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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값 인상, 정부는 솔직해져야 한다

파라클레토스 2014. 9. 15. 08:01

 

담뱃값 인상안, 정말 국민 건강 정책?

 

 

"걸핏하면 골프장으로 달려가는 이 정권 고관대작들이야, 소주, 담배 없어도 스트레스 풀 기회가 많으니 하루종일 뼈 빠지게 일하고 난 후 서민들이 즐기는 소주와 담배 맛을 알 리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8월 26일 세제개편안이 발표되자, 당시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서민을 잡는 정권, 서민을 밟고 간신히 버티는 정권이라는 폭언을 퍼부으며 담뱃값 인상 등 개편 관련 정책에 강력히 반발했다. 그는 서민에게 세금 전가의 고통을 주기 전에 먼저 작은 정부를 운영하고, 선심성 국가사업을 축소해 국민 혈세 낭비를 줄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지난 11일,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담뱃값 인상안에는 2005년 당시 이정현 부대변인의 충고에 대한 어떤 고려의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다. 500원 인상을 두고 '서민을 밟고 간신히 버티는 정권'이라고 몰아붙인 과거를 생각한다면, 2000원을 인상안을 꺼내 들고도 서민 물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는 모습은 후안무치의 극치라 밖에 볼 수 없다.

 

담뱃값 인상 탈 쓴 서민 증세 정책

 

정부는 2000원 인상안이 국민의 건강을 위한 조치라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성인 남성 흡연율 44%를 2020년까지 29%까지 끌어내리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흡연율은 자의적인 통계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고, 4500원 정도의 담뱃값이 세수 확대를 할 수 있는 최적점이라는 내부 연구 보고서가 알려지면서 정부의 주장은 급격히 신뢰를 잃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국의 강도 높은 금연 광고를 사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위까지 낮춘 정부가, 이제 와서 국민 건강의 최대 위해 요인을 흡연이라 꼽으며 2000원 이상 담뱃값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누구 보더라도 그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담뱃값 2000원 인상이 가져올 최대의 수혜자는 정부다. 이번 인상안이 확정되면 늘어나는 세수입만 2조8천억 원에 이른다. 반면 가장 큰 피해자는 담배를 끊지 못하는 흡연자들이다. 3일에 한 갑, 한 달에 10갑을 소비하는 흡연자는 한 달에 2만 원, 1년이면 24만 원을 고스란히 더 부담해야 하고 이 돈의 대부분은 정부 수입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번 담뱃값 인상을 두고 아무리 정부가 '금연정책'이라고 말해도 '서민 증세'로 받아들이는 데는 이런 셈법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1년에 24만 원 늘어나는 담뱃값이 무서우면 끊으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금연정책. "아편 놓고 영국과 중국이 맺었던 불평등 조약 같다"는 농담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아빠 담배 피우면 배 안이 까맣게 되고, 숨도 못 쉰대."

 

 

 

 

막내 딸아이가 학교에서 금연 동영상을 보고 난 후 아빠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면 정색을 한다. 때문에 집에서는 담배를 아예 피우지 않는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을 통한 금연 정책은 아이의 잔소리만큼의 효과도 없이 짜증만 유발한다. 비단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담뱃값 인상안이 발표되자 서민들의 주머니 털기라는 비난이 이어졌고, 담배 사재기를 하는 모습도 늘어났다. 정부가 부랴부랴 사재기 처벌까지 꺼내 들었지만, 애초 여론 수렴 없는 졸속 정책 발표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격이다.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담뱃값 인상, 물가 인상의 뇌관 될 수도

 

담뱃값 인상의 피해자가 담배를 끊지 못한 흡연자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삼성증권의 발표에 의하면 정부안대로 담뱃값 2000원 인상이 확정될 경우 근원 물가 상승률이 3%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자칫 담뱃값 인상이 물가 인상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또 정부안대로 담뱃값에 물가 연동제를 적용할 경우 앞으로 매년 담뱃값이 오르게 되고, 오른 담뱃값이 또다시 물가 인상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렇게 된다면 담뱃값 인상의 피해는 흡연자뿐만 아니라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 전체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는 물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왔다고 자평해 왔다. 최경환 경제팀은 오히려 저물가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디플레이션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더 이상 소비를 유발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서민 경제와 국가 유가 하락 등에 힘입은 수입 안정세가 보여주는 착시 현상일 뿐, 주머니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 서민들이 느끼는 물가는 여전히 높다. 담뱃값 대폭 인상으로 물가를 흔들고, 성장을 이유로 물가 인상을 유도하는 것. 서민 경제를 나락으로 밀어 넣는 위험천만한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일은 담뱃값 인상으로 끝날 것 같진 않다. 지난 12일 정부는 지자체 재원 확충을 위해 평균 4620원인 주민세를 2년에 거쳐 2만 원 미만으로 올리고, 자동차세도 대폭 인상할 것을 시사했다. 20년 동안 묶여 있어 목욕비에도 못 미치는 주민세를 현실화한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인데, 정작 20년 동안 목욕비가 왜 이렇게 올랐는지, 서민들의 수입은 왜 늘어나지 않는지 대해선 아무런 설명도 없다. 정부가 수출과 대기업 위주 정책으로 물가를 폭등시켜 놓고 이제 그 물가를 기준으로 주민세 등 간접세를 현실화하겠다니. 이건 억지이자, 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퍼붓는 세금 폭탄이다.

 

'증세 없는 복지'.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다. 따지고 보면 실현될 수도, 실현돼서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공약일 뿐이다. 집권 1년 반이 지난 지금 정부는 복지에 대해서도, 나라 살림에 대해서도 갈피를 못 잡는 모양새다. 복지 예산 때문에 지자체와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고, 복지 사업은 축소를 당연하다는 듯 대선 공약 뒤집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담뱃값 인상과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도 이런 연장선에 있다. 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지자체 복지 예산 요구를 무마해 보려는 얄팍한 증세 속임수에 불과하다.

 

복지 위해 증세가 필요하면 부자 감세·범인세 감면 철회 선행되야

 

박근혜 정부, 이제 솔직해 져야 한다. 부족한 세수를 인정하고 이명박 정권에서부터 이뤄진 법인세 감면과 부자 감세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 또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는 경기 부양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언제까지 대기업과 수출기업, 자산가들에게 막대한 혜택을 주면서 서민들의 담뱃값이나 올려 복지예산을 충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금연 정책도, 담뱃값 인상도 무조건 반대할 생각은 없다. 2006년 종부세 도입을 두고 세금 폭탄이라고 선동 정치를 일삼아온 과거 한나라당의 행태를 따라 할 생각이야 더더욱 없다. 하지만 서민들에게 담뱃값 2000원을 인상하고도 증세가 아니라 금연 정책이라고, 국민들이 이해해야 한다는 강변은 이해하기 힘들다. 복지 예산을 두고 정부와 지자체가 다투다가 구경꾼인 서민들 호주머니 털어 나눠 갖는 형국. 이번 담뱃값과 주민세 인상안이 그 짝이라는 생각은 나만의 억측이 아니다.

 

세금 전가 고통을 주기 전에, 부자 감세와 법인세 감면을 철회하고, 증세 없는 복지가 허구의 공약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답뱃값 인상. 주민세과 자동차세 인상의 불가피성을 솔직하고 진지하게 국민들과 논의하라. 이것이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서민을 밟고 버티는 정권'이라는 조롱의 부메랑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

 

-OhmyNews 안호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