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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104회]원효, 파계를 결심하다

파라클레토스 2016. 1. 8. 11:38

원효, 파계를 결심하다 

 7세기부터 지금까지 무려 1300년 동안
사랑받고 있는 승려, 원효

 

해골물 한 잔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는
온 국민이 다 알정도!

그러나
사실 원효는 해골물을 마시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원효대사의 충격적 진실들이 밝혀진다

 


■ 큰 깨달음을 준 해골물, 진실은?

 

 

 

 

 밤중에 달게 마신 물이 해골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진리는 오직 마음속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원효의 이야기. 하지만 고승 533명의 전기를 수록한 당나라 책 <송고승전>의 기록에는 해골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해골물은 원효의 깨달음과는 무관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원효’하면 해골물이 떠오르는 것일까? ‘그날’ 무덤에서 원효에게 벌어진 일을 그의 행적을 담은 7미터의 거대한 두루마리 그림과 함께 샅샅이 파헤쳐 본다.

 

■ 춤추고 노래하는 승려가 등장하다!

 

 

 

 

그의 발언은 미친 듯이 난폭하고 예의에 어긋났으며
행동은 상식의 선을 넘었다  - <송고승전> 中

 유학을 그만두고 신라로 돌아온 원효의 행적에서 믿을 수 없는 모습들이 포착된다. 조롱박을 들고 춤을 추며 저잣거리를 활보하는가 하면, 여염집에서 유숙을 하고 주막이나 기생집에까지 출입한다. 도저히 승려의 행동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원효대사의 파격적 행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중들에게는 일약 슈퍼스타로 떠오른다. 차별과 구별이 없는 ‘무애’사상을 대중들에게 전파하며, 삼국 간의 계속된 전쟁으로 피폐해진 7세기 신라 백성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된 것. 불교 이론가에서 실천가로의 변모! 과연, 원효를 변화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 승려원효, 김춘추의 딸 요석공주와 혼인하다?

 

 

 

 원효의 파계 행보에 정점을 찍는 사건이 발생한다. 원효가 요석공주와 결혼하여 ‘설총’을 낳은 것이다. 당시 신라 사회는 골품제라는 강력한 신분제가 존재했다. 6두품 출신의 승려 원효와 왕족 신분인 공주의 결혼은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삼국유사>에 의하면 왕이 먼저, 뛰어난 인재인 원효를 알아보고 직접 왕궁으로 들였다고 전한다. 심지어 최근에는 요석공주가 무열왕 김춘추의 딸이라는 학설이 제기되며 원효를 로열패밀리로 보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과연 원효의 결혼은 왕실의 계획이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결혼 속에 숨겨진 진실을 알아본다.

 

2015년을 마무리하는 지금, 우리는 왜 원효를 말하는가.
대중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서려했던 ‘원효’의 모습들이 2015년 12월 27일 밤 9시 40분. <역사저널 그날>에서 밝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