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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왕 계보

파라클레토스 2009. 5. 13. 13:05

백제 왕 계보

고구려|백제|신라|발해|고려|조선|대한민국|중국|일본|

대()

왕 명

 재위기간

약 사

1

온조왕

(溫祚王,

?~28)

B.C 18~

A.D 28

온조(溫祚)-백제(百濟)의 시조. 아버지-우태(친부),고구려 동명성왕(계부), 어머니는 소서노, 위례(慰禮)성 에 나라를 정하고 국호를 십제(十濟)라 하였다. 후에 국호를 백제(百濟)로 개칭 함. BC 4년에 서울을 한산(지금의 광주)으로 옮김. AD 9년 마한을 병합함. 

시조-소서노설,비류설,온조설

2

다루왕

(多婁,

?~77) 

28~77

온조왕의 장남. 다루-지배자란 뜻. 말갈족을 격퇴하고, 농사를 장려하여 백성 생활을 안정시켰다. 37년 후한의 낙랑군을 멸망시킴.

3

기루왕

(己婁王,

?~128)

77~128

다루왕의 장남. 85년-신라를 공격.105년-신라와 평화조약

125년-말갈의 침입을 받은 신라에 원병을 보냈다

4

개루왕

(蓋婁王,

?~166)

128~166

기루왕의 아들. 132년.2월- 북한상성을 쌓음

5

초고왕

(肖古王,

?~214)

166~214

개루왕의 장남. 신라를 여러번 침공하고, 210년에 적현성, 사도성을 축조함. 소고왕(素古王) 또는 속고왕(速古王)

6

구수왕

(仇首王,

?~234)

214~234

초고왕의 맏아들. 말갈,신라 등과 전투, 재위 말기는 가뭄과 기근 등이 재난이 겹침. 홍수를 대비하여 둑을 쌓고 농사를 장려함.

귀수왕(貴須王)

7

사반왕

(沙伴王)

234

구수왕의 장남. 234년 즉위하였으나 나이가 어려 바로 폐위됨.

사반(沙伴)-모래반쪽, 사비왕(沙沸)

8

고이왕

(古爾王,

 ?~286)

234~286

초고왕 동생(장자계승에서 벗어남). 관제를 제정 하고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여 고대국가 체제의 정비를 마련함.

구이(久爾) 또는 구이(仇爾),고모(古慕)

9

책계왕 

(責稽,

?~298)

286~298

고이왕 아들.286년-위례성을 수리하고 고구려 침입을 막고자 아차성과 사성을 수축. 298년-한(漢)나라군이 맥인(貊人)들을 이끌고 침입하였고 왕이 직접 나가서 방어하다가 전사

청계왕(靑稽王) 또는  책산왕(責贊)

10

분서왕 

(汾西,

?)

298~304

책계왕의 장남. 304년-낙랑군(樂浪郡)의 서현(西縣)을 점령하여

영토를 확장하였으나,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살해당함.

汾西 -서쪽을 나눴다(대륙백제의 존재)

11

비류왕

(比流王,

?~344)

304~344

구수왕의 둘째 아들.사반왕의 동생.분서왕이 죽자 그의 아들이 어려서 비류가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하였다. 312년-백성들의 질병과 고통을 살펴보아 선정을 베풀었다고 함.

327년-북한산성을 근거지로 우복의 반란

比流-흐르는 물에 견주다

12

계(설)왕

(契王 ,?~346)

344~346

분서왕의 장남.344년 비류왕이 죽자 왕위를 계승

346년.9월- 왕이 죽자 근초고왕이 즉위

13

근초고왕

(近肖古王,

?~375)

346~375

비류왕의 차남. <진서>에는 여구(餘句)<고사기>에는 조고왕(照古王),

<일본서기>에는 초고왕(肖古王), <신찬성씨록>에는 속고왕(速古王)으로도 불린다. 광개토왕과 비길만한 정복군주

369년에 마한과 대방을 병합함. 372년 음력9월-고구려 평양성을 점령하고 고국원왕을 전사시킴. 고대국가 기반을 확립.한반도의 패권을 쥠. 아직기(阿直岐), 왕인(王仁)을 일본에 파견하여 한문을 전파하고, 박사 고흥 에게 백제의 국사 '서기(書記)'를 저술하게 함.

14

근구수왕

(近仇首王,

 ?~384)

375~384

근초고왕의 장남. 372년-고국원앙을 죽였다.

동진(東晉)과 화합하여 고구려와 대립하는 외교 태세를 유지했다

일본과 국교를 맺어 문물을 보급시키는 데 공이 많음.

귀수(貴首) 또는 근귀수(近貴首)로 《속일본기》(續日本紀)에는 귀류(貴流) 또는 구소(久素)

15

침류왕

(枕流王,

?~385)

384~385

근구수왕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아이부인(阿爾夫人)이다.

384년음력9월-동진(東晋)에서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오자, 궁중에 머물게 하고 예로써 대접하였다. 백제에 불교를 전래, 불법(佛法)을 시행하고, 한산에 절을 창건 하였음.

