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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클레토스 2009. 5. 17. 01:4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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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States of America
(국기) (국장)
표어: 다수로부터 하나로 E pluribus unum
(1789년 ~ 현재)
우리는 신을 믿는다 In God We Trust
(1956년 ~ 현재)
국가: 성조기
수도 워싱턴 D.C.
38°53′N 77°02′W
공용어 (사실상) 영어 (비공식적, 남부) 스페인어
정부 형태 연방제 대통령제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독립
 • 독립선언
 • 승인
영국으로부터 독립
1776년 7월 4일
1783년 9월 3일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9,372,615 km² (4위)
4.87%
인구
 • 2007년 어림
 • 2000년 조사
 • 인구 밀도
 
301,154,000명 (3위)
281,421,906명
31명/km² (172위)
GDP (PPP)
 • 전체
 • 일인당
2006년 어림값
$13조 490억 (1위)
$43,555 (3위)
HDI
 • 2004년 조사

0.948 (8위)
통화 달러 (ISO 4217:USD)
시간대
 • 여름 시간
(UTC-5 ~ -10)
-4 ~ -10 
ISO 3166-1  840
ISO 3166-1 alpha-2  US
ISO 3166-1 alpha-3  USA
인터넷 도메인 .gov .edu .mil .us .um
국제 전화 +1

아메리카 합중국( - 合衆國, United States of America, USA)은 북아메리카에 위치한 연방 국가이다. 흔히 미국이라고 한다. 본래 영국을 비롯한 유럽청교도들이 이주하여 개척이 시작되었으며 현재 본토의 48개 주와 하와이 주, 알래스카 주를 포함해 2006년 현재 모두 50개 주와 1개 특별구(D.C.)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은 과거 영국 식민지 중 유일하게 전쟁을 통해 독립을 이루었으며, 세계 최초로 대통령제부통령제 (대통령, 부통령 임기는 1선당 4년이며 이미지가 아주 나쁜 대통령이 아닐 경우 재선까지 가능하며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경우는 3선에 성공하여 12년 동안의 임기기간을 지냈다.)를 시행한 나라이다. 현재 대통령버락 오바마 (미국 최초의 다문화가정 출신 대통령)이고, 부통령조 바이든이다.

동으로는 대서양 서로는 태평양 두 대양과 접해있으며, 북으로는 캐나다 남으로는 멕시코와의 국경으로 인접해 있다. 또한, 미국 본토에서 북서쪽으로 알래스카 지역도 미국령이다.

목차

[숨기기]

[편집] 명칭

현재 한국어에서 쓰이는 미국(美國)이라는 명칭은 청나라 시기 중국인들이 아메리카(America)를 중국어 발음에 가깝게 적은 음차표기인 美利堅을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은 미리견이 줄어들어 생긴 말이다. 여기서 美라는 한자는 의미와는 관계없이 아메리카의 "메"음을 적는 소리글자의 용법(가차)으로 쓰인 것으로, 미국을 일컬어 아름다운 나라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하는 것은 한자의 뜻에 이끌린 잘못된 해석이다.

일본에서는 亜米利加(아미리가)로 표기하였으며, 이를 줄여서 米国이라고 하나, 역시 한자의 뜻과는 관련이 없다. 중국식과 일본식 표기이외에 며리계(弥里界)라는 독자적인 음차표기도 존재했다. [1]

[편집] 역사

2001년 9월 11일, 9·11 테러.
이 부분의 본문은 미국의 역사입니다.

알래스카 원주민을 포함하여 미국 본토의 원주민은 아시아에서 이주해 왔다. 이들은 최소한 1만2천년전에서 4만년 전에 이곳에 당도하기 시작하였다. [2] 콜럼버스가 이 곳에 오기 전, 미시시피 문명 등은 발전된 농업, 대형 건축, 국가 수준의 사회를 이룩하였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하고 나서, 수백만명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외부로부터 유입된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으로 숨져 갔다. [3]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로 시작되는 에스파냐 사람의 식민은 열매를 맺지 못하였고, 1607년에 시작되는 영국인의 입식자(入植者)가 차츰 세력범위를 넓혀 영국은 1733년까지 13개의 식민지를 대서양연안에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 식민지도 식민의 동기가 북쪽과 남쪽에서는 크게 달랐다. 유럽의 7년전쟁에서 프랑스를 이긴 영국이 식민지의 통제를 강화하자 13개 식민지조지 워싱턴을 중심으로 결속, 궐기하고 프랑스의 원조를 받아 대영 제국으로 부터 독립하여 미국을 수립한 것이 국가로서 미국의 시초였다.

미국은 1774년 7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프랑스의 지원에 힘입어 178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다. 이어서 1787년에 미합중국 헌법이 발포되고, 1789년에는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지도 아래 연방국가가 발족하였다. 미국은 독립 후에도 프랑스·에스파냐 등으로부터 영토를 획득하여, 1848년에는 31주, 면적으로 거의 현재의 규모에까지 발전하였다. 원주민 인디언을 몰아내고 서부를 개척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볼 수 있었던 서쪽으로의 발전은 이른바 프론티어 운동으로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발전한 신세계의 내부에서는 식민지 건설 당시부터 싹터온 남북의 대립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미국의 남부와 북부는 식민지 초기 시대부터 종교나 경제 체제를 달리하고 있었는데, 그후 이 차이는 양립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고, 노예제 문제 등으로 갈등이 깊어진 미국은 1861년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을 치르게 된다. 남북간의 내전은 1865년에 북부의 승리로 끝났는데, 이것은 북부의 생산력, 특히 공업력이 남부의 농업에 대하여 거둔 승리이기도 하였다.

미국의 산업혁명은 19세기 중엽까지로 끝나고, 남북전쟁 후는 국내 자원의 개발과 교통기관의 발달에 힘입어 미국의 산업자본주의는 약진을 이룩하였으며, 급속히 독점화의 경향을 보였다. 산업이 발달한 결과 각지에 공업도시가 발달하였으며, 현저한 빈부(貧富)의 차, 슬럼가(街)나 범죄의 발생이 사회문제화되고 노동운동이 격화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멕시코 전쟁으로 얻었던 땅을 뺏길 위험에 처하자 독일 등에 선전포고 하고, 전승국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세계 제1의 부(富)를 갖게 된 미국은 전쟁 후에도 번영을 유지하였으나, 공업의 번영에 비하여 농촌은 불황으로 허덕였으며, 유럽 여러 나라의 전후(戰後)의 불황과 어울러서 1928년에는 대공황(大恐慌)이 엄습하였다. 1932년에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1882∼1945)는 경기를 회복하기 위하여 국고금을 대량 사용하는 뉴딜정책을 채택하여 불황으로부터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들 새로운 정책을 통해서 연방정부의 권한은 크게 확대되고, 미국의 자본주의는 차츰 변질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계기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역시 전승국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은 참전국 중에서 전화(戰禍)를 입지 않은 유일한 나라이며, 경제력은 비약적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에 전쟁 후에는 피폐한 여러 나라의 부흥과 후진국 원조 등에 적극적으로 간여하였다.

이후 소련과의 냉전 체제에서 급부상한 미국은 자본주의 진영을 이끈다.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대패를 기록한 뒤, 1990년대~2000년대에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과 전쟁을 하였다. 2001년에는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의해 세계 무역 센터가 테러 당했다. 2008년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부통령은 조 바이든)가 당선되었다.

