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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그날]3회 <고종, 아버지 장례식 불참사건> 2013/11/09

파라클레토스 2013. 11. 28. 23:08

 

고종, 아버지 장례식 불참사건

 


12세의 어린 아들, 고종을 왕위에 올리고
철권통치를 하던 개혁가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이 죽기 전 만나고 싶어 했던 아들, 고종
그러나 고종은 아버지의 죽음을 외면했다!

격랑의 시기
아들 고종과 아버지 흥선대원군
두 부자(父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들을 갈라놓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 어긋날 대로 어긋난 부자(父子), 흥선대원군과 고종

 

효를 중시했던 조선시대, 왕이 자신의 아버지 장례식에 불참하는 일이 발생했다.

고종은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버지의 죽음을 외면했던 것이다!

고종은 왜 아버지의 장례식에 불참했던 것일까? 두 사람의 관계는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것일까?

 

 


■ 고종, 왕이 된 속사정

 

철종이 후사가 없이 승하하자, 흥선군은 당시 수렴청정을 하던 신정왕후와 결탁해 자신의 둘째아들인 고종을 왕으로 즉위시킨다.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 이때 그의 나이는 12세에 불과했다.
왕의 아버지이자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살아있는 대원군, 흥선대원군! 그가 어린 나이였던 아들을 왕위에 올린 속마음은 무엇이었을까?

 

■ 홀로서기를 꿈꾼 아들과 권력을 놓지 않았던 아버지

 

낡은 제도를 개혁해 나가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어린 고종에겐 국정운영의 스승이었다.

하지만 고종의 나이 20세가 넘도록 흥선대원군은 여전히 국정운영권을 놓지 않았다.

요동치는 국제정세 속에서 친정을 하고 싶었던 고종에 의해 결국 섭정한지 10년이 되어서야 자리에서 물러난다.
조선의 부국강병을 꿈꿨던 흥선대원군과 고종! 하지만 두 사람의 소통의 부재는 결국 부자간의 파국을 낳고 역사의 비극이 되었다.

격랑의 시기, 두 부자 사이의 갈등과 원인을 조명한다. 

 

■ 빅 데이터로 본 흥선대원군과 고종!

 

최근 약 5년여 간의 블로그 5억 2천여 건을 분석해 본 결과, 고종은 역대 왕 가운데 4위, 왕이 아닌 흥선대원군은 10위라는 높은 인지도와 관심을 현대인들은 보이고 있었다.

현대인들은 흥선대원군과 고종을 어떤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을까?

11월 9일 토요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흥선대원군의 장례식 날을 통해서 본 흥선대원군과 고종의 이야기를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