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17. 주일설교
행복을 찾아서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1~32)
할렐루야~ 저의 신앙고백을 한번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행복합니다. 기뻐요. 즐겁습니다. 평안합니다. 건강합니다. 만사형통합니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당신에게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인사해 주십시오.
<서론>
오늘은 “행복을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날 우울증이나 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저에게 편지를 내어서 기도해 달라는 사람 중에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혹은 조울증으로 가정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약물로도 일시적인 치료의 효과가 있으나 근본적인 대책이 없습니다.
한 심리학자가 행복과 건강에 대한 오랜 연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이 행복할 때 눈도 잘 보이고 입맛도 좋고 냄새도 잘 맡고 촉각과 판단력도 더 정확해진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 다른 연구는 행복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기억력이 크게 발달하고 마음에 평정을 갖게 되지만 행복하지 못하면 기억력도 희미해지고 마음에 불안하고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험과 연구는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 인생을 살고 건강하고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나는 성공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성공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환경적인 성공과 관계가 그렇게 밀접하지가 않습니다. 오늘날 우울증이나 조울증으로 병원을 찾거나 스스로 생명을 끝내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몸과 마음의 생활을 치료하는 위대한 약이 됩니다. 성경에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고 했습니다. 많은 오늘날 치료하지 못하는 병들이 마음에 고통으부터 다가오는 것입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있지 않습니까? 사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집에 들어오나 어디 가봐도 스트레스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마음에 억압을 당하고 그것이 육신의 병으로 드러나서 약을 먹고 수술을 해도 낫지 않는 병들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본론>
1. 인간은 행복하게 지음 받음
첫째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사람은 행복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보면 원래 지음을 받을 때 행복하기 위해서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불행하기 위해서 지음 받지 않았습니다. 나는 운명적으로 불행하구나. 팔자가 불행하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원래는 그렇게 지음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는 성경 말씀에 보니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첫째날 빛이 있으라 하고 빛이 있으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둘째날에 궁창이 생겨나라 하시고 궁창이 생겨났는데 좋다고 말씀 안했습니다. 왜 그랬는가요? 장차 마귀가 타락해서 궁창에 공중에 권세 잡은 자가 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공중에 마귀가 진을 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공중 즉, 궁창을 지어 놓으시고 난 다음에는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셋째 날에는 바다와 땅과 식물을 지으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으며 넷째날에는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째날에 새와 물고기를 지으시고 좋았다고 하시고 여섯째 날에 동물을 지으시고 사람을 만드시고 난 다음에 보시기 좋았다고 말씀하시고 나중에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니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좋으면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 좋으면 어떻게 해요? 웃지요. 하하하하... 좋으면 웃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웃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여러분이 지음 받았기 때문에 모든 살아있는 것들 중에 여러분만이 웃을 수 있습니다. 소가 웃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웃는 것이 아니에요. 생리 반응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지. 실제로 웃는 분은 하나님이 웃으시고 여러분이 웃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연만물을 지었어도 보기에 좋았는데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여러분을 짓고 난 다음 얼마나 좋았던지 하나님은 여러분을 두시고 크게 너털웃음을 웃으셨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고 난 다음 자녀를 보고 웃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많이 웃으셨습니다.