[편집] 자연 환경

[편집] 지리

알래스카 주와 하와이 주를 별도로 하였을 때, 미국의 지리적 위치는 북위 24도에서 48도, 경도 67도에서 125도선 안에 들어 있다. 북아메리카를 반으로 나눈다고 가정하면 캐나다는 북쪽의 절반, 미국은 남쪽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리고 남쪽으로 중앙아메리카의 꼭지를 이루는 멕시코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미국은 서쪽으로는 태평양, 동쪽으로는 대서양에 접해 있으며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카리브 해를 내려다 보고 있다.

이에 따른 자연적 그리고 인위적 국경선의 길이는:

  • 해안선: 19,924 km
  • 캐나다에 접한 국경선: 8,893 km (알래스카 주 2,477 km 포함)
  • 멕시코에 접한 국경선: 3,326 km

이 나라의 면적은:

  • 50개주와 컬럼비아 특별구 포함: 9,372,615 km²
    • 땅의 면적: 9,158,960 km²
    • 강과 호수의 면적: 470,131 km²

미국의 지형은 국토가 넓은 만큼 매우 다양하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 특유한 대지형(大地形)의 존재와, 이들 대지형의 남북방향으로의 배열이 그 특징이다. 대륙의 동쪽에는 오래된 지층으로 형성되는 고원상(高原狀)의 산지가 대서양 연안을 따라 뻗고, 서쪽에는 비교적 새로운 대습곡산맥(大褶曲山脈)이 솟아 있으며, 두 산맥의 중간에는 넓은 내륙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하천은 내륙평야와 서부 산악지대에 많고, 주요 호소(湖沼)는 서쪽의 산간분지(山間盆地)와 내륙평야 북부에 분포하고 있다. 이 대지형이 탁월한 미국의 지역은 더욱 작은 소지형을 인정함으로써 각종 지형구로 나눌 수 있는데, 1928년에 페네만과 존슨은 이들 각 지형을 8개의 대구분과 이를 더욱 세분한 25개의 지역별 구분으로 나누었는데, 이것이 현재도 미국 지형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요 산맥으로는, 환태평양조산대(環太平洋造山帶)의 일환으로서 알래스카로부터 남아메리카에 걸쳐 뻗는 코르딜레라 2산계(山系)가 미국의 서쪽에서 국토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남북방향으로 달리고 있는데, 이 산지에는 동쪽으로부터 로키 산맥, 산간 대지(山間臺地), 캐스케이드 산맥이 차례로 솟아 있다. 알래스카에 있는 매킨리 산은 해발 6,192m로서 미국뿐만 아니라 북아메리카에서도 가장 높은 산이다.

한편, 동부 대서양 연안쪽의 산지로서는 애팔래치아 산맥이 있고, 코르딜레라 산계와의 사이에 펼쳐지는 내륙평야는 5대호 남쪽의 중앙 저지와 로키 산맥 동쪽의 그레이트플레인스로 형성된다. 이 내륙평야의 5대호에 가까운 지역에서는 대륙빙하의 영향을 두드러지게 볼 수 있다. 내륙평야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미시시피강이 흐르고 있다. [4]

미시시피 강을 끼고 내륙 지방은 주로 평야, 습지 및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높지 않은 구릉지대, 남쪽의 플로리다 반도와 그 인근 지역은 반열대성 기후에 해당되며, 서남쪽으로는 몇몇 사막들이 펼쳐진다. 서쪽으로는 로키 산맥이 길게 뻗어 있으며 산맥 서쪽으로는 캘리포니아 주를 중심으로 건조한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리고 알래스카는 북극 지방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으므로 툰드라 기후가 지배적이며,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섬들로 이루어진 하와이열대성 기후와 활화산 마우나로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의 주요 하천 [4]
하천명 연장(㎞) 유로
미시시피 강 6,530 미국의 통계에서는 미네소타주의 호소지대를 수원으로 하는 흐름을 미시시피강으로 하고, 전장을 3,757㎞로 잡고 있으나, 보통은 미주리강의 수원까지를 잡아서 세계 제1로 한다.
미주리 강 3,700 미주리강의 길이는 미시시피강으로 합류하는 곳까지를 나타낸다.
리오 그란데 강 3,016 콜로라도주-멕시코만
유콘 강 2,780 캐나다의 유콘 테리터리-알래스카·베링해
아칸소 강 2,320 콜로라도주-미시시피강
콜로라도 강 2,176 로키산맥-캘리포니아만(멕시코)
콜롬비아 강 1,971 캐나다-태평양(오리건주와 워싱턴주 사이)
스테이크 강 1,667 와이오밍주-태평양(워싱턴주)
레드 강 1,630 오클라호마주-미시시피강
카네이디아 강 1,450 뉴멕시코주-아아칸소강


[편집] 기후

미국은 북극에 가까운 알래스카 주부터 적도에 가까운 플로리다 주마이애미까지 그야말로 지구에 있는 모든 기후와 지형을 다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기후는 지역에 따라 상당한 변화를 볼 수 있으나, 온대기후의 지역이 가장 많고, 북부엔 냉대기후, 남부인 플로리다 반도에는 아열대 기후, 서부의 내륙지방에는 사막기후도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장마비는 볼 수 없다. [4]

[편집] 동북부 (Northeast)

대서양 해안을 따라 이 있고 대서양을 끼고 있어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우며, 비가 약간 적은 것을 제외하면 서울과 비슷한 날씨이다. 사계절이 있으며 눈이 많이 온다.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 인구가 많은 대도시들이 집중되어 있다. [4]

[편집] 동남부 (Southeast)

조지아 주플로리다 주가 대표적이다. 조지아는 일반적으로 온화한 기후의 성격을 띤다. 시원한 겨울은 북부산간 지역의 특징이다. 주도(state capital)인 애틀란타 지역을 중심으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1996년 하계 올림픽이 애틀란타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조지아 주는 마틴 루터 킹이 인종 차별을 없앤 곳이기도 하다. 서경 100 이동(以東)의 지역에는 연강우량이 500㎜를 넘어 일반적으로 습윤하며, 또 남북의 위도차의 영향이 현저하게 나타난다. 멕시코만 연안을 중심으로 하여 여름에 발생하는 허리케인은 태평양에서 발생하는 태풍과 성질·구조가 비슷하며, 각지를 엄습하여 큰 피해를 준다. [4]

[편집] 중서부 (Midwest)

내륙 지방이라 여름에는 서울과 같이 습도가 높고 더우며 겨울에는 매섭게 춥고 눈이 많이 온다. 특히 중앙저지는 남북방향에 가로막는 산지가 없기 때문에, 겨울에는 캐나다로부터 추위가 남하하고, 여름에는 멕시코만으로부터 습기를 품은 더위가 북상하므로 기후는 상당히 혹독하다. [4] 중북부 지역(미네소타 주, 일리노이 주, 미시간 주) 등은 덥고 춥고, 중남부 지역(미주리 주, 루이지애나 주) 지역은 남쪽으로 갈수록 겨울이 짧고 여름은 훨씬 더 습하다. 특히 일리노이 주미시간 주 같이 오대호에 가까이 있는 주들에서는 호수들과 잘 어울러진 멋진 풍경들을 즐길 수 있다, Arkansas.

