아버지를 잃고 위협을 느낀 그가 청해진으로 피신 온 것이다. 새로운 왕의 정적인 김우징을 돕는다는 건 신라 왕실을 적으로 돌릴 수도 있는 상황. 그럼에도 장보고는 그를 내치지 않고 받아들인다. 청해진에서 기회를 엿보던 김우징. 그는 왕권 도전을 꾀하며 장보고에게 병사 지원을 청한다. 장보고는 김우징을 도와 5천의 군사를 동원하고, 마침내 김우징은 신라 제45대 신무왕으로 즉위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고수익 투자를 단행한 장보고. 그는 신라 왕실의 측근으로 거듭나며 권력의 핵심부에 진입하게 된다.


 

■ 무너진 신분 상승의 꿈, 물거품이 된 해상왕국

 

 

 

839년, 왕위에 오른 신무왕은 장보고의 공을 높이 사고 예우를 갖춘다. 장보고를 감의군사로 봉하고 식읍 2천 호를 내린 신무왕. 이어 신무왕의 아들 문성왕도 장보고에게 진해장군이란 칭호를 내린다. 그러던 845년 봄. 문성왕이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려다 중앙 귀족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힌다. 섬사람(海島人)이라는 장보고의 태생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를 원망한 장보고는 청해진에 근거지를 두고 반란을 도모한다. 왕권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 장보고. 그는 결국 신라 왕실의 의뢰를 받은 염장의 칼에 죽임 당한다. 이후 청해진은 폐쇄되고, 그곳 주민들은 강제 이주된다. 장보고의 해상왕국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만 것이다.

 

동아시아 무역의 패권을 잡고, 신라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장보고. 하지만 그런 장보고도 신라의 폐쇄적이고 견고한 신분제의 벽은 뛰어넘을 수 없었다. 그의 죽음 이후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신라. 12월 20일 일요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이야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