창세기 1장 31절에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면 좋은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그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좋은 일을 이루시고 그러므로 하나님과 같이 계시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좋은 세상을 사람에게 주시고 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주권을 대리행사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 행복을 잃어버렸습니까? 오늘날 사람들이 잘 웃지 않습니다. 얼굴을 찌푸리고 근심걱정을 하고 화를 내지 많이 웃지 않습니다. 요사이 웃음치료사들이 생겨서 하는 말 들으면 병도 많이 웃으면 엔돌핀이 많이 나와서 병이 낫는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많이 안웃고 불행한 이유가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뱀의 꾐에 빠져서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아서 불행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절대 주권자는 하나님 밖에 안계십니다. 하나님이 절대 주권자인 것입니다. 가정에도 주권자가 둘이 생기면 문제가 있지요. 요사이 남편이나 아내가 서로 주권 다툼을 해서 가정이 복잡한 가정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말하기를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그래야 가정이 평안하니까. 아내여 너도 남편과 똑같이 주권행사를 하라. 그러면 권력 싸움으로써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라에도 대통령이 한분 있어야지 두 대통령이 생기면 주권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선악과란 무엇이냐. 선악과라는 것은 좋다 나쁘다를 결정하는 과실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좋다 나쁘다를 스스로 결정하게 되면은 주권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다 하는데 아담은 안좋다 그렇게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이 안좋다고 하는 것을 아담은 좋다고 말할 수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똑같이 동등하게 선악을 판단하면 하나님과 주권다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에 두 주인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생명과를 따먹었다면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복해서 생명을 넘치게 얻고 행복했을 것인데 선악과를 따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처럼 똑같은 주권자가 되겠다고 하므로 하나님과 경쟁하고 다투고 싸울 수밖에 없게 되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아담과 하와를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마귀의 꾐에 빠져 하나님과 지위가 동등하고 주권 행사를 하나님처럼 하겠다는 교만과 탐욕 때문에 행복을 잃고 발가벗게 되고 수치와 고난을 가리려고 무화과 나무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인간적인 노력이 시작된 것입니다. 벌거벗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경쟁하려고 선악과를 따먹고 주권행사를 하자 인간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실패해서 벌거벗게 되었다는 말을 듣잖아요. 다 잃어버렸다. 인간은 스스로가 주권행사를 할 때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부인이 주권행사를 하지 말고 남편에게 주권행사를 하도록 맡기고 나는 몰라요. 살든지 죽든지 이끌어 주십시오 하면 남편이 책임을 지는데 부인이 당신이나 나나 이콜이다. 그러므로 나도 당신과 똑같이 주권행사를 하겠다면 남편이 내가 책임질 필요가 어디 있느냐. 너 필요한 돈은 네가 벌어서 써라. 나는 내가 벌어서 쓰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여자는 받아서 살게 돼있어요. 여자가 받아서 살지 않고 남편에게 일해서 주기 시작하면 가정이 콩가루 집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자식이 어릴 때는 주권행사를 안합니다. 부모가 공부하라면 하고 몇시에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면 가고 손씻으라면 씻고 잠옷입고 자라고 하면 자는데 애가 점점 자라서 머리가 커지면 이제는 스스로 주권행사를 합니다. 자라 하면은 나 안잘래요. 공부하라고 하면 나 게임 좀 더 하구요. 잠옷 바꿔 입고 자라고 하면 아이구 귀찮은데 입은 데로 자겠어요. 사사건건이 부모의 주권에 대해서 저항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 대해서 책임을 점점 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스스로 주권행사를 하자 하나님은 저주했습니다. 땅은 저주로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인간은 수고와 고생과 땀을 흘려야 먹고 살고 그 다음에는 죽어야 되는 비극이 있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로 19절에“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얼마나 비극적인 선언인 것입니까?
후지이 가오루가 쓴「엔딩, 나의 인생에 후회가 있다」라는 책은 인생에서 누구보다 일찍 성공했지만 스스로 몰락해간 사람들 26명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 몇 사람을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현대적인 클래식으로 아메리카 음악을 만들어낸 조지 거쉰은 천재적인 음악가였습니다. 새로운 음악을 창조한 작곡가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사람이 거만하고 오만하며 욕심과 탐심에 잡히면 버림받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고 욕심과 탐심은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습니다. 그래서 그는 참으로 희망있는 사람이었는데 교만하고 오만하고 욕심과 탐심으로 꽉 차자 친구들이 모두 떠나가고, 말년에 고독하게 홀로 있다가 뇌종양으로 비참하게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인기 작가가 되었지만 젊은 나이에 동성애에 빠졌고, 술과 쾌락으로 시간을 허비하며 결국 성병과 종양으로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 배우가 역시 교만과 오만, 탐욕과 욕심으로 인생이 파멸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20세기의 대 문호인 헤밍웨이도 말년에는 신앙을 버리고 우울증으로 시달리다가 권총으로 자살했습니다. 