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를 향해 달리다 우뚝 멈춰선 변산
굽이 굽이 숨겨놓은 숲길마다
오랜 시간의 기억이 흐르고
그 산아래 바다에선
오늘도 어부가 세월을 낚고 있습니다
갯내음처럼 진한 향기를 품은 고장 부안입니다
산과 바다, 오랜 이야기를 품다 전북 부안
닭이봉을 딛고 서서 바라보는 바다엔 초여름의 물빛이 어려있습니다
부안을 향해 달려온 발길이 가장 먼저 멈춘 곳은 바로 이곳 채석강입니다
부안하면 변산, 변산하면 채석강이 떠오를 정도로
채석강은 부안의 대표적인 명소인데요
강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사실 채석강은 강이 아니라 절벽입니다
마치 수 만 권의 책을 쌓아 올린 듯 켜켜이 쌓인 층층의 단애가 이땅에 흐른 오랜 시간을 말해주고 있는데요
무려 1억 년의 풍상을 견디는 동안 바위는 나무처럼 제 몸에 나이테를 새겼습니다
대자연의 신묘한 힘에 절로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그런데 이 바닷가 절벽은 왜 채석강이란 이름을 갖게된 걸까요?
이곳 채석강은 중국의 시성인 이태백이
강물에 비친 달이 너무 아름다워서 잡으려다가
빠져 죽었다는 곳과 흡사하여
채석강이라고 지명을 지었습니다
-최기철/부안군 문화관광해설사
1.5km 쯤 이어지는 채석강 절벽 아래로는
오랜 바닷물의 침식이 만든 각양각색의 해식동굴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해식동굴들은 그 입구의 모양새가 저마다 다른 형상을 하고 있는데요
여러분들은 이곳이 무엇처럼 보이십니까?
앞발을 들고 선 유니콘처럼 보이시나요?
그러고보니 머리 위에 솟은 뿔까지 영락없습니다
"자연의 위대한 아름다움 옆에 서니까
인간이 정말 너무 보잘 것 없게 느껴지네요
한갖 미물 같은 인간이 너무 잘난척 하고 산 것 같아서
아주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김도향 /가수
자연의 경이로움을 한 몸에 받아 위용을 보여주고 있는 채석강엔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채석강에서 보이는 맞은 편에는
또 다른 절경을 자랑하는 적벽강이 있습니다
적벽강
적벽강 역시도 중국의 적벽강 풍경과 흡사해서 얻게된 이름입니다
중국의 문장가 소동파는
적벽강에서 술과 달을 벗하며 시를 지었다 하지요
채석강과는 달리 암벽이 붉은색을 띠는 것이 특징인데요
특히 이곳은 후추가루를 뿌려 놓은 것 같아
'페이퍼 라이트'라고 불리웁니다
마그마가 덮치면서 녹아내린 유문암과
터진 유암이 섞여서 만들어진 것으로
세계적으로도 드문 현상이라고 합니다
시간은 그리고 자연은 어쩜 이리도 기막힌 솜씨를 가지고 있을까요?
중국의 채석강과 적벽강을 비록 가보지는 못했지만
변산의 황홀경은 그에 견주어도 분명 빠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격포일대의 풍경은 더 멋스럽다고 해서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먼저 당당한 채석강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바다에서 본 적벽강 일대는
웅크리고 앉은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적벽강 뒷편으로는 원형으로 깊숙히 파여있는 바위굴 '여울굴'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주민들에게 당굴이라 불리던 곳이죠
그 여울굴 절벽 위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작은 당집 하나가 자리잡고 있는데요
칠산바다를 지켜주는 수호신 개양할미를 모신 수성당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개양할미는 풍랑이 거세 사고가 날 것 같으면
전날 밤 어부들의 꿈에 나타나 미리 알렸고
계양할미 꿈을 꾼 어부들은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수성당은 개양할미를 모시는 당집입니다
개양할미에게는 여덟 명의 딸이 있었는데
이 중 일곱은 각 도에 시집을 보내고
막내 딸만 데리고 이곳에서 살고 계시는데
개양할미는 칠산 앞바다를 관장하시는
바다의 해신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풍랑이 아주 거칠게 칠 때는 바닷물을 잠재우고
수심이 아주 깊은 곳은 치마에 돌을 길어다
수심을 메꿔주시고
그래서 어부들이 안전하게 고기잡이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그런 분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김윤정/부안군 문화관광해설사
수성당은 부안의 해안마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마을 공동 당집으로
지금도 매년 정월이면 마을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해신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이곳에 당집이 있어 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발굴된 유물로 보아 백제시대에도 바다를 지나는 어부들이 제를 지내고
안전한 항해를 기원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매년 이 할머니한테 기도하면서
무사히 고기 많이 잡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그런게 우리 서민의 마음이겠지요
-김도향/가수
저 바다에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이 담겼을까요?
