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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탄 풍경

파라클레토스 2014. 9. 9.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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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내린 비로 토사가 흘러내린 도로를 방치한 채
"저 일이 어떻게 해결될까"
라는 기대감으로 오전을 보내고 있던 중
중대본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중대장입니다"
"네,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언젠가 면장 님이 어느 댁인지 타이어를 쌓는다고 도움을 요청했는데
마침 그 날 비상이 걸려서 애들을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마침 시간이 있어서 면장 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사무실에도 안 계시고 핸드폰도 안 받으시네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언 듯 박 선생님 댁 담장을 쌓는 거라고
들은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려 봤습니다."

중대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무릎을 딱 쳤다.
만약에 면장 님과 통화만 되었어도
우리 일이 다 끝난 줄 잘 알고있는 면장님이
"그 집 담장은 다 쌓았습니다"
라고 대답하면 더 이상 나에게까지 연락이 올 리가 없는 전화였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면장님이 사무실에서도 전화를 안 받고
핸드폰으로도 통화가 되지 않아서 나에게 직접 연락이 닿게 되었는지
그것도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절묘하게 도움의 손길이 뻗쳐 왔으니
참으로 믿을 수 없는 또 한번의 우연이 겹치게 된 것이었다.

"그 일은 며칠 전에 끝이 났습니다만
이번에 내린 비로 토사가 길바닥으로 흘러내려서 어려움 중에 있습니다.
혹시 그 일에도 인원 동원이 가능하다면 몇 명 보내 주시지요"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지금 밖앝엘 못나가서 몸이 근질거리는 놈들이 댓 명 있는데
그 놈들 보내드릴 테니 그 놈들 시켜서 흙을 치우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한참 일할 젊은이들을 다섯 명이나 보내 주었다.
그들은 정말 일을 못해서 몸이 근질거렸던지
넘치는 힘으로 그 많은 토사를 몇 시간만에 원위치를 해 놓았다.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면장 님이
쟁반 짜장과 탕수육으로 젊은 군인들의 수고를 치하하면서
감명 어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이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내 전화가 터지지 않아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중대장에게 연락 받고 말이 안나와서 달려왔습니다.
이 일을 쭉 지켜봤지만 이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신이 계시다면 그 분이 도와 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길을 이제부터 <신의 손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역시 면장 님은 이벤트에 강하신 분이었다.
천만 원 정도가 들어갈 공사를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완공한 담장 공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그 길에 아주 멋진 이름을 붙여준 것이었다.

퇴근길에 들린 이유덕 여사가 그 아름다운 길의 이름을 부르며
어려움중에 있던 나를 도와주신 신을 찬양했다.

나는 그 이름을 무척 사랑했으며
나중에 천안으로 이사를 올 때까지 그 길에 꽃을 심어서 가꿨다.
신이 주신 그 길을 내가 이사를 간다고 해서
잡초가 무성해 지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꽃은 심어도
여러분이 보고 즐기십시오"
정들었던 이웃을 뒤로하고 이사를 가야했던 아쉬움을
나는 그런 말로 달래고 있었다.

드디어 다음해 봄이 와서
겨우내 번식을 한 꽃 잔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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