[편집] 건조 기후 지역

동서가 산맥으로 둘러싸인 높은 산간분지는 연간 강우량 250㎜ 이하로 인해 사막이 많고, 또 대서양 연안이나 멕시코만 연안에서 1,000㎞ 이상이나 떨어져 있는 대평원의 서쪽에서는 연간 강우량이 500㎜에 이르지 못하는 구역이 많아 반사막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봄의 모래폭풍이나 겨울의 블리자드에 의해서 농목업에 자주 막심한 피해가 생긴다. [4]

[편집] 서부 해안 지방 (West Coast)

캘리포니아는 해안의 중남부를 차지하고 북쪽은 오리건 주워싱턴 주, 남서부는 여름에 건조하고 더우며 겨울은 얼음도 안 얼 정도로 따뜻하다. 높은 을 등지고 이어 겨울엔 스키도 타지만 사막도 있다. 캘리포니아 북쪽과 오리건 워싱턴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도 많이 춥지 않다. 시애틀엔 겨울에 비가 많으며 대부분이 해양성기후이다. 시에라캐스케이드의 북부는 편서풍대(偏西風帶)에 들어 있고 해안 가까이에 높은 산맥이 있기 때문에 많은 강우가 있다. 연간 2,000㎜를 넘는 비와, 연평균 10 의 기온으로 인해 아름다운 침엽수림대가 발달해 있다. 남부는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며, 4월부터 10월까지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다. 기온도 연교차(年較差)가 적고 연평균도 높아서, 샌프란시스코는 13 , 샌디에이고는 16 정도이다. [4]

[편집] 정치, 외교 및 군사

[편집] 정치

미 국회의사당.

미국은 하나의 연방 정부와 50개의 주정부로 구성된 연방공화국이다. 1789년에 제정된 미국 헌법은 일부 선택적인 권력만 연방 정부에 위임하고 나머지는 주정부의 권한으로 유보시켜 놓았다. 국방·외교 정책·대외 무역의 조정 기능, 통화(通貨), 최고 법 집행기능, 주간통상(州間通商)의 조정기능, 이민 등은 연방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임권에 속한다. 주정부의 주요기능은 교육, 농업, 자연보호, 고속도로 관리, 차량 감독, 공공안녕, 교도행정, 주내 통상의 조정, 교육·보건·복지 정책의 시행 등이다.

백악관.

헌법은 연방정부의 권력을 행정부·입법부·사법부 등 동등한 자격의 3부로 분립시켜놓았다. 각 주도 연방정부와 매우 비슷한 정부구조를 갖고 있다. 최고 행정권은 대통령에게 주어지는데 대통령은 50개주와 컬럼비아 특별구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선거인단에 의해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이다. 미국 대통령은 국가원수, 군의 최고사령관, 조약체결권자로서 임무를 수행한다. 또한 행정수반으로서 입법의 제안, 대외정책의 입안 등의 권한을 가진다. 입법권은 양원제로 나뉘는데 435명의 하원과 100명의 상원에 부여되어 있다.

각 주는 6년 임기의 상원 의원 2명을 선출한다. 하원 의원은 일반투표에 의해 선출되며 임기는 2년이다. 하원의 의원수는 각 주마다 10년 단위의 인구조사를 실시하여 파악되는 인구에 비례해 할당된다. 사법부는 상원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는 9명의 법관으로 이루어진 대법원(Supreme Court)이 이끈다. 대법원은 재심의권을 사용해 헌법에 위배되는 입법부·사법부·행정부의 법안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 하급 법원의 판결을 다루는 최종 상소심 법원이기도 하다.

중도좌파 성향인 민주당과 중도우파 성향인 공화당 등 두 정당이 선거정치의 중심을 이룬다. 각 정당은 폭넓은 유권자층의 지지와 정치적으로 광범위한 이해관계자들을 모색하므로 양 정당은 일반적으로 중도적인 정책을 표방한다. 양 정당의 유권자층은 비교적 독립적인 유권자층으로 서로 중복된다.

[편집] 외교

미국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전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외교적 정책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워싱턴 DC대사관이 있으며 영사관들도 많다.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의 외교적 목표의 대상이 된다.

다만, 쿠바, 이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부탄, 수단, 중화민국과는 공식적인 외교 관계가 없다.

미국은 국제 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이며, G8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회원국이다. 미국과 영국은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에 있다. 미국은 콜롬비아에 대하여 특별한 군사적, 상업적 협력과 원조를 받고 있다. 이는 국내 무장단체에 대항하기 위한 플랜 콜롬비아(Plan Colombia)에 따른 것이다.

[편집] 미영 관계

영국과 미국은 가까운 군사적 동맹체이다. 양국은 동일언어를 사용하는 등 문화적으로 매우 유사할 뿐만 아니라 군사적 연구와 정보 기구를 공유한다.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토마호크 미사일이나 트라이던트 미사일과 같은 무기를 구입하였고,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해리어(Harrier)와 같은 장비를 구매하였다.

미국은 또한 영국에 대규모 군대를 주둔하고 있다. 최근에, 영국의 총리와 미국의 대통령은 매우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면 토니 블레어빌 클린턴 및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 간의 관계, 1980년대 마거릿 대처로널드 레이건, 엘리자베스 2세콘돌리자 라이스 등의 관계가 그러하다. 현재 영국의 정책에서 미국과의 관계는 영국의 "가장 중요한 2자간 관계"임을 표명하고 있다. [5]

[편집] 한미 관계

이 부분의 본문은 한미 관계입니다.
노무현 전(前) 대통령부시 전(前) 미 대통령이 함께한 모습

대한민국과 미국의 관계는 19세기 중반 조선의 통상을 요구하던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8년 대한민국은 미국의 원조로 민주 정부를 수립하였고 그 이래로 매우 광범위하게 발전하여 왔다.

미국은 한국 전쟁(1950년~1953년) 당시 유엔군을 조직하여 대한민국 편에서 참전하여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고 휴전 이후에도 주한 미군이 계속 주둔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주한미군에 의한 군사적 지원 속에서 매우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제5공화국 때는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도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 주한미군 한강 독극물 무단 방류 사건,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등으로 반미 감정이 고조되기도 하였다. 2007년 한미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었고 문서 공개 이후 상당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타결했다. 현재, 양국은 군사적, 외교적 뿐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편집] 군사

이 부분의 본문은 미국의 군사입니다.
니미츠급 항공모함 USS 로널드 레이건.

미국의 군대는 미국 육군·미국 해군·미국 해병대·미국 공군으로 구성되며, 버지니아 주 알링턴 군에 있는 펜타곤(Pentagon) 건물에 본부를 둔 미국 국방부의 지휘를 받는다. 군대와 유사한 단체인 미국 해안경비대(Coast Guard)는 운수부의 지휘를 받는다. 징병제는 1973년 폐지되고 그 뒤부터 모병제에 의한 지원병으로 군을 구성하고 있다.

미군은 전시에 소집될 수 있는 예비군을 유지하고 있다. 또 각 주는 주지사의 요청에 의해 언제라도 소집할 수 있는 예비군으로 편성된 미국 주방위군(National Guard)을 보유한다. 군 예산의 상당부분이 재료 및 연구개발비에 소비되기 때문에 군사계획은 정치적·경제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다. 또한 군의 영향은 상호방위와 군사지원을 위한 다자간·양자간 조약을 통해 다른 국가에까지 미친다. 미국은 아프리카·아시아·유럽·라틴아메리카 등지에 군사기지를 갖고 있다.

1947년에 제정된 '국가안전보장법'은 안보와 정보수집 활동을 위한 일원화된 지휘권을 창출했다. 이 법안에 따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중앙정보국'(CIA)이 창설되었다. CIA는 NSC의 감독하에 대외정보수집업무를 전담한다. 국방부 산하기관인 국가안전보장국(NSA)은 암호해독과 통신정보업무를 담당한다.

