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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왕계보

파라클레토스 2009. 5. 13. 13:42

 

 

 

발해 왕 계보

고구려|백제|신라|발해|고려|조선|대한민국|중국|일본|

대(代)

성명

시호

묘호

연호

재위기간

약 사

1

대조영

고왕

태조

천통(天統)

698~719

668년-고구려멸망

대조영. 고구려 유민으로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 영주지방에 그 일족과 함께 옮겨와 이주.

698년-길림성 돈화현인 동모산에 성을 쌓고 도읍을 정함 국호를 대진(震)으로 하여 건국

713년-국호를 발해(渤海)로 고침

2

대무예

무왕

광종

인안(仁安)

719~737

719년-고왕이 죽자 무왕즉위

영토를 확장하는 등 발해의 기틀을 마련

732년-장문휴를 보내어 해군으로 당의 등주를 공격

733년-당현종, 대문예를 보내어 발해 공격

3

대흠무

문왕

세종

대흥(大興)

보력(宝暦)

737~793

737년-문왕즉위

756년-상경용천부로 천도(遷都).

785년-동경용원부로 천도(遷都)

793문왕 붕어.

4

대원의

폐왕

?

?

793

 

문왕의 동생 원의가 즉위했으나 수 개월 후 사망

 

5

대화여

성왕

인종

중흥(中興)

793~794

793년-성왕 즉위

상경용천부로 천도(遷都)

6

대숭린

강왕

목종

정력(正暦)

794~809

794년-성왕 붕어. 강왕 즉위. 3대 문왕의 아들

795년 2월 당나라에서는 대숭린에게 ‘발해군왕’의 책봉을 내림

798년-‘발해국왕’의 책봉을 내림

7

대원유

정왕

의종

영덕(永徳)

809~812

809년-강왕 붕어. 정왕 즉위. 대숭린의 아들

8

대언의

희왕

강종

주작(朱雀)

812~817

812년-정왕 붕어. 희왕 즉위. 정왕의 아우

9

대명충

간왕

철종

태시(太始)

817~818

817년-희왕 붕어. 간왕 즉위. 정왕의 둘째 아우

10

대인수

선왕

성종

건흥(建興)

818~830

818년-간왕 붕어. 선왕 즉위, 대조영의 아우인 대야발의 4세손. 발해를 중흥시킨 군주

발해의 행정구역을 5경(京)1 5부(府) 62주(州)로 하고

‘해동성국(海東盛國 )’이라 표현할 만큼 많은 치적을 남겼다

신라를 공격, 북쪽 부락을 공격

830년-선왕 붕어

11

대이진

장왕?

장종

함화(咸和)

831~857

831년-대이진 즉위. 조부-10대선왕 부-신덕이다

사신과 학생을 당나라에 파견하는등

선왕에 이은 율령국가 수립에 노력하였고

당나라의 경제. 문화 교류에 힘썼다 

12

대건황

안왕?

순종

대정(大定)?

857~871

857년-대이진 붕어, 대건황 즉위. 대이진의 동생

당나라와의 교섭은 당나라 내부의 농민폭동과 관련하여

빈번하지 못하였던 데 반하여, 일본과의 교섭은 계속되었다

13

대현석

경왕?

명종

천복(天福)?

871~894

871년-대건황 붕어, 대현석 즉위. 대건황의 아들

877년-공목관, 양중원을 비롯한 105인으로 된 사절단을 일본에 보냈다

882년-배정 등 105인으로 된 대사절단을 일본에 보냄

14

대위해

?

 

?

894~906

894년- 대현석붕어, 대위해 즉위.

15

대인선

애왕?

?