고사포
삼면이 바다에 둘러쌓여 있는 변산
천지가 바다니 그에 기대어 살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모래밭에 물이 반쯤 들어찬 오후
고사포 바닷가에선 마을 주민들의 고기잡이 준비가 한창입니다
수 십 미터에 달하는 그물을 여러 사람일 일사불란하게 펼치는 모습이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닙니다
이름이 뭐죠?
이게 후릿그물이라고 하는데 일종의 몰잇그물이죠
후릿그물은 길이 수 십 미터 그물을 활처럼 펴서 양쪽에서 잡고
얕은 물가를 훓어 나오며 고기를 잡는 전통 어업 방식입니다
독살이 썰물때 물고기를 걷어 올린다면
후릿그물은 밀물때 고기를 잡는데요
물고기들이 밀물을 따라 들어 왔을때 그물을 펼쳐
육지로 끌고 들어오는 거죠
후릿그물은 그 원리가 간단해서 원시시대부터 사용됐다 하는데요
이곳 고사포 주변엔 특히 몫이 좋아서
옛날엔 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생업으로 후릿그물을 쳤습니다
후릿그물 안에는 밀물을 따라 펄로 달려온 물고기들이 잡히는데요
밴댕이, 새우, 황어, 숭어 등 계절 다라 종류도 다양합니다
그 중 아직 크지 않은 새끼들은 바다로 다시 놓아줍니다
요즘 가장 많이 잡히는 물고기들은 어른 손가락만한 크기의
작은 복어인 졸복입니다
졸복은 작아도 독성이 강해 손질에 주의해야 합니다
알과 핏줄 내장 등을 제거한 졸복은 주로 탕을 끓여서 먹는데요
먼저 졸복에 가진 양념을 한 후 콩나물, 미나리. 인삼 등을 넣고 팔팔 끓입니다
졸복은 3월 부터 8월 사이 잡히는 것이 맛과 영양에서 최고라고 하는데요
크기는 작아도 그 맛이 아주 일품입니다
봄이면 후릿그물을 들고 바다로 나가고
평생 어머니의 졸복을 먹고 자란 자식들은
지금도 여전히 어머니 곁에서 변산의 바다를 지키고 있습니다
후릿그물 외에도 변산에 오랜 역사를 가진 고기잡이 방법이 또 있으니
바로 어살입니다
부안 앞바다는 수심이 얇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어살몫으로 천혜의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는데요
예로부터 어살이 성했고 그 규모도 전국에서 손꼽혔다고 합니다
하루 두 번 밀려 왔던 바닷물이 자리를 내주고 떠나면
어김없이 바다로 나오는 김효곤씨 어살그물에 걸린 고기들을 걷기 위해섭니다
길이가 무려 900m에 달하는 어살은
밀물을 따라 들어왔던 고기들을 유인하는 일종의 함정어로법입니다
개펄에 드문드문 말뚝을 박고 나무나 그물로 울타리를 세운 후
한쪽으로 통로같은 어망을 설치합니다
그러면 울타리에 막힌 고기떼가 출구를 찾다가 어망속으로 들어가는거죠
좋은 몫에 있는 어살은 못자리하고도 안바꿀 정도로 성했던 어살
하지만 바다상황이 바뀌고 어업기술이 발달하면서
이근방에서 어살을 지키는 이는 그가 유일합니다
돌아보면 어살의 방법도 다양하게 바뀌어 왔습니다
전통적으로 부안에 어살이 많았던 데는 조수간만의 차가 큰 지형의 덕도 물론이지만
고기들의 산란장 역할을 하는 부드럽고 단단한 모래개펄 덕이 컸습니다
고사리가 날 무렵이면 알을 가득벤 황금조기를 말 그대로 퍼날랐다는 어살
하지만 그물이 찢어질 듯 고기가 나든 시절은 이제 모두 옛이야기가 됐습니다
바다환경이 한 해가 다르게 바뀌면서 어살에 드는 고기들도 급격히 줄어들었고
고기의 종류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바다도 기후도 모두 변했지만 김효곤씨는 오늘도 바다에 나와 묵묵히 어살을 살핍니다
갈메기를 벗삼아 다른 어살들은 모두 떠난 바다를 지키며
어부는 그렇게 늙어가고 있습니다
전라북도의 서쪽에 자리잡은 부안은
국내 유일의 반도 국립공원인 변산반도를 품고 있습니다
변산의 대항리와 고군산군도 그리고 군산을 잇는 새만금 방조제는
우리나라 서해안의 지도를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19년 간의 긴 공사를 끝내고
지난 2010년 완공된 새만금 방조제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그 길이가 33.9km에 달합니다
그로 인해 서울시 면적의 2/3에 해당하는 바다가 육지로 바뀌어 가고 있는데요
이는 우리나라 전 국민들에게 3평씩 나눠줄 수 있는 크기라고 하니
그 엄청난 규모가 짐작이 갑니다
바다를 끼고 도는 외변산과 달리
내륙으로 조금만 들어서면 나타나는 내변산은 또 다른 부안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노란 보리밭이 만든 초원위로