[편집] 미국의 국외영토

1890년 이래의 외교와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해외에 영토를 획득하였는데, 이들 해외의 여러 영토는 신탁통치령과 파나마 운하 지대 이외는 속령(屬領)이라고 불린다. 이들 국외영토는 미국의 50개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괌, 북마리아나제도, 미국령 버진아일랜드, 아메리칸 사모아 주민들은 미국 시민권자들이지만,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며, 미국 중앙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는다. 또한 자체적인 의회를 가지고 있다. [4]

[편집] 경제

이 부분의 본문은 미국의 경제입니다.
경제 지표
실업률 7.2%2008년 12월[6]
GDP 성장률 -0.5%2008년[7]
CPI 인플레이션 0.1%2007년 12월 – 2008년 12월[8]
부채 10조 554억 달러2008년 12월 29일[9]
빈곤율 12.5%2007년[10]

1950년대 후반부터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와 일본의 경제부흥이 진전됨에 따라 전후와 같은 미국 경제의 압도적 지배력은 약화되고, 1958년 이후는 국제수지도 적자로 전락하였다. 1973년 1월에는 유럽과 일본의 외환시장에서 달러화(貨)의 투매가 일어나 마침내 달러화의 평가절하(平價切下)가 이루어져 전후 세계통화의 기준으로 되어 있던 달러화의 신화(神話)는 무너지고 말았다.

1980년대에도 인플레이션이 계속되어, 1988년에는 처음 10개월간은 1981년 이래 최고인 4.5%를 기록하였다. 또한 소비자물가도 4.6%나 올라 역시 7년만에 최고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의 우려 속에서도 계속된 달러화의 약세 정책, 제3국에 대한 시장개방 압력 등으로 클린턴 행정부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연평균 3% 내외의 높은 성장을 달성했으며, 물가안정과 기업투자 등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국제 경제 사회에서의 상대적 지위가 저하되었다고는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전반적으로 경기가 회복으로 미국이 세계 최대의 자본주의 국가이며, 가장 부유한 초강대국의 하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편집] 농림수산업

미국의 전체 토지면적 중에서 약 절반 가량이 농경지(목초지와 방목지 포함)로 이용된다. 농업생산성이 급속하게 향상되어 적은 노동력으로 전례없이 많은 생산이 가능해졌다. 농업 인력은 감소한 반면 농지의 소유 집중화와 기계화는 증가했다. 주요 농작물은 미국의 중심부에서 자라는 옥수수·밀·보리 등과 주로 남부에서 재배되는 알곡용 수수·목화쌀·쌀·콩·담배 등이다. 과일로는 플로리다·텍사스·캘리포니아 등지의 오렌지·그레이프 프루트·레몬·라임, 태평양 연안의 포도, 그리고 하와이의 파인애플, 북쪽의 선선한 지대에서 생산되는 사과·버찌 등이 있다. 생산된 대부분의 환금작물은 실질적으로 국내 수요를 충당하고도 남기 때문에 외국으로 수출되며 미국은 주요 식량수출국이기도 하다. 주로 남서부와 서부에 있는 경작지의 약 1/10이 관개시설을 갖추고 있다. 생산량은 상업용 화학비료, 살충제, 제초제 등의 사용증가와 더불어 매년 향상되어왔다.

미국의 주요가축은 소·돼지·말·양 등이다. 낙농업은 특히 어퍼미드웨스트와 뉴잉글랜드에서 발달되어 있는데, 우유·치즈·버터의 생산은 국내수요를 충당하고 남아 해외에 수출하거나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아 저장한다. 소가죽과 양모의 생산은 피혁 및 섬유 산업의 기초가 된다. 소와 양떼는 지금도 사우스웨스트와 로키 산맥 주변에 있는 주들의 주요자산이다. 식용사육조류 산업은 남동부에 집중되어 있다.

엄청난 면적의 미국 삼림지 가운데 2/3가 경제적으로 이용되는 삼림지역으로, 주기적으로 벌목되고 다시 녹화된다. 삼림이 가장 많은 지역은 알래스카를 포함한 서부이지만 남부와 북부에도 대규모 삼림이 있다. 미국은 세계적인 주요목재생산국이다. 미국은 세계의 주요어업국에 속하며, 어업선단은 대서양, 태평양, 북극해, 카리브 해, 멕시코 만 등지에서 조업한다.

[편집] 광물 자원

광업과 채석업이 잘 발달되어 있으며 고도로 기계화되어 있다. 주요 유전(油田)은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멕시코 만, 루이지애나, 오클라호마 등지에 있다. 천연 가스의 주요매장지도 동일한 지역에서 발견된다. 발굴 가능한 석탄 매장지는 주로 애팔래치아 산맥와이오밍에 집중되어 있다. 미국에서 추출되고 가공되는 금속들 가운데 철광석·구리·보크사이트·납·아연·몰리브덴·수은·텅스텐·티탄광·은 등이 가장 중요하다. 인회암·칼륨·석염·석회석·석고·석회·이회토(泥灰土)·부석(浮石)·붕소·활석 등도 발굴된다. 미국은 운모(雲母)·중정석(重晶石)·황·장석(長石) 생산에 있어 세계적인 생산국에 속한다.

[편집] 공업

미국에서의 공업 발달은 미영 전쟁(1812∼1814) 이후, 영국으로부터의 공업제품 수입이 단절된 것을 계기로 국내 공업이 섬유공업을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북부의 산업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난 남북전쟁은 미국이 공업국으로 성장하게 되는 주된 요인이 되었다. 미국은 풍부한 지하자원과 2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비롯된 국제적 우위성을 배경으로 발전을 계속하여 세계 최대의 공업국으로 성장하였다.

미국의 공업 생산량은 일본·독일·프랑스의 합계에 필적할 뿐만 아니라, 항공기·전자 계산기·우주 산업 등 기술적인 면에서도 최첨단을 걷고 있다. 공업은 국민 총생산의 26%, 취업인구의 25%를 차지하는 이 나라 최대의 산업으로 세계에서 그 생산성이 가장 높다.

중화학 공업의 비율은 51%로서 독일·영국보다 낮으나 일본보다는 높다. 미국 공업 최대의 특징은 거대한 독점자본에 의한 과점(寡占)이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업 관계 기업의 매출액에 의한 세계적인 상위 기업이 많다. 대표적으로 자동차 업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제너럴모터스(GM)·포드·크라이슬러, 전기업계의 상위를 차지하는 제너럴 일렉트릭·IBM·웨스턴 일렉트릭, 석유업계 1위인 엑슨모빌, 철강업계 1위인 US스틸, 화학업계 1위인 뒤퐁, 항공여객기 업계 1위인 보잉사(社)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상위권 50사(社)가 전국 생산량의 65%, 취업자의 75%를 독점하고 있다. 철강 부문에서는 일본이, 자동차와 가정용 전기제품 부문에서는 일본·독일 등이 눈부신 진출을 보여 미국의 국제적 독점의 비중이 낮아지고는 있으나, 이들 제품 대신 보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항공기·우주산업·컴퓨터 등을 대표적인 공업제품으로 생산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컴퓨터가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은 그 좋은 예이다. 그리고 이들 공업은 정부의 국방지출에 의하여 지탱되는 군수 산업이기도 하여, 이 군산복합체가 새로운 기술개발의 추진력이 되고 있다. 미국 공업은 원래 자원입지형으로 북동부에서 오대호 연안에 이르는 지역에 석탄과 철광자원에 의존한 공업지대를 형성하여 왔다. 그러나 1980년대 경제구조의 개편이후 새로운 지식·기술 집약형 공업이 주류를 이루면서 텍사스 주나, 애리조나 주 등의 남서부, 또는 캘리포니아 주워싱턴 주와 같이 태평양 연안의 쾌적한 지역을 일컫는 선벨트(Sun belt) 지역에 공업이 분산입지하여 새로운 공업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편집] 서비스 산업

미국 경제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종목은 서비스 산업으로, 1996년 현재 노동인력의 약 1/3이 여기에 종사하며, 국내총생산 공헌도에 있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의료·보건업, 전문업, 사회사업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 호텔·리조트·휴양시설의 설립과 함께 최근 시작된 레저 산업도 서비스 분야에 속한다.

