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를 여는 생각
우리 안의 식민사관
이덕일 지음
만권당·1만8000원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황순종 지음
만권당·1만5000원
일제 식민사관을 비판해온 최재석 고려대 명예교수가 2011년에 낸 자서전 <역경의 행운>에서 한국 주류 사학계를 향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백수십년 전부터 일본 고대사 학자 거의 전부가 달라붙어 고대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시종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달라. 고대사 학자라면 여기에 대해 한마디 정도의 논평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질문에 누가 응답했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범자들을 ‘일본의 평화·번영의 주춧돌이 된 순직자’로 기리면서 야스쿠니 신사를 버젓이 참배하고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진실을 우롱하며 재무장을 부르짖고 있는 기저에는 한·일 고대사에 대한 전도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고대사는 곧 현대사”라며 일제 식민사관에 대적해온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우리 안의 식민사관>을 보면, 한국 주류 사학계는 식민사관의 비판자이기는커녕 그 공모자다.
앞서 이 소장은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2009)에서 일본과 한국 주류 사학계의 주장을 당대의 중국 사료 등 1차 사료들을 토대로 무너뜨리면서 일제 조선사편수회의 식민사관에 여전히 함몰돼 있는 한국 사학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책에서 그는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 강도를 한층 더 높인다. “한국 (식민)사학계의 조선총독부 추종이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황순종씨의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역시 자국 역사를 배반하고 있는 한국 주류 사학계의 ‘정설’을 실명 비판으로 뒤집는다.
-한겨레 한승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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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으로 식민사학자들을 비판하다
한국 사학계는 과연 일제 식민사관을 넘어섰을까?
대다수 학자들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식민사관 해체 작업에 앞장서온 비주류 학자들은
‘총론만 그럴 뿐 각론은 여전하다’며,
한국 사회의 실패와 파행의 뿌리가 거기에 있다고 진단한다.
식민사관을 만들어낸 핵심 인물인 쓰다 소키치.
<한겨레> 자료사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
“신채호는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이고,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입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우리 안의 식민사관>(만권당 펴냄)이 인용한 어느 공개 학술회의장에서 나온 발언이다. ‘일베’ 수준의 청중이 아니라 한국학진흥사업단 단장으로 1년에 250억원이라는 막대한 한국사 관련 예산권을 쥐고 있었고, 문제 많은 교학사 교과서 대표집필까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란다. 더 놀라운 건 그런 말을 듣고도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역사학자들이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소장은 “프랑스 같으면 당장 감옥에 갔을 이런 극우 파시스트 매국노”가 주류의 한 갈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한국 근대 최고의 역사학자요 타협을 몰랐던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는 1936년 2월 중국 뤼순의 일제 감옥에서 옥사했다. 동시대인 1944년 6월, 나치에 저항한 프랑스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는 게슈타포 손에 총살당했다. <역사를 위한 변명>을 쓴 블로크나 <조선혁명 선언>을 쓴 단재나 외부 파시스트 세력의 침탈에 맞서 한 손에는 역사학, 또 한 손에는 총을 들고 싸우다 숨진 점에선 같았으나, 각자의 조국에서 단재는 ‘또라이’ 취급을 당하고 그 자손은 곤궁 속에 흩어졌으며 블로크는 위대한 민족주의자로 칭송받고 있다. 또 다른 열렬한 프랑스 애국주의 역사가 쥘 미슐레나 미국의 민족주의 사가라 할 프레더릭 터너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독일의 레오폴트 폰 랑케도 그랬다. 이덕일은 프랑스나 독일, 미국의 민족주의는 남의 나라를 침탈한 역사를 지닌 민족주의임에도 그런 평가를 받는데, 침략에 맞서 싸운 저항 민족주의자 단재가 자국 주류 사학계로부터 여전히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냐고 물었다.
이덕일, 그리고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만권당 펴냄)을 낸 황순종씨에 따르면, 전부 다라고 할 순 없겠지만 한국 주류 사학계 핵심 인물들은 학문적·인격적 스승으로 떠받들었던 쓰다 소키치, 이마니시 류, 이나바 이와키치, 스에마쓰 야스카즈 등 일본 사학계 주류를 형성한 식민사관 창도자들의 이론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지금도 하늘처럼 떠받들고 있다.
