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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마음 먹고 준비한 제주 여행. 웃고 있는 자녀, 설렘 가득한 아내를 지켜본 A씨는 절로 즐거웠다. 이런 흐뭇함이 곧 한숨으로 바뀔 지 예상하지는 못한 채. A씨는 2박 3일의 짧은 제주도 여행을 알차게 보낼 생각에 렌트카 예약, 숙소 체크인 시간까지 고려해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계획은 첫날부터 망가졌다. 저가 항공보다 돈을 더 주고 예약한 대형 항공사 때문이었다. 출발보다 1시간 일찍 김포공항에 도착한 A씨, 티켓팅을 위해 창구로 향하자 항공사 직원은 말했다. “11시 10분 출발 예정이던 비행기가 항공기 연결 관계로 20분 지연됐습니다. 약관상 항공기 연결 지연은 보상 대상이 아닙니다” 렌트카 회사에 전화부터 한 A씨는 출국장으로 들어서자 이제 방송이 들린다. “11시30분 출발 예정이던 제주행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5분 늦은 35분부터 탑승을 시작 합니다.”
실제 비행기 이륙 시간은 예정보다 1시간 늦은 12시 10분을 넘긴 시간이었다. 그새 A씨가 타기로 했던 비행기보다 늦게 출발 예정이었던 제주행 저가 항공기는 먼저 하늘에 떠 있었다. 화가 난 A씨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은 ‘연결 관계 지연’이 무엇인지 알아봤다. 자신이 탄 비행기는 제주에서 김포로 와서 다시 제주로 가는 항공기인데, 제주 출발이 늦어져 김포에 제때 도착하지 못했고, 연쇄적으로 김포발 제주행 항공편도 늦어진 것이었다. A씨는 되뇌었다.
“나 말고도 대체 몇 명이나 여행 시작부터 기분을 망친 걸까”
지연된 비행기을 두고 여행객이 할 수 있는 건, 공항에서 죽치고 앉아있는 것 뿐이다. 항공사의 무성의한 설명과 기다림에 지쳐 커져가는 짜증과 불쾌함,여행은 이렇게 시작부터 망가진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인터넷에는 갖가지 조언이 넘쳐 난다. ‘○○항공사는 자주 지연이 되니 가급적 피하라’, ‘저가 항공은 지연이 잦으니 기왕이면 돈 조금 더 주고 대형 항공을 타라’ ‘○○ 노선은 수시로 지연된다’ 등의 조언은 여행객들에게 상식이 됐다. 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은 향후 항공기 이용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인터넷상 통념과 상식이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밝히고자 실제 데이터를 이용해 최초로 분석했다.
<마부작침>은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항공정보포털시스템(www.airportal.go.kr)에서 검색되는 지난해 항공기 출발 및 도착 정보 77만 여건을 전수 분석했다. 항공사별, 노선별, 공항별 항공기 지연율을 집계했다. 국토교통부는 자체 지침에 따라 국내선은 30분, 국제선은 1시간 초과해서 출발할 때 ‘지연’으로 집계하고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국토교통부의 자의적 기준이다. 이용자가 느끼는 지연과 격차가 크다는 판단에 따라 10분, 15분, 30분 초과로 세분화해서 집계했다. 분석 결과, 일부는 네티즌의 통념과 부합했지만 일부는 정반대였다.
● 국제선 출발 지연율 NO.1 ‘피치항공’
지난해 72개 항공사의 국제선 여객기는 13만 4천여 번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이 중 평균 하루 1번 이상, 즉 365회 이상 운항한 항공사는 36곳이다. 국내 항공사 중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2개의 대형 항공사, 제주항공, 진에어,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등 저가항공사 4곳 등 6개의 국내 항공사가 여기에 포함된다.
36개 항공사 중, 30분 초과 출발 지연율이 가장 높은 곳은 일본 저가항공사인 피치항공으로 분석됐다. 피치항공은 지난해 1,222번 인천공항을 출발했는데, 예정 시간을 30분 초과해서 출발한 것만 585번이다. ‘30분 초과 출발 지연율’이 48%에 달하는 것으로, 두 번에 한 번 꼴로 30분 넘게 지연 출발했다는 뜻이다. 뒤이어 장영항공, 심천항공, 중국동방항공이 40%대의 지연율을 보였고, 말레이시아항공이 출발 지연율 TOP 5에 들었다.
● 국제선 지연율 ‘대형항공 2개사 >저가항공’…대한항공 지연율 1위
눈에 띠는 점은 국내 대형 항공사인 대한항공이 34%의 지연율로 7위를 차지한 것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3만 7천여 번 인천공항을 출발했고, 이 중 30분 초과해 지연된 경우가 전체의 1/3이 넘는 1만 2천 6백여 번으로 나타났다. 평균 지연 시간은 28분이었다.
