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에 가던 날
대한제국을 넘어 일제강점기로.
격동의 시기 한가운데 그가 있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11살의 나이에 황태자에 올랐으나
기약 없는 인질 살이가 시작되는데...
대한제국 황태자의 일본행.
그 배후에는 이토 히로부미가 있었다?
누구보다 귀한 운명을 타고났지만
그 무엇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영친왕.
그는 왜 일본으로 떠나야 했나
■ “늙은 염소”가 황태자를 데려간다!
1907년, 어디론가 향하는 특급열차. 앳돼 보이는 한 소년이 타고 있었다. 바로 대한제국의 황태자, 영친왕. 장성한 형 의친왕을 제치고 11살의 나이에 황태자에 책봉될 만큼 고종의 사랑을 받던 막내아들이었다. 그런데 황태자에 오른 지 4개월 뒤, 놀랍게도 그의 모습이 동경에서 포착된다. 선진학문을 교육하겠다는 일본의 주장에 고종은 어쩔 수 없이 영친왕의 일본행을 허락한 것인데... 늘 영친왕 곁에 있는 한 사람. 바로 대한제국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였다.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의 동행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는데... 왠지 각별해 보이는 듯한 둘의 관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 일본으로 간 영친왕, 특급 대우를 받다.
하루아침에 일본으로 끌려가 인질신세가 된 영친왕. 하지만 그를 대하는 일본의 대접은 그야말로 특급 대우였다! 이토 히로부미와 메이지천황은 영친왕을 ‘일본의 황태자와 같은 대우를 하라’고 명할 정도였는데... 이들은 영친왕에게 당시에는 구경하기도 힘든 장난감에 호화로운 저택을 선물한 것은 물론 동갑내기 친구들까지 한국에서 데려와 함께 살 수 있도록 했던 것! 영친왕에 대한 이토 히로부미의 배려. 그의 속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 일본 황족과의 정략결혼, 일본의 속내는?
1920년, 한국과 일본에서는 뜻밖의 결혼소식이 보도된다. 주인공은 한국의 영친왕. 이미 정혼자가 있었던 그의 결혼상대로 알려진 여인은 전혀 예상 밖의 인물. 일본의 황족, 이방자였다. 한국과 일본 왕족의 정략결혼을 두고 한국에서는 신혼마차 폭탄투척 미수사건까지 발생할 정도로 반발이 극심했는데... 한국인들의 거센 저항에도 일본이 밀어붙인 정략결혼, 당사자인 영친왕의 속내는 어땠을까? 한편, 1927년. 영친왕 내외의 소식이 유럽 신문에 보도된다. 파리, 런던 등 유명 도시에 약 1년 여 간의 유럽순방을 떠났던 것인데... 절망적인 고국의 상황과는 대비되는 영친왕의 행보. <만물각>에서 기자로 분한 이광용 아나운서가 영친왕의 유럽순방을 보도한다.
■ 영친왕, ‘침묵의 황태자’로 남다.
1945년 8월 15일. 천황의 무조건적인 항복 선언. 일본에서는 연합군의 뜻에 따라 신헌법이 실시되고 일본 황족은 천황일가를 제외하고는 모두 신분이 박탈된다. 일본 황족에 편입되어있던 영친왕도 하루아침에 평민이 되고 마는데... 간단한 경제활동조차 해본 적이 없던 영친왕 내외는 심각한 생활고에 시달린다. 그러던 1963년, 56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영친왕. 하지만 돌아온 그는 뇌혈전증으로 인해 의식이 없는 반신불수의 상태였는데... 마지막까지도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침묵의 황태자’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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