플로리다, 남캘리포니아, 하와이 등의 경관이 수려한 해변과 낚시터가 있는 아열대지역은 관광업의 중심지이다. 그밖에 로키 산맥과 시에라네바다 산맥, 뉴잉글랜드 지역의 겨울 스포츠 리조트도 관광명소로 꼽힌다. 대규모 메트로폴리스 지역도 박물관과 문화행사 등을 통해 관광객의 관심을 끈다. 동부 연안주의 역사 유적지, 서부의 불가사의한 자연경관과 국립공원, 캐나다-미국 국경의 나이애가라 폭포 등도 국내 및 외국 관광객을 매료시키는 주요관광명소이다.

[편집] 무역

세계 제1의 물적(物的) 생산력을 가진 미국은 세계 무역시장에서도 제1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상대적 지배력은 독일·일본·이탈리아 등의 대두로 점차 저하되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1947년에 33%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했으나 1955년에는 17%로 거의 제2차 세계 대전 전의 수준으로 저하되고, 최근에는 12%로 떨어져 급속한 신장세를 보인 독일의 11.3%와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이다. 미국이 유럽에서의 절대적 지배력을 독일에 물려주었으며,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그 지위를 잠식당하고 있다.

또한 국제수지면에서도 미국은 원래 무역수지의 흑자로서 자본유출(대외투자·경제원조 등)의 적자를 메워 국제수지의 균형을 유지하여 왔으나 자본수지 적자의 확대와 함께 1960년대 중반부터 무역수지도 약화되기 시작하여, 1971년에는 1888년 이래 최초의 적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는 산업경쟁력의 약화와 달러화의 과대평가 및 생산능력을 넘어선 지나친 소비경향에 의한 것이다.

주요 수출상대국은 캐나다, 멕시코, 일본, 영국, 독일, 대한민국, 네덜란드, 타이완, 프랑스 등이고, 수입 상대국은 캐나다, 일본, 멕시코, 중국, 독일, 영국, 타이완, 대한민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다. 수입품은 자동차, 기계류, 사무용기기(컴퓨터 포함), 섬유, 텔레비전·VTR, 원유 등이고, 수출품은 기계류, 자동차, 사무용기기(컴퓨터 포함), 비행기 등이다.

[편집] 에너지

미국 전기 에너지의 약 3/4이 화력발전소에서 생산(상당수가 석탄)되며 나머지는 핵발전소와 수력발전소가 충당한다. 수력 자원은 태평양 지역과 산맥 지역에 거의 집중되어 있는데, 두 지역에서 미국 수력발전소 발전 용량의 절반 이상을 생산한다. 알래스카는 미국 수력발전 잠재용량의 거의 1/5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남동부의 테네시 강 유역에는 거대한 수력발전 시설이 들어서 있다.

[편집] 사회

[편집] 인종과 언어

출신 국가별 인종 분포, 2000년 기준.

미국의 발전은 그 역사를 통해서 유럽·아프리카·아시아로부터의 이민에 의해서 유지되어 왔는데, 오늘날 이들 민족은 융합하여 새로운 아메리카 민족을 구성해 가고 있다. 그러나 같은 영어를 사용하고, 같은 미국적인 생활을 영위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외견상 분명히 몇 인종으로 나눌 수 있다. 유럽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며, 그 중에서도 출신 국가별로는 영국계, 독일계, 아일랜드계 등이 가장 많다. 최초로 이주해 온 것은 영국인과 네덜란드인이며, 독립할 때까지는 이 밖에 독일인 등이 추가되었지만 중심은 영국인이었으므로 현재도 미국에서는 영어가 일상어이다. 남북전쟁 이후는 종래의 북유럽계의 이민에 비하여 이탈리아인·슬라브인 등의 남유럽계·동유럽계 이주자의 비중이 높아지고, 20세기 초에는 전 이민의 8할을 이들 이민이 차지하였다. 이민을 가장 많이 온 때는 1880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이며, 그 전후를 포함하여 1820년부터 1961년까지의 4,200만 명이 입국하였다. 또한 19세기 말부터는 중국인·일본인·한국인·필리핀인·멕시코인·쿠바인·푸에르토리코인 등이 증가하고 있어, 이들을 총칭하여 신이민이라고도 한다. 마찬가지로 19세기 이래 이주하게 된 유대인은 특이한 존재로서, 현재 전세계 1,500만의 유대인 중 약 550만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데, 그들 중에는 자산가나 훌륭한 학자가 많고, 각지에 집단적인 생활을 하며, 미국 사회에서는 무시하지 못할 세력을 가지고 있다. [4]

비(非)백인 가운데 가장 큰 인구를 가진 소수민족은 히스패닉으로, 라틴 아메리카로부터의 이민 유입 및 높은 출산율 등으로 오랫동안 가장 많은 소수 집단이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넘어섰다. 또한 서부 지역에 살고 있는 상당수 히스패닉계 주민은 원래 멕시코 영토였던 그들의 거주지가 미국에 병합됨으로서 자동적으로 미국인이 되기도 했다.

흑인은 전체 인구의 약 12%를 차지한다. 아시아계 이민은 아직 수적으로는 미미한 편이며, 한국계 주민들은 약 2백만 명, 중국인은 약 3백만 명, 일본인은 약 80만 명 정도로 대부분이 캘리포니아 주를 중심으로한 서부지역에 많다.

이 부분의 본문은 미국내 아메리카 원주민입니다.

미국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오늘날 아메리카 대륙에 해당하는 영토내에 거주하고 있는 원주민, 그리고 이들의 현대 후손이다. 이 표현은 광범위한 부족, 국가, 민족을 포괄하며 이 중 많은 무리들은 오늘날에 정치적 공동체로 살아남았다.

미국의 인종 구성
인종 비율(%) 인종 비율(%)
백색인종 87.5 기타 36.6
영국계 15.3 황색인종 1.1
독일계 12.7 아메리카 인디언계 0.4
아일랜드계 8.1 일본계 0.3
에스파냐계 4.4 중국계 0.2
이탈리아계 4.3 필리핀계 0.2
프랑스계 2.6 흑색인종 11.1
폴란드계 2.4 기타 0.3
러시아계 1.1

미국에는 전세계 거의 모든 국가 출신이 모여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공식적인 공용어는 영어이다. 히스패닉계 인구가 많은 서부 지역에서는 스페인 어를, 특정 민족의 인구가 많은 구역은 그 민족의 언어를 공공 표지판 등에 병기하기도 한다.

[편집] 미국의 이민 정책

미국은 이민의 국가이기 때문에 이민 정책은 국가의 기초를 설계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 가운데 하나다. 미국은 경제발전을 위한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 유색인 이민을 받아들였으나 백인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시대에 따라 유색인 이민문호를 조절했다.

