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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만금 갯벌 가운데 가장 너른 갯벌이 펼쳐진 거전갯벌. 하지만 곳곳에 개맛과 모시조개 등의사체가 허옇게 널려있다. |
ⓒ 전라도닷컴 |
시펄 시펄 개펄이 소리 없이 죽어 가요 바다는 저만치 물러나서 울음바다 강은 인제 망했어요. -안도현 ‘개펄에서 놀던 강’ 중 3년 넘게 끌어온 새만금간척사업 행정소송에서 재판부는 2월 초 “이 사업의 계획을 바꾸거나 취소하라”는 요지의 판결을 내렸다. 소송을 제기했던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환영했지만, 정부는 법원의 판결이 못마땅한 표정이다. 곧바로 항소 입장을 밝혔고, 전체 33km 구간 가운데 2.7km 남은 마지막 물막이 공사까지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새만금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그 사이에도 갯벌은 계속 죽어가고 있다.
개펄이 소리 없이 죽어 가요 새만금 갯벌은 전북 군산과 김제, 부안 등 3개 시군에 걸쳐 펼쳐져 있다. 이 갯벌에서도 가장 넓은 곳이 김제의 거전갯벌이다. 이곳에선 백합(생합), 동죽, 모시조개 등이 많이 나는데 그 중에서도 백합은 그 맛과 영양에서 일품으로 꼽힌다. 백합의 산란기는 5월에서 9월. 겨울이면 평소보다 더 깊은 갯벌로 들어가 버리는 조개를 만나기는 어려울 터. 하지만 아직 살아 있는 그 어린것들을 보고 싶었다.
23번 국도를 타고 부안을 지나 김제에서 다시 702번 지방도를 달려 광활면 끝자락에 있는 거전마을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거전갑문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40대 주민 네 사람을 만났다. 갑문으로 통하는 수로 옆 갯벌에는 8톤급 어선 다섯 척이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배가 여기에 40∼50척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요것들이 전부예요. 그나마 석 달째 이러고 있소. 동죽이랑 백합을 잡는데, 수확량이 반에 반 이상 줄어서 나가 봐야 기름 값도 못 건지거든요.” “저 방조제 때문이요. 이 수로도 봐요. 죽은 뻘이 저렇게 쌓였잖어요. 큰 배는 아예 못 들어온당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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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닷컴 |
“몇 년 전까진 걸어다니믄 밟히는 게 종패” “종패는 어디서 따로 키우는 것이 아니고, 저 갯벌을 다니다 많이 있는 데서 가져다 자기 갯벌 양식장에다 뿌려요. 몇 년 전까지 여름에 뻘을 걸어다니믄 밟히는 게 종패였는디. 정부 보상 받은 뒤로 양식장도 없어져 불고, 그 뒤로 누가 종패 뿌리는 것을 못봤응께.” “아, 땅끌이(쌍끌이어선)가 싹 쓸어 가 불고, 대전 대구서도 왼디 사람들이 떼로 와서 새끼들까지 다 파가 불어.” 마을회관에 모여 앉은 10여 명의 동네 할머니들의 관심은 종패보단 최근의 화제인 새만금 방조제로 모아져 있었다. 논쟁이 벌어졌다.
“자석(자식)들이 여기서 계속 먹고 살어야 하는 집들은 전부 ‘반대’여.” “어이고, 그라믄 그때 반대하제, 왜 인자사 안 된다고 그려.” “그때는 갯벌이 저렇게 죽을지 알었어? 나라일인께 그란갑다 했제.” “보상 다 받어 놓고 뭔 소리여.” “깔쿠리 갖고 생합 잡던 사람들 중에 제대로 보상받은 사람이 어딨어.” 오가는 말 뜨거운 할머니들과 점심을 먹은 뒤, 갯벌로 나섰다. 오후 2시, 갯벌 초입 바위에서 아침에 나섰다가 돌아오는 한 주민을 만났다.
“없어, 통 없어. 새벽에 나와 저쪽 된등부터 돌았어도, 이것이 전부여.” 70세의 이 노인은 지고 온 비닐자루를 풀어 바위틈 작은 웅덩이에 쏟아 넣고 백합과 모시조개 등에 묻은 뻘을 대강 씻어내며 말했다. “여기가 없는 사람들한테는 생금밭인디. 저 놈의 방조제를 아예 막어 불든지, 아니믄 터불 든지 해야제. 벌써 몇 년째 저러고 있는 거여. ” 줄어든 수확량을 보면, 방조제는 웬수덩어리에 다름 아니었다.
