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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백의관음상 벽화와 꽃살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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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주의 부안이야기-변산과 사찰문화(寺刹文化)<6> 백의관음상 벽화 내소사 대웅보전의 천정 들보에는 물고기를 물고 있는 용이 조각되어 있고, 계(蟹)가 그려져 있으며 천장의 중앙에는 활짝 피어난 연꽃 그림과 연꽃 봉오리들이 곳곳에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어 불국정토(佛國淨土)에 살기를 소원하는 중생들의 염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천장과 대들보 사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공후(箜篌), 바라 생황(笙篁) 소(簫) 박(拍) 등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부처님의 법당에서 불법의 설하심을 들은 모든 중생들과 용, 물고기, 계, 조류에 이르기까지 피안(彼岸)에 이르는 기쁨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앞에서 말한 바 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양상들에서 우리는 법당의 구조가 반야용선형적(般若龍船形的) 구조임을 알 수 있음도 지적하였다. 부처님의 좌정한 뒤쪽 후불벽으로 돌아가면 북벽의 밑으로 괘불탱화(掛佛幀畵)를 넣은 기다란 궤(机)가 놓여 있다. 이 괘불탱화는 <영산회괘불탱화>로 길이 10.5m, 넓이 8.17m 크기며, 숙종(肅宗) 26년인 1700(康熙․39)년에 그려진 것으로 보물 제1268호의 귀중한 불화(佛畵)다. 법당 밖에서 불사를 거행할 때 이 그림불상을 걸어 놓고 그 앞에서 불사를 행하게 된다. 아무 때나 펴 걸어 놓고 볼 수 없는 것이어서 아쉽다. 어두컴컴한 후불벽에는 <백의관음보살상(白衣觀音菩薩像)>이 그려져 있는데 이 관음상 벽화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후불벽화로는 그 규모가 가장 큰 것이라고 전한다. 그러면 백의의 관음보살상이 왜 어둡고 비좁은 법당의 뒷자리에 좌정하고 있는 것일까. 이는 관음보살의 대자대비심(大慈大悲心)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분도 있다. 내소사 법당의 구조가 반야용선형이므로 피안의 세계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형태여서 뒤에 처진 어둠에 허우적거리면서 번뇌에 살고 있을 중생들을 위하여 자비심 많은 관음보살로 하여금 고해(苦海)를 향하고 있게 한 것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어둡고 괴로운 번뇌에 살고 있는 뭇 중생들은 내소사에 들려서 내자개소생(來者皆蘇生)도 하려니와 뒷벽에 앉아 있는 백의 관음보살님의 자비법력을 입으시는 일 잊지 말라는 뜻이겠다. ![]() 내소사 대웅보전 꽃살문ⓒ부안21 대웅보전 솟을 꽃살문 불교적인 의미, 불교적인 설법의 형태를 가장 조화롭게 나타내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내소사 대웅보전의 특징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의 또 하나가 대웅보전 전면의 꽃살문(소슬 꽃살문)이라 할 수 있다. 정면의 문짝은 모두 여덟 짝의 분합(分閤) 형태의 합문(閤門)으로 되어 있다. 중앙의 정문, 즉 부처님과 마주하는 문짝은 네 짝의 분합문이다. 내소사를 찾는 많은 사람들 중 이 뛰어난 공예작품을 눈여겨보고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먼 옛날 어느 불심이 깊은 목공예가의 정성어린 솜씨에 의하여 깎고 다듬고 문지르며 한 송이 한 송이 피어나게 한 이 꽃살문이 법당을 떠받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법당의 꽃살문은 김천(金泉)의 직지사(直指寺)에도 있고, 논산(論山) 쌍계사(雙溪寺) 등에도 있으며, 동해의 낙산사(洛山寺)에서도 볼 수 있으나 어느 것이나 그 연대나 솜씨에 있어서 내소사 대웅보전의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동편의 첫 번째 문짝부터 좀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아래쪽으로부터 활짝 피어난 연꽃 열 세 송이와 반만 새겨진 열 네 송이가 조각되어 있다. 