미국은 1850년 무렵부터 아시아계 이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다가 이들의 영향력이 커질 조짐이 있자 1882년 중국인 이민부터 금지시키더니 1924년 아시아계 이민을 완전히 금지시켰다. 당시 미국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여기에서 예외였다. 캘리포니아주는 이보다 앞선 1913년 외국인 토지소유 금지법을 제정해 외국인의 토지소유를 막았는데 표적은 아시아계였다. 토지를 소유하면 자본을 축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법은 미국시민(미국 시민권을 소유한 자)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정했는데 아시아계 이민 1세는 미국시민이 될 수 없었다.

그러다 2차 대전에서 중국과 연합국으로 싸우게 되자 중국에 이민문호를 개방한 것이 1943년, 인도가 1946년, 한국일본에 대해서는 1952년에 와서야 이민문호를 다시 열었다. 문호를 개방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이민이 허용되는 숫자는 생색내기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1952년 개정법으로 아시아 이민 1세도 미국시민이 될 수 있었다. 시민이 될 수 있다는 말은 투표권이 있다는 말로 그래야 크건 작건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한국전쟁까지만 해도 미국은 이민의 국가이면서도 인종차별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11]

구체적으로 인종 문제가 사회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한 것은 1965년 이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활약에 힘입은 바가 크다.

[편집] 인종 문제

앵글로-색슨족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 북방계의 이주자들은 이주 시기가 빨랐다는 점도 있어 일찍이 융합하였으며, 현재 미국 사회의 주인공적 위치에 있다. 이에 대하여 19세기 후반 이후 이주한 신이민들은 일반적으로 신참자(新參者)로서 생활의 기반이 약한 데다가 유대인·아시아인 등은 인종·문화가 구(舊)이민과 이질적이어서 동화하기 어려우며, 배척을 당하는 일도 많았다. 따라서 그들은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경향이 있고, 사회생활에서도 차별대우를 받는 일이 있다. 그러나 현재 인종문제로서 최대의 문제는 인구의 1할을 차지하는 흑인의 문제이다. 식민지 시대에 아프리카로부터 노예로 팔려 온 그들은 해방 후 전국 어느 곳에나 거주하게 되었는데, 아직도 일부에선 교육·취직·거주 등의 분야에 불평등한 점이 남아 있고, 이에 항의하는 흑인의 행동도 차츰 격렬해지고 있어, 오늘날 미국 내에서 최대의 사회 문제로 되어 있다. 또한 푸에르토리코인은 뉴욕을 중심으로 하는 북부에 한정되어 있고 절대수도 많지는 않은데 신이민으로서 흑인과 함께 사회의 최하층을 형성하는 수가 많다. 그리고 빈곤으로 인해 그들의 생활상태는 차츰 사회문제화되어 가고 있다. [4]

[편집] 교육

이 부분의 본문은 미국의 교육입니다.
버지니아 대학교, 토머스 제퍼슨이 설계했으며, UNESCO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지역·주·연방 간의 계획 및 정책의 협조체제는 교육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역사적으로 교육은 주와 지역정부의 소관사업으로 간주되었다. 3,000개 이상의 대학과 종합대학교 중에서 군사학 분야의 일부 학교만이 연방기관에 속한다. 그러나 1862년 연방정부가 농과대학과 공과대학을 설립할 목적으로 주정부에 연방공유지를 불하(이런 대학은 '토지불하대학'으로 불림)하기 시작하면서 차츰 모든 차원에서 교육에 관여해왔다. 그밖에도 학교급식계획을 지원하고, 아메리카 인디언 교육을 관할하며, 대학에 연구비를 지급하고, 대학생에게 학자금을 융자해주며, 퇴역군인 교육의 재정을 지원한다.

초등교육은 여전히 일차적으로 지역정부의 소관이지만,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1964년의 민권법은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학군에 대해 연방정부가 재정지원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학교가 많은데도 인종차별지역에 사는 흑인들의 자녀는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 학교에 다니기 위해 먼 거리를 통학해야 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부분의 주에서 6세에서 16세까지 무상·의무 교육을 실시한다. 미국 학생들의 절대다수가 중등교육을 마치는 17, 18세까지 학교에 다닌다. 미국에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고등교육기관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명문 대학교로는 하버드대학교(매사추세츠)·예일대학교(코네티컷)·프린스턴대학교(뉴저지)·컬럼비아대학교(뉴욕)펜실베이니아대학교(펜실베이니아)브라운대학교(로드아일랜드)시카고대학교(일리노이)·스탠퍼드대학교(캘리포니아)·캘리포니아 대학교매사추세츠 공과 대학교(MIT) 등이 있다.

[편집] 언론

미국의 대부분의 방송은 민영 방송이지만 미국의 소리, 자유아시아방송, 자유유럽방송 등의 국제방송은 국가가 운영한다.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 LA 타임즈(Los Angeles Times), AP 등을 비롯한 세계적인 신문사와 통신사들이 많이 존재한다.

[편집] 문화

이 부분의 본문은 미국의 문화입니다.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컨텐츠인 애플 파이, 야구, 성조기

아메리카 대륙에 신세계를 구축한 개척자들은 엄격한 청교도이며 그 금욕사상은 모든 경쟁이나 즐거움을 죄악시하여 종교적인 활동을 제외하고 생산과 결부되지 않은 활동을 부정하였다. 따라서 영국을 중심으로 한 ‘옛 세계’에서 도입된 예술·스포츠 문화가 신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개척민들은 그들 고유의 언어와 문화관을 가지고 있었으나 빠르게 미국사회에 동화되었고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건축, 미술, 문학, 음악 등 다방면에서 미국적인 사고와 양식이 표출되었으며, 특히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대중음악과 영화를 들 수 있다.

풍부한 자본과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미국의 대중음악과 영화는 세계 각국의 문화에 빠르게 흡수, 발전되었다.

[편집] 종교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이민 온 개신교 신자들 즉, 청교도들은 초기에는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전통종교를 사교(邪敎)로 이해하여 배격했으며, 같은 기독교 종파들인 성공회로마 가톨릭 교회성공회 기도서 사용 금지, 성공회 신자 추방, 로마가톨릭교회 신자 이민거부로 배척하였다.

하지만 건국 후에는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였고, 다수의 인종·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라는 미국의 특징상 거의 모든 종류의 종교를 볼 수 있지만, 유럽에서 온 이민이 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주 1회 교회에 가는 사람은 점차로 적어지고 있다. 개신교 신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그외 로마 가톨릭 교회, 유대교, 정교회, 불교 및 기타 다양한 종교가 있다. 또한 유대교도도 많아서 이스라엘의 인구보다도 더 많은 유대교도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개신교도 52%, 로마 가톨릭 교회신자 24%이며, 그밖에 모르몬교도 2%, 유대교도 1%, 무슬림 1%, 기타종교 10%, 무종교 10%이다. 종교적 신념도 미국인들은 매우 높아 신 또는 영혼의 존재를 믿는 비율이 94%에 달할만큼 종교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로마 가톨릭 교회와 유대인을 공격했던 시기도 있었고, 존 F. 케네디외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지 않았던것도 이와같은 배경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과 같이 종교나 민족이 미국의 외교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일도 적지 않다. [4]

[편집] 청교도들의 미국 개척

영국 종교개혁으로 영국 성공회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된 이후, 일부 칼뱅주의자들은 철저한 개혁을 요구하였다. 이들은 성서에 언급되지 않은 전통들을 배척한 성서주의자들로서, 영국 성공회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일부 청교도들은 네덜란드와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네덜란드에 이주한 ‘암스테르담 제2 영국교회 분리주의자 형제’들을 후에 침례교 또는 침례교인이라고 불렀다.

