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빈, 아들을 낳다
드라마를 통해
‘악녀’, ‘요부’로 알려진 장희빈.
하지만
역사 속 승자(勝者)들이 남긴 기록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라는데...
과연 우리는
장희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오해, 편견 속에 둘러싸여 있던
그녀의 이야기를 낱낱이 파헤쳐본다!
■ 정사正史에 기록된 유일한 미녀
양인 출신의 궁녀였던 장희빈. 그녀는 서인의 핵심인사인 민유중의 딸 인현왕후에 비해 출생 신분부터 나이까지 비교가 안 될 상대였다. 하지만 장옥정은 숙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국 신하들은 왕이 일개 궁녀에게 빠졌다며, 상소를 올리기 시작하는데... 실록에 유일하게 ‘얼굴이 아름다웠다’고 기록된 장옥정. 그녀는 얼마나 아름다웠기에 숙종의 총애를 받은 것일까?
■ 궁녀 출신의 왕비 - 궁중암투 속에 얽힌 정치사
즉위 후 14년간 왕자가 없었던 숙종. 그러던 1688년, 장희빈이 숙종의 첫 아들을 출산했다. 숙종은 왕자를 낳아준 장희빈을 왕비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인현왕후를 폐출한다. 중전의 교체 이후 장희빈의 배경이었던 서인세력은 조정을 장악한다. 그런데 중전교체 속에는 사실 숙종의 왕권 강화를 위한 숙종의 정치적 계략이 숨어있었다! 일개 궁녀였던 장희빈이 왕비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사건의 내막은 무엇일까?
■ 숙원 최씨 - 숙종의 또 다른 여인
장희빈은 중전이 된 지 7년 만에 다시 희빈으로 강등된다. 그렇다면 왜 숙종은 그토록 총애하던 중전 장씨를 내친 것일까. 사실 숙종에게는 새로운 제3의 여인이 생긴 상황이었다. 그 여인은 바로 숙원 최씨. 장희빈과 마찬가지로 궁녀 출신이던 최씨는 제21대 왕 영조를 출산한다. 그 후 장희빈을 중전에서 끌어내려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데. 과연 숙원 최씨는 어떤 여인이었을까?
■ 장희빈의 죽음, 그 숨겨진 의미?
많은 드라마를 통해 장희빈은 사약으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역사 속 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실록에서의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명분으로 자진(自進)을 명령받은 것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조선 시대 여인들의 궁중 암투 속에서 저주 행위는 종종 발생했다. 그런데 장희빈을 제외하고는 저주 행위로 죽음을 명령받은 여인은 없다. 그렇다면 숙종은 왜, 총애했던 장희빈에게 자진을 명한 것일까? 장희빈의 죽음은 어떤 의미인지 전격 분석해본다.
한순간에 판도가 뒤바뀌는 환국 정치기였던 숙종 시대. 그리고 그 속에서 희생양이 되어야 했던 숙종의 여인들! 12월 13일 토요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오해와 편견 속에 둘러싸였던 장희빈의 진실된 이야기를 나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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