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가면 못 내려가요" 히말라야, 마지막 선택의 순간
[라다크 여행학교⑦] 히말라야 트레킹(2) 날라에서 힌주까지
[오마이뉴스 글:양학용, 편집:박혜경]
▲ 우윳빛 강물을 따라 걸어가기 |
ⓒ 양학용 |
"Mountains, beautiful, ya?(산들이 아름다워요, 그렇죠?)"
아름답고말고. 어디 산들뿐이랴. 강물도, 마을도, 구름도, 바람도,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모두 다, 경이로울 만큼 아름답고 또한 평화로웠다.
"난 말이지, 인도 라다크에서 일하고 있지만, 사실은 히말라야 심장이 있는 네팔 사람이야."
그는 중요한 비밀 하나를 들려주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췄다. 그리고 검고 투박한 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툭툭 쳤다. 나는 어쩐지 선하고 장난기 많은 그의 눈이 언젠가 네팔 안나푸르나를 걸을 때 보았던 어린 야크의 눈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난 있잖아, 나의 직업을 사랑해. 내 고향 히말라야를 걸으면서 히말라야가 좋아서 찾아온 여행자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해줄 수 있거든. 물론 그들로부터 먼 나라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지."
▲ 고마운 당나귀들 |
ⓒ 양학용 |
"나도 당신의 직업이 좋아. 걷고, 요리하고, 이야기 듣고."
정말이다. 그날 아침 나는 그의 직업이 부러웠다. 오늘은 어제와 달리 가파른 길이 없어 쉬울 거라는 설명을 남기고 그는 주방 텐트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를 대신해 여행학교 아이들이 하나둘 텐트를 열어젖히고 히말라야의 아침 속으로 기어 나왔다. 트레킹 둘째 날이 시작된 것이다.
아이들은 눈곱을 떼어내고 세수를 하고, 또 아침으로 밀크티와 토스트와 계란프라이를 먹고 난 후에도 전날의 피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얼굴이었다. 점심 도시락을 각자의 가방에 챙겨 넣으면서도 오늘 우리 앞에 놓인 길들이 현실의 무게로 다가서지 않는 듯했다.
'숨이 턱턱 막혀 눈물이 나왔다... 언제쯤 이 길이 끝날까'
▲ 우리들이 사랑한 히말라야의 풍경 |
ⓒ 양학용 |
아이들은 짝을 지어 걸으며 도란거리는 꼴이 전날에 비해 걷기가 쉬운 모양이었다. 내 옆에는 해남에서 온 남수가 함께 걷고 있었는데, 중학교 2학년인 녀석의 남도 억양이 히말라야 산길과 운율이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삼촌, 백두산 천지를 보면 조상 3대가 착한 일을 했다 하잖아요. 지금 저는 히말라야를 걷고 있으니까 아마 10대 정도는 착한 일을 한 거지요?"
그러더니 녀석은 폴짝 길 아래로 뛰어 내린다. 그러곤 강물을 물통에 담더니 내가 어떻게 말릴 틈도 없이 벌컥벌컥 마셔버린다. 이곳 계곡물에는 석회수가 섞여있어 정수 알약을 타서 먹어야 한다고 몇 번이고 말했었다. 그럼에도 녀석은 해남 시골에서 살던 그 버릇 그대로 제 마음대로다. 그놈의 성질머리가 싫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걱정이다.
"야, 이 촌놈아, 네 뱃속은 강철로 만들었냐?"
"에이~ 괜찮아요."
▲ 저 차가운 빙하 물에 머리 담그기 놀이 |
ⓒ 양학용 |
3시간 정도를 걸어 계곡물이 흐르는 물가에서 점심도시락을 먹었다. 아이들은 빙하에서 흘러왔을 그 차가운 물에서 물장구치고 머리감고 가위바위보에 지는 사람은 거꾸로 머리를 입수하는 놀이에 몰입했다. 아이들답다. 힘들어도 일단 놀아야하는 것이 아이들이니까.