코끼리 한마리가 나그네를 반겨줍니다
작은 다리를 건너 조금만 올라가면
봉래구곡을 만나게 되는데요
옛 선인이 써놓은 봉래구곡 네 글자가 바위 위에 선명합니다
그들의 눈에도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작은 금강이라 적었을까요
봉래구곡은 내변산 각 봉우리에서 발원한 물줄기들이 아홉골짜기를 돌아 내려가 붙은 이름인데요
흐르고 꺾이는 아름다운 계곡에는 아픈 역사가 잠들어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수 백 명의 빨치산과 군인 경찰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하죠
봉래구곡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산과 산 사이로 커다란 호수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첩첩산중에 어떻게 이런 너른 호수를 감춰뒀을까?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직소보를 지나 걷기 편하게 순한 길을 따라 오르니
이번에는 그 이름 만큼이나 아름다운 선녀탕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추내장 춘변산'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내변산의 봄풍을 손에 꼽는다는데요
여름의 내변산도 모자람이 없을듯 합니다
그 선녀탕 위로 내변산 최고의 절경이라는 직소폭포가 있습니다
30m 높이에서 힘차게 쏟아내는 물줄기가
이마에 솟은 땀을 씻어줍니다
산봉우리를 딛고 서서 바라보는 변산의 풍광은
그대로 한폭의 산수화입니다
가히 선경이라 일컬은 옛사람들의 마음이 그대로 접해집니다
관음봉을 넘어 가파른 산길을 내려오면
내변산 한자락에 천년고찰 내소사가 있습니다
내소사에 들어가려면 고즈넉한 전나무 숲길을 지나야 하는데요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이어지는
600m 이길은 내소사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입니다
키 큰 전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습니다
나무가 뿜어내는 푸른 향내가 몸과 마음을 적셔줍니다
500여 그루가 무성한 숲을 이루고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전나무들은
모두 그 나이가 150년을 자랑하는데요
그래서 이 숲길의 아름다움을 보고자
내소사를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연못에는 연꽃이 만개했습니다
진흙탕 속에서 피어오른 한떨기 깨끗함에
마음이 다 맑아집니다
그 전나무 숲길 끝에 내소사가 있습니다
천왕문을 지나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것은
나이가 무려 700살이 넘었다는 아름드리 회나무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 당산으로 모시고 있다고 하죠
마치 인사를 하는 듯 고개숙인 소나무가 맞이하는 내소사는
약 1400년 전인 백제 무왕 34년(633년) 혜구(惠丘)선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집니다
보물 제 291호로 지정돼 있는 대웅보전
1633년(인조11)에 청민(靑旻)선사가 중창한 이후
지금까지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전각입니다
어떤이들은 실망스러워 할 정도로
단청은 오랜 세월에 퇴색되고 웅장한 전각도 없지만
못을 쓰지 않고 순전히 나무로만 깎고 짜맞춘 솜씨가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그야말로 구도의 경지, 그 자체가 아닐까요
대웅전 앞쪽 8짝의 봉합창문을 장식한 꽃무늬 문살은
내소사의 자랑이자 상징인데요
목공은 내생에 반드시 소생하라는
내소사의 깊은 뜻을 이 꽃들에 담았을까요
연꽃, 국화, 모란 등 문살위에 피어난 갖가지 꽃들은
천년을 지지않고
지금도 피어 있습니다
내소사를 나와 이번에는 유유마을로 향해봅니다
내변산의 품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유유마을은
150년 전통의 누에마을입니다
지금도 여러 집에서 누에를 기르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마을 주변에 보이는 것은 천지가 뽕나무밭입니다