미국에 1620년 이주한 이들은 영국 플리머스 항을 떠나 메이플라워호에 탑승했는데, 본래 이들은 버지니아 식민지에 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태풍을 만나면서 플리머스 정착지에 이주하였다. 이 플리머스 정착지는 메사추세스 식민지에 흡수된다.

[편집] 로저 윌리엄스의 종교의 자유 포용

미국은 청교도들이 개척한 나라로서 초기 청교도 사회에서는 기독교인만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다. 물론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갖고 있었고, 청교도 목사들은 신자의 자녀에게만 세례를 집전했다. 그런데 이들은 다른 사상이나 종교를 다소 배격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실제로 로저 윌리엄스(Roger Williams) 前 성공회 사제는 제정분리사상 즉, 종교정치의 분리사상을 주장하여, 1635년 청교도 사회로부터 추방되었다.

로저는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도움을 받아 메사추세스주 남부에 정착하여 프로비던스(Providence, 현재 로드 아일랜드)를 건설했다. 프로비던스는 종교의 자유를 존중했기 때문에, 앤 허친슨처럼 종교적 박해를 받던 사람의 안식처가 되었다. 앤 허친슨은 보스턴 주민이었는데, 창세기아브라함 이야기에 근거, 하느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셨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도행전 18장 26절과 디도에게 보낸 편지 2장 3~5절에 근거, 여성도 교회에서 가르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 때문에 재판을 받았다. 결국 그녀는 추방명령을 받았고, 프로비던스로 피신했다. 물론 로저는 앤 허친슨의 신앙을 존중하여 그녀를 프로비던스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이러한 로저 윌리엄의 종교적 자유 포용은 미국 민주주의의 모태가 되었다.

[편집] 마녀 사냥

17세기 청교도 사회에서 기독교의 영향력이 줄어들자, 대다수 청교도들은 이것을 사탄의 세력에 의한 것으로 두려워했다. 이것은 1692년 살렘 마녀 사냥으로 폭발하는데, 메사추세스주 살렘에서 일부 시민들이 마녀로 몰려 고문치사 또는 사형당한 사건으로, 50명 중 19명이 교수형을 당했다. 이 사건은 초기 청교도 사회의 오점 중 하나이다.

[편집] 기독교 근본주의의 등장

근대 미국과 유럽교회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이 영향을 주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 신학의 근대적 해석으로 기독교와 시대의 연관성을 추구했다.[12] 특히 미국교회의 자유주의 신학은 하느님 나라 즉, 하느님의 다스림의 윤리성을 강조한 사회복음주의가 등장하는 등 기독교인의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성향을 보였고,미국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회에서는 대다수 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고 있었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13] 이에 대한 이에 대한 반동으로 미국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기독교 근본주의(The Fundamentalism)를 주장하였다. 근본주의 신학은 일부 감리교회와 극소수의 장로교회와 절대다수의 침례교회에서 영향력을 보였는데, 1915년 출판된 《근본》이라는 소책자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14] 예수의 동정녀 탄생, 예수의 신성, 예수의 대속적 죽음, 예수의 재림,축자영감설에 근거한 성서무오설이 근본주의의 교리적인 특징이며, 예수를 믿지 않는 다른 종교인들은 심판으로 멸망한다는 구원관, 음주나 흡연에 반대하는 종교적인 금욕주의,[15] 신학 교육과 자연과학에 대한 거부도 근본주의의 특징이다.[16][17] 이들 근본주의자들은 조선에서의 개신교 선교를 했기 때문에, 한국 개신교회는 근본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18]

[편집] 현대 미국 교회

현재 미국에서 가장 압도적인 종교는 기독교이며, 86.5%가 기독교인이다. 이 중에서 개신교 신자는 51.3%이며,침례교, 감리교, 미국장로교(Presbyterious Church of USA,PCAUSA), 오순절교회, 그리스도의 교회, 루터교회,미국 개혁교회등의 다양한 교파가 있다. 이중 그리스도의 교회는 미국 교회에서 19세기 소위 환원운동이라는 종교운동으로 발생한 자생적인 교파이다. 로마 가톨릭은 28%로 단일 교단으로는 최대 규모이다. 미국 정교회는 3%이다.[19] 최근 들어 다소 감소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미국에서는 대통령 취임식이나 학교 졸업식에 개신교 목사가 기도를 할 정도로 개신교회의 영향력이 강하다.

한편, 미국 로마가톨릭교회 내 일부 보수주의 법조계 인사들은 보수 정치계와 관계를 맻고 있다. 20세기 초에야 차별이 완화된 미국 로마가톨릭교도들에게 법조계는 유일한 출세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현재 미국 법조계내 보수주의 대변자들은 로마가톨릭교도들인데, 2005년 감리교 신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독실한 로마가톨릭 신자 존 로버츠를 대법원장으로 지명한 데 이어, 또 다시 보수 로마가톨릭교도 새뮤얼 얼리토를 대법관으로 추천하는등 미국 보수 로마가톨릭과 보수복음주의간의 연대가 시도되고 있다.[20]

그외 미국 기독교 교파로는 미국 성공회((Episcopal Church of USA, ECUSA)가 있는데, 청교도들이 미국을 개척한 시기에는 성공회 기도서 사용금지, 성공회 신자 추방등의 탄압을 받았으나, 종교의 자유가 존중되면서 일부 주에서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21] 현재 미국 성공회 관구장 즉, 미국 성공회를 대표하는 지도자는 얼 쇼리 주교(1957년생)이다.

[편집] 문학과 예술

이 부분의 본문은 미국의 문학, 미국의 건축, 미국의 미술입니다.

역사를 통틀어 미국은 일단의 뛰어난 작가들을 배출했다. 코튼 매더와 조내선 에드워즈의 설교집에서부터 벤저민 프랭클린과 토머스 제퍼슨의 불후의 저작에 이르기까지 식민지시대와 건국 초기시대가 미국 문학 속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19세기 문학은 너새니얼 호손, 허먼 멜빌, 에밀리 디킨슨, 에드거 앨런 포, 월트 휘트먼, 마크 트웨인, 헨리 제임스 등과 같은 작가들로 대변되었다. 20세기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존 스타인벡, H. L. 멘켄, F. 스콧 피츠제럴드, 노먼 메일러, 솔 벨로, 존 업다이크 등의 작가들이 이름을 떨쳤다. 희곡 작가로는 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 시인으로는 에즈라 파운드, T. S. 엘리엇, 로버트 프로스트 등이 두각을 나타냈다.

흑인 문학으로는 랠프 엘리슨의 《투명 인간》 (Invisible Man, 1952년)이 20세기 미국 소설 가운데 불후의 명작으로 남았다. 보다 최근에는 여성운동이 정치적인 성격을 띠게 되면서 토니 모리슨, 앤 타일러, 루이즈 에드리히 등의 작품이 애독되었으며 여성 소설의 급속한 팽창을 경험했다.

건축 분야의 경우, 스칸디나비아에서 전해진 통나무집은 신속하게 보급되어 숲이 우거진 프런티어 지역의 상징적인 주택이 되었다. 연방양식, 그리스 부흥 양식, 고딕 양식 등 보다 정교한 건축양식이 19세기에 도시와 시골의 건축물에 이용되었다.

