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산반도◈/◐변산반도

‘만인의 연인’ 이매창 숨결 흐르는 부안

파라클레토스 2010. 11. 18. 12:09

‘만인의 연인’ 이매창 숨결 흐르는 부안

[2010.01.20 19:17]


애끓는 사랑 기억하는 바다… 오늘도 서럽도록 붉다

동그라미 네 개가 노을이 꽃피는 모항 해변을 달린다. 그녀가 달려오고 그가 달려간다. 400여 년 전 붉게 물든 부안의 바다에서 시를 짓고 거문고를 타던 이매창과 유희경의 단심도 이랬을까. 달려가고 싶고 함께하고 싶지만, 서울과 부안이라는 너무나 먼 거리. 사무치도록 그리운 연인을 기억하는 부안의 노을이 오늘도 그날처럼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아름다운 자연과 사랑스러운 여인은 시인부터 불러 모은다.

고려의 문신 정지상을 비롯해 조선의 서거정, 김종직, 김시습 등 옛 시인은 절경에 이끌려 전북 부안을 찾았다. 반면에 정비석, 이병기, 최남선, 이은상은 매창뜸으로 불리는 부안읍내 공동묘지에 잠든 그녀를 만나기 위해 불원천리 변산반도를 찾았다.

분신이나 다름없는 손때 묻은 거문고와 함께 고이 잠든 그녀는 누구일까. 수많은 시비에 둘러싸인 채 지금도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애달파하는 그녀는 어떤 인물일까. ‘만인의 연인’으로 불리는 그녀는 황진이와 쌍벽을 이루던 조선시대 대표적 여류시인 이매창(李梅窓)이다.

‘매화가 핀 창’이라는 뜻의 호를 가진 그녀의 이름은 이계생. 조선 선조 6년(1573년)에 부안현 현리인 이탕종의 서녀로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천애의 고아가 되면서 부안현청에 기적을 올린다. 그리고 당시 상례학의 제1인자이자 시인인 유희경을 만나 변산반도의 산하를 주유하면서 시를 짓고 때로는 거문고를 탔다.

하지만 28세 연상인 유희경과의 만남은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매창은 ‘이화우 흩날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는 시로 애끊는 심정을 전했고, 유희경은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 그리움이 사무쳐도 서로 못보고 / 오동나무에 비 뿌릴 젠 애가 끊겨라’라는 시로 화답했다. 매창이 지은 수많은 시 가운데 지금까지 전해오는 시는 ‘이화우(梨花雨)’를 비롯해 58편.

매창이 유희경과 함께 시를 짓고 거문고를 탔던 로맨틱한 밀회 장소는 어디일까. 그녀가 남긴 시에는 월명암 정도만 전하지만 연인은 내변산의 기기묘묘한 산봉우리와 노을이 아름다운 외변산의 그림 같은 바닷가를 찾아 시도 짓고 사랑도 나누었으리라.

눈송이가 이화우처럼 흩날리던 어느 겨울날. 변산을 넘는 736번 지방도로의 설경은 알프스를 무색하게 한다. 변산반도를 비롯한 서해안은 폭설이 자주 내리고 빨리 녹는 게 특징. 소나무 가지가 휘어지도록 쌓인 눈은 한나절도 지나지 않아 이화우처럼 낙화한다. 마치 38세에 요절한 매창의 삶처럼.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히는 변산은 발을 들여놓을수록 깊고 은근하다. 내변산으로도 불리는 변산은 최고봉인 의상봉(509m)을 비롯해 쌍선봉 관음봉 등 기기묘묘한 봉우리들이 서로 자웅을 겨룬다. 그리고 그 봉우리와 계곡에는 월명암 직소폭포 낙조대 선녀탕 어수대 등 매창을 비롯해 수많은 시인들이 극찬한 절경이 여전하다.

내변산의 중심은 상서면 청림마을로 길은 이곳에서 세 갈래로 갈라진다. 부안읍내에서 설경이 아름다운 우슬재를 넘어오는 길이 첫 번째요, 부안호를 가로지르는 중계교를 넘고 월명암과 직소폭포를 스쳐 변산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이 두 번째다. 그리고 세 번째는 바디재(바드재)를 넘어 곰소와 줄포로 가는 길로 경사가 급하고 구불구불해 눈이라도 내리면 통행이 차단되기 일쑤다.

매창의 시와 노래를 사랑해 오랫동안 교분을 나눴던 허균의 흔적은 세 번째 길에서 만날 수 있다. 청림에서 구절양장 바디재를 오르면 우동저수지 너머 멀리 곰소 앞바다가 아련하다. 이른 아침 우동저수지에서 피어오른 산안개와 해질녘 곰소 앞바다를 벌겋게 채색하는 낙조는 바디재에서 볼 때 더욱 장관이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조선의 ‘체 게바라’가 되기를 원했던 허균은 파직당한 후 부안으로 내려와 선계폭포의 깎아지른 벼랑 위에 위치한 정사암에 머물며 ‘홍길동전’을 창작했다고 한다. 부조리한 세상을 한탄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허균에게 매창은 한낱 기생이 아니라 사상과 우정을 나누던 사제 관계였다고나 할까.

흥미로운 사실은 정사암이 위치한 우반동 일대에 홍길동전에서 묘사한 지형과 지명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도적들의 은거지인 굴바위도 이곳에 있고 율도국으로 전해오는 위도는 부안의 섬이다.

허균은 훗날 매창이 죽었다는 소식에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 맑은 노래는 머문 구름도 풀어 헤치네 /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세계로 내려오더니 /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무리를 두고 떠났네 /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기만 하고 / 비취색 치마엔 향내 아직 남아있는데 /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 때쯤이면 / 누가 설도의 무덤을 찾으리’라는 시로 허전한 마음을 달랬다.

우동저수지에서 조금 내려가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반계 유형원이 ‘반계수록’을 집필한 서당이 나온다. 성리학의 폐단에 분노한 유형원은 매창과 허균이 세상을 떠난 반세기 후에 내변산과 외변산의 길목에 위치한 우동리에 19년 동안 머물며 조선후기 실학의 선구자 격인 ‘반계수록’을 완성한다.

매창과 허균, 그리고 유형원의 꿈과 사랑이 흐르는 세 번째 길은 우동리에서 30번 국도를 만나 외변산을 에두른다. 곰삭은 젓갈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는 곰소항과 10여 채의 소금창고가 한 줄로 늘어선 곰소염전은 장롱 속 앨범 속에서나 발견하는 빛바랜 흑백사진. 곰소염전의 천일염과 만난 어패류는 문병란 시인의 시처럼 석 달 열흘 동안 ‘썩고 썩어도 썩지 않는 젓갈, 썩고 썩어서 맛이 생기는 젓갈’로 거듭난다.

이어 길은 600m 길이의 전나무 숲길로 유명한 내소사와 모항을 거쳐 전북학생해양수련원 앞에 위치한 솔섬에서 한편의 시와 그림 같은 해넘이를 벗한다. 유희경을 향한 매창의 단심처럼 붉은 태양이 솔섬의 소나무 가지 사이로 떨어지면 하늘과 바다가 서럽도록 붉게 물든다.

유홍준씨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1권을 쓰면서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을 두고 ‘남도 답사 일번지’를 저울질할 정도로 자연과 문화가 깊이와 무게를 지닌 곳. 매창이 고이 잠든 부안은 그런 곳이다.

부안=글 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