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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古都)보존 4개 도시' 선정된 익산시

파라클레토스 2013. 2. 23. 00:39

'고도(古都)보존 4개 도시' 선정된 익산시

 

3개왕조 숨결 흐르는 왕도

 

높은 생산력 • 교통요지 고조선때부터 도읍지로 도시 전체가 역사박물관

서동 • 선화공주 스토리 등 '신화의 고장'으로 유명

 

문화재청은 지난 3월 고도보존 4개도시를 발표했다

앞으로 10년간 대대적으로 복원하고 보존할 도시는 경주, 부여, 공주, 그리고 익산이다.

천년고도 경주, 백제의 왕도인 부여와 공주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익산은 왜 선정이 됐을까

익산은 경주나 부여를 뛰어넘는 의미가 있다

한국 역사에서 유일하게 3개 왕조가 명멸한 왕도다

민족의 아련한 마음을 보듬는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고조선의 왕도이고, 백제의 수도이고, 고구려의 꿈이 서린(소)고구려의 도읍지다

익산은 고대로부터 문명이 발달할 수 있는 천혜의 요지다

북동쪽으로 멀리 노령산맥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고, 북쪽과 남서쪽으로는 금강과 만경강이 풍족한 평야를 만들어내고 있다

탤런트 배용준은 미륵사지 관람 중 전시된 커다란 곡식 항아리를 보고

"당시에는 생활이 풍족했던 것 같다"는 표현을 했다

평야와 강과 산이 어우러진 익산은 물산이 풍부하고,

일찍부터 일본 및 중국과의 뱃길도 열려있었다

그래서 고대에는 마한의 실질적인 왕이 익산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고조선-백제-고구려 왕도

 

고조선은 유민의 익산 결집도 교통의 요지, 높은 생산력에 주목한 결과다

고조선의 마지막 임금 준왕은 BC194년에 침략군 위만에게 왕검성이 함락되자 탈출을 한다

배를 타고 남하한 준왕은 익산의 마한세력을 물리치고, 고조선을 다시 세웠다

또 미륵산에 1,800m에 이르는 견고한  돌로 된 성을 쌓았다

미륵산성에서는 당시의 돌화살촉, 포석환 등이 발굴됐다

익산은 백제 무왕때 최전성기를 맞는다

무왕 40년인 639년에 백제는 익산으로 천도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익산에만 남아있는 지명인 '왕궁'은 그때의 일을 말해주고 있다

왕궁면과 금마면 일대에는 왕국의 수도 유적과 유물이 널려있다

왕도임을 알려주는 수부(首府)표기의 기와 미륵사지, 왕궁터에서 는 현재 40여개의 건물터 등이 발굴됐다

고구려의 유민들이 대륙의 꿈을 다시 꾼곳도 익산이다

고구려 왕족인 안승은 670년에 신라의 지원으로 익산에 고구려를 세웠다

(소)고구려로 불리는 왕국에는 신라 지역에 있던 고구려 유민 절대다수인 수만 명이 참여했다

안승을 따르는 4천여호, 연정토의 세력권인 700여호, 신라에 억류돼 있던 고구려 전쟁 포로 7,000명 등이다

일본에 9차례 사신을 보내 고구려 계승국임을 알린 (소)고구려는 684년에 비운을 맞보았다

신라에 의해 오금산성(익산토성)이 함랃되고 많은 유민이 다시 남쪽으로 강제이주 되었다

 

백제 유일 궁터 자리잡아

 

백제 유일의 궁터가 있는 익산은 유적지형 도읍지다

이에 비해 부여나 공주가 박물관형 왕도이다

왕궁 터에서는 높은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다양한 금제, 왕국의 곳곳에는 신화가 여전히 계속된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 무왕이 천마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던 말발굽 흔적이 남아있는 정원석,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선 남녀 인석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