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못지않은 '강화나들길', 매력있네
[대한민국 구석구석 자전거 여행 22] 인천 강화도 '호국돈대길' (갑곶돈대~광성보~초지진)
[오마이뉴스 글:김종성, 편집:박혜경]
▲ 강화도 앞바다가 한 눈에 펼쳐지는 천혜의 옛 해안 초소, 돈대. |
ⓒ 김종성 |
모니터에 강화도 지도를 쫙 펼쳐놓고 어디를 먼저 가볼까 살펴보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곳이 해안가에 이어진 강화나들길(2코스). 처음엔 애마 자전거를 타고 가기 적당해서 골랐는데, 이 길을 자세히 보니 무척이나 호기심을 끄는 곳이었다. '돈대'라는 이름의 옛 해안초소들이 해안가에 줄지어 서 있다. 갑곶돈대, 화도돈대,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돈대마다 이름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이 나들길의 별칭은 그래서 '호국돈대길'이다. 길 위에 깔린 벚꽃 잎처럼 아름답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흩뿌려져 있을 것만 같은 길이다. 지난 16일, 바닷가·갯벌·농로·둑길을 왼쪽에 끼고 돈대와 강화외성의 흔적을 따라 갔다. 갑곶돈대 ~ 광성보 ~ 초지진 까지 17km의 해안길로 강화버스터미널이 가까운 갑곶돈대로 다시 돌아와야 하니 약 34km의 거리다. 갈 때는 돈대마다 들리며 여유롭게 나들길을 지나다가, 올 때는 해안도로 옆에 난 자전거길을 달려 돌아오면 된다.
21세기에도 유효한 해안요새 '돈대'
▲ 강화풍물시장에서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밴댕이 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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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시장의 식당가인 2층 장옥에 들어갔다. 많은 메뉴 가운데 밴댕이 회덮밥을 골랐다. 본래 매뉴는 밴댕이 회무침이었는데 금속말(자전거) 탄 여행자에겐 밥이 연료다. 주말이라 섬 주민, 관광객들로 북적북적한 풍물시장, 옆자리에 일행들과 함께 앉아있던 아저씨도 자전거 애호가였나보다. 친근한 눈빛으로 강화도 어디를 가느냐며 드시던 인삼 막걸리를 연신 권했다.
강화도에 사신다며 동생섬 석모도, 교동도의 자전거 여행 정보도 알려 주셨다. 아저씬 자전거 여행가가 틀림없었다. 길에서 만난 여느 어르신들처럼 왜 혼자 다니는지 궁금해(혹은 걱정해) 하지 않는 걸 보면. '알콜허약체질'이라 아쉽게도 인삼 막걸리는 조금만 마셨지만, 처음 만난 반백의 60대 아저씨와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나눌 수 있다니... 다 자전거 덕이다.
▲ 생경한 해안 풍경이 펼쳐지는 강화도 동쪽의 바다, 강화해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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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국돈대길에서 마주친 분단조국의 '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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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를 육지와 잇는 강화대교 밑으로 들어서면 해안도로와 함께 호국돈대길이 나온다. 건너편에 김포땅이 훤히 보이는 강화도 동쪽 바다, 강화해협은 내가 알던 바다가 아니었다. 동해, 남해, 심지어 같은 서해바다와도 다른 생경한 바닷길이 이어졌다. 파도와 모래밭 없는 회색빛 해변, 바다를 가린 칙칙하고 높다란 철책, 초병 없는 쓸쓸한 초소...
북한과 인접한 변경의 풍경이 고스란했다. 분단은 한반도에 사는 국민들의 심성뿐 아니라 풍경도 파괴하는구나 싶었다. 몽골의 침략에 대비 강화외성을 쌓은 고려 때 연유한 호국돈대길은 21세기 현재에도 유효한 길이었다. 실제로 강화도 북쪽 북한 방면의 돈대는 참호로 쓰이고 있다.
여느 바다와 달린 파도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해안, 두어 척 어선이 떠있는 손바닥만한 포구에 따개비처럼 붙어있는 횟집들도 왠지 쓸쓸해 보였다. 그럼에도 해안 풍경이 색다르게 다가오는 건 바닷가 1.3km마다 돌로 만든 작은 성곽 돈대가 있어서였다. 바닷가 모래사장 대신 자리한 늪 같은 갯벌과 갈대숲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귓가를 간질였다. 자전거 여행이 아니었음 느끼지 못했을 잔잔한 바람이었다.
아름다운 풍경 품은 돈대에 담긴 아픈 역사
▲ 역사박물관,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는 갑곶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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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미양요(1871, 고종8) 당시 승전한 미군이 기록으로 남긴 사진 - 강화전쟁박물관내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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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역사관과 강화전쟁박물관이 있는 갑곶돈대(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 해안을 바라보며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 되어 여행자를 맞이했다. 바닷물 반 갯벌 반의 질펀한 강화도 앞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군사적 요충지였던 갑곶돈대는 그런 이유로 조망 좋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관광지가 됐다. 이곳엔 보기 드문 탱자나무가 산다. 무려 400살이나 먹은 천연기념물 나무답게 하늘을 향해 성긴 가지를 펼친 모습이 신묘하게 보였다.
조선시대 벌어졌던 병자호란(1636년, 인조 14) 때 청나라 함대가 들이친 곳이 강화도 갑곶이었다. 고려시대 몽골과 달리 청나라는 항복한 명나라 수군 장수들을 활용하여 '강화 상륙작전'을 감행해 강화도를 침략한다. 이때 당시 강화도 방어 책임자는 김경징. 능양군(후일 인조)과 함께 인조반정을 일으켜 1등공신이 된 김류의 아들이자 반정에 참여해 2등 공신이 된 자였다.
