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1651년(효종 2)에 윤선도(尹善道 : 1587~1671)가 지은 연시조
윤서도가 65세 때 벼슬을 그만두고 전라남도 보길도 부용동에 들어가 한적한 나날을 보내면서 지은 노래.
세상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과 한몸이 되어 강호한정(江湖閑情)에 빠지는 것이 주제다.
4계절을 각 10수씩 40수로 하고 여음이 붙어 있다.
여음은 배를 띄우는 것에서부터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따라 말을 붙였다.
고려 후기의 〈어부가〉를 이어받아 다시 창작한 것으로,
이현보의 〈어부사〉나 그밖의 어부가에 속하는 노래는 한시에 여음이 붙어 있는 것이 보통이나
이 노래는 순 우리말로 새롭게 썼다.
『오우가 五友歌』와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고산유고(孤山遺稿)』에 실려 전한다.
윤선도 시인
생몰 1587년 ~ 1671년
1612 ~ 진사
1632 ~ 한성부서윤
1623 ~ 의금부도사
1628 ~ 별시문과 초시 장원
1658 ~ 동부승지
1657 ~ 중추부첨지사
1675 ~ 이조판서 추증
1633 ~ 증광문과 급제
1629 ~ 형조정랑
윤선도(尹善道, 1587년~1671년) 조선 중기의 시인·문신
본관은 해남, 자는 약이(約而)[1]이고, 호는 고산(孤山) 또는 해옹(海翁)
생애
18세에 진사초시에 합격하고 승보시, 향시,
1612년(광해군 4년)- 진사시에 연이어 합격하였다.
71세까지 활동하여 벼슬이 의금부 도사, 공조좌랑, 예조정랑, 예조참의, 동부승지에 이르렀으며,
남인의 거두로서 치열한 당쟁 속에 휘말려 일생을 거의 벽지 유배소에서 보냈다.
죽은 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평가
그의 시조는 정철의 가사와 함께 조선 시가에서 쌍벽을 이루는 것이었다.
자연을 소재로 지은 시조 짓기가 뛰어나서 정철, 박인로와 함께 조선의 3대 시가인(三大詩歌人)으로 불린다.
저술 작품
단가와 시조 75수를 창작하였다.
시가 중 〈산중신곡(山中新曲)〉, 〈어부사시사〉 등이 유명하다.
《고산선생유고(孤山先生遺稿)》
《별집(別集)》
후손
후손 중에는 제2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 윤영선이 있고, 윤관 전대법원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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