이 마을의 뽕나무는 일교차가 큰데다
해풍을 맞고 자라서 뽕잎의 영양이 풍부하는데요
그 뽕잎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누에의 품질이 좋다고 합니다
누에는 8번 잠을 자고 나면 고치를 짓는데요
한번 잠을 잘 때 마다 부쩍부쩍 자라고
그때마다 더 많은 뽕잎을 먹습니다
잠사 안에는 출하를 앞둔 누에들이 가득합니다
특히 요즘은 고치를 짓기 직전이라
하루 세 번 뽕잎을 대는 것도 큰일입니다
옛날에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누에를 첬지만
요즘은 이곳도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누에는 그 이로움이 많아서 예로 부터 하늘이 내린 벌레라 하여
천충이라고 불렀는데요
누에가 뽕잎을 먹는 소리는 조용한 잠사안을 울릴 정도로 선명합니다
가만히 귀 기울려 한번 들어보세요?
정말로 촉촉히 대지를 적시는 빗소리 같지 않습니까
선조들이 써온 옛물건들은 고스란히 남아 유유마을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고 있지만
세월이 흘러 누에를 기르는 목적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누에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다시 외변산 바닷가를 달려가 봅니다
네모 반듯한 소금밭들이 펼쳐지는 이곳은
곰소염전입니다
바닷물을 끌어 가두고
뜨거운 햇빛과 바람으로 말려내는 천일염이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부안은 질좋은 개펄을 갖고 있어
미네랄이 풍부한 좋은 소금이 난다고 하는데요
하루 두 번 사람들은 어김없이 염전에 나와 소금을 걷습니다
부안을 비롯해 만경과 옥구지역은
전통적으로 화염을 만들던 곳입니다
화염이란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얻는 방법으로
특히 부안의 규모는 조선초기 이후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하죠
그러다가 곰소염전이 생기면서 천일염이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정근/부안군 진서면 곰소리
곰소염전이 생긴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일제가 수탈한 물자들을 일본으로 방출하기 위해
제방을 축조하면서 섬이던 곰소는 내륙이 됐습니다
지금은 염전의 크기도 줄어들고 외국산 소금에 밀려
곰소염전도 예전 같지는 않습니다
소금은 임금님의 피난길에도 빠지지 않았을 정도로
중요한 식재료였었습니다
과거에는 국가에서 소금을 관리했을 만큼
우리가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인데요
소금과 장은 묵힐 수록 좋다고 하는데
곰소소금 역시 일 년 이상 저장해 간수를 제거합니다
곰소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이제 전국 생산량의 0.9%에 불과 하지만
곰소의 명성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해걸음이면 햇살에 비친 소금이 마치 함박눈이 쌓인 양 아름답습니다
지금은 옛 모습을 잃었지만 곰소항은
과거 수 백 척의 배들이 드나들던 수산물의 집산지였습니다
곰소만 연안의 칠산어장에서 잡아올린 싱싱한 생선들을 이용해
예로부터 곰소항에서는 각가지 젓갈들을 만들어왔죠
철마다 바다에서 나는 것이 다르니 사철 젓을 담그지 않을 때가 드물지만
요즘은 특히 젓갈을 많이 담그는 계절입니다
오늘은 아침에 잡아 올린 황석어로 젓갈을 담글 예정입니다
싱싱한 재료와 함께 젓갈을 만들때 중요한 것이 바로 소금입니다
반드시 곰소에서 난 천일염을 사용하는데요
90년대 까지만 해도 성시를 이루던 곰소항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오래전부터 곰소사람들에게 젓갈은 없어서는 안될 음식이었습니다
먹을 때도 도시 사람들이 모르는 다양한 비법들이 있었습니다
천일염 하나로 버무린 황석어를 항아리에 담아
2년을 숙성시키면 비로소 곰삭은 젓갈이 완성됩니다
곰소의 바다에서 소금이 나듯 그 소금에서 젓갈의 맛이 납니다
곰소에는 짭조름한 바다의 맛이 베여 있습니다
과거 고기들로 그득했던 칠산바다
그 칠산바다 중심지였던 위도로 들어가 봅니다