이 사람을 자(놈 者)라고 한 건, 위기이자 중요한 때 잔치나 벌이고 술이나 퍼마시면서 아무런 방어 대책도 수립하지 않아서다. 역사가들은 그 용맹한 몽골병도 강화도 바다를 넘어오지 못했던 과거 역사를 떠올리며 방심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예나 지금이나 낙하산 인사는 자칫 큰 재앙을 부른다.
▲ 호국돈대길 옆 해안도로가에 안전하게 난 자전거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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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창한 나무 숲 사이를 오르면 멋진 풍경을 품은 돈대가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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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고려 때부터 조선, 구한말까지 아니 현재까지도 군사 요충지 여서지 싶다. 북한 신의주까지 오가던 뱃길이었던 강화해협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해상교통의 요지로, 조선시대엔 지방에서 서해를 북상해 온 세곡선(稅穀船,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운반하던 배)이 강화해협을 통해 한강으로 진입하여 한양으로 들어갔다.
건너편 김포 땅이 훤히 보일 정도로 폭이 넓지 않은 해협이지만 이곳의 조류는 만만치가 않다. 강화해협 물살 중에서 가장 빠르다는 손돌목(손돌목돈대가 있다)엔 큰 바위가 물살에 쓸려 다닐 정도란다. 이렇게 변화무쌍하고 드센 물살이 있어 고려가 강화도를 임시수도로 삼고 40년간이나 버텼던 대몽항쟁이 가능했던 거다.
▲ 여러 돈대와 나무 숲, 산책하기 좋은 오솔길이 있는 큰 진지 광성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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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대를 통해 보이는 강화의 바다는 무언가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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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돈대는 손돌목돈대와 함께 53개의 강화도 돈대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명소다. 강화해협에 용머리 모양으로 돌출된 암반위에 세운 멋들어진 돈대다. 용두돈대에서 바라다 보이는 강화도 앞 바다는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했다. 이 바다가 한때 프랑스·미국·일본의 군함이 연이어 침략했던 치열한 전장이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다양한 모습, 풍경 보여주는 돈대의 매력
용두돈대 가는 언덕 숲길 가에 웬 무덤들이 들어서 있고 그 너머로 비석(순절비와 쌍충비(雙忠碑))이 세워져 있었다. 미 군함 5척에 1200명의 해병대들을 태우고 이곳을 침략했던 신미양요(1871년, 고종8) 때 맞서 싸우다 전사한 장졸들을 묻은 무덤과 비석이다. 미군은 강화해협을 북상하며 초지진부터 덕진진, 광성보까지 초토화시켰다.
광성보에서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고, 미군의 월등히 앞선 화력과 무기에 조선군은 사령관격인 어재연을 비롯해서 350명(미군 사망자는 3명)이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기록이랍시고 찍어놓은 신미양요 당시의 처참한 사진들이 후손의 마음을 더없이 아프게 했다.
▲ 침입한 미군과 싸우다 전사한 장졸들을 기리는 광성보의 충절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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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호신처럼 노거수 소나무가 지키고 서있는 초지진 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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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돈대길에서 만난 10개 돈대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형태다. 돈대가 자리한 지형에 맞춰 네모형, 둥근형, 타원형, ㄷ자형 등 여러 가지 생김새다. 돈대에 들를 적마다 이 돈대는 어떤 모양일까,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 궁금하고 흥미롭다. 가파른 절벽 위에 자리한 돈대는 우뚝한 성채 같고, 바닷가 언덕 나무들 사이에 들어선 돈대는 숲속의 안락한 요새처럼 보이고, 냉이꽃·민들레가 피어나는 편편한 평지에 있는 돈대는 포근한 마당 같았다.
마치 수호신처럼 위풍당당한 소나무들을 곁에 둔 돈대도 있었다. 1679년 조선 숙종 때 쌓은 초지진의 초지돈대(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다. 일본 군함 운요호와 벌인 포격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본은 이 사건을 빌미로 조선에 전함2척과 수송선, 군사를 보내 협상을 강요했다. 조선 조정에서는 하는 수 없이 협상에 응했고, 불평등한 '강화수호조약(1876년)'이 체결된다.
불과 22년 전인 1854년 미국의 무력에 문호를 개방한 후 서양을 따라 군사력을 키운 일본. 미국과 같은 방법인 대포와 함대를 동원하는 포함외교(砲艦外交)로 조선을 굴복시킨 것이다. 세상은 이미 저만큼 앞서 가고 있는데 과거에 머물러 기득권에 연연하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소홀했던 조선은 결국 식민지가 되어 국권을 빼앗기고 만다.
초지돈대엔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 당시 전투현장을 목격했을 노거수 소나무와 성벽에 아직도 포탄의 흔적이 남아있다. 세월이 흘러 나들길, 공원이 생기고 강화도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호국돈대길은 지날수록 숙연해지는 길이다. '나들이 가듯 걷는 길'인 여느 강화나들길과 무언가 달랐다. 강화 돈대는 이제 세계문화유산이 되려는 중이다.
* 주요 자전거 여행길 : 강화풍물시장 - 갑곶돈대, 강화전쟁박물관 - 광성보, 용두돈대 - 덕진진 - 초지진 (왕복 약 35k)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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