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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 해외진출 기대주는.. 그들이 읽고 싶은 작품이어야 문 열린다

파라클레토스 2016. 5. 28. 08:02



‘채식주의자’의 번역자로 작가 한강과 함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공동 수상한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가 좋아하는 또 한 명의 작가는 배수아라고 한다.

“가장 좋아하고 또 언제나 좋아하는 작가는 배수아입니다. 그녀의 책들은 매우 특별한 문체를 가졌어요. 한국인들에게조차도 그녀의 스타일이 매우 생소하게 다가올 수도 있어요. 그녀의 문장 속에서 전혀 다른 것들을 보게 되지요.”

지난 1월 월간지 ‘책’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데버러 스미스는 배수아의 ‘에세이스트의 책상’ ‘서울의 낮은 언덕들’ 등을 번역했고, 조만간 영국에서 출판할 예정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소설가 정유정, 황선미, 배수아, 이정명, 이승우, 편혜영, 황석영. 뉴시스·국민DB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소설가 정유정, 황선미, 배수아, 이정명, 이승우, 편혜영, 황석영. 뉴시스·국민DB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은 한국문학에 대한 오래된 비관론을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 국내적으로는 한국문학이 세계 문학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나고 있고, 국제적으로는 한국문학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한국문학 해외 소개 사업이 마침내 결실을 거두는 시점에 도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렇다면 맨부커상 수상으로 촉발된 한국문학의 세계화 바람은 한강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한강 이후는 누구일까?

일단 배수아를 언급하는 이들이 많다. 데버러 스미스에 의해 영국에서 번역 출판될 경우 한강을 잇는 또 한 번의 신드롬이 일어날 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배수아는 미국에서도 반응이 좋다. 아마존 출판그룹이 지난해 출간한 배수아의 ‘철수’는 미국 펜(PEN) 번역상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번역문학원의 고영일 번역출판본부장은 “배수아의 작품들은 강렬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런 작품을 외국에서 선호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정유정도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작가다.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7년의 밤’은 영미권에서는 출간되지 않았지만 유럽에 소개됐고, 지난해 독일의 유력 주간지 자이트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추리소설 10선’에 들었다.

정유정의 신간 ‘종의 기원’을 들고 해외시장을 노크하고 있는 이구용 케이엘매니지먼트 대표는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이고 영미권에서도 반응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미국에서 출간되는 이정명의 ‘천국의 소년’도 주목해볼 만하다. 이정명의 ‘별을 스치는 바람’은 2014년 영국 최대 출판사 중 하나인 맥밀란에서 출간됐고,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에 통합된 ‘인디펜던트 외국소설상’의 후보작으로 선정됐었다.

편혜영의 ‘재와 빨강’과 ‘홀’은 최근 미국의 해외문학 전문 출판사에 한꺼번에 팔렸다. 편혜영의 장편소설이 미국시장에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재와 빨강’은 내년 봄에, ‘홀’은 그 다음 해에 출간될 예정이다.

한국문학번역원과 대산문화재단은 그간 한국문학을 외국어로 번역 출간하는데 꾸준히 지원해 왔다. 그간 외국에서 출판된 한국문학 작품들은 대부분 이 두 기관의 번역 및 출판 지원을 받아서 나온 것들이다. 그러나 배수아, 정유정, 이정명, 편혜영 등은 한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고를 본 해외 출판사들이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해 출판에 나섰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 역사에서 2005년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영어판 출간은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영미권에 자력으로 진출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구용 대표는 “김영하 이전에는 현지 편집자가 한국 소설을 스스로 발견해 출판을 결정한 예가 거의 없었다”면서 “김영하의 사례를 보고 한국문학도 영미권의 1%(해외문학 비중) 관문을 뚫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게 됐다”고 전했다.

이후 조경란, 신경숙, 공지영, 황선미 등이 같은 방식으로 영미권에 소개됐다. 현재까지 영미권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한국문학 작품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이다. 2011년 미국에서 출간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까지 올랐고, 2012년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하며 영국 등 유럽에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35개국에 판권이 팔렸는데, 현재까지 한국문학 해외 수출 기록으로는 최고다.

영미권에서 인지도로 치자면 황선미 작가도 만만치 않다. 황선미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 영어판은 영국 출간 즉시 고전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영국 대표 일간지 인디펜던트와 최대 서적유통체인인 워터스톤즈에 의해 ‘2014년 올해의 책’으로 뽑히기도 했다. 미국에선 펭귄출판사가 ‘마당을 나온 암탉’을 출간했다.


이번에 한강이 맨부커상을 받으면서 신경숙, 황선미에 이어 영미권에 이름이 통하는 또 한 명의 한국 작가가 등장한 셈이다. ‘채식주의자’를 낸 영국의 포르토벨로 출판사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연내 출간하고, 내년에는 한강의 신작 ‘흰’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유럽에서는 이승우와 황석영이 가장 두터운 인지도와 독자층을 확보한 한국작가로 꼽힌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제일 먼저 한국문학에 관심을 보여준 곳이다. 1990년대 ‘금시조’를 시작으로 이문열과 이청준의 작품들이 프랑스에 소개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 들어 이승우, 황석영, 김영하 등이 이름을 알렸다. 특히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과 ‘생의 이면’, 황석영의 ‘손님’ 등이 큰 관심을 받았다.


독일에는 2005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한국이 주빈국을 맡은 게 계기가 되어 한국문학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독일의 명문 출판사 dtv가 ‘오래된 정원’ ‘손님’ ‘한씨연대기’ 등 황석영의 소설 3권을 펴냈고, 성석제의 ‘위풍당당’이 올해 독일에서 나온다.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상무는 “유럽에서는 이승우, 김영하, 한강 등이 통하고 있고, 김애란, 황정은 등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강의 수상을 계기로 한국문학의 해외 수출 전략을 재검토하고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고영일 본부장은 “그동안 우리의 관점에서 작가와 작품을 골라 해외에 내보낸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는 저쪽(해외)의 기대와 기호를 반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너무 순수문학 위주였던 것 같다. 대중적인 작품도 소개하면서 해외 독자들을 한국문학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포르토벨로의 편집자 카 브래들리는 지난해 ‘대산문화’ 가을호에 기고한 글에서 “‘동양적’인 것으로 팔리는 책은 서가에 오래 남아있지도 못할뿐더러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면서 “해외 독자들에게 한국작품을 접하게 하는 가장 올바른 방법은 ‘한국의 소설 작품’이 아니라 ‘소설 작품인데 한국에서 쓰여진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조언했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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