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제국주의를 쏘다
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 하얼빈역.
탕! 탕! 탕!
세 발의 총성이 울리고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졌다.
그리고 권총을 든 조선인, 안중근 의사의 외침.
코레아 우라! (대한 만세)
■ 대한국인 안중근, 이토히로부미를 쏘다
플랫폼을 가득 메운 군악대와 환영인파로 시끌벅적한 하얼빈 역. 마침내 열차가 도착하고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울린 여섯 발의 총성!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저격자는 시종일관 당당하고 의연하다. 서른 한 살의 조선 청년, 안중근 의사. 제국주의의 상징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그 날, 그가 온 생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 스스로 대한독립의 꿈을 꾸다
대대로 무과에 급제한 무인집안에서 태어난 안중근 의사. 어려서부터 명사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가 선택한 민족중흥의 방식은 총이 아닌 교육이었다. 신부들에게 외국어와 국제정세를 배우고, 애국계몽운동을 위한 학교를 세운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면모. 하지만 시시각각 뻗쳐오는 제국주의의 야욕 앞에 그는 결국 무력투쟁을 결심한다. 스스로 의병운동의 거물들을 찾아가 뜻을 나누고, 단지동맹 열한명의 동지들과 함께 약지 손가락을 끊어 맹세한 대한 독립! 주체적인 행동가였던 그가 걸어간 독립 운동의 길을 따라가 본다.
■ 당당하게 죽음을 선택하다
의거 직후, 안중근 의사는 총구를 자신에게 돌린 채 러시아 헌병대에 권총을 반납한다. 혼란을 틈타 충분히 달아날 수 있었던 상황, 그는 마치 체포되기를 원하는 듯하다. 공식적인 전쟁포로의 신분으로 조선의 상황과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던 것. 뤼순으로 호송, 일제의 각본대로 진행된 여섯 차례의 재판에서도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15가지 이유를 들며 지사다운 면모를 보인다. 사형이 집행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조선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외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행적을 되짚어본다.
■ 대한 독립의 영웅으로 남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지니고 다니던 한국인을 체포했다. 그의 사소한 흔적조차 독립운동의 상징이자 구심점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한 것. 눈감는 순간까지 듣지 못한 조국 독립의 소식,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유해, 미완으로 남은 <동양평화론>까지...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뜻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다.
명사수이자 교육자, 의병장. 제국주의의 심장을 저격한 안중근 의사. 그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12월 28 밤 9시 40분, KBS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안중근이 그렇게도 지켜내고자 했고, 마침내 우리가 지켜가야 할 이 땅에서 1909년 10월 26일 그 의거의 의미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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