하지만 오르막이 시작되면서부터 뒤쳐지는 아이들이 생겨나고 그들은 또다시 말이 없어진다. 가이드 지미가 선두그룹과 함께 앞서가고 내가 뒤편에 남아 아이들과 함께 걷는다. 얼마나 더 걸었을까, 시계를 보는데 유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삼촌~! 저, 엄살 부리는 거 아니에요. 엉엉. 유진이는 지금 진짜로, 대빵, 열심히 걷고 있는 거라고요. 엉엉."
힘이 들어서인지. 다른 친구들보다 더 힘들어하는 자신이 못마땅한 것인지. 그런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아 서러운 것인지. 나로선 그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그의 울음 옆에 서 있어 주는 것이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이라는 사실이다.
▲ 불경 말씀을 새겨 넣은 돌들 앞에서 문중. |
ⓒ 양학용 |
허리띠와 윗옷 단추들을 풀어헤치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고 내쉬게 하며 안정을 취하도록 했다. 그는 잠시 후 화색이 돌아오고 나서도 힘드냐고 물어보는 내 말에 "네..."라는 짧고 힘없는 대답 외에는 더 이상 말이 없다.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리라.
'길을 걸어가는데 풀은 저 절벽 아래에 있고 물은 바닥난 지 오래고 태양은 이글거리는데 사막이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유진)
'형 누나들이 평지라서 그나마 어제보다 쉬울 거라고 했다. 그러나 어제보다 더 힘들었다. 가도 가도 비슷비슷한 길만 계속 나왔다. 아, 진짜 너무 숨이 턱턱 막혀서 눈물이 나왔다. 힘들어서 울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언제쯤 이 길고 긴 길이 끝날까.'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우현)
▲ 아, 드디어 힌주Hinju |
ⓒ 양학용 |
▲ 어느 마을이든 나그네를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아이들. |
ⓒ 양학용 |
"하우아유? 왓쥬어네임?(안녕하세요, 이름이 뭐예요?)"
소남, 돌마, 앙모, 남겔. 알고 있는 두 마디 영어를 한꺼번에 쏟아내곤 머루 같은 눈만 깜박이고 섰던 그 꼬마들의 이름이다. 얼마 전 페이 마을에서 만나 함께 식사하고 웃고 놀다 이틀 전 눈물을 훔치며 돌아섰던 이름들이기도 하다. 라다크 사람들의 이름은 다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생각하며, 동네 꼬마들을 앞세우고 마을 끝자락에 있던 캠핑장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의 트레킹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캠핑장에는 텐트가 없었다. 앞질러갔던 진실, 아라, 수경, 정호만이 힘없이 앉아 있었다. 그들 말로는 마을 끝까지 가보았지만 다른 캠핑장은 없다고 했다. 나는 지친 몸으로 마을 초입까지 다시 내려갔다 올라왔다. 우리들이 캠핑장을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어서다. 그러나 어디에도 다른 캠핑장은 없었다.
할 수 없이 마을을 지나 계속 걷기로 한다. 하필 이럴 때에 갈림길이 나오는 것은 꼭 영화나 소설에서 본 장면 같았다. 한쪽 길을 선택하여 걷다가 길을 찾지 못해 두 길 사이를 왔다 갔다 헤매는 동안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우리들의 체력은 방전되어 갔고, 해마저 설산 너머로 귀가하려는 중이었다.
그때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스님 한 분이 산에서 내려오시며 당나귀 10여 마리와 한국 사람들이 저 산 너머에서 캠핑을 하고 있다고 일러주었다. 스님이 아니었더라면, 그날 밤 우리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가 마지막 힘을 짜내며 10시간 만에 도착한 캠핑장은 정말이지 화가 날만큼 아름다웠다.