위도는 격포항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14km 떨어져 있습니다
도시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섬이지만
서해에서 두 번째로 큰 섬으로 주말이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입니다
배를 타고 50분 남짓 달리면 어느새 위도에 도착합니다
섬의 모습이 마치 고슴도치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것 같다고 해서
고슴도치위(蝟)자를 써서 위도라는 이름이 붙은 섬입니다
누군가가 위도를 제대로 둘러보기 위해선 꼭 버스를 타봐야 한다고 해서
저도 일단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위도에 단 한대 뿐이라는 이 공영버스는 뱃시간에 맞춰
관광객들과 주민들을 실어 나르는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입니다
그런데 이 버스를 모는 기사님이 아주 명물입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양반인지 한번 들어보세요
쉬
쉬지 않고 이어지는 걸출한 입담에
다들 배꼽이 빠질 정도입니다
영락없이 악어를 빼닮은 악어바위 뒤쪽으로는
돌고래 두 마리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헤엄치며
악어를 뒤쫓아 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야말로 바다 위에 수 놓은 자연의 조각품입니다
악어 바위 맞은 편으로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선 물개 한마리가 신기한 듯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백은기씨는 위도에 대한 애정으로 몇 년 전에 아예
문화관광해설사 자격증까지 땄는데요
위도 토박이로 20대 부터 마을 이장을 했다는 그는
1300여 명 위도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손과 발입니다
주민들 이름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이집 저집 밥숫가락까지 꽤고 있을 정도라나요
고향을 지키면서 내가 위도 역사문화를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해야겠다
그래서 위도 자랑도 하고 위도 오신 분들한테
소개를 자세히 하면
더 여행에 보람되지 않겠냐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까 안내를 이렇게 하게 됐습니다
버스를 타고 둘러본 위도는 고운 모래와 울창한 숲
빼어난 해안풍경을 가진 아름다운 섬입니다
위도는 홍길동전에서 이상향으로 묘사한 율도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는데요
위도가 이상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섬의 수려한 풍광과 더불어 고깃떼가 넘쳐 나던
풍요로운 바다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위도 앞바다는 서해 3대 어장중 하나인 칠산어장의 중심지엿습니다
조깃배가 드나들던 파장금에는
파시를 이루었던 옛 흔적들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1970년 대 초 까지만 해도 해마다 봄•가을이면 조기떼가 몰려들고
전국 각지에서 고깃배와 장사꾼들이 조기를 따라 몰려들었는데요
그래서 조기철이 되면 위도 인구가 5천 명을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전부 여기 초가집이었고 한 백 채 이상의 집들이
전부 다닥다닥 붙은 술집이 있었어요
근데 그것이 다 흔적도 없이 없어져 버렸어요
그러니까 이 동네는 파시(바다위에서 열리는 생선시장)
삼천포, 구룡포 ,속초에서까지 여기로 고리를 잡으로 와서
파시가 이루어졌던 동네가 파장금이예요
-김형식/부안군 위도면 파장금리
조기 산란기엔 조기떼 우는 소리에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는 칠산바다
그 칠산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대리마을은
풍어를 기원하는 오랜 전통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올해로 150년 째 있는 '위도 띠뱃놀이'입니다