개맛, 모시조개, 백합들의 공동묘지 수로에 막혀 처음부터 방조제 쪽으로 갈 수는 없었다. 군산쪽을 바라보며 갯벌을 걷기 시작했다. 발목까지 질척거리던 갯벌은 어느 틈엔가 단단한 모래질로 바뀌었다. 한 20분쯤 걸어 나가니 멀리 갯벌에 엎드려 있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걸음을 재촉해 보니, 네 발가락 갈퀴로 갯벌을 뒤집으면서 조개를 캐는 아주머니들이었다. “서른 번 정도 뒤집으면 (조개가) 하나나 나오네요. ” 김제에서 왔다는 주부 김현희씨(31)의 얼굴엔 아쉬움이 역력하다.
그들의 작업공간 옆으로 소금을 뿌린 듯 하얀 무더기들이 보인다. 맛조개의 사돈뻘 되는 ‘개맛’들이다. 멸종되지 않고 자그마치 2억5천만을 견뎌온 ‘살아 있는 화석’이다. 이들은 유기물을 걸러먹으며 갯벌을 정화시켜왔다. 하지만 지금은 뻘 위로 몸의 절반쯤 내놓은 채 수백 마리씩 무리지어 허옇게 죽어있었다. ‘개맛’들의 공동묘지인 셈이다. 손가락으로 가만히 건드려보니 ‘푸석’하며 바스라진다. 저 멀리 보이는 사람의 형체를 나침반 삼아 걷는다. 계화도에서 와 혼자 그레질을 하던 정인임(52)씨의 홀쭉한 망태기도 뒤로한 채, 방조제 쪽을 향한 걸음을 계속한다.
물이 찰방거리는 갯벌을 걷는 동안 껍질만 남은 조개 시체들이 밟힌다. 속살은 간 데 없고 입 벌린 채로 뒹구는 모시조개. 흰 테두리에 고운 먹빛은 이제 생명의 빛이 아닌 죽음의 빛이다. 할머니의 손길에 닳은 시골집 오랜 장롱처럼 고둥색이 반질하던 백합도, 생명력을 잃으니 껍질을 문지르는 대로 꺼풀이 벗겨진다.
‘지평선’ 대신‘뻘평선’이라 하던 생명의 터전 죽음의 벌판에서도, 새끼 손톱만한 서해비단고둥들은 빙글빙글 제자리를 맴돌며 ‘생명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살아 있소’라는 몸부림 같다. 꽤 멀리 나온 듯 해 돌아본다. 처음 출발했던 거전마을이 아득하다. 다시 방조제 쪽을 보니 큰밍가사섬 쪽에 사람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이제 사방을 둘러봐도 가까운 육지까지는 족히 한 시간은 걸어야 할 터. 오죽했으면 사람들은 이곳을 ‘지평선’ 대신‘뻘평선’이라 했을까. 이 너른 터에 온갖 생명들이 살아왔고, 그들이 사람들을 먹여 살려왔다. 그 갯벌에 의지해 자식들을 키우고, 자식 키우듯 종패를 뿌리고 키워 다시 거둬들이길 반복해왔다. 더 멀리 가는 길에 갯벌의 오토바이족들을 만났다. 뻘 바닥이 단단하니 오토바이뿐이랴, 멀리 군산 쪽 갯벌엔 트랙터도 와 있다.
김제 만경에서 오셨다는 전태석(68) 할아버지는 서두름 없이 그레질에 열중이었다. 그레질을 하다 ‘따각’ 소리가 나면 허리를 굽혀 조개를 주워 담는 동작을 반복했다. 뒤를 한참 따라다니다 보니 할아버지가 주워 담는 조개는 일정한 크기 이상의 기준이 있었다. “어린것을 살려야 어른 되고, 그래야 그것들이 다시 새끼를 치제. 그것이 세상 이치 아니여?” 한겨울 뻘평선에서 더 없이 옳은 ‘세상 이치’ 하나 배우고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