여러분 인간이 행복을 잃어버린 이유는 마음에 교만과 탐욕이 가득 찼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자기를 점검해야 될 것은 교만과 오만, 욕심과 탐심이 들어오냐 안오느냐 이것을 점검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언으로 주신 말씀이 너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고 그 다음 뱀을 집으라고 했습니다. 에덴 동산에 뱀이 들어와서 아담과 하와를 물어버렸지 않습니까? 물리지 말고 뱀을 집으라고 한 것입니다. 그 뱀이 뭐냐. 교만과 오만을 집어 내라. 욕심과 탐심을 집어내라. 항상 우리는 그 점을 기억하고 살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매일같이 한번 이상은 귀신을 쫓아내고 그 다음 방언을 하고 그 다음 주님 앞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교만과 오만이 있는지 욕심과 탐심이 있는지 이것을 통회하고 자복해야 되는 것입니다. 욕심과 탐심이 우리를 망칩니다. 자기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분수를 따라 살면은 하나님이 필요하면 더 주실 것인데 교만과 오만에 보태어서 욕심과 탐심이 있어 무엇이든지 움켜쥐고 내가 소유하려고 억지를 부리면 그것이 큰 불행의 원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아담의 불행
둘째로, 아담의 가정적인 불행이 바로 그로 말미암아 온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담은 하와를 원망하고 하와는 마귀를 탓하고 가정불화가 생겼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아담과 하와가 정이 깊었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담이 너 죽으면 나도 같이 죽자. 그리고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받아 먹었습니다. 그와 같이 아주 아담은 하와를 깊이 사랑하고 운명공동체로 느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고 난 다음 죄가 들어오고 하나님이 떠나시자 그들에게는 미움이 들어온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를 탓하고 하와는 환경을 탓하고 그래서 가정이 불평과 원망으로 꽉 들어찬 것입니다. 감사와 사랑이 있어야 되겠는데 원망과 탄식으로 꽉 들어찬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미움과 원망이 꽉 들어차서 모든 것을 미움과 원한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보면 절대로 평안이 없습니다. 마음에 미움과 원한이 치료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예수님의 은총으로 내 마음에 있는 미움과 원한이 치료받고 용서와 사랑으로 모든 것을 보아야 긍정적으로 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미움과 원한을 가지고 남편을 바라보면 남편이 사사건건이 밉게만 보이는 것입니다. 남편이 또 아내를 미움과 원한으로 보면은 사사건건이 아내가 미워보입니다. 그러면 가정이 불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제가 편지를 받는데 가만히 보면은 굉장히 원한과 미움이 어려운 문제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 불행, 사회의 불안이 미움과 원한으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미움과 원한이라도 여러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살피고 미움과 원한이 있으면 곧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하고 씻어 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3장 12절로 13절에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야훼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기에 이제는 감사와 찬양은 없고 원망만 꽉 들어찼습니다. 서로 원망하고 환경을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가정에 살인이라는 비극이 다가왔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자식을 낳았는데 맏아들이 가인이고 둘째 아들이 아벨이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을 예배드리는 신앙문제로 서로 다퉈서 결국에는 가인이 아벨을 쳐죽였습니다. 첫 가정에 살인이 왔습니다. 그러니 죄가 얼마나 무섭습니까?
창세기 4장 8절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왜 가인이 아벨을 쳐죽였습니까? 여기에 다시 말하면 둘이가 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가인은 선악과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을 잡아서 재물로 드려라. 그렇게 명령을 했는데 가인은 나는 곡식을 거두어서 이 곡식의 열매로 제사드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나는 양을 잡아서 재물로 드려라. 가인은 나는 안그럴렵니다. 나는 곡식으로써 재물 드리겠습니다. 자기 주권행사를 하니까 하나님은 가인을 멀리했습니다. 아벨은 자기가 기른 짐승 중에 좋은 새끼를 잡아서 피를 흘리고 그를 태워서 하나님께 재물로 드리니까 하나님이 기쁘게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아벨은 사랑을 받고 가인은 사랑을 못받으니까 그 동생이 미워서 시기하다가 쳐죽인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에 부부 간에 서로 불화하고 원망하고 탄식하는 중에 자식들이 또 서로 싸워서 죽이고 고통을 가져오니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 얼마나 비극인 것입니까? 아담의 불행은 하나님의 사랑을 잃으므로 출발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을 때는 행복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잃자 모든 불행이 시작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가족 간의 사랑과 화목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삶이 너무 고달팠습니다.