꽃송이들의 중심부에는 별 모양이 새겨져 있으며, 꽃과 꽃 사이에는 여섯 개의 잎이 모여 卍자 모양을 이루고 그 사이 사이에 끝이 굽은 네 개의 잎이 다시 합하여 또 하나의 형태를 이룬다. 이들 연꽃의 의미를 불교신행연구원장 김현준(金鉉埈)님은 말하기를 卍자 형의 잎은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인의 세계를 바람개비처럼 돌고 도는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나타낸 것이라 하였으며, 착하고 좋은 일을 가득 담은 길상만덕(吉祥萬德)을 상징하는 卍으로서 시작도 끝도 없는 육도윤회의 길을 걷는 모든 중생들을 감싸 불법을 닦아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게 하려는 부처님의 염원이 담겨진 불법의 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중앙의 네 짝 문을 제외한 동편과 서편의 두 짝 문에 새겨져 있는 연꽃들은 모두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인데 반하여 부처님과 마주하고 있는 중앙의 문에 새겨진 꽃들은 여러 측면에서 바라본 꽃을 입체적으로 묘사하여 차별화하고 있음도 유의할 일이다. 이 중앙의 네 짝 문 중에서도 부처님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두 짝의 문은 가장자리에 일부만 보이는 22송이의 꽃이 조각되어 있고, 안쪽으로는 만발한 연꽃 18송이가 조각되어 있다. 이들 18송이의 연꽃은 위와 아래로 각각 9송이씩 쌍을 이루어 극락의 구품연화대(九品蓮花臺)를 상징하는 것 같다. 더욱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아래쪽의 꽃은 대부분 꽃봉오리 상태인데 위쪽 아홉 송이는 만개된 상태인 것이다. 이는 아래에서 불법을 닦아 차차 높은 경지, 극락에까지 다다름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연꽃이 형형으로 조각되어 불법의 전당을 화려하게 감싸고 있는 대웅보전 정 중앙의 두 문짝을 열면 정좌하고 있는 부처님과 마주한다. 문짝에 새겨진 56송이의 입체적으로 활짝 핀 연꽃은 부처님과의 관계를 매우 밀접하게 하는 의미가 있음이다. 연꽃은 불법을 상징하는 꽃으로 부처님 미간백호(眉間白毫)로부터 오채의 광명이 뿜어져 그 광명의 줄기마다에서 무수한 연꽃과 법륜(法輪:중생의 악을 분쇄하는 부처님의 교법)이 나타나고 또 그 연꽃 위에 부처님들의 모습이 나타나 찬란한 광명을 뿜어내며 그 찬란한 광명에서 다시 수많은 연꽃이 피어난다 하였다. 이로 보아 부처님과 마주하는 중앙의 문짝에 활짝 피어난 연꽃을 새긴 뜻을 알만하다. /김형주 김형주선생님은 1931년 부안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소재(素齋)이다. 전북대학교를 나와 부안여중, 부안여고에서 교사, 교감, 교장을 역임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부안향토문화연구회와 향토문화대학원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향토문화와 민속’, ‘민초들의 지킴이 신앙’, ‘부안의 땅이름 연구’, ‘부풍율회 50년사’, ‘김형주의 부안이야기’, '부안지방 구전민요-민초들의 옛노래', '속신어와 실아 온 민초들의 이야기'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전북지역 당산의 지역적 특성’, ‘부안읍 성안 솟대당산의 다중구조성과 제의놀이’, ‘이매창의 생애와 문학’, ‘부안지역 당산제의 현황과 제의놀이의 특성’ 외 다수가 있다. 그밖에 전북의 ‘전설지’, ‘문화재지’, 변산의 얼‘, ’부안군지‘, ’부안문화유산 자료집‘ 등을 집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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