도시들이 소위 황금시대(Golden Age)로 접어들면서 마천루가 등장해 미국 사회의 기술적 업적과 자신감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윌리엄 러 배런 제니와 루이스 설리번은 시카고 출신의 건축가로, 그러한 건축양식의 선구자들이다. 설리번의 제자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9~1959)는 프레리 학파(Prairie School)로 알려진 새로운 건축설계운동을 시작해 20세기초에 미국 전역에 걸쳐 폭넓은 영향을 끼쳤다. 후대의 주요 미국건축가로는 독일 태생의 루트비히 미스 판 데어르 로어, 그의 제자들인 필립 존슨, 로버트 벤투리 등이 있다.

1825~1870년에 유행했으며 황야 그 자체를 소재로 삼았던 허드슨 강파(Hudson River School)는 미국 미술에서 일어난 최초의 토착화 운동으로 여겨진다. 아셔 B. 듀랜드가 그 대표적인 화가이다. 도시생활은 에드워드 호퍼 같은 사실주의파나 스튜어트 데이비스 같은 추상파 화가를 막론하고 20세기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20세기 중엽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로 알려진 미국의 회화양식이 결과적으로 서양미술을 압도하게 되었다. 중심인물은 잭슨 폴럭과 로버트 머더웰 등이었다. 추상표현주의의 위세도 1960년대에 또다른 미국적 양식인 팝 아트(Pop Art)의 등장으로 쇠퇴했다. 앤디 워홀과 로버트 라우셴버그 등의 팝 아티스트들은 대중문화와 상업에서 자유롭게 소재를 선택했다.

종종 조각의 발전은 회화의 발전과 병행되는 경우가 있는데, 루이즈 니벌슨과 마크 디 주베로의 추상화와 클래스 올덴버그의 팝 아트 조각이 바로 그 예이다. 다양한 양식과 경향과는 대조를 이루는 특이한 예술가들이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미국 예술의 현저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고립상태에서 제작된 그들의 작품들은 국가적 경험에서 발견된 본질적인 것을 표현한다. 19세기의 윈즐로 호머와 20세기의 조지아 오키페 등의 화가들이 그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

[편집] 대중 문화

이 부분의 본문은 미국의 대중 문화, 헐리우드입니다.
헐리우드 간판.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고 국제적으로도 영향력이 큰 예술 분야는 영화이다. 하워드 헉스, 조지 쿠커, 오손 웰스, 프랭크 캐프라, 존 포드, 존 휴스턴 등과 같은 미국의 영화제작자들은 영화예술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유럽의 학구적 관심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시즈, 로버트 앨트먼 등 차세대 미국 영화제작자들을 고무시켜 사실적 표현의 수단으로 상업적 영화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개발하도록 했다. 또 20세기에 미국에서 발명된 텔레비전도 때로 영화예술 수준으로 고양되기도 했지만 주로 대중오락과 정보전달의 매체로 머물러 있다.

미국은 독특한 형태의 대중음악을 발전시켰다. 재즈·블루스·컨트리&웨스턴·로큰롤 등의 각 음악형태는 미국 생활을 통해 갖게 되는 공통의 리듬과 관심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가장 인기있는 연주자들로는 재즈의 듀크 엘링턴, 블루스의 앨버트 킹, 컨트리&웨스턴의 행크 윌리엄스, 로큰롤의 엘비스 프레슬리 등을 꼽을 수 있다. 대중문화에 기여한 미국의 또다른 분야는 스테이지 뮤지컬(stage musical)이다. 극예술과 노래를 혼합한 형태인 뮤지컬은 제롬 컨,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리처드 로저스, 조지 거슈윈, 레너드 번스타인, 스티븐 손드하임 등의 작곡가 및 서정시인들의 작품에서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다. 또한 현대의 고전음악분야에서는 찰스 아이브스, 존 케이지, 엘리엇 카터와 같은 유명한 작곡가들을 배출했다.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오케스트라, 보스턴 심포니오케스트라 등은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관현악단이다.

[편집] 스포츠

미국에서 매년 열리는 화려한 스포츠 행사들로는 프로 야구월드시리즈, 대학 미식축구로즈볼, 프로 미식축구의 슈퍼볼, 미국 프로 농구협회(NBA)의 플레이오프전, 프로 아이스하키스탠리컵 대회, 미국 오픈테니스 선수권대회, 미국 프로골프인 협회 선수권대회 등이 있다. 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 경주, 켄터키 더비, 프리크니스 스테이크스, 벨몬트 스테이크스, 서러브레드 경마, 프로복싱 선수권대회 등도 세계적인 관심을 끈다. 미국은 4년마다 열리는 하계 올림픽동계 올림픽 대회의 단체전과 개인전에 대규모의 선수단을 파견한다.

[편집] 부록

[편집] 관련 항목

[편집] 참고 자료

  • 로저 윌리엄과 살렘 마녀사냥에 대한 기사는 《5시간만에 읽는 쉽고 재미있는 교회사》/유재덕 지음/작은 행복을 근거로 작성.

[편집] 주석

  1. 아직도 '미국(美國)'입니까? - 오마이뉴스
  2. Peopling of Americas. Smithsonian Institution,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3. Meltzer, D.J. (1992). How Columbus Sickened the New World: Why Were Native Americans So Vulnerable to the Diseases European Settlers Brought With Them? 38–38. 2009년 3월 24일에 확인.
  4.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미국
  5. FT.com / Home UK / UK - Ties that bind: Bush, Brown and a different relationship
  6. Employment Situation Summary.
  7. Gross Domestic Product.
  8. Consumer Price Index: November 2008.
  9. Debt Statistics.
  10. Household Income Rises, Poverty Rate Unchanged, Number of Uninsured Down.
  11. <<김영옥대령]] 일대기>>중 '영웅 김영옥'편 158회 오사카 병원(9)편, 미주중앙일보(http://www.koreadaily.com) 2008년 5월 22일자 '문학' 23쪽
  12. 《기독교인물사상사전》/토미 레인 저/양정호외 공역/홍성사.
  13. 《추락하는 한국교회》(원제:추락하는 한국개신교회)/이상성 지음/인물과 사상사.
  14. 《종교신학입문》/폴 니터 지음/양정원 옮김/분도출판사.
  15. 1920년대 미국에서는 주류의 유통을 금하는 금주법이 통과되었고, 근본주의 설교자 빌리 선데이는 술에 대한 사회장을 치르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은 소수였으며, 대다수 미국인은 경제적인 부에 근거한 자유로운 삶을 재즈 음악을 듣거나 미니스커트를 입으며 즐겼다.
  16. 《5시간만에 읽는 쉽고 재미있는 교회사》/유재덕 지음/작은행복.
  17. 1925년 7월 미국 테네시주에서 있었던 원숭이 재판 사건은 근본주의자들이 자연과학에 대해 거부했음을 말해준다. 당시 미국 공립학교에서는 근본주의자들의 압력으로 버틀러법이라는 진화론 교육금지법이 제정되었는데, 스콥스라는 과학선생이 학생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친 이유로 재판을 받았다. 결국 재판은 스콥스 교사에게 100달러의 벌금을 물리는 것으로 끝났는데, 이 사건은 미국 근본주의자들이 진화론에 대해 얼마나 거부감이 강했는지 보여준다.
  18. 《교실밖 세계사 여행》/김성환 지음/사계절.
  19. 《세계기도정보》/패트릭 존스톤 지음/죠이선교회.
  20. 미보수주의의 복음주의-가톨릭 동맹, 왜 부시대통령은 가톨릭교도를 대법관후보로 지명할까? 에큐메니안, 2005년 11월 11일자 기사.
  21. 《성공회 역사》/대한성공회 선교교육원 지음/대한성공회 선교교육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