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고 가시와 엉겅퀴가 나고 그 다음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의 슬픔이 다가와서 그의 삶이 어두웠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이혼율도 세계 1위고 자살률도 세계 1위입니다. 운동도 세계에서 1등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혼도 1등을 하고 자살도 1등을 하니 별로 명예롭지 못합니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2009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이혼 건수는 12만 4천 건이고, 남자는 40대 초반, 여자는 30대 후반에서 이혼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혼을 하는 이유로 성격차이가 46.6%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경제문제, 가족 간 불화, 자기중심적 삶의 지향 등의 순서로 나타난 것입니다. 성격차이가 제일 이혼하는 주 원인이 되었는데 좀 깊이 사귀어 보고서 성격이 맞냐 안맞냐 조사를 해보지 왜 한눈에 반해서 결혼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니 나중에 성격이 드러나니까 견디지 못하지 않습니까? 흑인 해방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님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두움은 어두움을 쫓아낼 수 없고 빛이 있어야만 사라집니다. 이와 같이 미움은 미움을 쫓아낼 수 없습니다. 사랑만이 미움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참 좋은 말이지요. 어두운 것을 없애기 위해서 어둠을 가져오면 더 어두워지지요. 어둠에는 빛이 있어야 되고 미움을 같이 미움으로 대항하면 더 미움만 자라고 해소되지 않는데 미움은 사랑으로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기 아멘하기는 힘드니까 아멘 안하지요? 한번 아멘 해보십시오. 미움을 사랑으로 끌어 안는다. 그것은 자기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각오를 하지 않고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그 길이 최선의 길인 것입니다. 최초의 가정불화는 하나님 앞에서 아담이 하와를 원망하고 하와는 마귀를 탓하면서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은혜와 사랑으로 마귀를 멸하시고 우리 죄를 사하셨듯이, 우리도 사랑으로 미움과 원망을 쫓아내고 행복을 추구해야만 할 것입니다.
2005년 한국 가정법률 상담소에서는 이혼 상담을 하는 이유에 폭력으로 인한 것이 전체의 삼분의 일을 넘는다고 발표했습니다. 2006년, 한국 여성 상담 센터가 서울시내 기혼남녀 818명을 대상으로 가정폭력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는데 그 결과 남성 세 명중에 한 명은 부부갈등이 생기면 부인에게 손찌검을 한다는 것입니다. 참 요사이 마누라에게 손찌검하고 살아남는 사람 보면 보통이 아니에요. 옛날에는 그런 일이 종종 있었어요. 나는 옛날에 우리 아버님께서 어머니 뺨 때리는 것을 보았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그때 울기만 하시고 손을 들어 그 손목도 잡지 않으셨는데 요사이 그런 시대는 없는데 용감하게 부인을 때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폭력이 일어나면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주먹질 한다니까 그래가지고서는 절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주먹은 주먹을 부르고 욕은 욕을 부릅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써 망합니다. 사람들은 쉽게 목을 자르라고 하는데 남의 목을 자르면 자기 목도 잘라지는 것입니다. 칼을 쓰지 말아야 돼요. 꼭 손에 든 칼만 칼이 아닙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도 칼이 되는 것입니다. 칼날 같이 사나운 말을 해서 이웃의 가슴을 찌릅니다. 그러면 그 칼이 돌아와서 자기를 찌르게 되는 것입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써 망하기 때문에 사랑으로써 감싸주는 것이 제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폭력을 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H. A. 텐은 부부관계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결혼 후 첫 1주일 동안은 서로 관찰하고, 어떠한 사람인가 살펴보고... 그 다음 3개월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3년은 서로 싸우다가 볼일 다보고, 그 뒤 30년은 용서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꽤 맞은 소리 같아요. 결혼을 유지하는 것은 여섯 가지인데 그 중 한 가지는 사랑이고, 나머지 다섯은 신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행복하도록 지으시고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주셔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사랑을 잃고 서로를 원망하며 가족 간의 사랑과 화목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가정에 평화를 깨뜨리는 중대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간한 일이 있어도 집에 들어와서 밥상 앞에 서로 얼굴을 대하고 앉아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는 부정적인 대화를 안해야 되는 것입니다. 즐거운 이야기만 하고 공격적인 이야기, 부정적인 이야기는 안해야 밥도 잘먹고 소화도 잘되고 가정도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가정에 와서 세상 이야기를 하고 불행을 가져와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프랑소와즈 사강은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대학 재학 중이던 18세에「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소설을 발표하고 20세기 최고의 여류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인생을 항상 부정적으로 생각하여 낙심하고 탄식했습니다. 그렇게 유명한 문학도가 되었으면서도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탄식을 하기 때문에 두 번 결혼해서 두 번 다 남편이 보따리 싸서 도망쳤습니다. 왜냐하면 부정과 불평을 말하는 아내를 데리고 살 수가 없습니다. 항상 웃고 긍정적인 말을 하는 아내가 좋습니다. 인물 좋은 것은 석달이면 충분합니다. 석달이 지나고 난 다음에 나머지 인생은 마음이 좋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상냥하고 이해하고 동정하고 사랑하고 잘 웃는 그런 아내가 있으면 남편은 참 행복한 남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강은 두 번이나 이혼을 거치면서 알콜중독으로 도박에 빠지고 결국 약물 남용으로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고 만것입니다. 인생이 아무리 천재적이라고 인정받는 재능을 갖고 화려한 삶을 살지라도,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사랑을 놓쳐 버리면 돈도 명예도 지위도 권세도 행복을 갖다 주지 못합니다. 물질이나 미모는 허망하고 불만족하고 불행하기 짝이 없는 실상인 것입니다.