16

진사왕

(辰斯王,

?~392)

385~392

근구수왕의 차남, 침류왕의 동생. 389년-고구려와 전투, 392년7월-광개토대왕에게 한강 이북을 빼앗기자 이를 찾기위해서 출정하다가 병사.<일본서기> 조카 아신왕의 추종세력에게 살해됨으로 기록

17

아신왕

(阿莘王,

?~405)

392~405

침류왕의 장남.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모두 패함. 일본과 화친하여 태자 전지(腆支)를 일본에 볼모로 보내 화친을 맺어 고구려의 남하를 막으려고 노력함. 아방왕(阿芳王) , 아화왕(阿華王)

18

전지왕

(琠支王,

?~420)

405~420

아신왕의 장남. 405년 아신왕이 죽자 일본에 볼모로 있던 전지왕이 등극. 동진과 외교관계를 유지, 일본과도 우호관계를 유지,이름은 여영(餘映) 또는 영(映). 《일본서기》에서는 직지왕(直支王), 《삼국유사》왕력에서는 진지왕(眞支王), 또 《한원》에 인용되는 《송서》, 《통전》에서는 부여전(夫餘腆)등으로 불림  

19

구이신왕

(久爾辛王,

404~427)

420~427

전지왕의 장남,어머니는 팔수부인(八須夫人)이다.

20

비유왕

(毘有王,

?)

427~455

구이신왕의 장남. 429년-남조의 송나라에 조공,

433년- 신라와 화친 라제동맹(羅濟同盟)을 맺음등 외교를 통한 친선에 힘을 씀. 455년 9월이후 사망할때까지 전란의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21

개로왕

(蓋鹵王,

?~475)

455~475

휘는 경사(慶司). 비유왕의 장남. 472년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정벌에 군사를 요청 475년-고구려 장수왕의 습격을 받아 피살됨.

<삼국사기>도미설화.   근개루왕(近蓋婁王)

22

문주왕

(文周王,

?~477)

475~477

개로왕의 아들. 475년10월-장수왕이 한성을 공격하자 신라에 원병요청,

수도를 한성에서 웅진(熊津,공주)으로 옮기고 국방에 힘씀.

병관 좌평 해구(解仇)가 보낸 자객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살해됨.

웅진(熊津)- 475년~538년 백제의 수도

23

삼근왕

(三斤王,

465~479)

477~479

문주왕의 장남. 13세로 즉위 좌평 해구(解仇)에게 국정을 위임.

478년 좌평 해구가 반란을 일으키자, 좌평 진남(眞男)과 덕솔진로(眞老)로 하여금 해구를 죽이게 함, 479년 의문의 죽임을 당함

24

동성왕

(東城王,

?~501)

479~501

성은 부여(扶餘), 휘는 모대(牟大). 21대 문주왕(文周王)의 아우인

좌평(佐平)곤지 (昆支)의 차남. 491년-신라의 북쪽변경을 침공,

484년-유송(劉宋)과 외교시도, 493년 -신라와 왕녀를 맞이하여,신라와 혼인동맹을 맺고,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와 싸움.498년-탐라국 복속,500년-임류각(臨流閣)을 짓고 사치스러운 생활,

501년-사냥을 나갔다가 위사좌평衛士佐平) 백가에게 살해당함

25

무령왕

(武寧王,

462?~523)

501~523

성은 부여(扶餘) 휘는 사마(斯摩). <일본서기>개로왕의 동생인 곤지왕자의 아들이고,동성왕의 이복형으로 기록,<삼국사기>동성왕의 차남으로 기록되었으나 신뢰받지 못함. , 523년-쌍현성을 쌓아 외침에 대비함.왕권을 강화하였다 양나라와 외교강화,516년 일본에 문화를 전래, 민생에 안정에도 힘을 썼다

26

성왕

(聖王,

?~554)

523.5~554

성은 부여(扶餘), 휘는 명농(明襛). 무령왕의 아들.538년 사비(泗沘

)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라 함. 불교를 진흥, 중국 남조와 교류, 일본에 불교전파, 553년음력7월 한강유역의 대부분을 신라에 빼앗김. 10월에 왕녀를 진흥왕에게 시집모냄,

554년 신라 를 공격, 관산성(管山城)에서 전사함.

성명왕((聖明王))으로도 불린다

27

위덕왕

(威德王,

525~598)

554~598

성은 부여(扶餘)휘는 창(昌). 성왕의 장남. 고구려의 침공을 막고 중국과 외교관 계를 수립하고, 신라를 자주침.

威德-성왕은 관산성을 공격하는 부여창을 위로하기 위해  밤길을 달려가다 죽임을 당하는데, 부왕의 죽음에 대해 늘상 참회

28

혜왕

(惠王,

527~599)

598~599

성은 부여(扶餘), 휘는 계(季). 성왕의 차남,위덕왕의 동생으로 즉위 하였다가 이듬해에 죽음.

29

법왕

(法王,

?~600)

599~600

휘는 선(宣), 효순(孝順). 혜왕의 아들. 불교를 숭상하여 살생을 금하고, 왕흥사와 미륵사지를 건설.

30

무왕

(武王,

580~641.3)

600~641.3

성은 부여(扶餘), 휘는 장(璋). 아명은 서동, 법왕의 아들이며 위덕왕의 서자라고도 한다. 수, 당나라와 화친을 맺고,무왕3년- 일본에 중 관륵(觀勒)을 파견하여 천문, 지리, 역본(曆本) 등의 서적과 불교를 전파하였음.629년 미륵사를 완공함. 630년-왕흥사를 창건,궁남지를 건설.탁월한 외교력으로 국가위상을 높이고 백제를 되살린 왕으로 평가받는다

31

의자왕

(義慈王,

589~660)

641~660

휘는 의자왕, 무왕과 사택왕후(沙宅王后) 장자. 642년 신라를 공격하여 많은 영토를 얻었으나, 만년에는 사치와 방탕에 흘러 나당연합군에게 패하여, 왕자들과 대신 88명을 포함한 군사1만2천명과 함께 당나라에 압송되었다가 병사하여,낙양의 북망산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