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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셰익스피어, 홍길주의 재발견 [중앙일보] 19세기 문체반정의 시대

파라클레토스 2009. 6. 5. 22:03

조선의 셰익스피어, 홍길주의 재발견 [중앙일보]

19세기 문체반정의 시대
“질박하고 혈기있는 문장”
중국 콤플렉스 날려버려

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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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기이한 문장
최식 지음, 글항아리
438쪽, 2만3000원

“우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조선에 이런 보석이, 이런 대문호가 숨어있었다니 흥분을 멈출 수 없다. 대문호란 19세기 ‘조선의 기이한 문장가’ 항해(沆瀣) 홍길주(1786~1841)다.

알고 보니 최근 학계는 항해 재발견이 한창이었데, 이 책은 항해라는 인물에 대한 첫 보고서다. 항해는 누군가? “나의 글이 문장의 중원(中原)”이라고 선언했던 19세기 조선의 셰익스피어다.

항해의 중원(중심)선언은 중국을 겨냥한 주체 선언이다. 아니 중화사상에 찌든 조선조 선비들의 중국 콤플렉스를 겨냥한 포석이다. 진짜 문장(眞文章)을 구사한다면 중국·조선의 구분을 떠나 세상 중심에 서있는 것이라는 담대한 주장이다. 조선 말에 이런 터져나온 이런 사자후는 그 자체가 뉴스다. 한 선비의 괜한 객기일까? 오 노! 그는 사마천·장자에서 당송 팔대가의 글을 섭렵했고, 이후 “이게 문장이고, 이게 바로 나”라고 선언했다.

“예전에 문장을 짓지 못한 것은 중원을 몰랐기 때문이며, 지금 문장을 짓지 못하는 것도 중원을 모르기 때문이다.”(181쪽)

더도 덜도 아닌 조선지식인의 독립선언은 현대철학자 김영민을 연상시킨다. 김영민은 죽은 글쓰기(논문 중심주의)에 코 박고 있는 국내학자들을 ‘기지촌 지식인’이라고 비판했다.

항해는 한 수 위다. 중심부·기지촌 구분 자체가 무효이며, 중심부란 결국 말뚝을 박는 사람이 임자란다. 그런 멋쟁이 항해는 누구인가? 그는 돌연변이가 아니다.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당대 일급지식인들과 교유했다. 선배인 연암 박지원의 문장도 잘 알았다.

18세기 조선 지식사회의 성취와 한계를 알았으며, 변증법적 조화를 시도했다. 아시다시피 18세기는 청나라풍의 새로운 글쓰기(小品文)이 유행했다. 고루한 옛 문장(古文)의 옷을 벗어던진 날렵한 산문 실험이다. 사서오경의 거룩한(혹은 고루한) 글쓰기를 버리고, 일상의 작은 이야기와 반짝거리는 감성을 다뤘다. 이옥·이덕무와 연암 등이 문체실험의 신세대 간판스타였다.

그런 실험은 이내 국가권력과 충돌했다. 호학(好學)의 군주 정조가 나서 “경박하고 불온한 글을 쓰면 안 된다”고 비판했고, 선비들은 권력의 검열에 맞섰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이 문화전쟁이 바로 문체(文體)반정, 즉 글쓰기 쿠데타다. 천주교 유입 등으로 격동하는 한반도 1차 글로벌 물결을 어떻게 역동적으로 담아낼까를 둘러싼 샅바싸움인데, 여기에 항해가 나선 것이다.

그런 그가 왜 지금껏 ‘노바디’였지? 그의 문집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았고, 연암·다산 연구에 치었기 때문이다. 3년 전 이 책 저자의 논문이 나오면서 아연 항해는 문화영웅으로 떴다. 그럼 영웅의 풍모가 어떠했을까? 그는 옛 문장을 흉내 내며 고상 떠는 글을 “흙으로 만든 인형”이자 “젊은이가 노인 흉내 내다가 앓아눕는 꼴”이라고 했다. 짝퉁 문장을 벗어나려 한 것이다.

팔랑개비 같은 감각파 소품문은 “더럽고 탁하다”고 물리쳤다. 그럼 어떤 게 진문장일까? 그는 “질박하면서도 혈기가 살아있는 문장”을 최고로 쳤다. 그런 문장론을 입증할 문장도 지었다. 책에 나오는 항해의 글들은 눈에 비늘이 벗겨질 정도다. 청대 고증학(추사가 흠모했다)을 때리고, 장자의 문장을 패러디해 더욱 멋지게 만들어내는데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로 호쾌하다.

철학 즉 인식론의 토대도 탄탄하다. 진짜 지식(眞知), 진짜 깨달음(眞覺) 위에서 문장을 쓰라는 것이다. 성리학의 틀을 벗어난 상대주의적 패러다임을 도입한 대목도 유연하다.

눈여겨 볼 점은 항해는 결코 주변부 인물이 아니다. 19세기 지식사회를 주도했던 주류(경화세족) 사대부다. 큰 인물은 언저리의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중심에서 솟구치는 법인데 항해가 그러하다.

그 점에서 이 책은 항해와 18~19세기 문화사를 새롭게 풀어내는 첫 출발이다. 유감스럽게도 책 자체는 다소 고루하다. 천하의 항해를 논하면서 어찌 그리 글에서 포르말린 냄새가 풍기는지!

어찌됐던 오늘부로 우리는 18세기 셰익스피어인 연암에 이어 19세기 셰익스피어 항해까지 얻었다. 한문과 한글이라는 건너기 힘든 강이 문제이지만, 어찌됐든 21세기 세익스피어를 탄생시키는 게 우리 과제다.

조우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