3. 행복을 위하여
그러므로 셋째로 우리가 행복을 찾기 위하여 어떻게 할까요?
예수님은 둘째 아담으로서 인간의 총체적인 절망을 대속하고 새로운 삶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모든 부정적인 것 죄, 더러움, 질병, 저주, 절망, 탄식, 죽음, 고통 총체적인 모든 불행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걸머지고 몸 찢고 피 흘려서 고통당하시고 난 다음 내가 다 이루었다 했습니다. 내가 10%만 이루었다. 내가 삼분의 일만 이루었다고 말 안했습니다. 다 이루었습니다. 여러분 이 땅에 살면서 당하면 모든 저주의 고통은 예수님이 모두 다 청산한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올바르게 알면 우리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주님께 구하고 의지하면 주님께서 능력으로 여러분을 건져서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찢어 재물로 여러분에게 주실 뿐 아니라 여러분 섬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여러분과 같이 계셔서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여 다 내게로 오라고 했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여 네가 책임져라. 그렇게 말 안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 짐을 맡아서 그 짐을 짊어지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는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짐이 무엇이든지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맡기십시오. 눈에 안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없지만 여러분이 믿음으로 주님께 맡기면 주님이 여러분의 짐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불행한 모든 짐을 주님께 오늘 내어 맡기면 주님이 여러분에게 행복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여러분 주님께 돌아오면 새 삶을 주시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전 것은 청산되고 새로운 삶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로 24절에“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은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으라. 이제 겨울옷은 더워지면 벗어버리고 봄과 여름의 옷으로 바꿔 입듯이 예수님 십자가를 바라보면 성령이 오셔서 옛사람을 벗겨주고 예수님 안에서 새사람으로 바꿔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힘과 능으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오직 마음에 소원을 하고 기도하고 간구하고 믿으면 성령이 그렇게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요 축복인 것인데 우리 힘과 능으로는 안되고 성령께서 그렇게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반드시 우리를 붙들어 준다는 것을 우리가 마음에 믿어야 돼요. 율법행위로 하는 것 같으면 믿을 수가 없어요. 내가 사랑을 받을 만한 좋은 행동을 해야 주님께서 도와준다고 믿으면 자신이 없지요.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의 행동으로 주님 앞에 자신있게 설 사람 누가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은혜로 도와 주신다. 은혜란 것은 공짜로 값없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은 우리가 죄인인줄 알고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버림받을 인생인 것을 알면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불의하고 추악한 것을 알면서도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 앞에 감출 것 없어요.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한 내 자신, 빈손 든 그대로 못난 그대로 주님 앞에 나와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나오면 주님의 은혜를 의지하면 은혜로써 여러분을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자격 없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의 행위 앞에서는 여러분 자격이 없지만 주님 은혜 앞에서는 자격 있습니다. 주님이 피를 흘려서 여러분에게 자격을 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께서 주님 앞에 나올 때 마귀가 와서 너는 자격이 없다. 너는 할 수 없다. 그 말을 하는데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자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나온 자격이 아닌 것입니다. 선물로 하나님이 주신 자격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당히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면 오늘 하나님이 귀를 기울여 여러분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와 같이 자격을 주시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식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을 사랑해 주는 자식을 부모가 더 사랑하지요? 