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뉴스

[김영수의 사기그릇] 비방목

파라클레토스 2010. 10. 18. 20:27

[김영수의 사기그릇] 비방목

한겨레 | 입력 2010.10.18 20:20

 

 

[한겨레] 한나라 초기, 공신들의 모반이 이어지고 여태후가 집권했다. 여태후가 죽고 여씨 세력을 축출한 원로 대신들은 중앙 정치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대왕(代王) 유항(劉恒, 훗날의 문제)을 옹립했다. 정권이 초기 병목 위기를 겪는 동안 문제는 백성들을 가까이하면서 비교적 차분한 생활을 보냈다.

문제는 즉위 후 전국에 자신의 통치에 대한 '여론 수렴령'을 내렸다. 이어 통치자의 잘못을 비방하면 엄하게 처벌하던 '비방죄' 폐지를 단행했다. 그는 비방죄를 폐지하면서 전설시대 요순 때 궁궐 앞에 세웠던 '비방목'(誹謗木)을 언급했는데 여간 의미심장하지 않다.

"옛날 선왕들이 천하를 다스릴 때 조정에는 올바른 진언을 위한 깃발, 즉 '진선지정'(進善之旌)과 비평을 위한 나무 팻말, 즉 '비방지목'(誹謗之木)을 만들어 다스림의 올바른 길을 소통시키고 직언하는 사람들이 나설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지금 법을 보면 비방과 유언비어에 대한 처벌이 있는데, 이는 신하들로 하여금 마음에 있는 바를 다 쏟아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황제에게는 자신의 과실을 지적받을 기회를 없애는 것이다. 그러니 먼 곳의 유능한 인재들을 무슨 수로 오게 하겠는가? 이 죄목을 없애도록 하라!"

백성과 인재들에게 자유로운 생각을 마음껏 발표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이것이 약 2200년 전 문제가 보여준 자기성찰과 통치의 경지였다. 이 경지에서 문제는 덕으로 백성들을 교화하는 데 힘쓸 수 있었고, 그 결과 전국의 인구는 늘고 경제는 부유해졌으며 예의와 염치를 아는 풍토가 조성되었다. 통치자의 자기성찰은 백성의 삶의 질과 직결된다.

중국 전문 저술가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