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베스트셀러, 징비록
임진왜란!
그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조선을 구해낸 서애 류성룡.
‘징비 懲毖’
지난 일을 징계하여 후환을 조심한다 는
의미에서 「징비록」을 남겼다.
다시는 전쟁의 참화를 겪지 말자는 뜻에서 쓴 전란의 기록이
어떻게 일본과 중국에서
널리 읽히며 동아시아 베스트셀러가 됐을까?
■ 조선의 기밀문서, 일본에 유출되다
임진왜란의 원인과 전황 등을 상세히 기록한 「징비록」이 17세기 말 일본에 유출된 후 「조선징비록」이란 이름으로 출판되며 일본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혔다. 일본판 징비록은 18세기 청대 중국으로까지 건너갔고,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에서 널리 읽힌 것이다.
조선의 국정을 담은 책으로 외국 유출을 엄격히 금한 징비록은 아이러니하게도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됐다고 하는데... 17세기 말 출간된 일본 문헌들 속에서는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만물각>을 통해 징비록의 파급력을 살펴본다.
■ 아비규환의 전쟁, 눈물로 기록하다
“한양과 지방에 기근이 심한데다가… 건강한 사람들은 도적이 되었으며,
부모 자식과 부부가 서로 잡아먹는 지경이었다”
징비록에선 임진왜란의 피해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을 만큼 치밀하게 그 참상을 기록하고 있다. 영의정이자 전쟁 총지휘관으로서 각종 보고를 받으며 대비책을 제시하는 등 전시 국정을 지휘했던 지휘관으로서 생생한 증언, 그것이 임진왜란을 기록한 여느 책들과 다르다는 점이다. 전쟁 중에도 민생 문제부터 생각했던 류성룡. 그의 계책의 중심은 바로 사람이었다. 전쟁 중에도 먹어야 하고, 잘 먹어야 민심이 안정되고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류성룡은 솔잎가루를 이용한 구휼방법을 제시할 뿐 아니라 국방력을 높이는 방안으로 조선 최초로 월급을 주고 군사를 키우는 일종의 직업군인 제도라 할 수 있는 훈련도감 창설을 제안했다. 과연 어떤 훈련을 통해 조선의 군사력을 높일 수 있었는지 박금수 박사와 함께 훈련도감의 핵심 병법에 대해 알아본다.
■ 조선을 뺀 강화교섭, 류성룡의 선택은?
전시 총책임자로서 일본과 강화하려는 명나라의 일방적인 교섭에 절대 굴하지 않고 일본군 공격을 계속해서 주장했던 류성룡. 하지만 종전 후 그가 탄핵을 받은 이유는 일본과 강화를 주장해 국사를 그르쳤다는 것이었다. 임진왜란을 기록한 명나라 문헌에서 조차 류성룡을 간신이라 표현하고 있는데... 일본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던 그가 돌연 일본과의 강화를 주장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징비록은 쓴 이유가 혹시 강화에 대한 못다 한 자신의 변명을 남기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현실 타개를 위한 대안과 비전을 제시한 경세가인가? 강화를 주장해 국사를 그르친 간신인가?
비판과 냉소를 무릅쓰고 전란극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임진왜란 같은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와 교훈을 후손에게 남긴 류성룡.
그가 남긴 위대한 유산인 「징비록」의 가치를 오는 2월 22일 일요일 밤 10시 3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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