사랑이 냉정하게 대하면 사랑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 29절로 30절에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사랑을 하면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확인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굉장히 강조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8장 31절로 32절 우리 다 같이 읽어 보십시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말로 다할 수 없는 확실한 은혜가 아닙니까? 그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을 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너무 우리 환경에 부정적인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못하고 않되고 죽는 것 절망인 것 낭패하고 실망한 것 벌거벗은 자기의 환경을 바라보고 원망, 불평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환경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계신 것을 잊지 마십시오.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태산보다 크신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 앞에 여러분과 나를 이끌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있으므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맡기십시오. 마음도 몸도 생활도 맡기고 의지하고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성하든지 망하든지 패하든지 주여 주님을 따라갑니다. 맡기면 주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주님은 여러분을 멀리하지를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참으로 행복하게 살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랑하고 사랑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할 자도 없고 사랑받을 자도 없으면 절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는 뭐 세상에 살면서 사랑할 사람도 없고 사랑 받을 사람도 없으니까 행복 안하겠네요?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다 날 버리고 가더라도 나는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행복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받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행복한 거예요. 세상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세상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불행합니다. 의식주 문제는 행복의 협조가 되지만 의식주가 좋다고 해서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진짜 행복은 사랑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행복하지 사랑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아요. 돈이나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부귀나 영화가 사랑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행복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매일같이 하나님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입으로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십자가가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여러분 마음 속에 행복을 넘치게 갖다주는 것입니다.
잠언 15장 16절로 17절에 “가산이 적어도 야훼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보십시오. 채소를 먹고도 사랑하고 사랑 받으면 살진 황소를 황소보다 암소가 낫지요. 살진 부드러운 소고기를 먹으면서 미워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사람이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며 노력해야 될 것은 내가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는 것을 노력해야 되고 사랑하지 못할지라도 사랑하려고 애를 많이 써야 되고 사랑받으면 그로써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참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깊이 생각하고 감사하십시오. 사랑을 받고 있으면 음미하고 감사하십시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모두 다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있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거기에 더 플러스 알파해서 세상에 살면서 친구라도 내가 정말 사랑하고 사랑받는 친구가 있으면 굉장히 삶이 행복해요. 하물며 부부간에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그야 뭐 왕 오케이지. 그런데 그렇게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울증이나 조울증은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라집니다. 또 이웃을 사랑하고 사랑받으면 크게 행복해지고 우울증과 조울증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아무리 받아도 우울증과 조울증이 사라지지 않아요. 그런 사람은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있으면 나아요.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가서 예배도 봐주고 사랑해주고 고맙게 여기면 우울증과 조울증이 낫고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우울증과 조울증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에“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주고 은혜를 나누어 주면 그 사랑과 은혜가 내게로 다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부부와 부모자식 간의 사랑은 가정에서 행복의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신앙이 가정적인 사랑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것은 여러분 그냥 내버려 놓는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가 자신을 노력하고 환경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제인 애덤스는 상원의원이던 부친의 슬하에서 유복한 생활을 했습니다만 어느 날 소아마비로 장애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돈도 많고 교육도 잘받고 부모도 좋고 그런데 장애인이 되고 난 다음 위로차 유럽에 여행을 갔습니다. 