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역사♡TV

역사저널그날[102회]청년 장보고, 신라를 떠나다

파라클레토스 2015. 12. 16. 12:32

청년 장보고, 신라를 떠나다

신라 서남해안의 한 섬,
활을 잘 다뤄 ‘활보?궁복?궁파’로
불린 소년이 있었다.


10여 년 후,
청년 ‘활보’는 ‘장보고’라는 이름으로
당나라에 등장한다.

 

9세기
동북아시아 해상을 주름잡은
바다의 왕자 장보고.

 그가 신라를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 장보고의 탈脫 신라, 그 이유는?


 
 


9세기, 삼국 통일 후 전성기를 누리던 신라는 왕권이 약화되면서 내리막길을 걷는다. 진골귀족들의 왕위 쟁탈로 왕이 100여 년간 10명 넘게 바뀌는 혼란에 빠진 정국. 아래로는 관리들의 수탈과 계속되는 기근으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당나라로 구걸하러 가기까지 하는데…. 더불어 엄격한 신분제와 왕경인과 지방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백성들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든다. 그야말로 ‘헬(Hell)신라’였다. 그런데 이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청년 장보고가 당나라로 향한다. 그가 당나라로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

 

■ ‘슈퍼차이나’의 ‘슈퍼’ 용병 장보고. 

 

 


‘초나라의 인재를 진나라에서 채용한다‘ 외국인에게 관대한 초재진용 정책으로 당나라는 동북아 각국의 인재가 모여드는 인종의 용광로, ‘멜팅팟‘ 이었다. 기회의 땅 당으로 향한 장보고는 뛰어난 무예실력으로 ‘무령군’에 입대한다. 즉, 외국인 용병이 된 것이다. 815년, 장보고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반세기 동안 산둥반도를 장악한 10만 대군의 ‘평로치청’ 이사도가 일으킨 반란을 무령군 소속 장보고가 토멸한 것! 큰 공을 세운 장보고는 외국인 용병의 신분으로 무령군 소장직에 오른다. 도당 10년 만의 일이다. 그런데! 이 사건이, 훗날 펼쳐질 해상왕 장보고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다? 장보고의 인생을 바꾼 ‘이사도의 난’ 과연 그 배경은 무엇일까?

 

■ 장보고, ‘해상왕‘의 첫 발을 내딛다!

 

 

 

외국인 용병으로 신분의 한계를 이겨낸 장보고. 그런데, 824년 그는 돌연 무령군을 떠난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장보고가 무령군을 그만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당시 당나라는 지방세력 진압이후 쓸모없어진 외국인 용병 부대에 대한 재정 부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는데….
구조조정에 의한 비정규직 정리해고일까? 아니면 새로운 도약을 위한 장보고의 자진사퇴일까? 그 후 10년 간 기록조차 없이 의문에 휩싸인 장보고의 제대 이유! 그런데! 그의 행적 추측할 수 있는 두 가지 단서가 있다?! 중국과 일본의 기록에 나타난 장보고의 중국 순방과 일본 통역사 발탁 기록. 사라진 10년 간 사업을 구상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용맹한 장수’이자 ‘치밀한 사업가’였던 장보고, 훗날 동북아 해상을 뒤흔든 장보고의 사업 전략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