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전등화의 조선, ‘그들’이 있었다> 1편 항왜 왜장 사야카, 조선에 투항한 날
임진왜란 당시 조국을 등지고
왜군과 맞서 싸운 왜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조선군에 투항한 일본군, 그들을 가리켜 ‘항왜’ 라 부른다.
실록에 기록된 항왜 수만 1만여 명!
이들 중 전쟁에 공을 세운 항왜들은
조선의 성과 이름을 하사 받고
완전한 조선인이 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의 활약에 주목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7년에 걸친 전쟁에서
조선이 승리하는데 일조한 ‘그들’의 활약상을
<풍전등화의 조선, ‘그들’이 있었다> 시리즈를 통해 재조명해 본다.
■ 왜장 사야카, 조선에 투항하다!
일본군 제2군 가토 기요마사의 선봉대장으로 조선에 출병했던 사야카. 그는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부하들에게 약탈을 금하며 <효유서>를 붙인다. 그 내용은 조선의 문물을 흠모해 투항한다는 것. 그는 곧이어 귀순할 것을 요청했다. 3천명의 병력을 거느린 최고위급 장수의 투항! 거짓 투항은 아닌지 의심스러운데... 조선은 그의 투항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실 항왜들은 조선의 입장에선 고마운 존재지만, 일본의 입장에선 배신자나 다름없는데... 일본에서는 항왜의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까? 일본 후쿠오카여학원대학교의 사지마 아키코 교수에게 ‘항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조총 ? 왜검교사로 활약한‘항왜’
전쟁이 장기전으로 돌입하자 일본 진영에서는 탈영하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처음에는 적개심에 투항해온 자들이나 사로잡힌 자들을 모두 처단하는 ‘진살정책’을
취했던 조선이 나중에는 오히려 항왜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조선은 그들을 어떤 이유로 우대했던 것일까?
조총의 위력도 몰라봤던 조선이 전쟁이 시작되고 1년 뒤 조총을 생산해 낸다.
그 비밀은 항왜들에게 있었다. 조총의 위력에 놀란 조선 조정은 항왜들 중 조총을 제조하고, 사용할 줄 아는 자들을 불러들여 조총제조기술을 전수할 것을 명했던 것. 또한 조총을 잘 쏘는 항왜들은 조선군의 조총교사로 활약했다. 조총 외에도 조선군이 두려워했던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왜검. 검술에 능한 왜군의 칼날에 수많은 조선군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왜군의 검술을 눈여겨 본 선조는 검술에 능한 항왜들을 왜검 교사로 받아들인다.
■ 첩보원‘항왜
일본 진영에 투입해 재침에 대한 정보를 캐내며 첩보원으로서의 두드러진 활약도 펼쳤던 항왜. 그들 중 정유재란 당시 조명연합군이 혈전을 펼쳤던 도산성 전투에서 숨은 활약을 한 ‘여여문’이 있었다. 그는 몰래 도산성 내에 잠입해 일본군 배치도를 그려왔고, 이를
통해 조명연합군이 일본군을 포위하며 후퇴를 시킬 수 있었다.
조선을 위해 온몸을 던지며 항왜들이 활약을 펼치는 동안
조선 백성이 왕자를 납치해 일본군 장수에게 넘긴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다.
함경도 회령으로 피란을 갔던 임해군은 회령부 아전 국경인이란 자에 의해
가토 기요마사의 포로가 되고 마는데... 그는 왜 엄청난 반역을 저질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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