청태(淸泰)

906~926

 

906년-대위해 붕어, 대인선 즉위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의 팽창주의에 두려움을 느끼고 신라와 비밀리에 연계를 맺어 이를 견제 하려 하였다

924년-거란의침입, 요주지사 죽이고 백성을 빼앗음

925년-발해인 장군 500명 고려로 망명

12월, 거란이 발해를 침입

926년-정월 수도 상경용천부가 포위되어 항복

발해멸망, 국명을 동단국으로 바꾸고

거란 세자가 지배

7월에 있던 거란군의 회군시 그는 왕후와 더불어

거란에 볼모로 끌려갔다

 

대정현

 

 

 

 

발해의 마지막 황손

 

대도수

 

 

 

 

대정현의 아들

고려에 귀화한 장수

 

발해 이후의 국가 <출처:위키백과>

 

후발해(後渤海, 926년? - 986년)는 926년에 발해가 요나라에 의해 멸망된 뒤에 발해의 왕족인 대씨가 세운 나라이다. 건국 시점과 멸망 시점이 분명하지 않다. 건국 시점은 927~929년이라는 추측만이 나오고 있다. 후발해 중 가장 강성했던 대발해국은 대인선(大諲譔)의 아들 대정현(大政賢)이라는 설이 있다. 아직 이것은 전설 속으로만 남겨져 있다.

 

거란의 괴뢰 정권인 동단국(東丹國)이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천복성에서 요양(遼陽)으로 이동하였는데, 이때에 거란군이 괴멸당했다고 적혀있다. 아마, 이것은 후발해 측에서 먼저 공격한 것 같다는 설이 있다

 

정안국(定安國, 938년? ~ 986년?)은 발해가 멸망한뒤 구심점인 압록강을 거점으로 성장한 대씨정권이 발해의 유민을 결집해서 후발해를 세웠으나 열씨 정권에 의해 망했고 열씨정권이 이로써 정안국을 건국했다. 정안국의 위치는 서경 압록부 중심설, 상경 용천부 중심설 등이 있다. 건국 시점은 동단국이 물러간 928년, 935년, 938년 설이 있고, 멸망 시점은 대체적으로 986년-멸망한 설이 일반적이다

요의 성종(聖宗)은 986년 정안국을 멸망시킨다

흥요국(興遼國, 1029년 - 1030년)는 발해 대조영의 후손인 대연림이, 1029년 8월 3일 발해 부흥 운동의 일환으로 요나라의 통치에 대한 민중의 불만을 이용해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연호를 천경이라 건원하여 세운 나라였다. 여진족도 합류하여 반란 규모는 커졌지만, 흥요국에 대한 고려의 지원 거부와, 부하의 배신으로 1030년에 거란에 의해 진압되어 멸망했다.

 

대원국(大元國) 또는 대발해(大渤海)는 발해의 멸망 뒤에 발해인이 마지막으로 건국한 나라였다. 대발해국(大渤海國)이라고도 한다.

 

동단국(東丹國, 926년 ~ 936년)은 926년 발해를 멸망시킨 요나라의 아율아보기가 발해 지역을 다스리기 위해 동만주 헤이룽장성 무단장(목단강)에 설치한 괴뢰 정권으로 요나라의 태자 야율배가 통치하였다.

 

당시 상황(기록)으로 볼 때 숲의 바다로 불릴 정도로 밀림이 우거져 잘 다스리지 못해고 그 당시 중국이 5대 십국으로 혼란을 겪고 있던 상황이라 아율아보기는 동단국을 세워 아들 아율배에게 동단국을 통치하라 명했다.

 

당시의 정치적이 긴장이 야율배와 야율덕광 사이에서 자라났는데 야율덕광이 야율아보기가 붕어하자 거란의 황위를 취하였다. 그는 후당왕조에 대한 덜 성공적인 원정에서 그의 고향으로 돌아와 그의 형을 수도 후한에서 랴오녕으로 옮기게 하였다. 야율배는 황명을 받아서 북중국으로 달아나 930년 암살을 피하였다. 야율배의 아들은 동단의 새로운 왕으로 승격되었지만 왕국을 936년 거란 제국에 합병되었다.

 

발해의 일본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하기위해서 929년 동단은 동해 너머로 외교적인 사절단을 보냈다. 그러나 일본의 교토의 황궁은 동단의 사절을 거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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