마을 굿으로 '대리원당제'라고도 불리는 위도 띠뱃놀이는
주요 무형문화재 82호로 지정돼 있는데요
지금도 매년 정월이면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띠배를 만들고 바다에 띠워 보내며
마을의 태평과 풍어를 빌고 있습니다
띠배에 띠워 보낸 제물과 제웅(除雄)을 받은 서해 용왕이
일년 동안 무사하게 돌봐주시기를 기원하는 것이죠
위도에서도 띠뱃노리는 유일하게 대리에서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때뱃놀이 지켜가고 있는 분들 중 한 분을 찾아가 봤습니다
때뱃놀이 띠뱃굿이 다 있었어요 어장하는 어장촌은
그런데 유독 대리 때뱃놀이만 이렇게 오래 지속되고
한 번도 안 거르고 했거든요
-김상원/띠뱃놀이 예능 보유자
띠뱃놀이엔 어쩌면 오랜 세월 바다에서 깨닳은
삶의 깊이가 담겨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욕심을 부린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아는 어부들은
지금도 선조들이 해 온 그대로 바다의 삶을 따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여기 조기가 산란할 때는 너무 시끄러워서 어민들이 잠을 못잤다고 합니다
고기가 참 많았다는 뜻이죠
지금은 환경이 좀 바껴서 옛날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많은 어민들이 바다에 기대어 살고 있습니다
자연은 위대한! 아름다운! 어머니 같습니다"
변산에는 해안선을 따라 걷기 좋은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름하여 '마실길'
외변산 해안선을 외둘러 이어지는 총 66km의 마실길은
서해바다 절경을 벗삼아 걷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호젓한 산길을 걷는가 하면
어느새 바다로 성큼 내려서서 발닿는 곳마다 멋진 비경을 선사합니다
"이건 아늑한게 옆길 마실가는 그런 길 같네"
마실길에서는 다양한 풍경들을 만날 수 있는데요
무성한 잎을 달고 높이가 5m는 족히 넘는 후박나무는
천연기념물 제 123호로 지정된 귀한 나무입니다
후박나무 앞에는 때이른 코스모스가 나그네를 반겨줍니다
마실길을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하섬앞바다는 갯펄체험장입니다
물이 빠지고 난 갯펄엔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어민들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찾아온 관공객들이 한데 어울려
갖가지 조개들을 채취하는데요
요즘 많이 나는 것은 전라도에서 맛이라고 부르는 죽합과 바지락입니다
누구나 들어와 조개를 잡을 수 있는 이개펄엔
아이들도 쉽게 잡을 수 있을 만큼 조개들이 지천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있는 가정에선 좋은 생태체험장이 되고 있는데요
주말이면 도시에서 찾아오는 가족들이 많습니다
예로부터 부안의 갯펄은 백합이며 바지락, 죽합 등
각종 조개들이 많이 나는 살아있는 갯펄로 유명했습니다
모래가 섞여있는 단단한 펄이 여러 바다생물들이 산란하기에 좋은 서식처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 부안 변산에 있는 개펄은 생태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개펄입니다
모래와 펄이 조화롭게 섞여있기 때문에
어패류가 살기 좋은 환경을 가진 것이
이곳 개펄의 특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최기철/ 부안군 문화관광해설사
지금도 여전히 좋은 환경을 간직하고 있는 까닭에
부안의 개펄은 각박한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또 다른 명소가되고 있습니다
보드랍고 포근한 개펄에서 함께 보낸 시간들은
빛나는 추억이됩니다
언젠가 돌아보면 지금 이순간
공기의 밀도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겠죠
이곳 부안에서 사람들은 또 아름다운 사진 한 장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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