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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그날] 8회 <찹쌀떡 장수 외부대신 되던 날> 2013/12/14

파라클레토스 2013. 12. 15. 08:25

 

찹쌀떡 장수 외부대신 되던 날

 

 

“이하영은 부산 거리에서 찹쌀떡 행상을 하며 인생의 첫발을 내디뎠다”
      <윤치호 일기> 中

 

1904년, 대한제국의 외부대신에 임명된 이하영.
그는 과거 찹쌀떡 장수였다!?
떡을 팔아 생계를 이을 정도로 어려운 삶을 살았던 이하영.
그는 어떻게 대신이 될 수 있었을까?

찹쌀떡 장수의 삶을 뒤바꿔 놓은 역사의 새 바람!
19세기 말 조선의 또 따른 모습이 밝혀진다!


 

 

■ 찹쌀떡 장수, 외부대신이 되다
구한 말, 주미공사와 외부대신을 지낸 이하영. 그는 어린 시절 매우 가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과거에 대해 윤치호가 남긴 묘한 기록, 그가 과거 찹쌀떡 장사를 했다는 것이다. 찹쌀떡 장수가 어떻게 외부대신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그 출세의 비결은 다름 아닌 ‘영어.’ 오랫동안 서구와 교류가 없었던 조선에서 영어가 성공 비결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찹쌀떡 장수 이하영의 인생을 뒤바꿔놓은 기막힌 사연이 공개된다.


  

 

■ 조미수호통상조약, 아메리칸 드림을 불러오다
1882년, 조선은 서구 열강과 첫 통상조약을 맺는다. 조선이 선택한 수교국은 바로 미국. 청, 일본, 러시아 등 열강들로부터 국권의 위협을 받던 조선은, 미국이 국권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한다. 고종을 비롯한 지배층이 미국에 호의를 보이면서, 조선에는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때 아닌 영어 교육 열풍. 영어는 신분을 막론하고 조선 사람들의 출세 수단이 된다. 찹쌀떡 장수부터 국왕까지, 변화에 대한 희망을 품게 했던 아메리칸 드림. 19세기 말 조선에 불었던 변화의 바람을 들여다본다.

 

 
 

■ 고종과 미국의 동상이몽
미국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통해 조선을 하나의 독립국으로 대우했다. 뿐만 아니라 조약의 첫 번째 조항으로,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 서로 반드시 도와준다는 ‘거중조정’ 조항을 명시했다. 하지만 이 조항은 단 한 차례도 지켜지지 못한다. 미국 입장에선 아무 이익도 없이 조선의 정치에 개입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외교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던 고종. 그리고 조선에 대한 환상을 품고 왔다 싸늘하게 돌변한 미국. 132년 전 그날, 조선과 미국은 서로 어떤 미래를 꿈꿨을까.

12월 14일 밤 9시 40분, KBS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미국과의 수교로 변화된 조선의 ‘그날’을 생생한 토크로 되짚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