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산
미륵사지(彌勒寺地) --사적 제 150호
백제(BC18~AD660년)에서 가장 큰 가람이었던 미륵사의 창건은<삼국유사>에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백제 30대 무왕(AD600~641년)이 왕비와 함께 용화산에 있는 사자사로
지명법사를 찾아가던중 못(池)에서 미륵삼존이 출연하여 미륵사를 창건하였다.
또 지명법사의 도움으로 산을 허물어 못을 메우고 전(금당).탑. 낭무(회랑)를
세곳에 마련한 가람으 조영하였느데 신라 진평왕이 백공(百工)을 보내어 도와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발굴조사에 의해서 미륵사가 3원 1가람이며
산 흙으로 메운 못에 자리하고 있는 점 등이 밝혀져 삼국유사의 기록이 실증적임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믿는다면 미륵사에는 창건 당시 건축.공예 등 백제의 문화역량이 최대한 발휘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라 등 삼국의 기술이 결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미륵사 창건은 이곳 금마에 가람을 조영하여 마한세력을 아우르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을 것이나
황룡사로 대표되는 신라 화엄신앙에 대비되는 백제 미륵신앙에 바탕한 것이다.
미륵사는 조선시대 AD 1600년을 전후한 때에 폐사되었다.
미륵사지 당간 지주-보물 제 236호
소재지-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이 당간지주는 동.서로 2기가 90여M 거리를 두고 세워져 있다.
기단의 각면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으며, 지주의 양쪽 바깥면에는 둘레를 다라 외연선(外延線)을 돌리고,
중앙에도 한줄의 선을 깎아서 표현하였다.
양식수법에 의하여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주의 높이는 4M이다.
당간지주란 절에서 불문(佛門)을 나타내는 문표,
그리고 종풍을 드러내는 종파의 기(旗)인 당(幢?)을 달았던 깃대를 지탱해주는 버팀기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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