30분 초과 지연율이 두 번째로 높은 국내 항공사도 대형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으로 나타났다. 아시아나는 대한항공보다 5%p낮은 29%의 출발 지연율로 전체 36개 항공사 중에서는 지연율 상위 14위로 분석됐다. 평균 지연 시간은 대한항공과 같은 28분이었다.
대게 비용이 낮은 저가 항공사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같은 대형 항공사 2곳보다 출발 지연이 잦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던 것이다. 대항항공 자회사인 저가항공 진에어는 대한항공의 절반도 안 되는 15%의 지연율을 보였다.
30분 초과 지연율이 가장 낮은 곳, 즉, 상대적으로 정시 출발율이 가장 높은 곳은 에미레이트항공으로 나타났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지난해 365회 인천공항을 출발했는데 예정 시간보다 30분을 넘겨 출발한 경우는 6번에 불과했다. 지연율로는 2%다. 뒤를 이어 일본항공, 에티하드항공, 오로라항공이 한 자릿수의 지연율을 보였고, 유나이티드 항공이 13%의 지연율로 정시성이 높은 항공사 TOP 5에 들었다.
● 국제선 항공기, ‘예정시간+10분’ 이내 출발율 12%
한편, 국제선 항공기는 비행기 티켓에 기재된 예정 시간에 맞춰 출발하는 것은 거의 기대하기 힘든 것으로 분석됐다. 36개 항공사의 예정시간 대비 10분 이내 출발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바꿔 말하면, 10대 중 9대는 예정 시간보다 11분 이상 늦게 출발한 것이다.
‘10분 이내 출발 비율’이 가장 높은 곳, 즉 정시성이 가장 높은 곳은 에미레이트 항공으로 36개 항공사 중 유일하게 10분 이내 출발율이 90%를 넘었다. 대한항공의 10분 이내 출발율은 5%에 불과했고, 아시아나항공도 한 자릿수인 8%로 집계됐다. 10분 이내 출발율도 저가항공이 대형항공사보다 높게 나타났다. 제주항공이 10%, 이스타항공이 19%로 나타났고, 티웨이항공이 27%로 국내항공사 중에 10분 이내 출발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 정비 문제로 인한 지연율, 저가항공사>대형항공사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국제선 항공기의 지연 사유도 개별적으로 살펴봤다. 지연 사유는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서는 국토교통부 내부 기준인 ‘1시간 초과 지연‘ 때만 확인 가능한데, 때문에 부득이하게 앞서 살펴본 기준과는 다른 1시간 초과를 기준으로 분석했다.
인천공항 전체를 보면, 1시간 초과 출발 지연 중 가장 많은 사유는 ‘연결에 의한 지연’이었다. 전체 지연의 85.6%를 차지했다. ‘연결 지연’이란 앞서 A씨의 사례에서 소개한 것처럼, 인천공항을 출발해야하는 여객기의 도착이 늦어지면서, 인천공항에서의 출발도 연쇄적으로 늦어지는 경우를 말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기는 대개 중국을 경유하거나 중국 내 공항도 함께 운항하는데, 중국 내 공항에서 공항 혼잡 등의 이유로 출발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아 인천 등 국내 공항에서의 출발 지연이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연결 지연을 제외하면, 비행기 기체나 바퀴 등에 대한 정비 문제로 인한 출발 지연율이 전체 지연의 5.7%를 차지해 2위로 집계됐고, 태풍이나 바람 등 기상 문제로 인한 지연율은 4.1%로 뒤를 이었다.
국내 항공사 중 연결 지연으로 인한 출발 지연율이 가장 높은 곳은 제주항공이었다.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전체 항공사 평균보다 높은 88.4%로 집계됐다. 전체적으로 대형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평균보다 낮은 70% 후반대로 나타났고, 저가 항공사는 80%대로 집계됐다.
정비문제로 인한 지연율은 이스타항공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타항공은 1시간을 초과한 출발 지연 116번 중 정비 문제로 인한 지연이 13번으로 전체의 11.2%를 차지했다. 정비로 인한 출발 지연 비율이 높다는 건 평상시 항공기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거나, 고장이 잦은 노후 항공기의 높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스타항공의 뒤를 이어 진에어가 9.8%, 티웨이항공이 8.6%, 아시아나항공이 6.9%로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전체 국제선 항공사의 평균보다 높았고, 제주항공과 대한항공은 각각 5.6%와 4.9%로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항공사 중 대한항공의 평상시 항공기 정비 상태가 가장 우수하고, 대형항공사가 저가항공사보다 상대적으로 정비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국제 노선별 출발 지연율 1위…필리핀 클라크 필드행
인천공항에서 1년에 100회 이상 출발하는 노선 중에선 ‘필리핀 클라크 필드’로 가는 여객기의 30분 초과 출발 지연율이 5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지난해 인천공항발 클라크 필드행 운항 항공사는 아시아나항공과 진에어 2곳이었는데, 대형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의 출발 지연율(30분 초과)은 71%로 저가 항공사인 진에어의 44%보다 높게 나타났다.