아주 불행했습니다. 공부도 많이 했고 좋은 부모를 모시고 환경이 좋아도 장애인이 되니 불행하고 슬펐습니다. 그런데 유럽에 가서 놀랜 것은 부유하게 자란 그에게 빈민촌이 있다는 것을 몰랐는데 유럽에 아주 가난한 빈민들이 모여 사는 판자촌 같은 곳을 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을 보니 얼굴에 그렇게 빛이 나거든요. 저 사람들은 나처럼 공부도 못하고 나처럼 행복한 가정도 없고 돈도 없는데 왜 저렇게 얼굴에 빛이 나나? 가만히 보니까 사랑을 하니.. 빈민가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그 빈민들에게 사랑을 받으니 이 세상에 무엇과 바꿀 수 없는 행복을 가지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이 자매님은 미국으로 부랴부랴 돌아와서 자기 재산을 정리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로 했습니다. 1889년 시카고에 빈민 복지 기관인 헐 하우스(Hull House)를 세웠습니다. 미국 내에 200만 명에 달하는 아동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백악관 아동회의를 창설했습니다. 그 결과 1931년, 제인 애덤스는 안짱다리에 곱사등이면서 미국 여성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극히 그는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은 사랑하고 사랑 받아야 행복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나누고 도울 때 우리는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스위스의 철학자인 힐티는 인간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인간적인 방법과 논리, 그리고 지식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 했지만 추상적인 것 뿐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성경을 읽고 말씀 안에서 참다운 행복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힐티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행복론자”가 되어 77세로 삶을 마칠 때까지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감사와 찬송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행복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안에 있는 시간이 행복한 시간이며, 찬송하는 시간이 평화로운 시간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 발견된 논문에는“진정한 행복은 그리스도에게 있으니 파랑새를 잡으려고 하는 허황된 행복론자들이여 속히 주님 품으로 돌아오라”고 논문에 쓰여 있었습니다. 맞아요. 진정한 행복은 예수님 떠나서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그 큰 사랑에 의해서 행복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 사랑을 기초로 행복을 우리는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시간 여러분, 여러분은 행복하기 위해서 지음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이 모든 불행은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오만과 교만, 욕심과 탐심이 우리 생애를 망쳐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퍼부어 주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퍼부어 주었습니다. 주의 사랑을 우리가 받으면 우리 마음 속에 행복이 솟아오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우리가 실천할 때 우리에게 행복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우리 찬송가 293장 다 같이 한번 부르십시다.
♬ 주의 사랑 비칠 때에 기쁨 오네 근심 걱정 물러가고 기쁨 오네 기도하게 하시며 희미한 것 물리쳐 주의 사랑 비칠 때 기쁨 오네 그 큰 사랑 내 맘 속에 충만하게 비칠 때에 찬송하네 그 큰 사랑 내 맘 속에 화평함과 기쁨 주네 그 큰 사랑 주의 사랑 비칠 때에 이 세상은 아름답고 활기차게 다 변하네 화평 중에 내 영혼 영광스런 새 생명 다시 찾게 되었네 그 큰 사랑 그 큰 사랑 내 맘 속에 충만하게 비칠 때에 찬송하네 그 큰 사랑 내 맘 속에 화평함과 기쁨 주네 그 큰 사랑 주의 사랑 비칠 때에 이 세상은 어둠 슬픔 중한 짐이 다 사라져 우리들의 가는 길 밝히 비춰 주시며 복을 받게 하시네 그 큰 사랑 그 큰 사랑 내 맘 속에 충만하게 비칠 때에 찬송하네 그 큰 사랑 내 맘 속에 화평함과 기쁨 주네 그 큰 사랑 주의 사랑 비칠 때에 그 광채가 찬란하게 우리 둘러 비치겠네 세상 모두 이기고 천국생활 할 때도 주의 사랑 비치네 그 큰 사랑 그 큰 사랑 내 맘 속에 충만하게 비칠 때에 찬송하네 그 큰 사랑 내 맘 속에 화평함과 기쁨 주네 그 큰 사랑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이웃을 사랑합니다. 용서합니다. 사랑합니다. 밉고 원한에 찬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통성으로 기도할 때 여러분 미운 사람들을 다 용서하고 사랑한다고 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무리 돈벌이를 잘해도 사랑 없으면 그 돈 아무 효과 없습니다. 지위나 명예나 권세가 아무리 있다 하더라도 불행하면 그것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자살하고 싶지. 오늘날 이 세상에 가장 삶의 행복은 사랑 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아야 행복하지 그것 없으면 이 세상 아무것도 소용이 없어요.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며 또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전도자가 탄식한 것처럼 아무 것도 가치있는 것이 없어요. 우리 주여 세 번 부르고 통성할 때 용서와 사랑으로 넘치는 우리가 되도록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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