"진실이, 여기서 돌려보내야 해요... 더 이상은 위험해요"
▲ 부지런한 아이들. 캠핑장에 도착하면 일단 빨래부터. |
ⓒ 양학용 |
'첫날 트레킹은 산의 악착같은 맛을 느꼈는데 둘째날 트레킹은 사막 같은 맛을 느낀 것 같다. 다른 힘든 고생도 느껴봤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힘들었다. 생 자갈땅에 강렬한 햇빛이 계속적으로 비추어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길이 끝도 없는 공포라고 할까? 생각조차 하기 싫은 오늘이었지만 꿋꿋이 참고 견뎌낸 내가 대견스럽다.'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철민)
'아직 트레킹 2일째밖에 안 되었다는 것이 이상하다. 무릎이 욱신거리고 힘들다. 그래도 재밌다. 히말라야는 어디든지 진짜 멋있는 것 같다. 모래산 사이사이에 나있는 풀들. 졸졸졸 때로는 콸콸콸 흐르는 강. 카메라로는 다 담아내지 못하는 경치. ㅠㅠ. 이뻐이뻐. 그리고 정말 좋다. 지금처럼 이렇게 보랏빛 텐트 아래에서 이모랑 삼촌이랑 예인오빠랑 다혜랑 아라언니랑 노래를 같이 들으면서 일기 쓰고 있는 거.'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민아)
'트레킹 중에 인상 깊은 아저씨를 만났다. 오스트리아 사람인데 혼자서 무려 8개월 동안 히말라야 트레킹 중이라고 하셨다. 세상에... 혼자서 그 짐을 다 들고, 와, 진짜 대단하다 싶었다. (중략) 별똥별아, 떨어져라. 언니 소원 좀 빌게.' - (어린여행자들의 일기, 아라)
그날 저녁 우리들은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 가이드 '지미'가 여기 힌주(Hinju)가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알려줬기 때문이다. 2시간을 걸어 내려가면 지프택시가 들어올 수 있는 길이 나온다고 했다. 내일이면 4900미터 '꼰제 라(Konze-La) 고개'를 넘을 것이고, 따라서 고산증세는 더 심해질 테지만 이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뜻이었다.
▲ 캠핑장, 돌아보면 눈물이 날 것 같은 시간들. |
ⓒ 양학용 |
"너무 가고 싶어요. 그런데... 걸을 때 여기 심장이 너무 아파요. 저, 어떡하죠? 삼촌, 저 어떡해요?"
솔지의 마지막 말들은 거의 울음이었다. 솔지가 돌아가고 다음으로 찾아온 이는 뜻밖에도 잘 걷는 예인이었다. 진실과는 제주교대 같은 과에 다니면서도 2살이 더 많아 진실을 친동생처럼 아끼는 친구다.
"삼촌... 진실이, 돌려보내야 해요. 더 이상은 위험해요."
진실이가 틀림없이 고집을 피울 거라고 걱정했다. 혹시나 진실이로 인해 우리들의 트레킹이 영향을 받을 것도 염려했다. 그리고 아내와 나의 텐트를 마지막으로 찾아온 이는 진실이었다.
"저 여기서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요. 삼촌, 저 할 수 있겠죠? 네? 이모, 삼촌. 저,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하면, 이 모든 고통이 한 순간에 모두 사라질 것인데, 왜 이 아이는, 그리고 나는, 또 우리들은,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그냥 포기하면 될 것을. 안녕, 손 한 번 흔들어주고 그냥 돌아서면 될 것을. 그리하여 이번 여행은 여기까지라고 지친 내 몸과 마음을 위로해주어도 좋을 것을. 그까짓 게 무엇이라고...
그날 저녁 가이드 지미는 레로 전화를 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갔다. 그리고 나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잠이 들지 못했다. 내일이면 여행사 대표인 겟쵸가 지프택시 한 대를 보내올 것이고, 우리들의 일부는 그 택시와 함께 이틀 동안 걸어온 길을 되짚어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우리들은 길 위에 남을 것이다.
'우리들의 트레킹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별똥별도 찾아와 주지 않는 무심한 밤은 깊어만 갔다. 돌아보면 눈물이 날 것 같은 시간들이 그렇게 깊고 묵직한 발걸음으로 잠들지 못하는 우리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 사막과 나무, 그 길을 걷다. |
ⓒ 양학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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