식민사관 창도자들과
연줄을 통해 도제관계로 엮인
한국사학의 ‘태두’ 이병도와
고려대 인맥의 신석호
주류 사학계의 내로라하는 ‘사단’은
여전히 스승들에 대한 의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 덕에 한반도 북부가 중국 영토였고
만리장성이 황해도까지 뻗어있었다는
동북공정은 순항하고 있다
이덕일은 일제 식민사관의 핵심 문제를 한사군의 한반도 비정(比定)과 임나일본부설 두 가지로 압축한다. 임나일본부설은 4세기에, 여전히 의문에 싸인 일본 야마토 조정 시대 진구황후라는 역시 실체가 불분명한 여성이 이끄는 군대가 신라를 정벌하고 이후 가야 지역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6세기 중반까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주장이다. 오직 <일본서기>에만 등장하는 이 얘기를 역사적 사실로 만들기 위해 일본의 식민주의 사학자들은 김부식의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날조됐다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설’을 만들어 퍼뜨렸다. 그리하여 식민주의자들은 서기전 1세기에 건국됐다는 <삼국사기>의 신라·고구려·백제 관련 기록을 믿을 수 없다며 그 건국연대를 4~5세기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갖추고 있던 백제·신라가 7세기에야 국가 형태를 갖춘, 게다가 나당 연합군에 대패해 쫓겨간 왜에 조공하고 신하의 예를 갖췄다는 식으로 동아시아 고대사를 자기들 마음대로 재구성했다. 아베 정권 행보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이건 현재형이다.
그런 역사날조를 주도한 사람들이 바로 쓰다와 이마니시, 이나바, 스에마쓰 등이었다. 이들 식민사관 창도자는 이와 함께 서기전 108년 한 무제가 설치했다는 낙랑·진번 등 군현(한사군)이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는 한사군 한반도설을 ‘정설’로 유포했다. 이덕일이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등에서 이미 <사기> <한서> <삼국지> <후한서> <진서> 등 당대의 중국 1차 사료들을 토대로 한사군 한반도설이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구체적으로 논증했지만, 일제 식민사관 창도자들은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증거”도 제시한 적이 없단다.
그의 직계 제자로 해방 이후 한국 주류 사학계를 지배한 고 이병도 서울대 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
그럼에도 쓰다와 스에마쓰, 이나바 등 식민사관 창도자들과 와세다대 등의 학연, 일제의 조선사 왜곡 대본영이라 할 조선사편수회, 경성제국대 국사학과 등의 연줄을 통해 도제관계로 엮인 한국사학의 ‘태두’이자 서울대 인맥의 원조 이병도와 고려대 인맥의 신석호, 그리고 이번 책들을 통해 실명 비판 대상이 된 한국 주류 사학계의 내로라하는 그들의 ‘사단’은 여전히 학문과 인격의 스승들에 대한 의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 덕에 한반도 북부가 중국 옛 영토였고 만리장성이 황해도까지 뻗어 있었다는 동북공정은 순항하고 있다. 실명 비판의 대상이 된 주류 사학자들은 이병도, 신석호, 이선근, 김원룡, 김용덕, 김정배, 김철준, 한우근, 송호정, 노태돈, 서영수, 이기백, 이광린, 김현구, 이기동, 정재정 등이다.
황씨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조선인 교육 시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들어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케 한다.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무능과 악행 등을 들춰내고 확장해서 후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조선 청소년들이 그들 조상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며,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든다. 그 결과 조선의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니, 그때 일본의 사적, 일본의 인물, 일본의 문화를 소개하면 동화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자민족 허무주의와 열패감, 강자 예찬으로 치달은 박정희와 문창극들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조선총독부 산하 정치조직이었던 조선사편수회 멤버들의 야유회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제공
이들과 후예들이 여전히 대학과 연구소들, 동북아역사재단 등의 기구과 조직, 그리고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등을 장악하고 국민의 세금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면서 나라의 근본을 좀먹고 있다고 두 사람은 주장한다.
-한겨레 한승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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