‘클라크 필드’ 뒤를 이어 몽골 울란바토르행, 이탈리아 로마행, 스위스 취리히행, 베트남 나트랑행, 중국 정저우행, 러시아 모스크바 셰레메티에포 공항행의 ‘출발 지연율(30분 초과)’이 50%를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공항으로 가는 여객기는 2번 중 1번꼴로 예정시간보다 30분 넘게 지연돼 인천공항을 출발한 셈이다.
● 김포발 국내선 지연율 1위 대한항공, 노선 1위는 제주행
<마부작침>은 국내선의 경우, 이용자가 많은 김포공항과 제주공항을 대상으로 삼았고, 국내 항공사만으로 한정했다. 국내선에는 부산을 중심으로 취항하는 아시아나항공의 저가항공사 ‘에어부산’이 추가됐고, 지연시간 기준은 국토교통부 내부지침의 절반인 ‘15분 초과‘로 분석했다.
김포공항을 출발하는 국내선 항공기 중 15분 초과 지연율이 가장 높은 항공사는 대한항공과 대한항공의 저가항공사인 진에어로 나타났다. 두 항공사는 7개 국내 항공사 중 15분 초과 출발 지연율이 전체 운항의 절반이 넘는 52%로 각각 집계됐다. 에어부산이 가장 낮은 출발 지연율을 보였지만, 에어부산의 15분 초과 출발 지연율도 41%로 높게 나타났다. 대형항공사와 저가항공사로 구분하면, 국내선도 국제선과 같이 저가항공사의 지연율이 대형항공사보다 낮았다. 역시 저가항공이 상대적으로 지연이 잦을 것이라는 통념과는 상반된 결과였다.
김포공항을 지난해 100번 이상 출발한 국내선 노선만 보면, 출발 지연율(15분 초과)이 가장 높은 곳은 제주행으로 2번에 1번꼴인 51%로 집계됐다. 김포발 제주행 항공편 중 출발 지연율이 가장 높은 항공사는 대한항공으로 58%로 나타났다. 제주행에 이어 울산행이 48%, 김해행이 42%로 집계됐고, 광주행이 가장 낮은 35%로 나타났다.
● 제주발 국내선 지연율 1위 진에어, 노선 1위 군산행
제주공항을 출발하는 국내선 항공기의 출발 지연율(15분 초과)은 진에어가 74%로 가장 높았다. 2위는 대한항공으로 진에어보다 1%p 낮은 73%였다. 이스타항공이 가장 낮은 64%로 집계됐다. 대형항공사와 저가항공사로 구분하면, 제주발 국내선은 대형항공사의 지연율이 상대적으로 저가항공사보다 낮았다. 항공사 계열로 보면 대한항공과 진에어 등 대한항공 계열이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 등 아시아나 계열보다 출발 지연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 출발 국내선 노선별 지연율을 살펴보면, 가장 높은 곳은 군산행으로 75%였고, 사천행 73%, 광주와 여수행이 72%와 71%로 집계됐다. 국내선 운항 횟수가 가장 많은 김포행은 69%, 두 번째로 운항 횟수가 많은 김해행은 67%의 지연율을 보였다.
● 공항별 지연율…제주공항 1위
마지막으로 출발 지연율을 국내 공항별로 분석해봤다. 국제선 운항이 많은 인천공항은 국제선을 기준으로 삼았고, 김포와 제주 등 나머지 국내 공항들은 상대적으로 운항 횟수가 더 많은 국내선을 기준으로 삼았다. 지연 기준 시간은 국토교통부 내부 지침의 절반인 15분 초과(국내선), 30분 초과(국제선)로 삼았다. 인천공항은 30분 초과 국제선 출발 지연율, 나머지 국내 공항은 15분 초과 국내선 출발 지연율을 기준으로 공항별로 비교했다는 뜻이다.
그 결과, 전국 14개 공항 중 출발 지연율이 가장 높은 곳은 제주공항으로 분석됐다. 제주공항은 출발 지연율이 68%로 2위 군산공항보다 13%p 높았다. 인천공항은 29%로 10위로 나타났고, 원주공항은 11%로 사정이 가장 나았다. 1년에 1만 번 이상 항공기가 운항하는 대형 공항, 즉 인천공항, 김포공항, 제주공항, 김해공항만 따로 분류해 보면, 출발 지연율이 가장 높은 곳은 제주공항, 다음으로 김포공항, 인천공항, 김해공항 순으로 집계됐다.
제주공항 운항을 관제하는 제주지방항공청은 제주공항의 출발 지연율이 높은 것과 관련해, 제주공항의 활주로가 1개 밖에 없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설명한다. 제주지방항공청 관계자는 “제주공항은 1개의 활주로로 항공기 이륙과 착륙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관광객 증가로 항공기 운항 횟수가 증가하면서 지연율이 높아졌는데, 제 2공항 건설 등 인프라 확충 없이는 항공기 출발 지연율을 떨어뜨리는 것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안혜민(인턴)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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