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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20회 <문종 비극의 시작 - 세자빈 권 씨 단종 낳고 죽던 날>2014/03/16 미리보기

파라클레토스 2014. 3. 22. 14:11

 

 

문종 비극의 시작 - 세자빈 권 씨 단종 낳고 죽던 날

 

 

“세자빈 권 씨가 죽었다”
-1441년 7월 24일 세종실록

 

세자 시절 세 번 결혼했던 문종
그의 마지막 부인, 세자빈 권 씨의 죽음!
그녀의 죽음은 왕실에 불어 닥칠 피바람을 예고한다.

 

 

■ 세자빈 권 씨의 죽음, 피의 그림자를 몰고 오다


1441년 7월 24일, 왕세자였던 문종의 세자빈 권 씨가 사망한다. 이후 문종은 1452년 숨을 거둘 때까지 다시 왕비를 들이지 않는다. 문종 죽음 이후 왕실에는 12살 단종만이 남는다. 조선 개국 이래 처음으로 왕실은 권력 공백 사태를 맞는다. 세자빈 권 씨의 죽음이 12년 후에 일어날 계유정난의 불씨가 된 것이다. 조선 왕조 정통성에 위기를 가져온 세자빈 권 씨의 죽음! 과연 문종은 이런 비극을 상상이나 했을까? 세자빈 권 씨가 죽던 역사적인 ‘그날’로 돌아가 본다!


  

 

■ ‘세 번 결혼한 남자’ 문종

조선 개국 이래 적장자로서 최초로 왕이 된 문종. 29년 가까이 왕세자 수업을 거친 그는 문무(文武)에 모두 능통한 ‘엄친아’ 왕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했던 그에게도 단 하나의 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세자빈! 첫 번째 세자빈 김씨는 궁에서 금지된 요망한 비술을 사용하다 폐출되고 두 번째 세자빈 봉 씨는 궁녀와 동성애 스캔들을 일으켜 폐출된다. 세종을 빼닮은 성군이라 불렸던 문종, 대체 그와 세자빈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세종에 가려진 문종의 업적


재위기간 약 2년 3개월. 병약해서 단명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문종. 하지만 문종은 약 29년의 왕세자 기간 동안 세종의 업적 대부분에 큰 역할을 했다. 훈민정음 창제, 측우기 제작뿐만 아니라 4군 6진 개척, 화약무기 개발, 모두 문종의 손을 거쳤다. 문종은 왕위에 오른 뒤에도 과학, 역사, 국방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는데 특히 그가 왕세자 시절부터 직접 관여해 완성한 문종 화차는 당시 어느 서양 무기와 비교해도 우월한 성능을 보여준다. 15세기 제작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복원해 낸 문종 화차를 스튜디오에서 직접 만나본다.

3월 16일 일요일 밤 10시 30분 KBS 1TV로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아버지 세종과 동생 세조에 가려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인간 문종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