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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행 예산1부-깨달음의 산, 가야산 2012 0903 ▣

파라클레토스 2012. 9. 4. 21:05

 

어머니의 치마폭 같은 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산이 고을을 품었습니다

그 품안에 너른 땅은 생명이 살아갈 풍요를 내어주었고

산빛을 닮은 물은 땅을 적시며 삶의 젓줄이 됩습니다

그 자연속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고을 예산

그곳에서 오늘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깨달음의 산, 가야산

 

충청남도 중북부를 남북으로 흐르는 가야산(해발678m)

 

삼국시대 서해물길 따라 배가 드나들던 매포지역의 중심산이기도 합니다

산 안으로는 너른 평야를 품고 서해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맞아 기름진 땅을 갖게했고

산 밖으로 높이 솟은 봉우리들이 옛날 중국으로 오가는 뱃길의 지표역할을 해

일찍부터 문화교류에 이용되었다 합니다

 

옛 사람들에게 이길은 당나라 유학길의 관문

원효 역시 가야산길을 올랐다는 전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을 가면서 잠시 몸을 피했던 전설이 남아 있는 곳

아마도 원효대사가 가야산에 불교의 선진 문물이 많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유학을 가지 않아도 이곳에서 (불교문물을)많이 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일체유심조' 세상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화엄경 구절

득도굴에서 원효는 일생의 큰 깨닳음을 얻게됩니다

깊은 밤 갈증이 난 원효는 바가지의 감로수를 마셨고

아침에야 그것이 해골이 썩은 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학을 포기했고 신라로 돌아가 민중불교의 싹을 틔웠습니다

이곳에 전설처럼 내려오던  실제 장소

 

득도굴에서 내려온 샘물은 산행의 고비를 잊게하고

원효의 깨닳음을 다시금 마음을 품게합니다

 

그래서 가야산의 또 다른 이름은 '깨달음의 산' 

가야산은 많은 선비들과 학자들이 오고가며 불교문화의 전성을 이룬 곳

 

한때 100여 개가 넘는 절이 지어졌고 그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마침내 가야산 정상입니다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가야산정상에 서니

산이 품은 매포땅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가히 예산이 낳은 명산중의 명산입니다

 

산이 반원으로 감싼곳에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가 있습니다

대대손손 왕을 배출하고자 했던 흥선대권군이 이곳에 옮겨놓았습니다

 

가야산은 예부터 풍수지리 명당으로 손꼽혔습니다

조선 18대 왕 현종태실

태실은 국운과도 같은 것

장소설정 봉안날짜 그 절차가 까다롭게 결정됐습니다

 

가야산 인근과 예산에 5개 태실이 있을 정도

 

이 레일은 산과 세상을 이어주는 통로

 

관음전

흥선대원군이 산신제를 위해 지어진 기도터

 

오랜 세월 기도객들만 이어졌을 뿐 사람들이 살지 않던 곳

묘련스님이 이곳생활을 시작한 지는 3년 전

 

발전기를 돌려서 밧데리에 충전해서 전기를 사용

 

산에 오른 첫해에는 장작을 구하러 험한산을 누비기 시작

산중 암자는 습기가 많아 자주 불을 떼어야 됩니다

 

가야산 7부 능선에 놓인 바위를 방석삼고 예산땅 풍광을 벗삼아 식탁을 차립니다

메뉴는 산중 나물들, 냉장고는 언감생신, 쉽게 상하지 않는 음식이 상에 올라옵니다

 

가야산 남쪽끝자락

8만 ㎡ 산에 약초가 지천입니다

 

열매 색이 세번 변한다는 생강나무

 

산삼나무라 불리는 엄나무

 

산초

이외에도 40여가지가 넘는 약초가 뿌리내리고 있음

 

백선

쓰임새에 따라 '봉황삼' 또는 '봉삼'

 

 

그래서 박광수씨 가족에는 약초가 빠지지 않습니다

약이 되는 밥상

 

자연과 사람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어우러져 살아갑니다

그 이치를 따라 자기것들을 묵묵히 내어주는 가야산

그 산이 예산에 있습니다

 

자연이 그려 놓은 한 폭의 수채화

 

그림과 같은 곳에 살아가는 사람들

 

예산 2부 물에 기대어 살다, 예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