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안달루시아의 태양을 쫓아 코르도바로 향했다. 천년의 고도 코르도바에는 여전히 아랍인들의 숨결이 깃들어 있었다.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이슬람 세력이 이 도시를 지배했었다. 이슬람 세력이 물러난지 오래지만, 그들이 남긴 메스키타(Mezquita·이슬람 사원 ‘모스크’를 뜻하는 스페인어)가 수많은 여행자를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시간을 잊은 건축물 위로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졌다.
메스키타는 784년 코르도바가 칼리프 왕족의 수도였을 때 이슬람 사원으로 지어졌다. 스페인 국토회복운동 시 일부가 허물어졌고, 카를로스 5세 때 성당으로 개축하며 가톨릭과 이슬람교도가 한 곳에 공존하는 사원으로 거듭났다.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 말발굽 모양 아치를 856개의 기둥이 떠받들고 있는 사원 곳곳에 성화가 걸려있고, 중앙에 르네상스 양식의 예배당이 자리한다.
메스키타 주변의 가로수로 심어놓은 오렌지 나무 아래를 걸으니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구시가의 골목 안에는 눈이 부시게 하얀 집들이 어깨를 포개고 있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새하얀 벽을 수놓는 꽃의 향연이 이어졌다. 꽃길을 지나 레스토랑을 찾아가는 일은 꽤 즐거운 일과였다. 언제나 와인과 함께하는 식사라 더 즐거웠다. 첫 잔을 비노 블랑코(화이트 와인)으로 할까 비노 틴토(레드 와인)으로 할까 하는 고민은 아무리 해도 지겹지 않았다.
구시가의 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을 때였다. 차가운 토마토 스프, 살모리코(Salmorejo)로 시작해 하몽, 하몽을 넣어 튀긴 크로켓 등 스페인 전통 요리가 이어졌다. 식사가 마무리될 즘 주인장이 아랍풍 디저트와 페드로 히메네즈(Pedro Ximenez) 한잔을 내왔다. 간장처럼 진하고 진득한 액체가 위스키 샷 글라스만큼 작은 잔에 담겨 있었다. 코르도바의 전통주라고 소개하는 그의 눈빛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속는 셈 치고 한 모금 들이킨 순간, 감탄사가 툭 튀어 나왔다. 안달루시아의 빛나는 공기를 머금은 듯 화사한 단맛이 났다. 디저트용 식후주가 거기서 거기지 라는 편견을 깨주는 강렬한 맛이었다.
페드로 히메네즈는 스페인 남부 헤레스(Jerez)에서 유래한 ‘셰리(Sherry)'의 일종이다. 헤레스 뿐 아니라 말라가, 코르도바 등 남부의 도시에서는 그 지역에서 재배한 포도 품종으로 셰리를 만든다고 했다. 혀를 휘감는 페드로 히메네즈의 농후한 단 맛은 포도를 수확 후 15일 간 앞뒤로 뒤집어 가며 햇빛에 말려 당도를 바짝 끌어올린 노동의 대가라고 했다.
셰리는 맑고 드라이(달지 않은)한 피노(Fino)부터 당도와 풍미에 따라 올로로소, 페드로 히메네즈, 아몬티야 등 여러 종류로 나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드라이한 피노는 식전주로 마시고 달콤한 페드로 히메네즈는 식후주로 즐겨 마신다.
저녁 식사를 위해 찾아간 보데가 바(Bodega Bar)에선 셰리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보데가란 와인 저장고란 뜻으로, 보데가 바르는 직접 만든 와인 저장고가 있는 바를 뜻한다. 입구에는 전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 등 이곳을 다녀간 명사들의 서명이 쓰인 오크통이 늘어서 있었다. 서늘한 지하 저장고에는 같은 크기의 오크통이 3줄로 층층이 피라미드처럼 쌓여 있었다. 이것이 바로 셰리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비밀병기, ‘솔레라 시스템’ 이라고 했다.
빈티지가 다른 와인을 블렌딩하는 솔레라 시스템의 원리는 이렇다. 피라미드 맨 아래 줄에는 가장 오랫동안 숙성된 와인이 담긴 오크통을 배치한다. 먼저 맨 밑줄에 있는 오크통에서 와인을 3분의 1만 퍼낸다. 그리고 바로 위 단계의 오크통에서 와인 3분의 1을 퍼내 가장 아래 단에 있는 통에 넣는다. 두 번째 오크통은 제일 위에 있는 오크통에서 퍼낸 와인으로 보충하고 제일 위의 오크통에는 줄어든 양만큼 새로운 술을 채운다. 이렇게 반복하는 것이 솔레라 시스템이다.
보통 와인은 공기를 차단한 채 숙성시키는 반면, 셰리는 공기를 유입해 ‘산화 숙성’을 시킨다. 오크통에 담긴 와인이 공기와 접촉하며 숙성되는 동안 오크의 향이 더해져 복합적인 풍미의 셰리가 만들어 진다.
지하저장고를 둘러본 후 느지막이 시작된 저녁식사는 밤 11시가 넘도록 계속 됐다. 그렇게 코르도바의 밤이 깊어 갔다. 페니키아어로 '풍요롭고 귀한 도시'란 뜻의 카투바(kartuba)에서 유래한 도시의 이름처럼 더 바랄 것이 없는 밤이었다. 풍요로운 밤의 마무리는 귀한 술, 페드로 히메네즈가 장식했다. 일행이 둘러앉은 테이블에 작은 잔이 놓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페인어로 건배를 외쳤다.
“아리바 아바코, 아센트로, 살루트!(위로, 아래로, 중앙으로, 건강을 위하여!)”
위아래가 섞여 전통과 신선함을 잃지 않는 술, 페드로 히메네즈와 참 잘 어울리는 건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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